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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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일까. 요즘 들어 예전만큼 책 읽기가 즐겁지 않다. 전에도 여러 번 책태기(책+권태기)를 겪은 적 있지만, 이번은 심각하다. 하루 중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잠들기 전에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고, 부러 책을 펼쳐도 한 장 넘기기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알림을 봐도 심드렁하고, 애써 사들인 책도 읽지 않은 채로 남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서점에 팔고 있다. 


한때는 책이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요, 정체성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웬일일까. 시들해진 마음을 되살리고 싶어서, 내 마음대로 정한 나의 독서 롤모델이자 글쓰기 스승인 정혜윤 작가의 책을 집었다. 제목은 <뜻밖의 좋은 일>. 부제는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이다. CBS 라디오 피디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책에서 배운 삶의 '기술'이란 대체 뭘까. 그걸 알면 나도 이 지독한 책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나와 세상 사이의 연결고리는 늘 책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늘 책으로 돌아갔다. 밤과 책의 위안으로 돌아갔다. 응답 없는 세상과 삶에 대한 고통스러운 사랑을 갖가지 아름다움으로 바꿔놓은 것이 책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중략) 소로우는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여름 햇빛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은 그 무엇도 내가 누구인지를 책을 읽는 밤만큼 잘 말해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13-4쪽) 


저자에게 책 읽기는 "살기 위한 준비, 예열 과정"이다. 저자는 한때 삶에 대한 아무런 질문 없이 살았다. 그냥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되는 대로 살았다. 책,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명작 고전에는 타성에 젖은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만의 질문을 가지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며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숙고하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다양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책 읽기는 모든 인간의 숙명인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곧 '어떻게 죽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에는 수많은 삶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죽음이 담겨 있고, 그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죽고(살고) 싶은지를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의식하면 삶은 바뀐다" (277쪽) 그렇다면 다시 책을 읽어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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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 NOVELIST (잡스 - 소설가) - 소설가 :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 잡스 시리즈 4
매거진 B 편집부 지음 / REFERENCE BY B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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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편집부에서 만드는 <JOBS 잡스 시리즈> 에디터 편에 이어 소설가 편을 읽었다. 인터뷰이로 참여한 소설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목차순으로 요나스 요나손, 정세랑, 마르크 레비, 장강명, 로셀라 포스토리노, 정지돈, 가와카미 미에코, 김연수까지 총 여덟 명. 한국 작가 넷, 외국 작가 넷. 남성 작가 다섯, 여성 작가 셋이다. 인터뷰는 참여하지 않고 에세이로만 참여한 김기창 작가의 글도 좋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 참여한 소설가들 중에 마르크 레비를 제외한 모든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정세랑과 장강명, 정지돈, 김연수는 오랫동안 탐독하며 애정 해온 작가들이고,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으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로셀라 포스토리노의 작품으로는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을, 가와카미 미에코의 작품으로는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었다(무라카미 하루키와 공저한 인터뷰집. 가와카미 미에코의 소설은 읽은 적 없음).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로셀라 포스토리노이다. 이탈리아 남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차별 문제에 민감했고, 열두 살 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소설을 발표했고,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나 아렌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 한국에서 얼른 번역, 출간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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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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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도쿄> 이후 두 번째로 읽은 한정현 작가의 소설인데, 주제면 주제, 구성이면 구성, 문체면 문체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한정현 작가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도 매우 좋다(<마고>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오래오래 나의 최애 작가가 될 듯한 느낌적인 느낌...! 


이야기는 두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명은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는 일본에서 계약직 연구자로 일하고 있는 윤설영이고, 다른 한 명은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구연정이다. 사는 곳도 직업도 전혀 다른 두 여성을 만나게 하는 건, 설영의 사라진 친구 '셜록'이다. 과거에 쓴 논문으로 한국에서 임용 기회가 생긴 설영은 자신과 함께 논문을 쓴 친구 셜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설영은 셜록이 사라진 이유가 그의 성별과 성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고, 이는 설영의 연구 주제인 국가폭력, 젠더 폭력, 혐오 범죄 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한편 연정은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내심 자신이 하는 일이 여성, 특히 외모를 장사 수단으로 활용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죄의식 내지는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영으로부터 몇 년 전 고객이었던 셜록에 대해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설영을 만나 '왓슨들'이라는 SNS 계정을 만들어 소통하면서 과거에는 자신도 성형외과 의사가 아닌 의학사 연구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랬다면, 셜록과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았던 딸과의 관계가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제목의 마릴린 먼로는 소설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마릴린 먼로가 누구인가. 아름다운 외모로 수많은 남자들로부터 숭배 받은 영화 배우인 동시에 단지 외모가 예쁘다는 이유로 (멍청할 것이다, 남자 관계가 복잡할 것이다 등등의 조롱과 함께) 평가절하된 성적 심벌이다. 이런 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면서도 혐오하는 모순을 작금의 성형 열풍, 여성 혐오, 성소수자 문제 등등과 연결한,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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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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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영어뿐 아니라 제2외국어 공부에 열심이었고, 전공을 정치외교학으로 정한 것도 그런 동경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나 출장으로만 외국을 '경험'해 보았을 뿐 진정한 의미의 외국 '생활'은 해본 적 없이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은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거의 없다. 돈 벌기, 집 구하기, 노후 대비하기 등 한국에서 하기 힘든 일이 외국에선 훨씬 더 하기 힘들 거라는 자각 내지는 체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한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는 미국 뉴욕이 배경인 단편 네 편이 실려있다. 각 단편의 화자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이나 이혼 후의 상실감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끌어안은 채로 뉴욕에 도착한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낯선 언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해도 잊힐 거라는 기대를 내심 했겠지만, 막상 뉴욕에 와보니 한국에서와 별 다르지 않은 복잡하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지고, 사람들은 불친절하거나 무례하며,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인과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삶이 즐겁지 않다면 문제는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이 들 때쯤, 화자들은 각각 어떤 사건을 겪거나 어떤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떠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감정이나 진실을 알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실린 단편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 등장한다. 오십 대의 소설가 '나'는 뉴욕에서 열리는 문학 행사에 어머니와 동행한다. 팔십이 넘은 어머니가 뉴욕에 함께 가겠다고 고집한 이유를 여행 내내 짐작조차 못한 '나'는 여행 막바지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에 대한 인상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위력을 지닌 진실이며,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기에 이 작품이 장편화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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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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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미있다. '치열하게' 쓴다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데 '편협하게' 읽는다니 독자로서 괜찮을까. 알고 보니 저자가 말하는 '편협하게'의 의미는 한 쪽으로 치우친 의견만 반영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내용이나 편안한 말, 기존의 언어나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책보다는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선호한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저 그런 책 열 권을 읽느니 인생을 바꿀 만한 위력을 지닌 책 한 권을 읽겠다는 의지(혹은 읽고 싶다는 희망)의 표현이랄까. 그렇다면 나도 편협하게 읽는 독자가 되리... 


저자는 여성학자이지만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특히 관심 있는 주제는 고통과 통증, 질병과 죽음, 이를 모두 아우르는 '몸'이다. 몸에는 얼굴도 포함되는데, 얼굴이 두꺼운 사람, 즉 뻔뻔한 사람일수록 그나마 적은 기회를 잡기 쉽고 물리력, 폭력, 권력을 행사하기 쉬운 것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 구조다. 반대로 얼굴이 두껍지 못한, 남을 괴롭히고는 발 뻗고 못 자는 양심의 소유자들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계층 구조의 하단부에 머무른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글을 쓰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결국 고통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60쪽 참고) 


남성 작가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저자는 리영희 대기자의 책 <대화>를 읽고 이렇게 썼다. "물론 그는 충분히 성찰적인 남성이지만, 그의 위대함은 성별화된 공/사 영역 분리로 인해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업적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80쪽) 위대한(혹은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남성(작가)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들이 여성이었다면 남성일 때와 같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고, 같은 수준의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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