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진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100만 부를 파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책을 읽고 감상을 끼적이는 게 좋고,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인터넷 상으로나마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뿐이다. 허나 이대로 좋은 걸까. 뭔가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취미를 그저 취미로만 간직해도 될까. 애초에 내 글은 어떤 수준일까. 괜히 읽는 사람의 시간만 뺏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일은 재미없고, 돈은 없고, 비는 내리고, 기분은 울적했던 오늘. 퇴근길 지하철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블로그에 서평을 쓴다고 해서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파워블로거로 뽑아주는 것도 아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 책을 낼 것도 아니고 그럴 수준도 아니다. 퇴근하면 방에 틀어박혀 글 쓰고 남들 놀러 나가는 주말에도 책만 읽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걱정하신다. 다른 집 딸들은 벌써 시집 가서 애가 몇이고, 그게 아니면 너 책 읽을 시간에 투잡 뛰며 돈 번다고 채근하신다. 나라고 그럴 마음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책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글을 쓸 때가 가장 짜릿하고 재미있는데 어쩌나.


진짜 공부는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였다. 선생님도 교과서도 정답도 없는 진짜 인생 공부. 이 책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아가면서 알게 된 것들을 짤막하게 모은 것이다. 방황을 하고, 여행을 하고, 잡지를 만들고, 결혼을 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다 소설가가 되었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청소년도 가르치고, 조카도 가르치고, 대학생을 가르치고, 어르신들도 가르쳤다. 그리고 기타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을 배웠다. 실수도 있었고 성공도 있었다. 하지만 서른 즈음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나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경험을 통해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신이 몇 살이든 간에 조금 더 일찍 그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pp.4-5)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의 저자 서진도 그랬을까. 저자의 전작 <파라다이스의 가격>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 신간도 읽어 보았는데 역시 좋았다.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하다가 포기하고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 저자는 '진짜 공부는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였다'고 말한다. 소설을 써서 돈이 안 되면 에세이나 칼럼을 쓰고, 그래도 안 되면 글쓰기를 가르쳐서 돈을 벌었다. 그걸로 결혼도 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거두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즐기며 산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집에 있는 게 심심하면 취미를 만들면 된다. 저자는 피아노를 배우고 기타를 배우고 작곡을 배웠다. 그걸로 혼자 놀기도 하고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학교에선 공부 잘해서 취직하고 돈 버는, 한 가지 삶의 모습밖에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회에 나와 세상엔 정말 많은 직업이 있고 돈 버는 길이 있고 삶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걸 모르고 한 가지 삶의 모습만, 정답이라고 배운 삶만 고집한다면 나만 손해 아닐까?


그런데 나도, 내게 조언을 해준 사람들도 몰랐던 것이 있다. 어떤 장래희망이든 자기가 진정 좋아해서 시작한다면, 꾸준히 한다면,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의 기준에서 안전하다는 길도 따지고 보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은 재능도 없고, 하기도 싫은 일을 안전하다는 이유로 하는 것이다. (p.46) 

 

저자가 계속 글을 써서 다행이라고 느낀 것처럼 나 역시 글쓰기를 놓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돌이켜보면 글쓰기는 나의 가장 오랜 벗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시고 동생은 그림 그리느라 바쁘면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학교에 다니면서 글쓰기는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다. 글쓰기 대회에 곧잘 불려 나갔고 큰 상도 여러 번 탔다. 방송반에서 대본을 쓰고 교지편집부에서 기사를 쓰고 편집하는 일도 도맡았다. 가장 좋아한 건 역시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였다. 많으면 하루에 너다섯 통씩 썼다. 생각해보면 일기도 안 쓰고 글쓰기 교육을 따로 받지도 않은 내가 하루에 한두 편씩은 너끈하게 글쓰는 습관이 생긴 건 다 그 시절의 편지 덕분이다.


글쓰기는 나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대학교 시절 취미로 만든 블로그로 대회에 나갔다가 엉겁결에 최우수상을 탔다. 그걸 계기로 IT 기업에서 인턴도 하고, 웹진 기자도 하고, 정부 부처 기자단도 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내가 대학 시절에 사귄 사람들은 모두 그 인연이다. 졸업과 함께 일체의 활동을 접고 고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글만큼은 계속 썼다. 시험에 떨어지고 학원비와 교재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썼다. 덕분에 고시를 포기하고 뒤늦게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가 수월했다. 국문과를 나온 것도 광고홍보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영업이나 기획 경험은 전무하지만 몇 년 째 블로그에 글을 썼다는 것은 꽤 괜찮은 스펙이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 나는 인생에서 무얼 바라는 걸까? 사춘기에 해야 할 고민을 나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6년...... 18년 동안 나는 무얼 공부했던 걸까? 이 질문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수 없었더. 고등학교를 내신 1등급으로 졸업했는데 갑자기 꼴찌 등급의 인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니. 진짜 낙오자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p.67)


글쓰기는 삶의 낙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미술을 하는 동생이 부러웠고, 동생처럼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며 사는 사람을 동경했다. 내가 쓰는 글은 비록 예술의 끝자락에도 못 미치지만 이렇게라도 내 생각을 펼치고 조립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나로서는 즐겁다. (극히 드물지만) 어쩌다 마음에 쓰는 글이 나오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들뜨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라면 어떻게 쓸까 상상할 때 행복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지 않다면 결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진짜 낙오자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박사 과정을 포기했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삶의 루트로부터 벗어났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도 원하는 대학에 떨어졌고 고시를 포기했고 남들보다 늦게 취업해 여태껏 독립하지 못했다. 저자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진 못해도 원하는 것은 확실히 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그건 내가 서른이 되도록 크고작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이유는 필요 없다. 계속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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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되겟다고 하기 보다 하다보니 되어져 있는 것.^^.

키치 2015-05-12 22:53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2015-05-13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5-05-13 19:52   좋아요 0 | URL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쌩 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2015-05-13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3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보다금동 2015-05-1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일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취미가 어떠한 결과물, 돈?으로 연결되어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내가 즐거우면 그 자체로 충분하겠죠?^^; 저는 키치님 책이야기가 좋아요~ 계속 읽은 책 이야기 같이 나눠요

키치 2015-06-10 17: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책이야기가 좋다는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나네요^^!! 계속 읽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2015-06-27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28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출을 5배 올려주는 고일석의 마케팅 글쓰기 - 블로그, SNS, 세일즈카피, 파워컨텐츠 온라인 마케팅을 위한 실전 글쓰기
고일석 지음 / 책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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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연다. 업무 관련 메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낸 뉴스레터다. '(광고)'라고 뻔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클릭을 하고 머릿속으로 살 것들을 정리한다. 겨우 업무로 복귀하면 이번엔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카카오톡, 라인 같은 채팅 앱이나 쇼핑몰 앱에서 온 광고성 메시지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도 광고가 판친다. 이렇게 광고성 글이 많은데, 그 중에 내가 클릭하고 직접 구매까지 하는 광고성 글은 많지 않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일석의 마케팅 글쓰기>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2015년 현재 인기있는 SNS를 이용한 마케팅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상업적 목적의 마케팅 글쓰기도 엄연한 글쓰기다. 글을 잘 쓰고, 쉽게 쓰고,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광고 글을 보다 보면 나름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썼을 텐데도 맞춤법이 맞지 않거나, 문자의 호응이 엉터리이거나, 의미가 중복되는 단어를 쓰거나,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를 남용한 경우가 많다. 잘 읽히고 쉽게 읽히는 글쓰기는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마케팅 글쓰기는 어떻게 할까? 일기처럼 혼자만 볼 게 아니라면 모든 글쓰기의 목적은 타인의 공감을 얻거나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다. 저자는 세일즈 업계에서 바이블처럼 전해지는 '세일즈 카피' 작성법을 소개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페이싱 리딩'이다. 구매자는 자신의 문제와 필요, 욕구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판매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지 말고 구매자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 


'프레임 전환'도 기억에 남는다. 왜 제품을 사야 하는지가 아니라 여러 제품을 제시하면서 각각에 대해 설명하면 고객의 프레임은 탐색 프레임에서 선택 프레임으로 전환한다. 세일이나 경품 증정 같은 행사가 있으면 뭐라도 한두 개 꼭 사게 되는 이유다. 이렇게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마케팅 기법을 공부하면 궁극적으로는 마케팅 글쓰기 기술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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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K의 마음문제 상담소 - 사상체질로 읽는 나와 우리 가족 마음 이야기
강용혁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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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문제 상담소'라고 해서 심리학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한의사라서 한 번 놀랐고, 한의학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두 번 놀랐다.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제마가 발표한 사상의학에 근거해 한국인의 심리와 정서적 갈등을 진단하고 처방한다. 사상의학 하면 사람을 외모나 체형을 기준으로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구분하고 이에 맞게 음식이나 약을 처방하는 학문인 줄 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가 아닌 정신, 체질이 아닌 기질에 주목하는 학문으로, 한의학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마가 프로이트, 융과 동시대를 산 학자라는 사실도 흥미로운데, 이제마의 '태양/소양/태음/소음' 구분이 융의 '직관/감정/감각/사고' 개념과 일치되는 측면이 많다니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기질의 차이가 성격의 차이를 낳고 체질과 체형을 형성한다. 태양인은 직관, 소양인은 감정, 태음인은 감각, 소음인은 사고를 중시한다. 똑같이 허리디스크 증상을 호소해도 '이런 병이 왜 생겼을까?' 생각부터 하면 소음인, 예전에 산후조리를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감각으로 짐작하면 태음인, 전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맡기면 소양인이다. 여성지나 인터넷에 떠도는 '소양인은 어깨가 넓고, 태음인은 배가 나와 뚱뚱하고, 소음인은 키가 작고 단아하다'는 식의 정보는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선입견이다. 배가 나와 뚱뚱해도 사고 기능이 발달했으면 소음인이고, 키가 작고 단아해도 감각이 발달했으면 태음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 비슷해도 정신 기능이 다르면 기질이 다르다. 똑같이 내성적인 성격이라도 주변 분위기에 맞추려는 것이면 소양인, 남에게 예의를 지키려는 것이면 태음인,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면 소음인이다. 사상의학으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마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더 공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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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에만 올인하는 여자들의 잘못된 믿음 - 떨쳐내려고 해도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 그녀들의 심리
홀리 해즐렛 스티븐스 지음, 송연석 옮김 / 팬덤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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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남성보다 불안 장애에 걸릴 가능성은 두 배나 높다. <걱정에만 올인하는 여자들의 잘못된 믿음>의 저자이자 심리학자 홀리 해즐렛 스티븐스에 따르면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양육 방식이다. 여자아이는 부모를 비롯한 주위 어른들로부터 조심하라, 의심하라,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받는 일이 남자아이에 비해 많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는 일이 잦다. 둘째는 여성 특유의 성향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에 쉽게 노출되고 영향을 받는다. 셋째는 진화론적 반응이다. 여성은 자기 한 몸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식까지 보살피고 지키는 존재로 진화했기 때문에 위협을 감지했을 때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는 회피하거나 현상유지하는 방법을 택하기 쉽다. 


그렇다면 걱정과 불안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저자는 여자들이 걱정하는 이유로 대인관계, 일, 안전, 외모 등을 제시하며 각각 구체적인 해결법을 제시한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걱정 거리 쓰기'다. 생각만 하는 대신 글로 쓰면 걱정하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중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금방 많은 걱정을 처리할 수 있다. 저자는 또한 멀티태스킹을 경계한다. 밥을 먹든, 일을 하든, 취미 생활을 하든 간에 한 가지 행동을 할 때는 하나만 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행동을 하는 것은 집중력은 물론 일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생각해 보니 일과 공부, 일과 연애를 병행할 때 삶의 만족감이 커지기는커녕 정신이 흐트러지고 결과도 안 좋았던 것 같다. 뭐든 잘하고 싶고 이것저것 다 해내고 싶어하는 욕심이야말로 걱정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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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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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음의 실질을 키우는 간단한 노하우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시대에 '마음의 힘'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야기의 힘을 통해서 풀어내고자 하는, 말하자면 '이야기 인생론'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파악할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사고방식이 있겠지만, 마음이란 것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나름의 자기 이해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인생론'의 목표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타자의 마음을 읽어 내고 그로부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의 힘'을 얻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p.20)


듣도 보도 못한 형식의 책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동시에 거론하는 것도 모자라 고전 속 두 주인공의 만남이라는 설정으로 저자가 직접 훗날의 이야기를 창작하다니. 책의 콘셉트를 지인에게 말하니 동인지 같다고 했다. 어쩌면 저자가 두 작가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저자는 동일본대지진까지 겪으며 마음 속이 텅빈 듯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을 떠올렸고,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두 작품 모두 제1차 세계대전과 깊은 인연이 있고, 속세와 동떨어진 곳에서 미숙한 청년이 앞서 산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는 줄거리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닮은 건 둘 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내 몸 하나 편하게 사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마음의 힘'부터 기르는 일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또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가, '그리고, 그 후로' 어떻게 살아갈 건가, 하는 내 나름의 자기 이해'이며, 소세키의 창작 메모에 따르면 물질과 분리된 정신이며,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다. 마음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 자기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며, 물질과는 별도로 정신을 지키는 것이며,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다. 저자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오늘날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마음의 힘부터 기를 것을 제안한다. 방법은 저자처럼 '이야기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 후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이 곧 희망이고 극복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로 현실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발상은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다만 지역 간 계층 간 격차와 빈곤이 확대되고, 고용 불안과 경제 위기가 만연하며, 특정 인종, 성, 종교 등에 대한 혐오 발언, 무관심 등이 도를 넘을 정도로 심각한 오늘날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야기의 힘을 새삼 믿어보고 싶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이야기는 '타자의 마음을 읽'는 길잡이다. 내 것만 챙기느라 남은 안 보고,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타자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힘을 지키는 건 결국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터. <마음>과 <마의 산>이라는 두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한 것도 모자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처방까지 내리는 저자의 필력에 새삼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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