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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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는 28세에 낸 소설 <달려라, 토끼야>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자연에게 몸값을 지불할 때, 우리가 자연을 위해 아이를 낳아줄 때, 우리의 풍만함은 끝이 난다. 자연은 이제 우리에게 용무가 없다. 우리는 먼저 내적으로, 다음에는 외적으로 쓰레기가 된다. 꽃줄기가 된다. (p.195)"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 소개되어 샀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서야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인문학 서적 정도로 보이는데 읽어보니 아들과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경쟁을 다룬 에세이집에 가까웠다. 문장도 어렵지 않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이런 좋은 책을 왜 이제까지 안 읽었을까? 



저자 데이비드 실즈는 스포츠광에 아흔이 넘도록 에너지가 넘치고 정력까지 넘치는 아버지와 생애 내내 보이지 않는 다툼을 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운동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커서는 성인이 된 아들에게 팔씨름조차 지지 않는 아버지를 견제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좌절된 꿈과 여기저기 아픈 몸, 그리고 아버지도 나도 결국은 죽는다, 즉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깨달음이 전부였다. 세 살 짜리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진리 말이다.



인체의 생로병사에 대한 지식과 유명 인사들이 남긴 죽음에 대한 명언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점도 매력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스포츠라는 승부의 세계를 생과 사에 비유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스포츠에서 승자는 언제나 죽음이며 패자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이 승부를 영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휘슬이 울려도 어디선가 게임은 계속되듯이 누군가 유명을 달리해도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이 만고의 법칙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 건강하던 아버지도 결국엔 병이 들고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며 그 뒤를 좇던 아들도 같은 길을 걷겠지만, 세상은 변함 없이 잘만 돌아갈 것이다. 그런 먼지같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옷도 입고, 좋은 책도 읽고, 소중한 사람도 만나니, 이만 하면 괜찮은 것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시니컬한 문장 속에는 사실 이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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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습관이다 - 생각에 휘둘리고 혼자 상처받는 사람들
최명기 지음 / 알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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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사람으로 불리는 이들을 부러워하지 말자.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겁 많은 당신의 성격이 훨씬 낫다." 최명기 정신건강전문의에 따르면, 정신과를 찾는 환자 중에는 '멈추지 않는 걱정, 폭주하는 생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이 많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성공한 경영자 중에는 의외로 통이 크고 대담한 사람보다 겁이 많고 피곤할 정도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 많다. 그러니 겁이 많고 걱정이 잦다면 성공 DNA를 타고났다고 믿어보면 어떨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다면, 최명기 정신건강전문의가 쓴 <걱정도 습관이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당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사소한 일에도 겁먹고 고민하는 사람', '콤플렉스 때문에 종종 예민해지는 사람', '특별한 이유없이 종종 불안한 사람', '자꾸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사람', '자신감이 부족하고 쉽게 위축되는 사람', '욕망을 잘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등으로 케이스를 나누고, 총 4단계에 걸친 심리 처방을 제시한다. 처방도 약을 복용한다든가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으라든가 하는 거창한 것보다는, 감정일지 쓰기, 환경 바꾸기, 생애 주기별 인생 목표 세우기 등 일상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 실용적이다.

 

 

" 이렇게 걱정이 밀려올 때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다. 이는 우리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 봐' 생겨나는 감정이다. (중략) 결국 열쇠는 '감정'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꽉 찬 이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말끔히 비워낸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으로도 한결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인지행동 치료를 할 때는 '감정 일지' 쓰기가 가장 많이 활용된다." (p.109) 

 

 

저자는 특히 걱정이 많아 심란할 때마다 '감정 일지'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언젠가 세계 3대 심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책에서 감정은 배설물과 같다는 말을 보았는데, 실제로 이런 감정 일지를 쓰면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무용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쓴 일기장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당시엔 심각했을 친구와의 싸움같은 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듯이 말이다. 서평이라도 글을 쓰다보면 막혀 있던 생각이 풀리고 머리가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데, 그게 다 글쓰기가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라서였나 보다. 역시 글쓰기는 힘이 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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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팟 심리학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이은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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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5만원을 주운 적도 있고, 이벤트에 당첨된 적도 허다하다. 물론 운 나쁜 적도 많다. 동생 대학교 졸업식에서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적도 있고, 면접이며 시험에 떨어진 적도 많다. 허나 그런 때일 수록 좋은 점만 본다. 동생 대학교 졸업식 때는 잃어버린 가방을 찾느라 본의 아닌게 대학 투어(?)를 해서 좋았고, 면접도 시험도 떨어진 만큼 배운 것이 많고 결국엔 원하던 대로 잘 되었으니 운 나쁠 게 뭐 있나. 이런 성격을 가진 것이야말로 최고의 행운인지도 모른다. 



<괴짜심리학>의 저자이기도 한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의 <잭팟 심리학>은 운 좋은 사람의 특징을 전격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우연한 기회가 계속 찾아온다. 둘째, 이유도 모르는 채 탁월한 판단을 내린다. 셋째, 꿈, 야망, 목표를 이루어는 경우가 허다하다. 넷째,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다. (pp.40-1)



이들이 이렇게 운이 좋은 건 비단 팔자소관일까? 그렇지 않다. 역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의 성공 인생에는 네 가지 심리 법칙이 숨겨져 있다. 첫째, 기회가 찾아올 확률을 높인다. 둘째, 직감에 귀를 기울인다. 셋째,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넷째, 불운도 행운으로 역전시킨다. 생각해보니 내가 유독 이벤트에 잘 당첨되는 것도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이벤트에 응모하기 때문이고, 학교며 직장이며 결과적으로는 다 원하는 대로 잘 풀린 것도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로 끊임없이 시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특히 느긋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교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일수록 운이 잘 따른다고 설명한다. 사교적인 걸로 치면 우리 어머니를 당해낼 사람이 별로 없는데(오늘도 새벽부터 동네 친구분들과 놀러가셨다), 어머니 또한 나 못지 않게 운이 좋으신 걸 보면 저자의 설명이 맞는 것 같다. 로또 당첨같은 대박은 안 바라더라도 잭팟 터지듯 행운이 콸콸 쏟아지는 인생을 위해 느긋한 성격, 사교성, 개방성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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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 멍청한 세상과 유쾌하게 소통하는 법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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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프다'라는 신조어가 있다. 웃기면서도 슬픈, 슬프면서도 웃긴 상황을 가리키는 이 말은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세리다스의 산문집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명색이 강사인데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알고 있는 연예인 가십을 나누라는 과제를 내지 않나, 파리에 살면서 <뉴욕타임스> 십자말풀이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아버지를 깨우지 않나, 기껏 파리까지 가서 <포켓 의학 프랑스어> 테이프를 들으며 틀니, 대변 검사, 항문같은 말만 배우지 않나, 그의 일상에는 시트콤같은 일들이 왕왕 벌어진다. 



유년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을 재즈 뮤지션으로 키우려고 억지로 악기를 배우게 한 아버지, 욕설 없이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남동생, 아버지를 열받게 하려고 일부러 뚱뚱해보이는 옷을 입고 나타난 여동생을 가족으로 뒀으니 말 다했다. 골치를 썩인 건 식구들만이 아니다. 자신도 사투리를 쓰면서 혀 짧은 발음을 고치라고 강요했던 언어 치료사, 아버지 손에 끌려 온 저자에게 자기 여자친구가 엄청 예쁘다며 허세를 떨던 기타 선생까지... 괴짜인 저자보다 더 괴짜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슬픔으로 바뀌었다. 명색이 강사라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젊은 날, 뉴욕과 파리 같은 거대 도시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씁쓸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육남매 속에서 욕이라도 해서 돋보여야 했던 남동생, 딸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아버지에게 그렇게라도 반항하고 싶었던 여동생, 재즈를 좋아하지만 주변에 취미를 공유할 친구가 없어 자식이라도 붙잡고 떠들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차례로 이해가 되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것을 보면 저자도 그저 세상을 조롱하려던 것은 아닐 터. 그도 역시 웃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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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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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녀가 알코올에 잠긴 밤의 여로를 위풍당당 끝까지 걸어간 기록이자 주역은커녕 길가의 돌멩이로 만족해야 했던 나의 쓰디쓴 기록이기도 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제목처럼 교토의 이곳저곳을 순례하는 아가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대학 클럽 선배의 춘하추동 일 년 간을 그린 이야기이다.



배경은 현대 도쿄로 지극히 현실적이건만 묘하게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이 소설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집 <책으로 가는 문>에서 동화에 가깝다​고 평한 바 있다. 낭창낭창한 그녀가 봄날 밤거리에서 이백이라는 술꾼과 대작을 벌이지를 않나, 주인공은 그녀가 어릴 적에 읽은 동화책을 구하기 위해 이백이 개최한 불냄비 먹기 대회에 참가하고, 캠퍼스에서는 '축지법 고타츠'니 게릴라 연극 '괴팍왕'이니 하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그렇다고 이 소설이 마냥 판타지적인 것만은 아니다. 둔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와 그녀만을 짝사랑하는 순정파 선배의 풋풋한 모습​하며 흥겨운 밤거리 문화, 헌책시장의 푸근한 정경, 젊음이 후끈거리는 대학 캠퍼스, 눈덮인 대학촌의 모습은 이곳 서울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공간을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환상의 무대로 활용하다니. 과연 모리미 도미히코를 '매직 리얼리즘' 작가로 부를 만 하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주인공 선배가 일 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주역은커녕 길가의 돌멩이로 만족해야 했던' 신세에서 겨우 벗어나는 결말. 목표는 그녀라는 성을 함락하는 것인데 시종일관 바깥 해자만 판다고 괴로워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가면서 괜히 울컥해지기까지 했다. 엉뚱함과 구질구질함, 여기에 삽질(!)과 달달한 결말까지 더해진 이 소설. 청춘의 춘하추동을 여실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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