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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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이라는 사물 자체에 대한 애착은 없는 편이다. 매달 2~30권의 책을 사지만 대부분 읽고 나서 바로 팔아버리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책은 책장 하나 정도이며 그마저도 넘치지 않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쉽진 않다). 그런 나에게도 평생 소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 몇 권 있다. 닳도록 보았던 만화책, 삽화 하나까지 기억나는 동화책 등등. 이런 책들을 지금까지 소장했더라면,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나 태도도 지금과는 달랐을지 모르겠다. 


책 수선가 '재영 책수선' 님의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에는 오래되어 낡고 망가진 책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입원 중이신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손녀, 아버지가 생전에 남기신 천자문 글씨를 책으로 엮고 싶어 하는 딸, 자신이 어릴 때 즐겨 읽은 해리포터 시리즈 원서 세트를 아이의 생일에 선물하고 싶은 부모, 삼십여 년 전에 찍은 결혼 사진 앨범을 새 것처럼 만들어 아내에게 깜짝 선물하고 싶은 남편 등 사연 하나하나가 감동적이고 사랑스럽다. 


책 수선가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책 수선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심지어 책 수선을 가르치는 대학, 대학원 과정이 있고, 수많은 학교와 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도. 수선과 수리, 복원의 차이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책을 오랫동안 최적의 상태로 보관하고 싶다면 핸드크림을 바른 손이나 장갑을 낀 손으로 책을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 책을 고친답시고 테이프를 붙였다가는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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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채의 모험
케이채 지음 / 호빵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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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케이채 님 SNS에서 이 책이 절판될지 모른다는 글을 읽고 서둘러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읽어보니 진짜 재밌는데 세일즈 포인트가 왜 이렇게 낮지. 사진가의 여행 에세이인데 사진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진이 없어도 이 책, 충분히 알차고 재밌다. 


일단 저자가 갔던 곳들의 목록이 엄청나다. 아마존과 서아프리카, 갈라파고스, 수단, 심지어 남극과 북극까지. 저자는 또한 놀고 먹고 관광하는 평범한 여행을 하지 않는다. 저자의 목적은 오로지 좋은 사진을 남기는 것. 그러다 보니 유명한 곳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곳을 선호하고, 현대식 건물이 많은 도시보다는 문명의 영향이 덜한 오지를 선호하고, 인간보다 동물이 많고 기왕이면 펭귄이나 북극곰처럼 희귀한 동물이 많은 곳을 선호한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라면 헬기 촬영을 불사하고 개 썰매에서 몇 번을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도 거기 갔으면 그 사진쯤은 찍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가는 일이 사진의 절반이다. 사진 찍는 일의 절반은 그곳에 가는 것이다. 사진의 순간 앞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로 자신을 데려가는 것. 그것은 사진을 찍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78쪽) 


관광지 같은 데 가서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나도 찍어야지' 하고 그쪽부터 가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경쟁하듯이 무언가를 찍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풍경이었다. 나까지 찍을 필요가 없는 장소였다. 그런 광경을 발견한다면 언제나 반대편으로 향한다. 오직 나만이 가치를 발견한 어느 장소에서 어떤 순간을 찍고만 싶었다. (215쪽)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누구보다 빠르게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자세는, 사진가가 아닌 사람도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언젠가 이 책에 소개된 사진들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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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1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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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산에 가면 평지와는 다른 기운을 느끼곤 한다. 나보다 오래 살았을 것이 분명한 나무들과 바위들과 풀, 꽃, 벌레들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혹자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다고도 한다. <산괴>의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가 만난 사람들이 그렇다.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는 1959년생으로 일본 전국을 방랑하며 취재하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이다. 저자는 '마타기'라고 불리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전통 엽사(사냥꾼)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아 이들을 주로 취재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마타기들에게 들은, 산속에서 일어난 신기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저자가 들은 산중 괴담은, 우리로 치면 전설이나 민담으로 분류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어두컴컴해진 산을 걷다가 빛이 보여서 따라갔더니 여우불이었다거나, 눈이 쌓이는 바람에 하산하지 못하고 동굴에 들어가 기다리는데 소리가 나서 밖을 봤더니 귀신 소리였다거나. 기이함을 넘어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신묘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가령 매사냥 전문가로 소문난 마쓰바라 씨는 반딧불이 덕분에 조난당한 아들을 구했다. 근데 어떻게 반딧불이가 그곳에 사람이 있는 걸 알고 알려줬을까. 그 답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저자가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저자가 직접 겪은 일화도 있다. 어린 시절의 일이다. 외출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저자는 눈에 비치는 경치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 오른쪽에 있어야 할 교회가 왼쪽에 있는 식으로 좌우가 반전된 것이다. 옆에서 걷고 있던 부모님을 쳐다 봤지만 위화감을 느낀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자만 여우에게 홀렸던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고, 거짓말이나 허풍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비웃음 당하거나 손가락질 당할까 봐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잘못 본 거라고 가볍게 넘어갔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이 책. 그래서일까.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책은 간행된 지 1년 반 만에 9만 부를 찍었고, 곧바로 후속 편이 나오면서 '산괴 붐'을 형성했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 밤을 시원하게 보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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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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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은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항상 '그 다음'이 궁금했다. 차별받고 학대받고 희롱당하고 폭행당하고 강간당하고 죽임당한 후의 일이. 어쩌면 오랫동안 범죄소설이라는 장르에 탐닉한 이유도 (대부분이 여성인) 피해자의 '그 다음'이 궁금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선 좀처럼 잡히지도 않고 잡혀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을 어떻게든 잡아내서 처벌하는 사람들을, 허구로라도 보고 싶었달까. 


최진영 작가가 2019년에 발표한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읽을 때에도 주인공 제야의 '그 다음'이 궁금했다. 제야는 평범한 열일곱 살 여학생이었다. 집에선 장녀로서 여동생과 사촌동생을 살뜰히 보살피고, 학교에선 방송부 활동을 하며 방송 작가를 꿈꿨다. 그런 제야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고, 제야에게 곧잘 용돈을 주거나 학교까지 차로 태워다 주곤 했던 당숙이 제야를 성폭행한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일을 겪는지는 독자도 작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해자와 주변 인물들의 2차, 3차 가해가 이어지고, 학교(혹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마저 등 돌리는 상황이 제야에게도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 제야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분노를 느낄지도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낯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이 사람들 중에도 있지 않을까. 그런 짓을 한 사람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마음, 가해자도 나쁘지만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사회에 더 큰 배신감과 절망을 느끼는 마음도 모르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 최대 불행이 강간당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내 인생 최대 불행은 이런 세상에, 이런 사람들 틈에 태어난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른이라고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하고 어른이 하는 말이니까 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싹수가 노란 거고 애당초 글러먹은 애가 되는 거고. 당숙이 악마여서 나를 강간한 게 아니다. 여기서는 그게 강간이 아니니까 강간한 거다. 당숙이 당당한 건, 가해자면서 희생자인 척 구는 건, 이 세계에서 아주 당연한 문법인 거다." (206쪽) 


그러니까, 이 소설을 읽기 전에도 읽는 동안에도 궁금했던 건, 작가가 제야의 '그 다음'을 어떻게 상상할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작가가 상상한 제야의 '그 다음'이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결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나도 제야는 그 사건을 떨쳐내지 못한다. 대학에 들어가도 그 사건이 따라 붙고, 남자친구를 만나도 계속해서 그가 생각난다. 그래서 죽으려고도 해보고 죽이려고도 해본다. 이 과정에서 제야는 깨닫는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야말로 가해자가 가장 원하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가해자와 달리, 자신은 누구를 함부로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제야는 또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다. 세상에는 제야처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고, 그들 또한 제야처럼 그저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삶이 고통스럽고 사람이 무서운데도 끝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야도 그 사람들도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고 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저 그것만 생각하면서 하루에 하루씩만 살아보자는 것. 이건 다른 누구보다도 나에게 하는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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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쓸모 - 내가 보기에 좋은 것, 남도 알았으면 싶은 걸 알릴 때 쓴다
손현 지음 / 북스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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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다. 글자를 알고,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글을 잘 쓰려면 선천적인 재능 또는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재능이 있고 노력을 해도 매번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때로는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고 책을 몇 권이나 낸 프로 작가보다,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사람이 더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독자가 읽고 싶은 것은 글 자체가 아니라, 글로써 구현된 삶이기 때문이다. 


퍼블리, 매거진 <B>를 거쳐 현재는 토스에서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손현 작가의 책 <글쓰기의 쓸모>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원래 건축학과 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즈음 매거진 <B>를 알게 되어 운 좋게 객원 에디터가 되었다.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객원 에디터 일을 하면서 저자는 점점 더 에디터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결국 수차례의 실패와 도전 끝에 퍼블리의 초기 멤버로 합류해 에디터 커리어를 시작했고, 2년 후에는 매거진 <B>에서 일하게 되었다. 


책에는 매체 또는 기업체에서 일할 때 필요한 글쓰기의 기술도 나오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다운 글쓰기, 퍼스널 브랜드를 위한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단기적으로 보면 '좋아요'를 많이 받는 글, 돈이 되는 글을 쓰는 편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잘 '사는' 것이지 잘 '쓰는' 것만이 아니다. 글쓰기로 인생이 바뀌고, 삶이 보다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매일 한 줄이라도 나다운 글을 쓰고, 남의 글을 많이 읽고, 남이 쓴 글을 베껴 써보기도 하면서(필사) 좋은 글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좋다. 


사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에 실린 <기쁠 때나 슬플 때나>라는 글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저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는 글을 이백 여쪽이나 읽었지만,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저자에 대해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을 한참 동안 읽었지만, 이 글을 읽고서야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 남도 알았으면 싶은 걸 알릴 때 쓰는 것도 글이지만, 내가 겪고 슬펐던 것, 남은 겪지 않았으면 싶은 걸 알릴 때 쓰는 것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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