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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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소설 아니랄까봐 이 소설 역시 시종일관 기이하고 환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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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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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만은 내주리라고 믿었던 나를 실제로는 내주지 않았음을 알 때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고 얼마나 비참해지는가. 보통의 인간들이 하는 보통의 연애, 보통의 사랑이 이 소설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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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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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고 처음으로 '이래서 보통, 보통 하는구나' 싶었다. 줄거리 자체는 통속적인 연애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런던 소재의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 앨리스는 솔로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친구의 결혼식 파티에서 에릭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직업도 좋고 외모와 매너까지 근사한 그와 연인이 된 그녀. 하지만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좋았던 첫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변한다. 에릭에게서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던 앨리스 앞에 급기야 필립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현 남친 에릭과 새로운 썸남 필립 사이에서 갈등하는 앨리스. 어떤가. 이제까지 드라마나 만화에서 수십, 수백번은 본 패턴이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가 어찌나 내 이야기같고 흥미진진했는지 모른다. 나름 괜찮은 외모와 스펙을 지닌 여자가 왜 스스로를 비하하는지, 연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여자가 어떻게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여는지, 처음에는 매력으로 다가오던 그의 장점들이 언제부터 참을 수 없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지, 연인의 무시와 짜증을 어떻게 견디며 언제부터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이별을 준비하는지 등등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애의 장면들이 책을 읽는 동안 퐁퐁 떠올랐다. 에릭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앨리스가, 사실은 에릭이라는 한 남자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과 감정 상태를 사랑했음을 깨달았을 때는 나도 눈물이 났다. 너에게만은 내주리라고 믿었던 나를 실제로는 내주지 않았음을 알 때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고 얼마나 비참해지는가. 보통의 인간들이 하는 보통의 연애, 보통의 사랑이 이 소설에는 있다.

 

 

감정을 먼저 이끌어낸 사람이 그 감정에 걸맞게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에릭은 단순히, 그를 만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존재했던,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의 촉매제 아니었을까?

그녀의 사랑은 그 남자와 함께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그 남자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그저 결실을 맺지 못한 약속이 아니었을까? (p.384)

 

 

줄거리가 보통이라면 형식은 보통이 아니다. 이 소설은, 흔히 소설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형식이 아니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저자의 해설이 첨언되어 있다. 연애라는 보편적인 행위와 사랑이라는 감정이 학문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아니라, 이토록 매끄럽게 소설로 녹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래서 보통, 보통 하는구나! 무래도 알랭 드 보통에게 깊게 빠져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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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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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인 오늘로서 만 스물일곱 살이 된 나도 열다섯 살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 겉으로는 반장, 학생회 임원, 방송부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지만, 실제로는 친구들과 g.o.d나 신화 같은 아이돌 그룹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그 때는 그저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춤이 좋아서, 외모가 끌려서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라도 성적 걱정, 등수 걱정 안 하고 살아보고 싶던 내게 아이돌 그룹은 온갖 고민을 잊을 수 있는 피난처라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의 내 또래인 학생들이 EXO같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나 우려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든다. 


처지는 다르지만 피난처를 찾는다는 점은 같은 열다섯 살 학생이 여기 또 있다. 이름은 '못'. 공부를 잘하지도, 외모가 잘나지도 않고, 존재감마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못은 '모아이'라는 아이와 '쎄트로' 불량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돈을 갈취당하는 게 일상이다. 한 번이라도 친구들한테 무시당할 걱정, 맞을 걱정 하지 않고 학교에 가고 싶던 못에게 어느 날 피난처가 생긴다. 그것은 여느때처럼 벌판에서 불량 학생들에게 맞고 돈을 뺏긴 못과 모아이 앞에 나타난 탁. 구. 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핑, 퐁, 핑, 퐁, 랠리를 시작했고, 탁구를 치면서 두 소년의 일상은 조금씩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pp.117-8)


박민규 소설 아니랄까봐 이 소설 역시 시종일관 기이하고 환상적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외모의 두 소년이 벌판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도 그렇고, 둘이 본격적으로 탁구를 치기로 하면서 알게 된 세크라땡 아저씨와 그의 아들들, 모아이의 주변사람들까지, 하나같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불량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못과 모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학생들과 교사들, 평범한 소년 못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은 이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요구하거나 방치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라서 절대적인 희망도, 절대적인 절망도 품을 수 없다는 세크라땡 아저씨의 말은, 안타깝지만 무엇도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어른의 무력감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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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
김하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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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저자 박웅현은 똑똑하고 창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인 광고계에서 최고가 된 비결로 주저없이 '책읽기'를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재치있고 기발한 카피들이 딱딱한 인문학 책을 읽고 만들어진 거라니, 허탈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제일기획, TBWA 코리아 등을 거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하나 역시 창의성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에서 저자는 창의성이 교과서처럼 규격화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재들의 전유물도 아니며, 통통 튀는 감각을 지닌 젊은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실함과 진지함이 창의성을 가지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박웅현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그것도 원서로 읽으며 우직하게 내공을 기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천재의 삶에서 배워야 할 점은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사과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자기 일의 기본을 성실하게 배워온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이제 창의성의 자세도 훌륭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창의성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에요. 말했죠? 창의성은 하나의 태도라고요. (p.28)


두 남녀가 서울 모처의 바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쓰인 이 책에서 저자는 아예 창의성이라는 단어 대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쓰자고 제안한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보통사람이 가지기 힘든 거창하고 대단한 재능 같지만, 아이디어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나 센스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디어는 출출하던 차에 찾은 분식집 테이블, 퇴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자동차 유리창에 붙은 중고차 딜러의 전단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다못해 늘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는 식으로도 찾을 수 있다. 나와 동생은 진작부터 하던 것이 있다. 어쩌다 단둘이 외식을 하게 되면 우리는 늘 먹는 평범한 음식 대신 안 먹어본 외국 음식이나 처음 보는 디저트에 도전한다. 이름하여 '어제와 다른 나' 프로젝트! 별것 아닌데 머리회전에 도움이 된다니 뿌듯하다.
 

아이디어 하면 보통 광고나 영화, 음악, 패션 등 창의성을 요하는 미디어, 예술 분야에서나 쓰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양성평등, 민주주의 같은 이념도 실은 누군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태어난 발명의 소산이다. 높이뛰기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면뛰기, 이른바 '포스베리 플랍' 기술 역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처음 시도하여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달리기를 할 때 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숙인 채 출발 준비를 하는 '크라우치 스타트' 자세도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1896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딘가 유연해집니다. 옛것도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벽을 깨고 나온 신선함으로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용감한 시행착오에 박수를 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p.173)


연말 탓인지 유난히 피로하던 몸과 마음이 이 책 한 권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글도 좋고, 내용도 좋고, 만듦새까지 좋은 별 다섯 개 짜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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