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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을 자유 - 결혼과 비혼에 관한 새로운 태도
이선배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경제와 복지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하고 성 평등이 이뤄진 나라일수록 남녀 모두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입장에서는 비혼이나 동거로 결혼 못지않은 만족감을 얻고 제도적 불편이 없는데, 굳이 법률적인 혼인 신고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p.178)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52%에 불과하다. 국민 2명 중 1명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이 책은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선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세태와 발을 맞춘다. 저자는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일하고 현재는 홍콩에서 콘텐츠 컨설팅을 하고 있다. 저자가 홍콩으로 이주한 것은 2008년 홍콩 남자와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싱글로 살 줄 알았다. 직장에 다닐 때 홍콩으로 워크숍을 갔다가 클럽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오랜 시간 '애매한 사이'로 지내다가 처음 만나고 7년째 되던 해에 결혼했다.
결혼을 해보니 '좋게 보자면 한없이 좋고, 나쁘게 보자면 두 배의 걱정거리와 스트레스가' 생겼다. 아이도 없고 일 때문에 한국과 홍콩을 자주 오가는 저자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애 안 낳을 거면 결혼 왜 했어?", "남편 분명히 바람났다"라며 잔소리를 한다. 부부간의 취향, 경제관념, 가족에 대한 의존도 차이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하고, 국제결혼이다 보니 언어 차이, 문화 차이, 습관 차이, 역사관 차이 등 충돌하는 이유가 버라이어티하게 존재한다. 어른들 말씀대로 결혼은 '안 해도 후회, 해도 후회'하는 것이었다.
과거 수렵 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산업 사회로, 서비스업 위주 사회로 변화하면서 사회는 고도로 복잡해졌다. 결혼과 가족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존재하는 각자 삶의 방식을 '이래야만 한다'는 기준으로 재단하는 일이 더 원시적이다. 그 사람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p.181)
이 책의 요점은 결혼을 하라 마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자유'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싱글 라이프도 충분히 즐기고 결혼 생활도 해봤다. 홍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싱글도 다 같은 싱글이 아니고, 부부도 다 같은 부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싱글 중에는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는 자발적 싱글(비혼)도 있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비자발적 싱글(미혼)도 있고, 이혼 후 다시 혼자가 된 싱글(돌싱)도 있고, 돌싱에 아이까지 딸린 싱글맘, 싱글 대디도 있다. 부부 중에는 알콩달콩 잘 사는 부부도 있지만, 법적으로만 부부도 있고, 법적으로 부부가 아닌 경우도 있고, 한 집에 살지만 각방을 쓰는 부부도 있고, 한 집에 살지 않는 부부도 있고, 다른 집에 살림까지 차린 부부도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사는지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판단하려 드는 태도다. 서양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결혼과 가족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모와 친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 개념이 붕괴되고, 동거 및 사실혼, 시민 연대협약(PACS), 편부모 가정, 재혼 가정, 확대 가족, 대가족 등을 폭넓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1989년 덴마크에서는 동성애자의 시민 연대협약을 인정했고, 2001년 네덜란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헌화했다. 결혼이냐, 비혼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일은 어떤 나라에선 벌써 오래전에 (비혼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사실 진짜 문제는 노후다. 과거에는 일종의 노후 대비책으로서 결혼과 출산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결혼과 출산이 노후 대비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빚내서 집 사면 집값이 저절로 올랐고 물가 상승분만큼 뛰어오른 임금으로 가정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은 떨어지는데 월세는 오르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뛰니 나 하나 살기도 힘들다(종신고용 신화가 붕괴되면서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을 가진 사람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비혼인 사람은 비혼인 사람대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대로 노후 걱정이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결혼이냐, 비혼이냐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국민들 노후 보장은커녕 국민연금이 대기업 주머니에 들어가는 세태를 좌시하는 정부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의 나, 청소년 때의 나, 20대의 나, 중년에 접어든 나. 이들은 동일인인 동시에 타인이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결혼이란 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길고 지난한 과업이다.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사랑이 아니다.' 배반의 서사가 연상되는 제목 같지만 이런 깨달음의 장이 과거, 현재, 미래의 나 사이에 몇 번이고 펼쳐지는 게 인생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내가 널 꼭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약속하는 장면을 보면 "나도 어떻게 해야 미래의 내가 행복해질지 모르는데 네가 할 수 있다고? 웃기고 있어!" 하며 따지고 싶다. (p.49)
사람 사는 모습은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잘라 말할 수 없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행복해지는 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혼은 '초등학생 때의 나, 청소년 때의 나, 20대의 나, 중년에 접어든 나'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만만찮은 과업이다. 이런 일은 누가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해주길 기대할 수도 없다. 외롭더라도 혼자 사는 것과 괴롭더라도 같이 사는 것. 둘 중에 더 낫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하면 그만이다. 결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할 필요 없고, 결혼한 걸 후회하면서 억지로 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선택한 삶에 대해 책임지고, 타인의 선택을 응원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