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2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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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정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정리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해마다 또는 계절마다 방 안에 넘쳐나는 옷과 책을 정리하고 싶어서 아무리 책과 잡지를 들춰보고 인터넷에서 살림의 고수의 비법을 찾아봐도 마음에 쏙드는 정리 비법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대청소를 감행한 결과 제목 그대로 '인생이 빛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책에는 저자가 어린 시절 정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정리 컨설턴트가 되기까지, 정리의 중요성 등이 주로 소개되어 있어서 자칭 '정리 마니아'인 나에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 부분이 미흡하고, 사진이나 그림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나 역시 책만 읽어서는 잘 모르겠다 싶어서 저자 홈페이지도 찾아보고, 일본 방송을 찾아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독자들이 나처럼 일본어도 할 줄 알고 일본 방송을 찾아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그런 분들을 위해 이번에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실천편'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이 나왔다.


저자 곤도 마리에는 일본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로, 첫번째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135만부나 팔리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의 다수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은 전작의 '실천편'으로서, 물건을 잘 버리는 기술과 옷장, 화장대, 화장실, 주방 수납 정리법 등이 그림과 함께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먼저 물건을 잘 버리는 기술로서 저자는 전작에 이어 '설레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작에서는 '설렌다'는 것이 말 그대로 '마음이 두근댄다, 기쁘다' 등을 의미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편리하다, 위화감이 없다, 도움이 된다' 등 다른 의미들도 포함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처음 '설레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을 제시했을 때 많은 독자들이 '설렌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말 자체가 애매하기도 하지만, 물건을 구입할 때 꼭 가지고 싶어서, 원해서 사는 사람보다는, 필요해서, 없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남들이 사니까 등의 이유로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러한 소비 행태를 반성하고, 정말 내가 가지고 싶고 원하는 것으로만 주변을 채우고 정리한다면 인생이 훨씬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핵심은 3장과 4장의 수납 정리법 부분이다. 3장에서는 주로 옷, 지갑, 액세서리, 화장품 수납뿐 아니라 화장실, 현관 수납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4장에서는 주방 수납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책과 서류 정리 방법은 전작에 나왔기 때문에 안 나온 것 같다.) 특히 3장은 옷 접는 방법뿐아니라 속옷 개는 방법과 수납하는 방법, 화장품 수납하는 방법 등 여자라면 누구나 알고 싶고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이 나와있어서 요긴했다. 책을 읽으면서 바로 옷을 다 꺼내서 정리를 해보았는데, 버릴 옷도 추리고 옷을 접어서 수납하는 방법을 달리했더니 서랍 한 칸이 빌 정도로 효과를 보았다. '역시 곤도 마리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정리 컨설팅을 해오면서 얻은 경험칙이 있는데, 대체로 만남이 없는 사람들은 낡은 옷이나 서류가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물건들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과의 관계는 물건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반대로 물건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를 보면 그대로 알 수 있다." (p.254)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완벽주의적 성향, 결벽증 성향이 높다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애착이나 기대가 높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정리를 좋아하지만) 정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을 보면 참좋다. 편견이 아니라, 정리를 잘 안하는 사람이 깨끗할 리 없고, 부지런할 리 없고,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일 리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정리를 매우 잘하고, 몸가짐이나 옷, 하다못해 글씨까지도 깨끗하고 가지런하게 쓴다고 한다. 정리의 마법, 정리의 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마법과 기적을 꼭 체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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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디자인하라 - 디자인은 어떻게 확신을 창조하는가
정경원 지음 / 청림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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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같은 물건이면 보기 좋고 예쁜 것을 고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을 보면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에도 선조들은 심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수난을 겪고 6,70년대 경제성장기를 지나면서 심미성보다는 실용성과 기능을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당장 먹고 쓸 것도 없는데 보기 좋은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안정이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90년대 이후부터는 보기 좋은 것, 예쁜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이 발현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추어 디자인의 사회적인 지위도 높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명문대에서도 디자인 관련 학과를 설립하고 있으며, 디자이너가 웬만한 '사'자 돌림 직업 못지 않은 고수입 직업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욕망을 디자인하라>의 저자 정경원은 한국디자인진흥원장과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디자인 경영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 없다시피했던 1960년대에 고등학생으로서 일찍이 선진국의 기업들이 디자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디자인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몇십 년 후 그의 예상대로 한국 기업들의 목표가 품질 개선, 가격 경쟁력에서 디자인 경영으로 바뀌었고, 그는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었다.


남다른 혜안과 통찰력을 지닌 전문가가 쓴 책답게 이 책에는 디자인의 진화 과정과 성공사례, 앞으로의 방향 등이 마치 교과서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디자인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가 읽기에도 쉽고 부담이 없었다. 디자인 하면 보통 기업의 브랜드 형성이나 제품 개발 목적인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구글, 애플, 코카콜라, P&G 등 많은 기업에서 디자인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히트 상품을 개발한 바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기업의 활동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와 정치가가 협력하면 암스테르담, 홍콩 등 성공적인 도시 디자인 사례를 만들 수도 있고, 호주처럼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디자인은 어떤 분야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기업가, 마케터뿐 아니라 정치, 행정, 사회사업, 교육 등 수많은 분야에서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디자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저자에 따르면 스마트폰, SNS,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확보한 대량의 정보를 가리키는 '빅데이터'라는 신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전보다 효율적이고 정확성이 높은 디자인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빅데이터가 주로 마케팅 분야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는데 디자인에도 적용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또한 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다수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이른바 '나누는 디자인'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가뭄이 극심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물 긷는 바퀴형 물통,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지역에 보급될 정수 기능이 탑재된 빨대, 보청기용 태양열 배터리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이 바로 그 예다. 디자인 하면 보통 비싼 명품, 또는 신기술을 사용한 고급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기술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 기발하고 창조적인 발상과 기술력을 사회를 개선하는 데 쓴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조만간 정치가, 사회사업가가 아닌 디자이너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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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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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명까지는 아니고 리폼이나 재활용에는 관심이 많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싹둑싹둑 자르거나 이어 붙여서 만들어 쓰기도 하고, 옷도 직접 수선해서 입기도 한다. 리폼과 발명의 차이가 뭘까 생각해보니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 리폼이라면, 세상에 없는 물건을 생각해내거나 만드는 것이 발명인 것 같다. 그러므로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낸 적은 없는 나는 '리폼 마니아'일뿐, '발명 마니아'의 경지에 오르려면 한참 멀었다. 나의 멘토, 나의 롤모델 요네하라 마리는 생전에 '발명 마니아'였다고 한다. (역시 그녀는 한수위다.) 그녀의 동생에 따르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발명 아이디어가 따오르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고. 사실 나는 그녀가 발명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해서 의외였다. 그야 전공인 러시아어 외에도 여러 언어에 조예가 깊고, 언어뿐 아니라 문화, 역사, 정치, 예술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지만, 발명은 왠지 그녀의 취미라기에는 생뚱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발명 마니아>를 읽으면서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발명 마니아>는 그녀가 일생에 걸쳐 고안한 발명품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한 책이다. 명색이 발명에 관한 책인만큼 '유실물 내비게이션', '밥 먹여주는 로봇', '멍멍 순찰대', '유괴 방지 기계', '흡연자도 비흡연자도 좋아할 담배'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할 법한 발명품,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을 법한 발명품들이 백 개 가까이 소개되어 있다.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도 반려동물과 그들의 동거인을 위한 발명품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여러 마리의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산 동물 애호가다웠다. 발명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절박한 필요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은 여느 발명에 관한 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요네하라 마리가 누군가? 일본이 자랑하는(?) 독설의 여왕이다! 그 명성(!)답게, 후반부로 갈수록 순수한 '발명품'보다는, 점점 우경화되는 일본 정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책에 실린 글 대부분이 2000년대 초중반에 쓰였다.)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의 발명품이 훨씬 많이 소개되어 있다. 가령 재해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자연재해를 뻔히 예상한 데다가 일본이 성립되기 이전부터, 일본이란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무수한 피해 경험을 축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많은 인명을 어이없이 잃는 나라가 '선진국'일 리가 없으련만."(p.186) 이라는 비판과 함께 자구책으로 물에 뜨는 자동차, 바다에 뜨는 집을 소개하는가 하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연이어 일으킨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예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일제히 미국에 합병되버리면 어떨까? 그야말로 궁극의 팍스 아메리카나다. 인류 전원이 미국 시민이 돼버리면 미국인 전사자의 목숨과 공격 대상 국민의 목숨의 가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격 대상국 자체가 없어지니 전쟁을 일으킬 이유 또한 사라질 것이다." (p.383)라며 냉소를 날린다. 역시 요네하라 마리다.


책에는 그녀가 난소암 투병 당시에 쓴 글도 다수 실려 있다. 그 때문인지 '이렇게 하면 암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이 치료법을 암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등 절박한 심정이 담긴 발명품과 '내가 나이들면 이런 것이 발명되지 않을까', '앞으로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등 희망과 긍정적인 기대가 담긴 발명품이 자주 보였다. 투병 중에도 발명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열정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미래를 영영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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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의 산업사회의 미래
피터 드러커 지음, 안종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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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 그는 명실상부한 20세기 최고의 경영학자이지만,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역사학,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을 독학으로 마스터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흔히 경영학 하면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학이나 심리학 등 다른 학문에 비해 인문학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가 1942년에 쓴 유일한 사회 이론서 <피터 드러커의 산업 사회의 미래>를 읽으면서 그것은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무기력한 유럽의 실상을 분석하고 산업 사회에 대한 전망을 경영학적 논의로 연결하여 반세기 넘게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경영학의 고전이다. 이제까지 피터 드러커의 저서라고 하면 경영학이나 자기계발 분야의 책만 읽어서 다른 학문에 그가 얼마나 해박하고 통찰력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설파한 경영학 이론과 자기계발에 관한 담론이 어떠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박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저자는 이상적인 사회상(像)으로 '기능적인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과연 어떤 사회가 기능적인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우선 그는 19세기 중상주의 사회와 20세기 산업사회, 그리고 1930년대 독일 나치주의로 이어지는 서구 사회의 역사를 통해 기존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19세기 유럽 국가들이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다가 실패한 예를 들며 결국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구조와 권력이라고 보았다. "전통적인 중상주의 이론은 독점 기업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독점 기업을 공격할 근거가 없다. 이 이론은 현대 대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구조와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p.80) 그 후 등장한 산업사회는 초창기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두된 것이 놀랍게도 독일 나치주의였다. "나치주의의 본질이 서구 문명의 보편적인 문제, 곧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며, 나치주의자가 이런 시도의 근거로 삼은 기본원리가 결코 독일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능적인 산업사회를 노예제와 정복의 토대 위에 세우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p.29) 저자는 나치주의가 자유주의를 기반하는 산업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고, 나치주의의 재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산업 사회를 보다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나치주의를 비롯한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라서 경영학보다는 정치학, 역사학에 관한 책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국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혀 경영학의 목적을 다시 세우고 산업사회의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경영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으로 볼 수 있다. 경영학은 기업 경영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고, 기업 경영의 목적은 이윤극대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고, 경영학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기업은 사유재산권이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제공하고 정당한 힘을 창출하는 영역인 19세기 독립적인 사회 영역의 조직으로서 힘을 갖게 됐다. 따라서 현대 기업은 정치 조직이다. 기업의 목적은 산업 영역에서 정당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p.84)) 라고 말하며 기업이 이윤 추구가 아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적, 정치적인 한계 내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간은 물질적 성공을 통해 자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는 실패했다. (중략) 우리는 경제적 인간 개념을 대신하여 인간의 중요한 윤리적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 본질의 중요한 개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pp.278-9) 라며 인간의 존재 이유 역시 보통 경영학에서 상정하는 경제인,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아니라 윤리적, 사회적 존재라고 역설했다. 저자가 이미 1940년대에 현대 경영학의 한계와 지향점까지 예측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기능적인 사회'란 산업적 현실을 통합하여 각 사회 구성원의 기능과 지위를 보장하는 사회를 말하는데, 이 사회는 그저 시장을 내버려둠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사회적, 정치적인 역할을 인식하고, 개인 역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조직으로서 기업을 바라볼 때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현대 기업인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발상을 반세기 전에 저자가 이미 했다는 점이 놀랍고, 왜 저자의 이런 혜안이 현대 기업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까지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그저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 이론으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피터 드러커의 이러한 연구 결과가 재평가되어 현대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현실을 보완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좌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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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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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나 1974년에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MIT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83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한 바 있고, 1991년에는 노벨경제학상보다 수상하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노벨경제학상을 단독수상하면서 학자로서의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대중적인 활동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학계 내에서만 활동하면서 집필이라고는 논문과 교과서 정도밖에 쓰지 않는 학자들도 많지만,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수십여 권의 대중서를 집필했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그를 세계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게끔 하는 것 같다.


국내에 소개된 다수의 저서들 중에서도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를 읽었다. 이 책은 대학시절 경제학과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부교재로 사용하신 바 있는 책이라서 사실상 이번이 두번째로 읽는 셈이었다. 그 때는 책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는커녕 크루그먼이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조차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크루그먼이 90년대 중후반에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서 엮은 이 책은 칼럼답게 어려운 수식이나 이론은 배제하고 그 때 당시의 경제적 이슈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논설하는 글이 대부분이라서 읽기에 수월하다. 크루그먼은 "경제학에 관하여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글이 더 많아야 한다"고 자주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크루그먼만큼 쉽고 흥미롭게, 대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만한 글을 쓰는 경제학자는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90년대 중후반 당시 미국 경제를 배경으로 쓰인 책이라서 지금의 국제경제와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은 탈냉전 이후 단극체제의 패권국이 된 미국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운영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고, 일본은 버블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의 초입에 들어서던 상태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 결성을 논의하는 단계에 불과했고, 중국의 성장은 요원하게만 보였다. 국제무역은 이제 막 WTO가 출범한 상태로 자유무역에 대한 합의 자체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제금융 역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금융시장을 개방한 나라가 지금만큼 많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책에 나온 논의들을 당장 현실 경제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크루그먼이 설명하고 예측한 것들 중 어느 것이 맞고 틀렸는지 생각해보면서 읽으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약 십년, 이십년 사이에 국제경제가 확 바뀌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침체 등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사실이 되고 현실이 되다니...... 앞으로 국제경제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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