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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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고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해서 구입해 읽어 보았습니다. 무레 요코를 워낙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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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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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배우 고바야시 사토미를 좋아한다. 한국에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연 배우로 알려져 있는 고바야시 사토미는 10대였던 80년대 중후반에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드물게 (어쩌면 한국에서도)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고 사회의 규제나 억압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개성과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에 주로 출연하며 자기만의 독특한 연기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고바야시 사토미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도 겉보기엔 빵과 수프를 파는 식당의 평온한 일상을 그린 작품같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경계로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여성을 그린다는 점에서 여느 일본 드라마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카모메 식당>,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일하지 않습니다> 등을 쓴 무레 요코의 동명 소설이다. 오십이 다 되도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온 아키코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죽고 설상가상으로 잘 다니던 출판사에서도 사표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참에 어머니의 식당을 리모델링해 자기만의 식당으로 만들기로 마음 먹은 아키코는 전부터 존경해온 요리 선생님의 격려를 받아가며 식당을 오픈한다.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아키코의 삶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밤 식당에서 단골 아저씨들과 술을 마시며 시시덕거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기는 단정하고 절제된 삶을 살리라 다짐했고,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인스턴트 음식이며 간이 진한 반찬을 먹지 않으려고 어려서부터 스스로 요리했다.  

 

  그런 아키코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했지만 삶을 대전환할 '기회'이기도 했다. 우선 생애 처음으로 혼자서 살게 되었다. 집안 곳곳에 쌓여 있던 짐들을 치우고, 길고양이 타로도 집에 들였다. 직업도 출판 편집자에서 식당 주인으로 바뀌었다. 출판 편집자가 저자와 독자 사이의 접점을 찾아 연결하는 일이었다면, 식당 주인은 손님이 맛보았으면 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고 식당의 컨셉이며 운영까지 전부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일.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아키코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기만의 고집과 뚝심으로 세상과 부딪쳐가며 아키코는 비로소 혼자만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아키코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키코는 매일 식당문을 열고 음식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삶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딸 하나를 데리고 혼자 몸으로 식당을 하는 처지가 되었던 어머니. 의지할 식구도 없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애인이나 친구도 없이 일만 하면서 산 어머니가 얼마나 고독했을지. 아키코는 매일밤 고양이 타로만이 기다리는 방에 들어가면서 겨우 이해한다. 어머니가 싫어서 어머니처럼 살지 않으려고 기를 썼건만 결국엔 어머니처럼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몸으로 식당을 꾸리게 되는 이 얄궂은 운명! 아키코가 좀 더 일찍 어머니의 삶을 이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드라마와 다른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은 아키코가 고양이 타로와 헤어지는 부분과 이복 오빠를 만나는 부분인데, 둘 다 나는 드라마의 해석이 더 좋았다(아키코의 이복 형제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카세 료라서만은 아니다 ^^). 소설을 다 읽은 김에, 올해가 가기 전 드라마를 한 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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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개미 2015-12-13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바야시 사토미도, 이 드라마도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요~~~원작소설이 있었네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이 드라마는 그냥 틀어만놓아도 너무나 좋은...리뷰 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5-12-15 23: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드라마는 그냥 틀어만놓아도 좋아서 한동안 배경음악 삼아 듣고보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반갑습니다. 감사해요 ^^

무해한모리군 2015-12-1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영상작품 특유의 여백이 느껴지는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원작이 있군요. 오호.

키치 2015-12-15 23:4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일본 영상 특유의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이 많이 묻어났죠. 덧글 감사합니다 ^^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김세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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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모임이 참 많다. 직장에선 송년회를 하고, 일 년 동안 못 본 학교 동창들도 만나야 하고, 가족 모임이며 각종 경조사까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 모임에 나갈 때마다 반가운 얼굴들을 봐서 좋지만, 이따금 싫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애인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애인 있느냐, 왜 없느냐, 무슨 문제 있느냐, 며 꼬치꼬치 캐묻는 선배, 묻지도 않은 연봉 얘길 늘어놓으며 잘 나간다는 걸 과시하는 친구, 좋은 자리 나와서 굳이 남의 험담을 해서 분위기를 흐리는 후배 등등 듣는 사람 기분이며 분위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난다. 


  남이야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을 느끼든 말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 사람'. 혹시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닐까?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저서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고통은 대개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은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로, 마음의 상처와 가치 상실감에 대한 보호가치로 기능"한다고 설명하면서, 오늘날엔 나르시시즘이 몇몇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특수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즘의 핵심 주제는 인격적인 가치 또는 무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한 온갖 노력에 있다. 나르시스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기 위해 언제나 최고가 되려고 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마음속 회의감을 감추려는 기만적인 행위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을 추켜세운다거나, 자기가 얼마나 멋진지 다른 사람들에게 애써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나르시스적인 부족함이 있는 것으로, 그것을 최적화된 자기 과시를 통해 상쇄하려고 드는 것에 불과하다. (p.16)


  적절한 자기애는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자기애는 자기 내면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인해 타인을 착취할 가능성이 높다. 애인 없는 내 속을 후벼팠던 그 선배, 자기 잘난 척, 남의 험담을 하느라 분위기 흐리는 건 눈치도 못 챘던 그 친구, 그 후배는 어쩌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는지도 모른다. 헌데 그들뿐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SNS에 '뽀샵' 처리를 하도 심하게 해서 눈코입이 잘 보이지도 않는 셀카를 올리거나,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굳이 명품 쇼핑하고 먹방 순례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나르시시즘과 결코 멀지 않다. 어쩌면 매달 책 몇 권 읽었다, 어디서 무슨 상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나도.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도전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는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나쁘지만, 그가 한 말에 상처를 받는 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은 있다. 애인 없는 게 내가 평소 공언하는 대로 그렇게 별일이 아니라면 남이 하는 말에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다. 상처를 받았다는 건 사실 나도 속으로는 서른이 넘도록 애인이 없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ㅠㅠ).   

  

  자기 안의 나르시시즘을 달래는 방법으로는 자기 성찰과 자기 제어가 있다. 분노를 느끼거나 모욕을 받았을 때는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자기만의 감정의 배출구를 찾는 것이 좋다. 나는 분노나 모욕감을 느낄 때 속으로 '이 일이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인가?'를 자문해 본다. 남이 한 말에 속이 상하거나 잘못도 안 했는데 욕을 듣는 일은 그날 하루로 치면 큰일이지만 기나긴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금방 잊힐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 평소에 나 자신을 충분히 아껴주는 것도 좋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참지 않고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먹고, 입고 싶은 옷은 입어본다. 별일 아닌 것 때문에 나를 초라하게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만큼 자존감에 해를 입히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고 과소비하는 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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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재발견 - 잘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짜 잘되는 이유
조셉 T. 핼리넌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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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몸이 아파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앓았다. 몸살 약을 먹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봤다. 보통 때라면 명사의 강연 영상이나 외국 드라마를 봤겠지만, 어제는 며칠 전 MAMA를 봐서 그런지 한국 아이돌 영상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레드벨벳, 트와이스, 엑소, 샤이니 같은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니 점점 기운이 났다. 이제 더는 그들처럼 젊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 - 심지어는 병상에 누워 있 - 지만 얼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씩씩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 덕분일까. 오늘 아침 나는 거짓말처럼 말끔한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이래서 다들 아이돌, 아이돌 하는가 보다.



  어쩌면 아이돌이 가진 밝고 즐거운 기운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셉 T. 핼리넌이 쓴 <긍정의 재발견>에 따르면 '타인의 생각과 행동은 나에게 전염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 있는 '섬'과 같은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다소 감지하기 어려운 "사회 연결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타인의 행동과 의견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받기 쉽다. 쉬운 예가 하품이다. 다른 사람이 하품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괜히 하품이 나고 졸리다. 아이돌이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나까지 힘이 난 건 착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가짜 침, 가짜 수술, 가짜 의약품이 놀랄 만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현실과 다르고 실현 가능성이 낮아도 긍정하고 기대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는 전제를 요한다는 점에서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긍정하고 낙관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주장과 다르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공이 굴러가는 방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통 어느 정도 자기 기만이 필요하다. 그러나 괜찮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상상에만 존재할지 몰라도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는 실제일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스스로 속이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숨겨진 힘이다." (p.11)



  이는 또한 공중도덕이나 정치적 신념처럼 기대나 믿음이 행동을 좌우하는 경우에 더 큰 효과를 보인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응원하는 정당이 선거에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이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보다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혹시 내가 하루 만에 병을 털고 일어난 건 아이돌 때문이 아니라 금방 나을 병이라고 믿고 기대했기 때문일까? 어찌 됐든 긍정의 힘이 좋게 작용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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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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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글을 써서 작가가 될 수 있다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기 쉬울뿐더러 내용도 누구나 겪을 법한 일뿐이라 나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마스다 미리처럼 글을 써보면 잘 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혼자 보는 일기조차 쓰기 어렵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쓰면 되는데 펜이 안 나간다. 매일매일 쓰는 것조차 버겁다. 그제야 마스다 미리의 대단함을 깨닫는다. 이런 일을 (아마도) 매일같이, 십여 년 동안 해오다니. 심지어는 남에게 공개하고 출판하기까지 하다니!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은 마스다 미리가 작가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과 현재 작가로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만화책이다.  작가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인생을 바꾼 대사건이나 대단한 인물과의 극적인 만남 같은 게 나오는 건 아니다. 마스다 미리의 책이 대개 그렇듯,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림'만은' 잘 그린다고 칭찬해줬다든가, 잡지를 보다가 입상하면 티셔츠를 준다는 말에 '캐치프레이즈 콘테스트'에 응모한 게 덜컥 당선이 되었다는 정도의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들이 모여 지금의 마스다 미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묘하다. '캐치프레이즈 콘테스트'에 당선이 된 일은 훗날 광고 회사에 입사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한 일은 상경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자립하는 동안 기죽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힘을 주었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고 받쳐주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명작으로 칭송받고 고전으로 전해지는 글도 처음엔 한 줄의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나라도 쓰겠다 싶은 문장, 누구나 겪을 법한 내용이라도 꾸준히 쓰고 열심히 모으면 뭐라도 된다. 마스다 미리가 그 증거다. 나도 그 증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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