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야, 이제 만나서 - 희망의 길을 걸었다. 여덟 번의 기적을 만났다
안성기.배종옥.송일국.고수.양동근.한혜진.윤은혜.보아.KBS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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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KBS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팀이 만든 <다행이야, 이제 만나서>. 이 책에서 나는 먼저 윤은혜의 마다가스카르 방문기를 읽었다. 전쟁과 기아, 빈곤에 시달리는 섬, 마다가스카르의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주워 먹는다. 그마저도 인근 농장에 가축 사료로 팔면 못 먹는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아이들은 채석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여자아이들은 매춘을 한다. 이들은 고작 아홉 살, 열 살이다. 윤은혜는 아이들이 잠시라도 팍팍한 현실을 잊고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밥을 사주고, 같이 노래하고,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서로 머리를 땋아주며 놀았다. 아픈 아이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학교도 지었다. 아이들이 지고 있는 삶의 짐을 모두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일지 몰라도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누구라도 박수를 보낼 만큼 잘한 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만약 그녀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다시 굶을 것이고, 병원에서 쫓겨날 것이고, 학교에도 다닐 수 없게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녀와의 일을 그저 빛바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겠지? 곁에서 계속 도와줄 수 없어서, 혼자 힘으로는 이 가엾은 아이들을 모두 도와줄 수 없어서 윤은혜는 너무나도 안타까웠을 것이다. 책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밤이 다 되었을 때에야 나는 겨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쉼터 바깥에 서서 안녕, 하고 인사하니 아이들은 안녕, 하고 쉼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안아주지도 않고 그렇게 가버려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담담하게 구는 건지...... 혹시 내일 또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제대로 인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들어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응접실 구석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기약 없는 이별은 이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마음을 주었지만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담담하게 굴어 놓고는 나와 헤어지는 게 슬퍼서 그렇게 울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짠해져 도저히 그곳을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윤은혜 pp.46-8)  



이 책에는 윤은혜 말고도 안성기, 배종옥, 송일국, 고수, 양동근, 한혜진, 보아 등 8명의 스타들이 세계 각지에서 전쟁, 기아, 빈곤 속에 사는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양동근은 어떤 사람을 만나든 소탈하게 잘 어울렸고,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한국에서 마술까지 배워갈 만큼 열정적이었던 고수는 밤낮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소년을 만나고 안타까워했다. 배종옥은 조혼 풍습으로 인해 여덟 살, 아홉 살 나이에 시집을 가야했고, 이른 성관계로 병까지 난 아이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고, 탄자니아 땅을 처음 밟은 한혜진은 깨끗한 물이 없어서 각종 희귀한 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다못해 분개했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베테랑 안성기는 내가 잘 먹어야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고, 송일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에 다녀온 이후에도 그곳의 아이들을 잊지 못해 커피 한 잔 값을 저금통에 모으고 있다. 연예인이 이미지 관리하는 거라고, 방송국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라고 안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예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같은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부러 시간을 내 먼 외국땅까지 가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보아의 경우 <K팝스타> 촬영을 마치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인도의 빈민촌을 찾았다. 악취와 더위에 시달리는 것도 괴로웠을텐데, 보아는 평생을 그런 환경 속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온 아이들을 보며 더욱 가슴 아파했다.



직접 부르키나파소에 가본다면 이해할 것이다. 내가 왜 한국에서도 부르키나파소의 아이들을 생각하는지. 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밥, 버리는 음식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질 때마다 한 잔 가격을 그대로 저금통에 저금하기로 했다. 내 아들들 대한이, 민국이, 만세의 사진을 붙인 저금통을 마련해서 아내와 함께 수시로 어려운 환경에 사는 아이들을 돕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저금통만 한 아주 작은 정성만 있으면 아이 하나가 생명을 얻고, 그만한 관심이 꺼지면 아이들의 목숨도 쉽게 꺼진다. 부르키나파소는 사람이 참 많이도, 쉽게도 죽는 나라다. (송일국 p.163)


"저기 미안해요." "뭐가요?" "그냥 미안해요...... 원래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부로 말해선 안 돼요." "천민이라서요? "네. 우린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이에요." "아냐 아냐, 마시마가 낮은 만큼 나도 낮아요." "그럴 리가요...... 이렇게 피부가 하얗고 좋은 냄새도 나는데." (보아 pp.284-5)



책을 읽으면서 요즘처럼 찌는 듯이 무더웠던 몇 년 전의 여름날을 떠올렸다. 이들처럼 외국까지 간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 도시에서 결손 가정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여러 아이들 중에 유난히 나를 잘 따르는 아이가 있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같이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내 티셔츠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언니, '봉사'가 뭐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내 질문에 아이는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뒷면에 인쇄된 글자를 가리켰다. 00봉사단. 봉사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아이의 말이 꼭 '하루 종일 같이 공부하고 논 게 언니한테는 봉사였어?', '우리가 불쌍해서 동정하는 거야?'라고 묻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봉사단체에서 나눠준 티셔츠라서 그냥 입고 온 거라고 대충 얼버무렸지만, 아이는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봉사가 무슨 뜻인지, 우리가 왜 그곳에 갔는지. 그 날 이후로 나는 직접 참여하는 봉사활동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면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착한 일 한다고 생색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내가 '봉사'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이 상대방에게는 상처나 열등감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좋은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내가 한 그 작은 일이 어떤 이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살까봐, 상처를 줄까봐 남을 돕는 일을 포기하거나 주저한다면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 희망도 생기지 않는다. 나 하나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오랫동안 계속 돕자. 사람을 모아 힘을 합치자. 그것이 이런 귀한 책을 만든 사람들과 이 대장정에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이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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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사회학 - 콩트에서 푸코까지, 정말 알고 싶은 사회학 이야기
랠프 페브르 외 지음, 이가람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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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있다. 나이는 스무살.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사회학.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온 과목이라서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밀라'라는 이름. 본명이 아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얼마 전, 그녀의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죄를 저질러 온 국민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하필이면 언론에 딸인 그녀의 사진이 공개가 된 것이다.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면 학교 생활을 편히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변장을 하고 학교에 다녔다. 룸메이트 친구들도, 좋아하는 남학생도 모르게 말이다.



줄거리만 봐서는 소설같은 책 <스무 살의 사회학>은 어엿한 사회학 개론서다. <소피의 세계>가 소피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라는 학문을 개괄하듯, 이 책은 밀라라는 여학생을 통해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한다. 사회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는 했지만, 배우면 무슨 도움이 되는지, 계속 공부를 해도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운 밀라. 그런 그녀의 속도 모르고 학교 수업은 계속 진행된다.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부터 뒤르켐의 도덕적 개인주의, 미드의 상징적 상호 작용론, 고프먼의 낙인 이론, 푸코의 권력 이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베버의 관료제,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 등 외울 것도 많고, 이해할 것도 많았다. 수업 따라가기에도 벅찬 밀라에게 학교 안팎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선배들, 어머니와 오빠, 친척들은 사회학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냐, 그거 배워서 취직이 되겠냐고 물어댄다. 속으로는 그만두고 싶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외치면서도,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면 밀라는 그들에게 사회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용하며 위대한 학문인지를 설명하게 되어버린다. 전시회에서, 택시 안에서, 심지어는 좋아하는 남학생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녀는 수없이 사회학 이론들을 떠올리며 사회학자처럼 생각하고 대답하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회학을 배워서 어디에 쓰는지, 계속 공부를 해도 될지 답을 얻는다.  



"사회학은 개인이 그 자신보다 더 큰, 사회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해요.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사회학'이라는 말을 쓴 이래로 계속 이어져 내려온 개념이죠. 그는 바로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에 태어난 오귀스트 콩트라는 프랑스 사람이에요." (p.73)


"달리나는 사회학과 상식은 독특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상식은 사회학의 시작점이자 남겨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종종 상식, 즉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상식이 틀렸다는 건 전체를 포괄하는 사고 체계로서나 객관적 사실로서 틀렸다는 뜻이지만, 일상적 수준에서 상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 없다. 사회학이 철학, 경제학 등과 다른 것은 이와 같은 상식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p.294)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밀라처럼 대학교 1학년 때 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정식 수업은 아니고 세미나 수업이었는데, 마침 그 세미나를 담당하던 교수님이 사회학과 교수님이라서 본의 아니게 한 학기 동안 '사회학 개론'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교수님께서 (이 책에 소개되기도 한)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을 추천하시며,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사회학의 기본 개념과 주요 이론들을 이해해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는 그저 사회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담당하는 학문을 더 알리고 홍보하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그 때 한 학기 동안 사회학을 배웠던 것이 나중에 전공인 정치외교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각각 학문의 성격이나 이론, 방법론 같은 것은 달라도, 결국 사회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비슷한 인식틀을 공유하고, 무엇보다도 인간도, 자연도 아닌 '사회'라는 대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연이기는 해도 한 학기 동안 사회학을 배운 덕에 대학 4년 동안 남들보다 더욱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계속 사회과학을 공부해나갈 사람으로서 이번 기회에 사회학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학자와 이론들이 참으로 많다. 푸코가 그렇다. 대학교 때 벤담의 파놉티콘에 관한 소논문을 쓰면서 푸코에 대해서도 잠시 공부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푸코의 이론이 감시와 처벌 같은 사회적 감시, 형벌 시스템에서 성과 몸의 권력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앞으로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페미니즘, 감성 사회학, 문화 사회학 같은 것도 다시 공부해보면 좋겠다. 공부라는 것이 대학교 때 반짝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 평생 동안 해야할 '업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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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ebs북카페에 황현산 선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방송내용이 좋아서 인터뷰도 찾아보고 책도 주문했는데 글쓰기에 대한 태도나 삶의 철학 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었고요. 여름이 다 가기전에 읽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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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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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재주를 타고난 나는 많이 쓰는 데다가 잘쓰기까지 하는,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김애란이 그런 작가다. 몇 달 전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무척 놀랐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문체를 지닌 작가가 있었다니! 나의 고정관념 내지는 편견이겠지만, 우리나라 소설 중에는 역사적, 정치적 색채가 짙거나, 특정 계층 또는 세대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적지 않은데(그런 작품들을 안 좋아하는 것은, 그런 작품 일색인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애란의 소설은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고, 글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학 그대로의 문학을 한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평소에 얼마나 한정적이고 안일한 단어 선택을 하는지, 남들의 문장을 따라서 쓰는지, 글을 허투루 쓰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나아가 새로운 글, 나만의 글을 쓰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글을 쓰기를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2005년에 나온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읽으면서 작가로 타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밝은'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가족(특히 부모)에 대한 정겹고 긍정적인 묘사와 재기 넘치는 장면들이 독자로 하여금 절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서 좋다, 예쁘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장점들의 모태가 된 단편들로 짐작된다. 다른 하나는 '어두운' 소설이다. 어둡다고 해서, 어떤 음모나 범죄를 다룬다거나, 엄청난 비극이 등장하는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다. 김애란의 '어두움'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친숙하게 여기는 일들에서 비롯된다. 가령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 거리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이 어떤 식으로 편리한 시스템과 인간성을 교환하는지를 보여주고, <영원한 화자>는 고교 동창이라며 다가온 타인을 통해 내가 특별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추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평범한지를 보여준다. 특히 나는 마지막에 실린 <노크하지 않는 집>이라는 작품을 잊을 수가 없다. 주인공은 다른 네 명의 여성과 함께 하숙을 하고 있다. 말이 '함께'지, 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다. 비좁은 방에서 주인공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상상한다. 그들은 남이니까 분명 나와 다르겠지, 라는 전제를 깔고.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날 추악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나, 유일한 존재'라는 당연한 생각이 흔들린다면, 나의 일상과 생활은 더 이상 그동안의 친숙하고 편안했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 속에 나타난 작가의 어두움이다.


김애란이 쓴 책 중에서 이 책을 (<두근두근 내 인생>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건 라디오 광고 덕분이다. EBS 라디오는 특이하게 시보를 아나운서가 아닌 일반인 청취자들이 하는데, 그것도 그냥 시보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같이 한다. 짧아서 대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언젠가 내 또래의 여성이 불면증을 고쳐준 책이라며 <달려라 아비>를 추천한 것만은 계속 기억에 남았다. 나도 가끔 불면증에 시달릴 때가 있는데, 읽으면 졸음이 쏟아져서가 아니라 잠이 오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며 불면증을 치료했다(!)고 하니 어찌나 솔깃하던지. 읽어본 결과, 효과는 반반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알게 되었다. (궁금하다면 이 책에 실린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라는 소설을 읽어보시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잠이 오지는 않는다. 생각건대 첫번째 이유는 이 책에 실린 몇 개의 작품, 특히 <노크하지 않는 집>의 결말이 (적어도 내게는)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나의 취향, 나의 기호, 나의 가치관 등등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혔달까? '나'라는 개체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과연 무엇으로 남과 구별되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머리가 텅 비는 듯하다. 두번째 이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이런 '타고난' 작가처럼은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 때문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만 해도 참 좋았는데, <달려라 아비>를 보니 그 작품은 작가가 품고 있는 세계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계를 가지고,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있는데, 나같은 범인이 글이 좋다고 마냥 써대서 무엇하리.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고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이런 재능이라도 타고났다고 좋아해도 될까? 이래저래 오랜만에 참 마음에 드는 소설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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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레시피 - 꿈꾸는 것만으로 달라지지 않는 나를 위한 6단계 액션 플랜
김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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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멘토' 김수영은 내가 신작을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여러 방송에 출연한 명사인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는 그녀가 작가가 되기 전부터 그녀의 블로그(http://cyberelf00.blog.me)를 통해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명문대 출신에 골드만 삭스, 로열더치쉘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재직한 경력을 지닌 그녀를 사람들은 '엄친딸'이라고 부르지만, 그녀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을 비관하며 문제아, 자퇴생의 길을 걷고, 급기야 가출까지 했던 그녀는 서태지의 '컴백홈'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를 보는 세상의 눈은 결코 곱지 않았다. 그녀는 시골 마을의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무시와 조롱, 비난을 감내하며 결국 연세대 영문과에 합격했다. '도전 골든벨'에 출연하여 실업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골든벨까지 울렸다. 대학 진학 후에도 공부하는 틈틈이 수십개의 알바를 하며 열심히 산 그녀는 수백 개의 지원서를 쓰고 여러번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끝에 골드만 삭스에 취업했다. 이제는 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던 그녀.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의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녀는 이 일을 통해 그동안 쉼없이 달려오면서 놓친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중에는 유학 가기, 부모님 집 사드리기 같은 현실적인 꿈도 있었고, 킬리만자로 오르기, 발리우드 영화 출연하기 등 쉽지 않아 보이는 꿈도 있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8년 동안 그녀는 70여 개국에서 48개의 꿈을 이뤘고, 그 과정을 <멈추지마,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등의 책을 통해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블로그의 글과 그녀의 책 두 권을 모두 읽고,그녀가 출연한 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본 팬으로서 신간 <드림 레시피> 역시 출간 전부터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책에 대한 감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역시 김수영이다!'. <멈추지마, 꿈부터 써봐>가 그녀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수기 형식의 책이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가 25개국에서 365명의 꿈을 인터뷰하며 '드림 멘토'로 거듭나는 내용의 책이었다면, 이번 <드림 레시피>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액션 플랜을 모두 여섯 단계로 정리했다. 



첫번째 단계는 '꿈의 메뉴 정하기'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싶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돌아보며 꿈목록을 작성하는 단계다. 나는 오래전에 그녀의 블로그를 보고 자극을 받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경험이 있다. 총 45가지의 꿈 중에 현재까지 10개를 달성했고 나머지는 '진행중'이다. 10개의 꿈을 이뤘다는 것 자체도 뿌듯한 일이지만, 진행중인 꿈들을 볼 때마다 나태한 생활을 반성하게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식으로 노력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는 점이 좋다.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니 꼭 해보았으면 좋겠다. 두번째 단계는 '구석구석 나를 청소하기'다. 나는 이 파트가 참 신선했다. 방 청소하기, 건강한 신체 만들기, 마음의 상처 치유하기 같은 팁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제까지 그녀가 쓴 책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조언들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 나는 저자가 요가 강사 자격증 코스를 밟을 때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몇 년 간 요가를 해왔지만 강사 자격증 코스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안되는 동작도 많고, 영어로 진행되는 해부학 수업을 쫓아가는 일도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생각을 전환했다. '어차피 이 짧은 시간에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온 요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대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다른 재능을 합쳐서 나만의 요가를 창조해보면 어떨까?' (p.104) 결국 그녀는 자신의 주특기인 살사댄스, 벨리댄스, 노래 등을 가미하여 김수영표 '판타지 요가'를 만들었다. 남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최고가 되기 어렵다면, 나만의 분야에서 스스로 최고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번째 단계 '레시피 작성하기'와 네번째 단계 '준비하기'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력하는 단계다. 그 중에서 나는 네번째 단계에 소개된 팁들이 좋았다. '돈을 좇아 살 것인가? 돈이 따라오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장에서 저자는 마크 알비온의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 MBA 졸업생 1500명을 두 범주로 나누었다. A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먼저 돈을 벌고, 즉 돈 걱정을 해결한 후에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B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관심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돈을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고 대답했다. 1500명 중에 A범주에 속한 사람이 83퍼센트인 1245명, B범주에 속한 사람은 17퍼센트인 255명에 불과했다. 20년 후, 그들 중 101명이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101명의 백만장자 중 A범주에 속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100명은 모두 B범주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p.202)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꿈과 상관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당장 꿈이 없어서 돈 버는 걸로만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결코 일을 통해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그 날 벌어 그 날 사는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고 싶은 일, 해내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 효율성, 효과성 모두 우월하다. 



다섯번째 단계 '꿈을 조리하기'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시험에 떨어진다거나 서류 지원이나 면접에서 불합격하는 등 객관적인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스스로 자신감을 잃거나 무기력해지는 등 주관적인 실패도 있을 수 있다.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되고, 자신감은 회복하면 그만인데,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내 꿈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고 사사건건 무시하고 방해한다면 어떻게 할까? '친구나 이웃일 경우 안 보면 그만이다. 이런 사람들과 보낼 시간에 당신의 꿈을 이미 이룬 사람을 만나러 다니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학교 친구들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친구들은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대신 사회에서 만난 창업가, 모험가,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취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내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 위주로 만나게 되었다. 만일 이 좀비들이 어쩔 수 없이 계속 봐야 하는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동료라면 최소한의 공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그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버려라. 만일 그들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당신 스스로 그들의 꿈멘토가 되어보자.' (p.248) 다른 사람의 꿈멘토가 된다? 여섯번째 단계 '함께 즐기기'에 그 팁이 나와 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남의 꿈도 이루어지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줘보자. 책에 여러 가지 사례가 제시되어 있는데, 나는 거기에 '팬덤 문화'를 보태고 싶다. 팬덤 문화 중에서도 아이돌 그룹 팬덤을 보면, 물론 그 중에는 사생팬 문제라든가 청소년 탈선, 범죄 같은 안좋은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의 올바르고 건전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응원하는 아이돌 그룹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도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던 사람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요즘들어 부쩍 이제까지 해온 일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머리와 마음에 자극을 팍팍 주는 책을 만나서 참 반가웠다. 조언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서 당장 일상 생활에 적용해보고 시도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녀의 블로그와 책, 방송을 통해 나의 삶의 모습과 태도가 많이 바뀐 것처럼, 이번 책을 통해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책 말미에 실린 '감사의 글' 중에 책이 나오기 전에 먼저 원고를 읽고 조언을 한 독자위원회 위원들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에 낯익은 이름이 있어서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역시 내가 아는 사람이 맞았다. 몇 년 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냈는데,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소식이 닿은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몇 년 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며 이 책의 조언을 실천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그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줄조차 몰랐는데, 안정된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이 나의 꿈과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했다. 기쁜 한편, 나는 지금 의욕도 나지 않고 보람도 나지 않는 일에 몸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돈 때문에, 안정감 때문에, 사회적인 평판이나 이목 때문에 일을 고집하고 있는 거라면 잘못이 아닐까. 그를 따라, 김수영을 따라, 나도 내 꿈을 <드림 레시피>에 소개된 레시피대로 조리하고 싶다.



만 원짜리 지폐가 흙탕물에 떨어졌다고 해서 만 원의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이 더럽혀졌다고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리는 순간 만 원은 사라진다. 어떤 일을 겪었든지 간에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고 최고의 인생을 살 자격이 있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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