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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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은 전부터 꾸준히 읽어왔다. 한국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도 유난히 김연수의 소설은 찾아 읽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읽는 속도에 비해 그가 소설을 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게 함정!) 김중혁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고,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소설가를 물으면 그의 이름을 댈만큼 좋아한다. 두 사람이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동고동락한 오랜 친구 사이라는 것도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마침 두 사람이 책도 같이 낸 적이 있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그 책이 바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다.

 

두 사람이 친구에서 다른 관계로 발전하여 해피엔딩... 하는 내용은 절대 아니고(두 분 다 기혼이신 것으로 알고 있다), 2009년 영화 잡지 <씨네 21>에 1년 동안 '나의 친구 그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공동 연재한 영화 관람기를 묶은 것이다. 김천 시내를 뛰어다니며 놀던 두 남자아이가 자라서 함께 책을 펴내는 공동 필자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두 사람의 팬인 나는 그저 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가는 소설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영화도 많이 봐야 하는지, 이들의 영화 편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쌍화점>, <워낭소리>, <마더> 같은 한국 영화 화제작은 물론, <렛미인>, <슬럼독 밀리어네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등 외국 영화와 비주류 영화까지 섭렵한 것을 보면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이들의 말은 겸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그들의 글까지...!!! 두 사람의 소설도 좋지만 산문집도 매우 좋아하는데(이제까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를 읽었고, 좋아한다.) ,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둘의 산문을 책 한 권에서 한번에 읽을 수 있는 데다가, 연재 형식이라서 각 글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읽는 재미가 굉장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사람의 유머. 김연수의 유머는 잔잔히 흘러가다가 한번에 빵 터지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계속 웃기는 식이라면, 김중혁의 유머는 어눌한데 은근한 재미가 있고 깊은맛(!)이 있다. 안 그래도 글 잘 쓰는 사람도 좋아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도 좋아하는데, 이 분들은 소설도 잘 쓰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앞으로 계속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문제(?)는 이 책 때문에 올 겨울 해야 할 일이 늘었다는 것. 일단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을 섭렵하고, 곁들여 소개된 책이나 드라마(<전원일기>는 패스!)도 봐야지. 영화 <셜록 홈즈>를 소개하면서 언급된 소설 <셜록 홈즈> 이야기 때문에 며칠 전에 <셜록 홈즈> 전집도 구입했다. (설 연휴에 절반이나 읽었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도 보고, 역시 전부터 좋아했던 작가 미타니 코키의 영화와 드라마도 찾아서 봐야지. 책 제목은 <대책 없이 해피엔딩>인데, 나의 버킷리스트는 '엔딩'을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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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트사고 - 한 달에 30억을 벌 수 있는
코지마 미키토 & 사토 후미아키 지음, 오정연 감역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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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30억을 벌 수 있는 조인트 사고>를 읽었다. 한 달에 30억을 벌 수 있다니! 저축은커녕 생활비 벌기에도 급급한 나로서는 꿈 같은 일이다. 책 표지를 보고 동생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언니가 드디어 돈 벌 생각을 하는구나, 아니면 나도 그 책 좀 빌려줘, 뭐 이런 뜻일까? 무슨 뜻이든 간에 매우 자극적이고 시선이 끌리는 제목임에는 틀림 없다. 암암.

 

이 책에는 무일푼이었던 저자가 불과 5년 만에 e-비즈니스로 17개의 회사를 세우며 한 달에 30억을 벌게 된 비법이 담겨 있다. e-비즈니스는 인터넷, 모바일 등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상업 활동을 이르는 말로, 온라인 쇼핑몰, 오픈마켓, 어필리에이트 등 광고 사업뿐 아니라 동영상 강의, 제작물 판매 등 콘텐츠 사업까지 넓은 분야를 포괄한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인 코지마 미키토는 30개사 이상 전직을 반복한 후 2006년 건강관련 비즈니스로 최초 독립한 이후 현재까지 17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사토 후미아키로, 창업 직후 2억원의 빚을 안고 있다가 건설업, IT업, 콘텐츠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두 사람은 코지마의 강의에 사토가 참석한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 그들은 코지마의 비즈니스 전략과 사토의 카피라이팅 기술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역시나 두 사람이 함께 기획한 사업은 첫 1개월만에 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성공의 비결 역시 결합, 즉 '조인트(joint) 사고'다. '조인트 사고'란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결합하면 혼자 일할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비즈니스라고 해서 전적으로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온라인 쇼핑몰만 해도 웹 디자이너, 바이어, 기술자, 재무관리, 홍보 등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 비즈니스라고 해도 '메일과 채팅보다는 전화를 하는 편이 좋고,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는 것이 좋'다. 또한 '인터넷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해도 전혀 문제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p.67)

 

또한 다른 사람들과 조인트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부터가 남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당신이 No.1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을 습득하라'는 저자의 말이 참 와닿았다. (p.202)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잘 될 리 없고, 너무 수준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모이면 모임이 깨지기 쉽다. 전략이면 전략, 말이면 말, 홍보면 홍보, 디자인이면 디자인... 무엇이든 간에 내가 확실하게 잘 하는 것이 있어야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남의 도움을 받기에도 수월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성공적으로 협업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두 사람이 각각 자기 분야의 전문가였던 점에 있다.

 

제목에 솔깃해서 책을 읽게 되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비법'치고는 의외로 기본적이고 단순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온라인 비즈니스라고 해서 혼자서 다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라든가, 무엇을 하든 일단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충고는 매우 마음에 와닿았다. 온라인 상의 거래라는 이유로 인격을 무시하고 매너를 잊어버리는 사람도 제법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에서도 훌륭한 비즈니스 매너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온오프라인 불문하고 어디서든, 어떤 사업이든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일이든 모두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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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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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머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고 하셨다. 어머니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셨고, 그 시대의 대부분의 직장 여성들처럼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고 이십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셨다. 그 후로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최근 친구분들이 하나둘 대학이나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도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던 며칠 전 수강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살면서 한번도 어떤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야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무엇을 할 엄두를 못 낸 탓도 있지만, 취업도 부모님이 정해준 직장에 다닌 것뿐이고, 운전면허를 딸 때도 남들이 다 하니까 했다고 하셨다. 남이 하라는 것,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다보니 오십년을 넘게 살면서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삶으로부터의 혁명>을 읽으면서, 젊은 시절 어머니가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을 인문학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3포 세대 등 지금의 20대들을 수식하는 말들은 실상 기성세대가 만든 말이고, 기성세대가 만든 현실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고, 비싼 학원비를 내가며 스펙을 쌓고,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든 현실 말고도 '다른 삶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20대 대부분은 다른 삶은 포기하고 오로지 (어른들이 가르쳐준) 한 가지 삶만을 정답으로만 여기고 있다.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인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어쩌면 그런 삶을 사신 분들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셨고, 아버지는 미술이나 문과 계통의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생계가 보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적성에 안 맞는 공학을 공부하셨다. 남들 하는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늘리다보니 어느덧 오십대. 남들 보기에 부족한 것 없는 삶이지만(넘치는 것도 없다), 어머니는 이제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시고,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쓸쓸해 하신다. 하라는대로, 남들 하는대로 했을 뿐인데 내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삶과 현실을 구분하고, 현실과는 별도로 '자기만의 삶'을 꾸리라고 제안한다. 직업, 성공, 재테크 같은 현실적 성취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직업이 곧 내 인생이 아니고, 스펙이나 재산이 내 성격과 자질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현실은 현실대로 살되, 자아가 원하는 일을 삶에서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삶과 현실을 동시에 꾸려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책에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브로크백 마운틴>, <비포 선셋>, <인 투 더 와일드> 같은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이 영화들은 저마다 주제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는가'에 대한 주인공의 성찰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런 성찰이 없으면 현실도, 삶도 있을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를 만족시킬 수 없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할 일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남을, 사회를 기준으로 놓고  '가짜 현실',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 과연 이것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흔한 청춘 자기계발서에 질린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이다. 20대 또는 마음은 20대인 3,40대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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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야설 : 창업편
벤처야설팀 지음 / e비즈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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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보다 창업이다, 우리나라에도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기업이 필요하다는 말, 많이 듣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창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부정적인 편이다. 남이 창업을 한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당장 내 자식, 내 가족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힘들게 사업을 하느니, 대기업에 취직하여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어디 시작이 없는 일이 있을까. 삼성, 현대 같은 국내 대기업도 한때는 어느 한 젊은이가 일으킨 벤처기업이었다. '그저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며 살기에는 내 삶이 너무 아깝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창업은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동명의 벤처 전문 인기 팟캐스트 방송을 책으로 옮긴 <벤처야설>을 읽으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책에는 레인디 대표이사 겸 위시쿠폰 이사 김현진, 블로그칵테일 대표이사 박영욱, LS그룹 신사업기획 및 M&A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정석, 머니투데이 더벨 벤처투자팀 기자 권일운 등 국내 벤처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직' 인물들이 벤처 업계의 현황과 장단점, 성공과 위기 요인 등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IT분야에 친숙하지 않아서 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는데, 방송 내용을 옮긴 책이라서 그런지 대화 수준이 높아진다 싶으면 적절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 읽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제목이 <벤처'야설'>이기는 하지만, 그저 IT 창업에 따르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업계 상황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 '설(썰?)' 수준의 책은 아니다. 자본 조달을 위해 벤처캐피털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한국의 기업 환경에서 대기업과의 관계 맺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식의 정부 지원이 필요한지 같은 거시적인 내용부터, 직원은 어떻게 채용하고, 인사 관리는 어떻게 하며, 업무 외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국내 기업 환경에서 창업은 그저 창업주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 연인, 넓게는 대기업과 정부, 이웃 기업 등 수많은 주체들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기업은 주변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성공한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이런 바람은 너무 큰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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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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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무엇일까? 혹자에 따르면 책은 '가로질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심지어는 암기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기도 어렵다.) 눈을 따라 읽어내린 글귀들은 그저 기억에 남고 가슴에 박혀 먼훗날 문득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발길 닿는대로 걸었던 길을, 한참 후에 아주 사소한 냄새나 소리, 비슷한 풍경에 회상해버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김상근의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 이제까지 내가 마키아벨리 관련 텍스트를 제법 많이 읽었다는 것에 놀랐다. 이만큼이나 길을 가로질러 왔다니. 그야 전공이 정치학이니 <군주론>은 학부 1학년 때 (억지로) 읽을 수 밖에 없었고, 그 후에도 수업 시간에 여러번 그에 관해 배웠지만, 그 밖에도 좋아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나, <보르지아>라는 제목의 외국 드라마 시리즈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라는 사회 현상을 최초로 '기술(Arts)'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정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공직에서 쫓겨난 후 군주인 메디치에게 복직을 청하고자 글을 썼고, 그 글은 현재 <군주론>이라는 책으로 남았다. 그런데 <군주론>의 내용 중에는 당시 종교나 사회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위험한' 내용이 많았다. 결국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책은 금서가 되었으며,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권모술수에 능한'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하게 되었다. 저자 김상근은 그에 대한 평가가 박한 이유를 추적하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당대의 사료를 검토하고 현장을 고증하여 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로만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또다른 면모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학문을 사랑했다. 외세의 침략을 막고 이탈리아가 통일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학자가 되기엔 세속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정치가로 성공하기엔 도량이 작았다. 공직에 취임했으나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그 시대에 공무원은 지금과 달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아닌 '군주의 신하'에 불과했다. 따라서 군주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이 개인적인 능력이나 애국심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었고,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너무 똑똑했다. 그저 피렌체 하나만 지키려는 군주와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비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나, 체사레 보르지아는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사보나롤라는 잠시나마 피로한 민중들의 삶을 달래기라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생전에 밥벌이 말고 무엇을 했던 것일까. 군주 아닌 이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는 차라리 처음부터 희곡 작가가 되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 꿈과 이상을 일찍이 예술로 비틀어 표현했다면 후세의 평가는 지금보다 후했을 것이다. 어쩌면 세르반테스만큼 칭송받는 이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실주의의 시초 격인 그가 말년에는 희곡을 쓰며 민초들을 웃기고 세상을 희롱한 건 아이러니다. 마키아벨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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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02-07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마키아벨리는 일반 대중들에게 필요한 사실을 많이 전달해주려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꿈과 이상을 일찍이 예술로 비틀어 표현했다면 후세의 평가는 지금보다 후했을 거라는 멘트가 인상적이네요 ㅎㅎ

키치 2013-02-08 14:45   좋아요 0 | URL
fabrso 님 덧글 고맙습니다 ^^
부끄럽게도 마키아벨리가 말년에 희곡작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희곡을 썼는지 읽어보고 싶어요 ㅎㅎ
신간평가단 늘 성실히 참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