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창의성과 소통의 기술
박웅현, 강창래 지음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제가 제일기획의 지진아였을 때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통찰력을 키워나가지 않았다면, 영어 공부는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토익 시험을 봐두지 않았다면,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하기 위해 그처럼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저는 '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해본 적은 거의 없어요. 프레젠테이션이야 딱 잡힌 일이었으니 준비했지만, 제가 가진 문화적인 갈증이 독서와 음악, 미술, 영화로 이끌었던 것이고 영어 공부는 <타임>지 같은 새로운 문화의 접점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계속했을 따름입니다. 토익 시험 보러 갈 때도 따로 특별히 공부하고 간 것은 아닙니다. 그저 기회가 있으면 영어 사전이나 영문을 들여다보았을 뿐이고, 일요일에 잠깐 가서 시험 보는 일 자체가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p.255)

 

  

출판계의 불황으로 인해 문을 닫는 인쇄소가 늘어나는 바람에 좋아하는 만화가가 올해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말들 해도, 그런 말을 듣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 데다가 꾸준히 (그것도 제법 많이) 책을 사서 읽는 나로서는 영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기고 보니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플랫폼이 바뀔 뿐이라고 말하지만, 세 매체를 모두 애용하고 있는 내 생각은 다르다. 책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구별되는 나름의 매력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내가 라디오와 종이신문, 테이프와 CD를 기억하는(기억할)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만 다루는 사람과 차별되는 강점을 가지며, 독서 인구가 줄어들수록 이들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주인공 박웅현도 내 입장에 공감할 것이다. 박웅현은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등의 카피를 제작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등 베스트셀러 저자다. 인터뷰어 강창래가 그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된 이 책에서 그는 똑똑하고 창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인 광고계에서 최고가 된 비결로 주저없이 '책읽기'를 든다. 잘난 동기에게 밀려 찬밥 신세였던 사회초년생 시절에 그는 김충렬, 신일철, 김용옥 등 철학자들의 책에 심취했고, 공들여 준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탈락하고 좌절해있던 때에는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원서를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최고의 광고인으로 인정받은 지금도 박경리의 <토지>를 '한 첩의 보약을 먹듯' 읽고, 밀란 쿤데라와 카뮈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겸허한 마음이 드는 한편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긍지를 느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이는 책 읽어서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고 빈정대며, 트렌드에 한참 뒤처진다고 멸시하기도 한다. 이제까지는 반박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속을 끓였지만 앞으로는 박웅현의 이름을 댈 것이다. 책을 밥과 쌀로 바꾸었고, 오래된 책에서 얻은 지혜로 가장 트렌디하고 핫한 광고를 만든 박웅현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고, 책 안 읽는 사람들도 수긍할 만한 독서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박웅현 개인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광고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겨있고, 카피 제작 기법이라든가 창의성을 개발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팁도 나와있다.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외에도 이 분야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에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하얀 달이 시선에 들어오는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달이 얼마나 크고, 멀리 있고, 오랫동안 지구 주위를 돌았는지를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으며, 나의 삶이라는 것은 덧없고 허무한가. 달은 언제나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9년작 <1Q84>에는 달이 한 개가 아니라 무려 두 개나 떠 있는 세계가 등장한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증인회'의 광신도인 부모에게서 도망쳐 현재는 스포츠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는 아오마메. 오랫동안 애인도 없고 하나뿐인 친구도 죽고 없는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쿨하다. 외롭지만 쿨한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 이름은 가와나 덴고. NHK 수금원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역시 도망치듯 떠나온 그는 현재 수학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소설 습작을 쓰고 있다.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같은 곳에 사는 것도 아닌 두 사람은 어느 날 문득 하늘에 두 개의 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내 눈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이 세상이 미친 걸까. 매일밤 달의 갯수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또는 세상을 의심하지만, 아쉽게도 그들 곁엔 이 절실한 의문을 풀어줄 이가 한 명도 없다. 아오마메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들을 보호하는 노부인으로부터 어떤 소녀를 무자비하게 성폭행한 남성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오마메는 전에도 노부인의 부탁을 받고 여러 번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이 남성은 '선구'라는 종교집단의 리더이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목숨이 위험해질 우려가 있다. 한편 덴고는 평소 친분이 있던 편집자 고마츠의 부탁으로 열일곱 살 소녀 '후카에리'의 소설을 대필하는 일을 맡는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순조롭게 끝났고, 소설 역시 고마츠의 예상대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후카에리가 '선구'의 리더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덴고의 신상이 위험해진다.



<1Q84>는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마다 분위기나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살아온 이력과 현재의 생활이 소개되는 1권은 70년대 학생운동의 잔여세력과 신흥종교 문제 등이 뒤엉켜 흉흉했던 1984년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사실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 여성은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반면 주인공 남성은 지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주인공 여성이 어린시절에 가정과 학교로부터 안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양성애자 같은 면을 보인다는 점,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있던 두 사람이 어떤 사건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점, 여성에 대한 학대, 폭력 문제를 시사하고 정치 문제까지 거론된다는 점 등에서 얼마 전에 읽은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했다. 



1권이 추리소설 같았다면, 2권부터는 판타지 문학의 느낌이 강해진다. 가공의 존재인 줄만 알았던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의 정체가 점점 드러날 뿐더러, '선구'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주변에서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엄청난 번개와 천둥이 치던 날 아오마메와 덴고가 각각 '선구'의 리더와 후카에리를 통해 서로의 몸으로 연결되면서 소설의 판타지성은 절정에 달한다. 마지막 3권에서는 형식이 조금 달라진다. 1,2권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시점이 교차하는 형식인데 반해 3권은 여기에 그동안 덴고의 뒷조사를 하던 우시카와라는 남자의 시점이 추가된다. 아오마메와 덴고를 열렬히 응원하던 독자로서 외모와 성격 모두 괴이하다 못해 수상쩍기까지 한 그의 등장이 썩 반갑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2권 후기에서 이어집니다)



두 개의 달을 테마로 하는 소설답게 <1Q84>에는 두 세계의 혼합, 공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두 남녀의 세계가 각각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점이 그렇고, 1984년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다룬 리얼리즘 소설과 판타지 문학의 경계에 있다는 점이 그렇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과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등 서양의 문화와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 전통적으로 중국 등 동양문학의 주요 제재였던 달이라는 모티프 등 동양의 문화가 함께 등장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살면서 겪거나 고민한 경험의 총체를 문학으로 재해석, 재창조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알려진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문학 교사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미군들이 버리고 간 페이퍼백 소설을 읽으며 미국문학에 심취했다. 학생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으나 가담하지는 않았고,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하지 않고 재즈카페를 운영하다가 서른이 되던 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일본문학을 비롯해 '일본의 것'을 중시하는 국수적인 가정에서 미국소설, 재즈 등 미국문화에 심취한 점, 학생운동에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참여하지는 않은 점, 자영업자이면서 소설을 쓴 점, 소설가로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보수적인 일본 문학계에 머무르지 않고 변두리를 떠돌다 미국 진출을 시도하여 바깥으로 나아간 점 등 그의 오랜 '이중 생활'이 소설 곳곳에서 느껴졌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오가는 소설을 주로 쓰던 그는 90년대에 이르러 옴진리교 사건과 고베 대지진을 거치며 종교, 정치 등 사회문제에도 눈을 돌렸는데, <1Q84>에는 이같은 면이 드러난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가 그동안 걸어온 길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읽고나면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드는 점이 대단하다. 감히 말하건대, 이제까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최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1-A063816005 김중혁 작가님의 팬이라서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나오자마자 구입했는데 역시나 좋더라구요. 작가님이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들어온 음악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소개되어 있어서 김중혁 작가님의 글( 그림)은 물론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깊이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사랑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심리학자 융인데, 그조차 인정한 것이다. 융은 고백한다. "내 모든 경험상 사랑은 거의 다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더 높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융은 무한한 사랑의 모순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용기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도저히 그 학문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위대한 대가의 뜻밖의 겸허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르지만, '사랑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싶다.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 때문에 늘 상처받는 사람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의 감동을 나누고 싶다. 사랑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철학의 샘물이고,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예리하게 투시하는, 보이지 않는 현미경이니까. (pp.17-8)

  

 

소설, 영화, 음악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다뤄진 테마는 단연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력과 탐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테마 역시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흔해 빠졌다고 욕하면서도 연애 소설을 찾아 읽고, 주말마다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도 모자라 주중에는 드라마에 몰두하고, 쉴새 없이 사랑 노래를 들어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잘 있지 말아요>를 보니 사랑과는 담 쌓은 삶을 살 것 같아 보이는(?) 학자들 또한 사랑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문학평론가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사랑을 테마로 한 서평집을 낸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은 사랑, 연애, 이별, 인연 - 이렇게 네 개의 키워드 아래 고전부터 현대, 영화 원작에 이르는 서른 일곱 편의 소설에 대한 평론을 담은 문학평론집 또는 서평집이다. 서평집에는 안 읽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집과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집,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후자다. 책으로 읽었든 영화로 보았든 간에 이 책을 읽고난 후 다시 찾고 싶어진 작품이 참 많다.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그렇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훈남 선배 같은 외모의(정작 나는 여대에 갔지만) 츠마부키 사토시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보았던 이 영화를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돌아보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대학생 츠네오가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조제를 만나 풋풋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편, 결국에는 현실의 장벽 앞에 무너지는 모습이 슬프기만 했는데, 어느덧 영화 속 그들보다 나이를 먹고보니 사랑을 단념한 조제가 츠네오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을 연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츠네오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해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알겠다. "사람들은 사랑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끝나고 난 후의 외로움이 두려워서 사랑을 피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이를 먹고 사랑의 횟수가 늘수록 사랑 자체보다는 사랑한 후의 고독과 아픔이 싫어서 겁을 내는 일이 많아진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본다면 두려움을 이기고 사랑에 뛰어든 조제가 멋져서, 그런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었던 츠네오가 부러워서 눈물이 나겠지.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그렇다. 몇 년 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천재 예술가 아셴바하가 휴양차 베니스에 갔다가 타치오라는 미소년을 만나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 게 아깝고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위험천만한 모험을 기꺼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임을"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스탕달의 <적과 흑>,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 오래 전에 읽었고 익히 알고 있는 고전문학뿐 아니라 이언 매큐언의 <속죄>,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스 먼로의 <곰이 산을 넘어오다> 등 현대문학, 스티븐 크보스키의 <월플라워>, 매튜 퀵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같은 영화 원작 소설이 두루두루 소개되어 있다"사랑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철학의 샘물이고,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분석할 수 없는 삶을 예리하게 투시하는, 보이지 않는 현미경"이라는 저자의 말을 믿고, 이번 가을, 사랑에 빠진 문학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천재들 -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을 찾아서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번은 메조판티의 친구이기도 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1765~1846)가 그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수십 명을 대령시켰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메조판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가 얼른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마다 자기 모국어로, 단어가 워낙 풍부하고 어조가 워낙 유창했으며, 방언 특유의 은어까지 동원되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차마 들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메조판티는 전혀 굴하지 않고 "한 사람씩 상대하면서, 각자의 모국어로 대답해 주었다." 급기야 교황은 이 추기경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어느 누구도 메조판티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p.16) 

  

"크램시에 따르면, 한 가지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당신이 그 원어민의 문화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그 언어의 문화적 짐 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이 언어로, 또는 저 언어로 말하려고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뜻이다." (p.45)

 

"물론 당신의 삶 속에 더 많은 언어를 가질수록, 당신의 경험은 더 풍부해지게 되지만, 그 모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여행과 접촉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너덧 가지의 언어밖에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에요." (pp.47-8)

 


나는 여러가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꿈이다. 버킷리스트 윗줄에 떡하니 프랑스어 배우기, 중국어 마스터하기 같은 소망을 써놓은 것은 물론, 생각날 때마다 외국어 교재를 구입하거나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문제는 '작심삼일'이라는 말대로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작심삼일도 삼일마다 하면 된다지만, 이상하게도 외국어 공부만큼은 다른 공부나 취미처럼 지속하기가 어렵고 실력이 잘 늘지도 않는다. 학업과 취업에 필요해서 배운 영어, 학창시절에 드라마, 영화를 보며 마스터한 일본어처럼 당장의 필요나 강렬한 욕구가 없이는 외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말조차 이 사람 앞에서는 핑계 내지는 변명일런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천재들>에 소개된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한 초다언어구사자, 언어 천재 주세페 메조판티는 무려 72가지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19세기 성직자인 그는 모국어인 라틴어와 볼로냐어를 포함하여 아랍어, 히브리어, 칼데아어, 콥트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알바니아어, 몰타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폴란드어, 심지어는 중국어까지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텍사스 대학교 출신의 학자인 저자 마이클 에라드는 세계 각지에서 영어 교육자로 일하다가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외국어 습득 열풍에 놀라 언어 천재들의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전설적인 언어 천재 메조판티를 알게 되었고, 그가 단기간에 수많은 언어를 습득하게 된 비결을 찾아나섰다. 책에는 메조판티의 천재적인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언어 학습 이론과 현대의 초다언어구사자들의 사례, 유전 또는 뇌신경학적 요인 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흔히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남자보다는 여자가 외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틀리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지능지수나 성별, 유전 같은 요인은 외국어 능력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언어에 대한 문화적 이해나 애착이 더 중요하다. 피아노 건반을 잘 치는 것과 모차르트를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은 별개인 것처럼, 토익 점수가 높은 것과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맥락 속에서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처럼, 외국어를 그저 아는 것과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당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가? 비단 그런 것은 아니다. 교통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18세기에도 메조판티는 72개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지 않았던가. 저자는 연구를 통해 섀도잉(외국어의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소리와 똑같이 발음하려고 시도하는 연습)이라든가, 껌 씹기, 차, 커피 마시기 등의 방법이 외국어 습득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옥시토신, 도파민의 작용을 활발히 하거나, 암페타민, 두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등 약물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18세기 인물인 메조판티는 이러한 인위적인 방법이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72가지 외국어를 마스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 옛날에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습득하고 전설적인 언어 천재가 된 진짜 비결은 무엇인가? 그 답은 책 마지막 부분에 나와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