사무라이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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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지만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대체 믿음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존재를, 왜 어떤 사람들은 믿는 걸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믿는 존재를, 왜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걸까. 믿어야 잘 살고 행복해진다면, 그 믿음의 본질은 이기심이 아닐까. 반대로 나의 안녕과 행복을 해치는 종교를 계속해서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기 일본이 배경인 소설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당국의 협박에 못 이겨 신앙을 버리는 신도들도 있지만, 일부는 신앙을 지키고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것을 보면서, 포르투갈인 선교사 로드리고는 신자들이 이런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신자들로 하여금 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지 묻는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 무엇을 위한 순교일까요?" 비슷한 문제 의식이, 엔도 슈사쿠의 또 다른 소설 <사무라이>에도 나온다. 





"드넓은 바다를 가르며 왕을 만나기 위해 스페인까지 갔다. 그런데도 왕을 만나지 못하고 그 사내만 보게 되었다." (494쪽) 


198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실화에 기반한다. 전국시대 말기, 일본 동북부 센다이에서 작은 봉토를 할당받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던 하급 무사 '하세쿠라'는 갑작스럽게 주군으로부터 '멕시코에 가라'는 명령을 받고 멕시코로 향하는 커다란 배에 오른다. 한편 일본을 기독교 국가로 개종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일본행을 자원한 스페인인 신부 벨라스코는 멕시코와의 무역망을 터주는 조건으로 일본인 몇 명을 멕시코로 데려간다. 벨라스코는 일본인들에게 열심히 예수의 기적을 전하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교회 측에서도 일본인들을 반기지 않는다. 


<침묵>이 믿는 사람이 믿음을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면, <사무라이>는 믿지 않는 사람이 믿음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하급 무사인 하세쿠라는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오르기 전까지 기독교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어차피 출세와는 거리가 먼 몸이라서, 소출이 적은 땅일지언정 열심히 농사 짓고 세금 내면서 착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기르며 조용히 나이 드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자 사명인 줄 알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주군의 명을 받아 멕시코로, 나중에는 유럽으로 가는 중에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벨라스코가 아무리 설득해도, 기독교를 믿는 일은, 진심으로 믿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어긋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는 차츰 예수라는 사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과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박해를 당하다 죽게 된 사내 예수와, 주군의 약속과 가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낯선 외국 땅에서 고생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도 기대한 보상을 얻지 못하게 된 자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게 보인 것이다. 이윽고 그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기독교에 귀의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는 평생 함께해줄 사람, 배신하지 않을 사람, 떠나지 않을 사람을 - 설령 그것이 병들어 쇠약한 개라도 좋아 - 찾고 싶은 바람이 있는 거겠지. 그 사내는 사람에게 그런 가련한 개가 되어주는 거야." (469쪽) 


이 소설은 실화인 동시에 작가 엔도 슈사쿠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열한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니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톨릭 세례를 받은 작가는, 35일 동안 배를 타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경험과 성인이 된 후에야 진심으로 기독교를 믿게 된 과정을 이 소설에 녹여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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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키치 2022-04-11 08: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
 
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 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선형 옮김 / 샘터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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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평소에는 하기 힘든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외국의 장소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 어느 것도 맞지만,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행은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진행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 더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가방을 도둑맞는다거나. 물론 그 순간에는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보다 강렬한 추억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걸까. 


일본의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의 에세이집 <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에도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최고의 여행지라는 평판이 자자해 열심히 찾아갔는데 웬걸 제대로 된 식당 하나 보이지 않아 당황했던 일('최고의 여행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저녁을 먹고 술까지 마시고 기분 좋게 숙소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가방을 빼앗으려고 했던 일(다행히 가방도 안 빼앗기고 저자도 무사했다) 등 기대나 예상을 배신하는 순간들이 이 책에 자주 나오고, 또 그런 순간들이 담긴 에피소드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조차 특별한 추억이 되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저자에게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꼭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예전에 좋은 추억으로 남은 여행지에 다시 갔다가 실망하는 일이다. 저자의 첫 여행지였던 태국 타오섬은 한때의 고요하고 한적했던 분위기를 잃고 흔한 관광지가 되었다. 그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서 저자는 태국에 갈 일이 있어도 타오섬 근처까지만 가고 타오섬에는 가지 않는다. 대체 과거의 타오섬이 얼마나 좋았길래...! 비교할 추억조차 없는 난 그저 부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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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유희경 지음 / 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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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운영하면 어떨까. 베스트셀러나 참고서처럼 잘 팔리는 책들만 잔뜩 있는 서점 말고, 나의 선호와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들로 가득한 서점을. 그렇다면 누가 나의 서점에 와서 책 한 권만 사주어도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기분이 들 것 같다. 혹은 한 권도 팔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결국 서점 문을 닫게 되려나. 


갑자기 서점 생각을 한 건, 대학로에서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산문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을 읽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집서점을 연 저자는, 2016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거의 매일 서점 문을 열고 닫으며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클릭 세 번이면 책 한 권이 당일 배송되는 시대. 대형서점조차 매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대에, 시집만 파는 작은 서점이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책에서 종종 (실은 자주) 손님이 적다고 아쉬워하는 걸 보면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서점지기의 일이 참 근사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음악도 책상도 향기조차도 손님을 배려해 셀렉트된 서점이라니. 언젠가 읽고 기억에 남은 시구를 한 줄만 말해줘도 시집 제목을 알려주는 서점지기라니. 서점지기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책을 파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일보다 낫지 않을까. 


더욱이 저자가 파는 것은 다른 책도 아니고 시집이다. 시집을 사려고 이곳까지 찾아오는 손님들, 시집을 사지 않아도 꽃이나 음식 같은 선물을 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냥 서점이 아니라 시집서점이 필요한 이유를 납득했다. 여기는 단순히 시집을 팔고 사는 공간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곳이구나. 그렇다면 저자는 매출과 무관하게 이미 성공한 것 아닐까(그래도 장사가 잘 되어서 서점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멀지 않은 미래에 저자의 서점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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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3-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트앤시니컬 주인장의 산문집이군요
왠지 반갑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 이층 아래로 거리가 낮게 보여 소박한 느낌이었어요. 주인장이 소장하는 시집들을 위한 작은 코너도 있구요. 그래도 시집도 많이 팔리면 좋겠네요.
 
어른의 방과 후 4
이치히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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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에는 힘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색다르게 만들고, 사소한 일과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이치히의 <어른의 방과 후>는 짝사랑을 하고 있거나 썸 타는 중인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코믹 일상 만화다. 이 만화를 보면 어디에나 있는 건물 복도, 허름한 선술집, 공원 벤치도 근사한 로맨스의 공간이 된다는 걸 믿게 된다.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마주치는 사람도, 어쩌면 나를 좋아하거나 내가 좋아하게 될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는 속으로만 끙끙 앓고 겉으로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최종권인 4권에서 마침내 고백에 성공하고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하는 커플이 탄생한다. 최종권까지 커플이 되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좋은 분위기라서 언젠가는 사랑을 이룰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에피소드 한 편의 길이가 8페이지 정도라서 짧은 호흡으로 읽기 좋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달하고 유쾌하다. 비슷한 분위기의 만화를 좀 더 읽고 싶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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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는 죽지 않는다 2
마도로미 타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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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있는 순간에 그동안 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정신이 번쩍 들고 젖 먹던 힘을 내서라도 몸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마도로미 타로의 만화 <할배는 죽지 않는다>의 할배가 바로 그런 인물, 그런 상황이다. 


죽기 직전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천사를 만나게 된 할배. 순식간에 페로몬 팡팡, 정력이 샘솟아 회춘에 성공한 할배는 부지불식간에 천사와 사랑에 빠지고 구애를 퍼붓기 시작한다. 한편 할배를 천국으로 데리러 가기 위해 온 천사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할배의 매력에 빠지고, 결국 할배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할배는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 몸. 이번에는 악마가 나타나 할배를 데려가려고 하고, 여기에 전직 용사였던 할배의 과거 지인(?)들이 가세한다. 


결국 이 만화는 할배와 천사의 로맨스가 주된 내용인데, 겉보기에는 나이 든 남자와 어린 여자가 사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천사는 인간이 아니고 나이 개념도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만화에서는 할배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나온다)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극정성으로 서로를 돌보고 지고지순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둘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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