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하나만 더 얘기해드리죠. 지우는 건 말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지웁니다.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웁니다. 그걸 지워야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어요. 새로운 걸 쓰려면 계속 지워야 해요. 그렇게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후배들과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지우지 말고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소설이란 건 말이죠, 길이 없는 겁니다. 길이 다른 겁니다. 제가 지운 글은, 그냥 제 길이고 제가 쳐낸 나뭇가지들일 뿐입니다. 그걸 보고 뭘 배울 수 있겠어요. 어설픈 길만 만들어줄 뿐입니다. 

 

저는 매일 일기를 씁니다. 소설가가 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어요. 가까운 사람들은 그 일기를 책으로 내도 좋겠다고 말을 하는데, 멍청한 얘기들입니다. 덤불에 길을 내려면 잔가지들을 계속 쳐내야죠. 칼로 마구 베어냅니다. 일기란 게 그런 거예요. 잘린 가지들이 덤불이 되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겁니다. 그런 건 모아서 불태워야 합니다. 저는 1년에 한 번 그 일기들을 불에 넣고 태웁니다. 그렇게 지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pp.81-2)

 


애정하는 작가 김중혁이 쓴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비롯해 여러 책 관련 방송에서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은터라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역시나 재미있었다(다만 성적으로 과감한 묘사가 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것만은 기대에 못 미친듯...). 일반적인 소설이라기 보다는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 적인 느낌이 강한데, 나는 특히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떠올랐다. 주인공 구동치의 시니컬한 성격이라든가 드러내지는 않지만 경찰 조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 내지는 충성 같은 면 등등이...... 사건이나 인물들의 관계가 완벽하게 정리되거나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 프리퀄 같아서 자연스레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든다. 부디 속편이 나오기를...!



그의 첫 장편소설 <좀비들>은 읽지 않았지만 <펭귄 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일층 지하 일층> 등 단편집에 실린 단편소설은 어느 정도 읽었는데, 단편소설에서 보인 작가만의 특징이 이 소설에도 여럿 눈에 띄어 반가웠다. 첫째는 인물의 직업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김중혁의 소설은 인물의 직업에 대한 설정이 상당히 구체적이며, 그 직업이라는 것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기상천외한 것이 많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 소설에서는 의뢰인이 죽으면 생전의 모든 기록을 대신 삭제해주는 '딜리터(deleter)'라는 직업을 등장시켰다. 주인공의 직업이 그냥 탐정이었다면 일반적인 탐정 소설과 큰 차이를 못 느꼈을 텐데, 탐정인 듯 탐정아닌 딜리터라는 직업이 등장해 이야기의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딜리터가 하는 딜리팅(deleting), 즉 지우기라는 작업은 하기, 만들기, 쓰기 등 뭔가를 형성하고 창조해내는 행위의 대치되는 부분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남이 한 것을 지우기, 만든 것을 지우기, 쓴 것을 지우기... 이제까지는 없었던, 지우기의 재발견이 아닐런지.


둘째는 주인공 남성이 또다른 남성과 나누는 우정 내지는 동지애가 소설에서 가장 부각되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김중혁의 소설은 남녀 간의 연애 감정을 그린 것이 드물다. 기껏해야 <바질> 정도. 이번 소설에서는 나름 히로인 역할을 하는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고, 김중혁 소설 최초로 남녀 관계에 대한 과감한(!) 묘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연애 감정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 구동치의 경찰 시절 선배인 김인천과의 관계가 소설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이는 남자 두 명이 이야기의 중심인 경우가 많았던 기존의 단편 소설 속 인물 관계와도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가 남녀 간의 로맨스로 흐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 주변에 괜찮은 여성 캐릭터를 여러 명이나 등장시키고도 제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아서 독자로서 살짝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역시 속편이 나오기를...!


또한 이 소설에는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 몇 군데 나온다. 첫째는 구동치에게 딜리팅을 의뢰한 소설가의 말이다(인용한 구절 참고). 소설가는 그동안 자신이 썼지만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글을 모두 지워달라고 요청하면서, 그런 글은 모두 길을 내기 위해 쳐낸 잔가지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김중혁 작가는 친구인 김연수 작가와 언젠가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컴퓨터에 저장된 글을 지워주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딜리터라는 직업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잔가지를 만들고 스스로 쳐내버리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니. 짠한 마음이 든다. 둘째는 구동치의 선배인 김인천이 어설픈 솜씨로 소설을 써서 구동치에게만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중에 구동치는 이 소설을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아끼던 선배와 사건에 안녕을 고한다(최후의 딜리팅이랄까).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서 그 안에 소설이라는 소재를 등장시키고, 그 소설을 없앰으로써 소설을 끝마치다니. 근사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 이야기의 다음 부분을 더 보고싶다. 제발 속편이 나오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에게 마음정리가 필요할 때 - 집정리가 마음정리 수납력이 인생 성공력
심현주 지음 / 동아일보사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어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심현주가 누군가 했더니 알고보니 인테리어, 정리 수납 파워블로거로 유명한 '까사마미'님이시란다. 인테리어, 정리 수납을 퍽 좋아하는 터라 오래 전부터 까사마미 님의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었고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는데 이번 책은 성격이나 구성이 기존 책들과 사뭇 달라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다르냐면, 일단 이 책은 수납 정리 전문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파워블로거가 되기까지의 과정, 정리 수납을 실천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편안한 필체로 적어내린 형식이라서 읽기에도 쉽고 재미도 있었다. 저자는 결혼과 출산, 양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인테리어와 정리, 수납을 실천하면서 해소하는, 일종의 '마음 정리'를 했다고 설명했다. (나를 포함해) 심란할 때마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온 집구석을 누비며 쓸고 닦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인테리어 및 수납 정리 팁을 조금 소개하기도 했는데, 기존의 전문서의 내용에 비하면 매우 적은 분량이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귀한 정보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에서 멈추는 여자, 서른부터 성장하는 여자
아리카와 마유미 지음, 도현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바보가 된다." 예전에 어떤 저명인사를 만났을 때 들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지식을 적극적으로 얻으라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 독서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의외의 발언이었습니다.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읽는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는 것이 더 해로울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진짜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의 지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바로 적용해보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분야의 무슨 책을 읽더라도 주의해야 할 것은 언제나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pp.200-1)

 


아리카와 마유미의 <10년 전을 사는 여자 10년 후를 사는 여자>를 읽고 느낀 바가 많아 저자의 다른 책 <서른에서 멈추는 여자 서른부터 성장하는 여자>를 읽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10년 전을 사는 여자 10년 후를 사는 여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역할에 안주하지 말고,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라는 주장은 여전하다. 차이점은 '서른'이라는 나이를 상정해 서른 이후에도 그 이전처럼, 혹은 그보다 활력 넘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해진 루트나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느라 눈앞에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유연하게 생각하라는 점, 자기 자신의 주관만 관철시키지 말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에도 신경쓰라는 점, 고인 물이 되지 말고 계속 배우고 성장하라는 메시지는 서른 전이나 후나 유효하지만 서른 이후에 더 절박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특히 저자가 독서에 대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바보가 된다."는 어느 명사의 말을 인용하며 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책만 읽는 바보란, 말 그대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난 뒤 저자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책에 적힌 조언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등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 생각엔 책을 읽기만 하고 그 뒤에 서평 쓰기나 독서 토론 등 독서 후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쉬운 것 같다. 귀찮더라도 책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말이나 글로 재정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진정한 독서를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저자는 작가의 명성이나 베스트셀러 순위, 전공이나 직업 등을 이유로 주관 없이 책을 고르는 것도 지적한다. 책을 고를 때마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책을 읽는지 철저히 따져보고 읽으라는 것. 할인 도서, 이벤트 도서, 유명 도서 등 출판사나 인터넷 서점의 마케팅에 홀려 책을 지르기 일쑤인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인 터라 따끔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라인중고샵. 품절, 절판 도서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 책을 좋은 주인분께 보내드릴 수도 있어서 좋아요. 알라딘 중고샵, 사랑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일 인간의 감성을 인도하는 것이 문명사회를 창조하는 과정의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한다면, 문화는 정치와 더불어 그 주요한 메커니즘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듣는 음악, 우리가 보는 영화, 우리가 거주하는 건물,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 조각, 사진은 섬세한 길잡이이자 교육자 역할을 한다. (p.100)


진정으로 뛰어난 비평가는 우리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왜 개인적으로 그렇게 공명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아주 이상한 사실을 진지하게 여긴다. 바로, 우리는 자신이 왜 어떤 것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지 자동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비평은 눈에 보이는 장면 뒤로 들어가 진정한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p.170)



대학교 때 교양 과목으로 미술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후에도 그 때 생각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는다든지 미술 관련 책을 찾아 읽는 식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 때마다 아쉬운 점은 기껏해야 작품이나 화가가 미술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작품의 어떤 부분이 특색있는 것인지 정도를 학문적으로 알 수 있을뿐이지, 그 작품이 왜 나와 공명하는지, 왜 나는 어떤 작품이나 작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같은, 나에게 필요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미술관>을 쓴 알랭 드 보통도 같은 아쉬움을 느낀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미술을 잘 아는 평론가나 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고, 관람자의 입장에서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이 책을 구성했다. 저자는 미술이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 이렇게 일곱 가지의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중에 희망과 균형회복을 위해 미술 작품을 찾는다는 설명에 크게 동의했는데, 이 둘은 현실에는 없는 감정이나 상태를 희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나는 현실에 없는 것을 찾기 위해 미술품을 감상하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는 것인데,  치우친 생활, 편협한 감정을 어떻게라도 되돌려 균형을 찾기 위해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겁기보다는 애달픈 느낌이 든다. 



저자는 이밖에도 미술과 정치의 관계, 비평가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이 부분도 좋았다. 그림이 제시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전부터 써온 인문 에세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연애, 여행, 불안, 직업, 문학 등에 이어 이번엔 미술이라니. 그의 관심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그를 좋아하고 흠모하는 독자로서 자못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