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지명찰 ㅣ 낭만픽션 1
우부카타 도우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오카다 준이치,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한국 번역판을 북스피어에서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읽어보니 실로 굉장했다.
주인공은 바둑기사 시부카와 하루미. 아버지 야스이 산테쓰의 이름을 물려받은 장자로서 바둑에 몰두해야 하지만, 젊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둑보다도 산술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신사에서 어떤 난제든 척척 푸는 고수를 알게 된 하루미는 고심 끝에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그에게 도전하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고수와의 대결은 무산되고, 설상가상 일본 전역의 위도를 파악하는 공무가 맡겨져 에도를 떠나게 되고, 산술과 천문 연구에 정진한 끝에 끝내는 어긋난 달력을 바로잡는 일생의 승부에 나아가게 된다.
시부카와 하루미라는 실제 인물의 일생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그려냈을 뿐 아니라, 에도 시대 당시 일본의 정치, 문화, 종교, 경제, 산술, 천문, 역법 등을 풍성하게 다루어 읽는 내내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달력 사업이 최고 수준의 산술과 천문, 즉 수학과 과학이 만난 결정체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았으나, 달력을 통해 정부가 어떻게 민심을 수습하고 재정을 확보하며 문화, 종교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까지 다채롭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여기에 시부카와 하루미라는 인물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름난 바둑 가문을 대표하는 몸이지만 산술에 빠져 바둑은 뒷전이고, 명석한 두뇌, 훌륭한 인품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성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바보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언뜻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의 주인공 마지메를 연상케하는데, 성격도 그렇지만 달력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몇십 년에 걸쳐 완수하는 모습이 마지메가 사전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심지어는 영화판에서 아내 역을 맡은 배우가 미야자키 아오이라는 것까지...! ㄷㄷㄷ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 후기에는 해시계, 혼천의, 칠정산 등을 만든 장영실, 정인지 등 15세기 세종 때 과학자들이 언급되었지만, 나는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같은 실학자들을 떠올렸다. 시기적으로는 시부카와 하루미보다 늦지만, 관습과 사회적 제약, 무엇보다도 학문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공부에 정진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것은 다르지 않다. 이들의 정신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