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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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를 졸업한 티나 폰타나는 세계 굴지의 언론사 회장이자 억만장자인 로버트의 비서다.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유력 인사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니 남들 눈엔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고 원룸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월급을 받으며 연애는 꿈도 못 꾸는 팍팍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나에게 회사 돈 2만 달러가 굴러들어온다. 며칠을 고민하던 티나는 눈 딱 감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버린다. 이 일을 알아챈 경비 처리부서의 비서 에밀리는 티나를 고발하기는커녕 로버트의 영수증을 위조해 자신의 학자금 대출 7만 달러도 갚아달라고 강요한다. 에밀리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회계팀장이자 회사의 왕언니인 마지가 다른 비서들의 학자금 대출도 갚아달라고 부탁하며 이들의 횡령 액수는 점점 커진다.  

소심한 티나는 당장이라도 이 일을 그만두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강력한 이유가 생긴다. 티나는 회사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직원으로 손꼽히는 케빈과 '썸타는' 중인데, 하필이면 케빈이 티나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 비밀이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제멋대로 오해하면서 티나에게 푹 빠진 것이다. 티나는 케빈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횡령 사실을 들키지 않고 일을 잘 마무리해야 하는데...... 

'내가 낡아빠진 화장실 배수구가 막혀서 사람 부르는 데 필요한 돈으로 로버트는 컨트리클럽에서 테니스를 한 판 치는구나.' '내가 제멋대로 꺼지지 않는 컴퓨터를 사는 데 필요한 돈으로 로버트는 벤츠에 희한한 성분으로 된 광택제를 바르는구나(새끼 공룡 태반으로라도 만들었나 보지).' '내가 지하철 월 정기권 끊는 돈으로 로버트는 자기 이니셜이 새겨진 고급 손수건을 사서 일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구나.' (p.79) 

소설을 읽는 내내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 떠올랐다. '흙수저' 티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명문대에 들어갔고 열심히 취업활동해서 취업에 성공해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건 쥐꼬리만한 월급과 학자금 대출뿐이다. '금수저' 로버트는 젊은 시절 거액을 탈세했는데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후 승승장구해 언론사 회장직에까지 올라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에 맞먹는 돈을 술값, 옷값으로 흥청망청 쓰고 그걸 또 회사 이름으로 결제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흙수저 티나는 금수저 로버트를 규탄하기는커녕 로버트의 아랫사람으로 일하며 일종의 '부역'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 흙수저가 금수저의 주머니를 턴들 금수저는 까딱도 하지 않는다.  

티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자기만 흙수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티나는 자기 또래 여성들 중 누구도 학자금 대출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다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비싼 차를 몰고 유명 브랜드 옷을 입어서 (자기만 빼고) 다들 잘 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티나와 똑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저마다 업계에서 이름난 상사들을 모시고 그들의 이름을 빌어 호의호식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번드르르한 겉모습 뒤로 왠지 저녁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것 같은 굶주림이 느껴졌고, 그중 적어도 한 명은 월세를 내기 위해 난자를 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았다'. 

요즘 학생들은 참 대견스럽습니다. 그들은 그 모든 빚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날로 치솟는 대학 교육 비용을 선뜻 받아들입니다. 그런 장애물이 아무리 앞을 가로막아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면서, 괜찮은 보수를 주는 좋은 일자리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다가, 그러면서 언젠가 집을 사게 될 날을, 혹은 가정을 꾸리게 될 날을 꿈꾸다가...... 그러다가 무덤에 들어가고 맙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를 탓하는 줄 아십니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왜 나는 안 될까?'라고 자책하는 겁니다. (p.257) 

티나는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몇 년째 건강보험도 없이 살거나 방 하나 딸린 집에서 룸메이트 둘이랑 간신히 먹고 사는데, 그들이 모시는 상사들은 점심 먹고 명품숍에서 회사원 연봉에 맞먹는 돈을 한 번에 쓰거나 원룸 월세에 상당하는 돈을 택시비로 쓰는 현실에 개탄한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우리 인생이 하나같이 개판이냔 말이야? 아니, 우리가 대학까지 나온 백인 여성인데, 이런 씨, 지금 이게 말이 돼?' 

소설 속에서 티나는 또래 여성들의 삶이 자신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지만, 나는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의 삶이 나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나라꼴 돌아가는 모습까지 닮은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미국에서는 이 소설이 지난 5월에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즈>, <퍼블리셔서 위클리>, <피플>, <뉴스데이>, <오프라매거진> 등 주요 언론에서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부디 소설에 나오는 문제 의식과 대안이 현실에서도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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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좋아서 - 집에서 즐기는 본격 커피와 홈 카페 인테리어
cafenoma 지음, 김윤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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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커피향이 감도는 카페가 집 안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일을 실제로 이뤄낸 사람들이 있다. '카페노마(cafenoma)'의 주인 유바 노부카, 가리코미 류지 부부다. 아내 유바 노부카는 항공기 승무원 출신으로 일본 각지와 전 세계의 카페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인상 깊게 경험한 카페들에서 카페노마의 아이디어를 얻고,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모은 커피 관련 물건들로 카페노마의 커피와 소품,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남편 가리코미 류지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관련 일을 한 경험을 살려 카페노마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인테리어가 호평을 얻어 팔로워 수 10만 명이 넘는 인기 인스타그래머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전문가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커피 자체가 아니라 커피가 있는 공간, 그 삶의 풍경입니다.


책에는 부부가 오랫동안 추구하고 직접 실천하고 있는 '커피가 있는 편안한 생활'이 담겨 있다. 평범한 집을 카페 못지 않게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인테리어는 물론, 맛있는 원두를 고르는 방법, 페이퍼 드립, 넬 드립, 프렌치 프레스 등 커피 전문점 못지 않은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기술, 커피와 곁들여 먹기 좋은 간식 만드는 방법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집에서 가볍게 커피를 즐기고 싶은 독자에게도, 집을 제대로 된 홈 카페로 만들고 싶은 독자에게도 유용할 듯하다.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창가 난간을 테이블 대용으로 쓰기에 딱 좋다. 넓진 않지만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기 좋다. 부부의 인스타그램이 마음에 든다며 외국인이 선물로 보내준 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고. 커피를 마시며 다음에 마실 커피 레시피를 구상하고...... 부부가 카페노마에서 보내는 나날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마음속에 살포시 들어와 앉는다.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더없이 좋다. (p.16)


커피와 곁들여 먹기 좋은 간식 이야기도 흥미롭다. 어떤 맛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새로운 디저트도 좋지만 어릴 적부터 먹던 간식도 좋다. 어머니가 간식으로 구워주셨던 팬케이크라든가, 유명 과자점에서만 파는 수제 쿠키라든가. 우유, 달걀, 식빵만으로 만드는 프렌치토스트, 적색 양배추와 햄, 치즈만 들어간 샌드위치도 커피와 곁들여 먹기 좋다. 커피와 곁들여 먹을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레시피를 떠올릴 수 있다니. 부부의 커피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커피 초보자를 위한 맛있는 원두 고르는 법, 추천하는 원두 전문점, 페이퍼 드립 도구, 페이퍼 드립 방법 등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페이퍼 드립을 할 수 있게 되면 집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카페오레, 아이스커피, 아이스더치커피 등을 직접 만들어서 마실 수 있다. 넬 드립, 프렌치 프레스, 사이펀, 에어로 프레스, 모카포트 이용법, 에스프레소 머신 사용법도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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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수업 1교시 - 열심히 벌어도 통장은 가벼운 당신을 위한
조민형 지음 / 끌리는책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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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모으는지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돈을 잘 벌고 잘 쓰고 잘 다루고 잘 불리는 것이 곧 개인의 생존 능력과 직결되는데도 돈에 관해 가르쳐주는 학교는 없다. 재테크 기술이나 주식 투자 비법을 알려주는 곳은 있지만, 재테크나 주식 투자로 번 돈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쓸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공인재무설계사다. 재무진단과 상담, 투자분석, 포트폴리오 설계, 은퇴자산 분석 및 운용을 주로 한다. 저자 역시 '돈에 대해 배운 것이 거의 없다'는 아쉬움에서 이 책을 썼다. 부모님 도움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짜리 원룸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계약직으로 취직해 월급 130만 원을 받으면서 일했지만, 1년 후 통장 잔액은 10만 원도 남지 않았다. 금수저가 아닌 사람은 열심히 일해도 돈을 모으기 어렵고, 돈을 모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저자는 먼저 돈의 속성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새는 돈을 잡기 위해 가계부를 작성하고, 대출과 보험을 함부로 이용하지 말고, 투자의 유혹에 현혹되지 말고, 무작정 돈을 쓰거나 대책 없이 돈을 모으기 보다 인생 계획부터 정하라고 권한다. 시작은 현재 가정경제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가정경제 요약 시트'를 만드는 것이다. 소득, 지출, 금융자산, 부동산, 대출, 보험료 등을 가능하면 종이 한 장에 정리한다. 각 소비 항목에 대해 지출을 얼마나 할까 고민하면서 기재하면 자연스레 새는 돈이 계산되고, 기재한 지출대로 소비하면 새는 돈을 잡을 수 있다. 


새는 돈을 잡기 위해서는 예산대로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한 달 동안 예산대로 쓰기 위해서는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이 필수다, 가계부를 쓰기로 결심해도 처음에만 열심히 쓰다가 얼마 못 가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을 위해 저자는 '초간단 가계부 양식'을 만들었다. 초간단 가계부에는 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같은 고정지출은 적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외식비, 의복비 등 가변적이고 충동적인 지출만 적으면 된다. '한 달 식비는 4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다'를 목표로 정했다면 한 달을 4주로 나누어 일주일에 식비 예산을 10만 원으로 잡는다. 첫째 주 식비 지출이 13만 원이었다면 둘째 주 식비 지출 예산을 7만 원으로 잡는다. 이렇게 하면 목표를 이루기가 훨씬 쉽다. (가계부 양식은 저자 블로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perfectnag) 


가계부를 통해 한 달에 10만 원을 아낀 경우, 1년이면 120만 원을 절약한 셈이다. 이는 12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해서 연 10% 수익률을 낸 효과와 같다. 가계부를 작성하고 생활 속에서 절약을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 비결이다. 당장 실천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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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을 자유 - 결혼과 비혼에 관한 새로운 태도
이선배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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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복지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하고 성 평등이 이뤄진 나라일수록 남녀 모두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입장에서는 비혼이나 동거로 결혼 못지않은 만족감을 얻고 제도적 불편이 없는데, 굳이 법률적인 혼인 신고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p.178)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52%에 불과하다. 국민 2명 중 1명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 책은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선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세태와 발을 맞춘다. 저자는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일하고 현재는 홍콩에서 콘텐츠 컨설팅을 하고 있다. 저자가 홍콩으로 이주한 것은 2008년 홍콩 남자와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싱글로 살 줄 알았다. 직장에 다닐 때 홍콩으로 워크숍을 갔다가 클럽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오랜 시간 '애매한 사이'로 지내다가 처음 만나고 7년째 되던 해에 결혼했다. 

결혼을 해보니 '좋게 보자면 한없이 좋고, 나쁘게 보자면 두 배의 걱정거리와 스트레스가' 생겼다. 아이도 없고 일 때문에 한국과 홍콩을 자주 오가는 저자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애 안 낳을 거면 결혼 왜 했어?", "남편 분명히 바람났다"라며 잔소리를 한다. 부부간의 취향, 경제관념, 가족에 대한 의존도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하고, 국제결혼이다 보니 언어 차이, 문화 차이, 습관 차이, 역사관 차이 등 충돌하는 이유가 버라이어티하게 존재한다. 어른들 말씀대로 결혼은 '안 해도 후회, 해도 후회'하는 것이었다. 

과거 수렵 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산업 사회로, 서비스업 위주 사회로 변화하면서 사회는 고도로 복잡해졌다. 결혼과 가족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존재하는 각자 삶의 방식을 '이래야만 한다'는 기준으로 재단하는 일이 더 원시적이다. 그 사람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p.181) 

이 책의 요점은 결혼을 하라 마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자유'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싱글 라이프도 충분히 즐기고 결혼 생활도 해봤다. 홍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싱글도 다 같은 싱글이 아니고, 부부도 다 같은 부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싱글 중에는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는 자발적 싱글(비혼)도 있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비자발적 싱글(미혼)도 있고, 이혼 후 다시 혼자가 된 싱글(돌싱)도 있고, 돌싱에 아이까지 딸린 싱글맘, 싱글 대디도 있다. 부부 중에는 알콩달콩 잘 사는 부부도 있지만, 법적으로만 부부도 있고, 법적으로 부부가 아닌 경우도 있고, 한 집에 살지만 각방을 쓰는 부부도 있고, 한 집에 살지 않는 부부도 있고, 다른 집에 살림까지 차린 부부도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사는지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판단하려 드는 태도다. 서양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결혼과 가족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모와 친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 개념이 붕괴되고, 동거 및 사실혼, 시민 연대협약(PACS), 편부모 가정, 재혼 가정, 확대 가족, 대가족 등을 폭넓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1989년 덴마크에서는 동성애자의 시민 연대협약을 인정했고, 2001년 네덜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헌화했다. 결혼이냐, 비혼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일은 어떤 나라에선 벌써 오래전에 (비혼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사실 진짜 문제는 노후다. 과거에는 일종의 노후 대비책으로서 결혼과 출산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결혼과 출산이 노후 대비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빚내서 집 사면 집값이 저절로 올랐고 물가 상승분만큼 뛰어오른 임금으로 가정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은 떨어지는데 월세는 오르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뛰니 나 하나 살기도 힘들다(종신고용 신화가 붕괴되면서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을 가진 사람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비혼인 사람은 비혼인 사람대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대로 노후 걱정이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결혼이냐, 비혼이냐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국민들 노후 보장은커녕 국민연금이 대기업 주머니에 들어가는 세태를 좌시하는 정부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의 나, 청소년 때의 나, 20대의 나, 중년에 접어든 나. 이들은 동일인인 동시에 타인이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결혼이란 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길고 지난한 과업이다.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사랑이 아니다.' 배반의 서사가 연상되는 제목 같지만 이런 깨달음의 장이 과거, 현재, 미래의 나 사이에 몇 번이고 펼쳐지는 게 인생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내가 널 꼭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약속하는 장면을 보면 "나도 어떻게 해야 미래의 내가 행복해질지 모르는데 네가 할 수 있다고? 웃기고 있어!" 하며 따지고 싶다. (p.49) 

사람 사는 모습은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잘라 말할 수 없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혼은 '초등학생 때의 나, 청소년 때의 나, 20대의 나, 중년에 접어든 나'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만만찮은 과업이다. 이런 일은 누가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해주길 기대할 수도 없다. 외롭더라도 혼자 사는 것과 괴롭더라도 같이 사는 것. 둘 중에 더 낫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하면 그만이다. 결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할 필요 없고, 결혼한 걸 후회하면서 억지로 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지고, 타인의 선택을 응원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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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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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은 2016년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뉴스로 먼저 접했다. 뉴스 인터뷰에서 작가 자신이 대학 시절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졸업 후에도 취업하지 않고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했다는 걸 밝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당일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니 작가가 '편의점 인간'의 모델인 셈. 일본은 한국보다 최저 시급도 훨씬 높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는 '프리터'도 많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정규직이 아니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 활동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편의점에서 경험한 일을 작품 안에 녹여 쓸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현재 서른여섯 살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그 후 18년째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물론 취직하지 않았다. 출산도 결혼도 연애도 안 했다. 오로지 편의점에서 일만 했다. 게이코는 스스로를 '편의점 인간'으로 여긴다.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별난 아이, 이상한 아이 취급을 당한 게이코는 편의점에서 생애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다가는 혼이 나기 일쑤였는데, 편의점에서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할 필요 없이 점장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매뉴얼에 적힌 대로만 하면 되니 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게이코는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가정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편의점에서만 일하며 18년을 보냈다. 


하지만 세상은 게이코를 가만두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은 취직하라, 연애하라, 결혼하라, 출산하라 등등 온갖 잔소리를 하며 게이코가 원하는 대로 살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런 게이코 앞에 어느 날 '시라하'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시라하는 자기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깔본다. 깔보는 주제에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결국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게 되자 게이코의 집에 얹혀산다. 게이코는 이런 상황을 행운으로 여긴다. 시라하와 살면 더 이상 연애하라,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잘 된 걸까? 


읽는 내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올랐다. 남들 눈치를 보다 자신의 의지란 걸 잃어버린 요조의 모습과 게이코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18년째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 편의점에서 일만 하다니. 어쩌면 요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적어도 요조는 직업도 가지고 여자도 만났는데!). 그런데 과연 게이코를 동정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대학에 가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에 힘쓰는 게 과연 나의 의지일까? 아니면 사회가 정한 경로를 그저 따라가는 것은 아닐까?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취업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연애는 모던 걸, 모던보이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그보다 백 년 전에는 대학이라는 기관 자체가 없었고, 취업이라는 말도 없었으며, 연애는 남녀유별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벽에 막혀 금기시되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등록금을 벌거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확대된다면, 백 년 후엔 편의점 인간이야말로 보편적일 수도 있다. 어쩌면 1948년 발표된 <인간실격>이 현대인의 초상을 예언한 것처럼, <편의점 인간>은 가까운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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