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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여 - 즐겁게 일하면서 꿈을 이루는 법
계한희 지음 / 넥서스BOOKS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의 이름을 알게 된 건 모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했던 <팔로우 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당시 세계적인 패션 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디자인 스쿨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계한희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강렬했다. 짙은 눈화장과 칠흑같은 긴 생머리, 독특한 의상 등등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평범을 거부하고 있었달까. 하지만 프로그램을 한회 한회 보면서 비범한 겉모습은 그녀의 일부에 불과하며, 예상외로 소박한 일상과 털털한 말씨, 패션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성실함 등 척 봐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 그녀의 더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에도 문득 문득 그녀를 떠올리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처럼 그녀의 최근 소식을 궁금해 했던 독자들이 많았던 걸까? 계한희의 첫 책 <좋아 보여>가 얼마전 출간되었다. 읽어보니 그녀는 현재 '카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해 세계 패션의 중심지 뉴욕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올해만 해도 루이비통 주최 제1회 '세계 영 패션 디자이너 프라이즈' 준결승에 진출했고, 동아일보에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고.
패션 디자이너 겸 CEO로서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는 그녀가 바쁜 시간을 내 이 책을 쓴 건, 그녀처럼 외국 패션 스쿨에서 유학을 하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패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이 늘었지만, 실질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롤모델은 예상 외로 많지 않다. 저자 역시 중학교 때부터 해외 유학을 준비해 세인트 마틴스에 합격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구체적인 조언을 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아쉬움이 반영되었는지 이 책에는 유학 준비부터 유학 생활, 유학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담겨 있어 패션계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라고 해서 원단이나 재봉, 재단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기본이다.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새로운 무엇'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술'과는 관계없는 분야라도 상관없다. 무엇이 됐든 관심이 가는 것이라면 일단 뛰어들어 경험하고 배우면 시간이 흐른 후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중략) 아직 패션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아마추어 시절에 충분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배움에 투자하기를 권한다. 남들이 흔히 배우는 것보다 얼핏 관계가 없는 것 같은 분야를 찾아 경험하면서 새로운 눈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로잉 프로그램들이나 사진 등 패션에 도움이 될 직접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순수 미술을 했던 경험을 활용해 매 시즌 옷에 필요한 프린트를 직접 만들곤 한다. 직접 만드니 외부에 맡겨 할 때 생기는 소통의 오류나 충돌도 줄일 수 있고 의도한 부분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또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컴퓨터를 배우는 것도 참 중요하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는 기본, 편집 디자인 기술까지 배워둔다면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도 로고, 초대장, 프린트 등 여러 가지 작업을 직접 할 수 있으며, 외부 업체에 맡길 때도 쉽다. (p.72)
-> 이건 패션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나 적용할 수 있는 팁이 아닐까... 전공만 아는 바보는 점점 더 쓸모 없어지는 세상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시간 있을 때 전공 말고 다른 걸 많이 배워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하다 못해 교양 수업이라도 많이 들어둘 걸...
사실 패션계에는 정말 많은 직업이 있다. 어쩌면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패션 관련 직업에 훨씬 더 재능이 있고 적성에 맞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여러 분야에 가능성을 열어 두자. 패션 업계에 있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패션을 사랑해서 패션 디자인과에 진학한다. 그러다가 옷을 만드는 것보다는 스타일링, 트렌드를 읽고 분석하는 것 등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질을 발견하게 되어 다른 직업을 갖는 바람직한 사례가 많다. (중략) 이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지, 완성된 요리를 예쁘게 스타일링하는 걸 좋아하는지, 맛있는 걸 먹고 평가하는 걸 좋아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같은 분야지만 관련 직종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막연하게 꿈을 좇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속에서 최대한 많이 경험하며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p.44)
-> 백퍼센트 공감. '나는 무엇이다'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말고 두루뭉술하게 분야를 정한 다음 조금씩 다듬어가는 편이 좋다. 직업이든 공부든. 하다못해 책도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읽다보면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고 잘 읽히는 장르가 보인다. 일단은 절대적인 양을 늘리는 게 먼저다(삽질정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패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어릴 때 우연히 패션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발견한 저자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수업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과목 위주로 들었고, 방학 때면 외국 패션 스쿨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놀 때도 패션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도, 컴퓨터를 해도, 심지어는 꿈을 꿀 때조차도 모든 것을 패션에 연결지어 생각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나이를 먹고 많은 경험을 해도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나 목적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녀는 일찍부터 자신의 재능을 찾아 모든 경험과 배움을 패션에 집중했으니 남들보다 몇 발이나 앞서가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본인의 재능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것이 얼마나 부럽던지. 패션 지망생뿐 아니라 자녀를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