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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
고은초 글.사진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3650일?' 인터넷서점에서 책 소개글을 읽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살면서 해외여행이라고는 중국으로 9일, 일본으로 7일 다녀온 게 전부인 내게는 365일 세계일주도 엄청난 일인데, 저자는 무려 그 열 배인 3650일을 세계일주를 했단다. 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
<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의 저자 고은초는 연세대 영문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스물한 살 때 처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학생회관 담벼락에 붙어있던 워킹 홀리데이 포스터를 보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목적지는 호주.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이 오직 배짱만으로 떠난 그 여행에서 저자는 자기 안에 숨쉬고 있던 '여행본능'을 발견했다.
마추픽추에 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거긴... 책에서만 존재하는 곳이란 말이야......!"
그러게.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막연한 상상 속에서 그들의 삶을 그려보던 고교 시절부터, 잉카는 내게 전설 같은 곳이었다.
고대의 수수께끼 문명 같던 바로 그곳에 내가 서 있다. 그들의 삶이 전설이 아닌 실재가 되었다.
여행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참 할 만한 거야. 정말로 그래. (pp.134-5)
전공 시험 때문에 머리를 싸매던 스물한 살 때부터, 취업 준비에 몸이 바싹바싹 마르던 스물다섯, 남들 보기엔 번듯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스물아홉 살 때까지 저자는 부지런히 여행을 떠났고,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5대륙 모두 발자취를 남겼다. 여행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건 아니다. 첫 여행 직전에 발목을 심하게 접질러 두고두고 아팠고, 화상에 볼거리, 식중독,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와 병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도난, 분실, 사기까지... 제목에 괜히 '하드코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여행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여행만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행을 통해 저자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은 것도, 좋은 직장을 잡은 것도, 멋진 배우자를 만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다가 '인생은 퍼즐'이라는 자신만의 인생 철학을 발견했고, 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며, '길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을 가보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도, 직업이 없어도 절망하지 않고 숨겨진 행복을 찾아내는 재주. 그건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많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얻기 힘들다. 게다가 이렇게 멋진 책까지 쓰지 않았나!
금을 얻으려면 마음속 가득한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면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 (p.267)
시중에 나와있는 여행서 중에는 고작 몇 달, 심하게는 몇 주 여행한 정도로 멋드러진 사진과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로 대강 떼운 책도 적지 않은데, 이 책의 저자는 책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많은 나라를 여행했으면서 그 중의 핵심만 이 책에 모은 것 같다. 사진과 여행 정보는 최소한으로 줄인 대신, 담백하고 맛깔나는 글로 순간순간의 단상을 생생하게 되살린 점이 좋았다. 나는 존재조차 몰랐던 세계 일주 항공권, '원 월드'에 대한 정보도 실려 있으니 세계일주를 계획하는 여행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