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라이프 4
야요이소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삼수 끝에 대학 졸업, 첫 직장은 3개월 만에 퇴사라는 참담한 이력의 소유자, 카이자키 아라타. 구직 활동에 실패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요아케 료'라는 남자로부터 어떤 '실험'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약을 먹고 1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1년간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면 실험 종료 후 생활비 지원도 받고 취업 자리도 알선해주지만, 1년 동안 카이자키와 알고 지낸 사람들은 카이자키에 대한 기억을 잃고 카이자키만이 기억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 당장 생계가 급한 카이자키는 요아케 료의 제안을 수락하고 '1년 한정'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겉보기에만 고등학생일 뿐 몸도 마음도 '아재'인 카이자키는 성적도 운동도 현역 고등학생들에게 한참을 뒤지며 처참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만만하게 봤던 시험도 낙제점을 받아서 네 번이나 재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카이자키 주변의 친구들은 한창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머리는 좋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제로인 히시로는 카리우의 오해를 샀다가 겨우 친해지기 시작했고, 카리우는 절친 호노카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카리우와 호노카는 각각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들 모두 서로에 대한 감정이 친구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다(성적은 나쁘지만 마음은 어른인 카이자키에겐 그저 귀여운 것들... ^^). 


이런저런 복잡한 인간관계가 나오지만 정작 주인공인 카이자키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성적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다. 재시험을 몇 번이나 보게 되어 좌절하는 카이자키에게 "고등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도 감당 못하는 근성으로 사회에 나가 힘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라고 충고한 요아케 료의 말이 나의 마음에도 와 닿았다. 공부도 또래 친구들 사이의 인간관계도 고등학생 시절에 수행해야 할 과업 같은 것에 불과한데, 막상 그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힘겹게 보냈다. 아직까지는 어리숙하기만 한 우리의 주인공 카이자키도 다시 열일곱 살이 되어 보내는 일상에서 이러한 것들을 느끼고 있을까? 어서 5권을 만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 원하는 삶을 이끌어내는 내 마음대로 사고법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정혜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건 이기주의자야." 어린 시절 부모님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돈을 못 벌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 성공을 못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만 잘 벌고 성공만 잘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힘들다고 말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직업이라는 이유로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도 한때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싫은 일을 많이 겪었지만, 싫어도 이를 악물고 견디면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업무는 점점 강도가 높아졌고, 취미 생활은커녕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간관계를 망친 적도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좋아하는 일'을 하고부터다. 회사를 그만두고 심리상담사가 된 저자는 처음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홍보하고, 조금이라도 더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에 세미나 수강료도 낮췄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래선 샐러리맨일 때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출장을 그만뒀다. 수강료도 받고 싶은 금액으로 올렸다. 그랬더니 수강생이 오히려 더 늘고 출판사와 방송사에서 제안이 잇달았다. 나 좋은 대로, 좋아하는 일만 했을 뿐인데,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때보다 일이 잘 풀렸다. 


'남의 힘'이 많이 모여 움직일 때, 비로소 노력 없이도 '좋아하는 일'들을 점점 더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남의 힘을 움직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의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48쪽) 


'좋아하는 일'이 가진 힘은 무궁무진하다. 저자의 지인은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그는 어떤 배우를 정말 좋아해서, 그 배우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배우의 에세이를 기획했고, 일하는 사이에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에세이 표지는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 작가에게 일러스트를 의뢰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에세이가 몇 십만 부나 팔리면서 편집부에 인센티브가 지급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관계자 모두가 이득을 보았다. 그가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만 잘 벌고 성공만 잘 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렇다.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면 덕후라고 손가락질할 법 하지만, 그 분야에서는 남다른 식견과 비범한 취향을 인정받으며 '거장', '마스터'로 불리고 돈까지 번다. 무엇이든 깊이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 자신뿐입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은 사실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요. 정말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습니다. 이미 좋은 사람이니까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는 거죠. (163쪽)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지 못하게 막는 최대의 적은 '타인의 기준'이다. 남들이 나쁘게 볼까 봐,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봐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싫어하는 일'이란 남들이 나쁘게 보는 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일이다. 


저자는 처음에 책을 냈을 때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책을 팔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평범한 사람이 책을 냈으니 발품이라도 팔아야 비범한 사람의 발끝이라도 다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은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이므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이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출판사 마케터가 "이제부터는 저희가 팔아보겠습니다.", "선생님, 맡겨만 주세요." 라며 발 벗고 나섰다. 출판사 직원들이 뒤에서 저자 욕 좀 했겠지만, 결과는 저자에게나 출판사 직원들에게나 좋았다.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고 숨긴다....... 그 선에서 끝나면 상관없지만, 숨겼던 것을 진짜로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좋아하는데도, 얻을 수 없으니까 싫어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자신의 부모님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부모님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실은 부모님이 싫었다'고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191쪽) 


좋아하는 일을 찾는 힌트는 '분노' 속에 있다. 정말 싫어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 화가 나는 것 중에 진짜 좋아하는 것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자는 옛날에 지각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지각하는 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라고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사실 나는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답이 나왔다. 실은 내가 지각을 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맞춰 왔는데, 상대방이 지각을 하니까 분노가 터진 것이다. 


그때부터 저자는 시간 따위 지키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순순히 인정하고 적당히 살기로 했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만큼 상대방에게도 너그러워졌다. 내가 싫어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 화가 나는 것 중에는 어떤 '좋아하는 일'이 숨어있을까.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영희 2016-12-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적당히 사는 법 - 일, 사랑, 인간관계가 편해지는 심리 기술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김한나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한때 완벽주의자였다. 시험을 보면 백 점을 받아야 했고, 경쟁을 하면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항상 백 점을 받고 1등을 할 수만은 없는 법. 무수히 많은 시험에 떨어지고 경쟁에 지고 나서야 뒤늦게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적당히(또는 대충대충?) 살고 있다. 


이 책을 쓴 고코로야 진노스케도 한때는 '적당히'를 몰랐다.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현장 영업과 영업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시간을 지키자', '납기일을 엄수하자', '매출 목표를 달성하자', '상사가 시킨 일은 반드시 성공시키자', '부하 직원은 확실하게 지도해서 육성하자' 같은 회사의 구호를 솔선수범했고, 부하 직원과 가족, 주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러니 탈이 날 수밖에. 언제부터인가 업무가 부담스럽고 인간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자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자 심리학을 공부했고 급기야 심리상담사로 전업했다. 현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 '나답게 적당히 살아도 괜찮다'는 조언을 대중들과 나누며 인기 강연자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젊었을 때 착하고 우등생이었던 사람보다 엉뚱한 짓만 골라 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친 사람이 훨씬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에게 걸리거나,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엉망이 되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도 합니다. 지도나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날마다 대충대충 운전하는 사람이 지름길을 잘 아는 택시 기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11~12쪽)


'적당히 일한다', '적당히 공부한다', '적당히 산다'고 말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적당히' 하는 것은 '대충' 하는 것 같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뭐 어떤가. 저자는 심리상담가로 일하면서 예전의 자신처럼 무심코 노력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노력을 멈추고 일부러 얼렁뚱땅, 대충대충, 적당히, 게으름을 피워야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적당히' 산다는 것은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남에게 폐를 끼친다', '되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남이 정한 목표대로 움직이지 않아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기분대로 행동해야,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봐야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을 적당히 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기분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삶의 목표 상실, 결정 장애, 우울증 같은 문제는 인생을 적당히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당신은 '회사를 관두면 ~해야지', '시간이 좀 더 생기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까? '~되면', '~없으면', '~관두면' 등과 같이 '~하면'이라는 말이야말로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 '~하면'이라는 말의 뒤에 오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조건이나 변명, 제한 등은 일단 전부 제쳐 놓고 먼저 행동하면 됩니다. (75~77쪽) 


인생을 마음 가는 대로 적당히 살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훈육에서 비롯된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성인이 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하게 막고 적당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의무 또는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나의 가치관을 내가 스스로 만들었는지, 부모가 주입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선호하는 정당이나 경제 감각까지 부모의 것을 의심 없이 따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른들 말씀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일하지 않는 부자도 많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노력이 보상받지 못할 때도 많다.


'몇 살까지 얼마를 벌어야 한다', '몇 살까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큰일 나는 '금언(禁言)'이 아니라 일개 의견에 불과하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녀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하고,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건, 알고 보면 부모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일개 의견'을 확대 해석하는 자기 자신이다. 


설레지 않는 사람과는 가급적 만나지 않는 편이 좋고, 설레지 않는 모임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 편이 좋으며, 설레지 않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가는 편이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임에는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는 편이 좋다'고 하는, 즉 남의 눈을 신경 쓴 선택을 그만두라는 뜻입니다. (101쪽) 


저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 나오는 '곤마리의 정리법'이 물건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곤마리의 정리법'은 아주 단순하다. 설레는 물건만 남기고 설레지 않는 물건은 모두 버린다. 


'곤마리의 정리법'을 인생에 적용하면, 설레는 사람만 만나고 설레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설레는 일만 하고 설레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러면 처음에는 '차가운 놈, 기분 나쁜 놈'이라고 욕은 먹겠지만, 설레지 않는 사람을 만나느라 설레는 사람과의 만남을 놓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설레지 않는 일을 하는 데 쓸 시간을 설레는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곤마리의 정리법'을 책 읽기에 적용했다. 곤마리의 방식을 따라 설레는 책만 읽고 설레지 않는 책은 읽지 않았다. 그 결과, 전에는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정확히 알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알게 되었다. 체계 따위 없이 '적당히' 읽었을 뿐인데 이런 효과를 거둘 줄이야. 적당히 살고 있는 내 인생은 언제쯤 효과를 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내 귀는 이어폰과 떨어져 있지를 못한다. 출퇴근할 때, 이동할 때, 밥 먹을 때, 집안일을 할 때 등등 시도 때도 없이 팟캐스트를 듣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세 편씩 들으니 청력은 약해질지 몰라도, 팟캐스트 덕분에 안 듣던 뉴스도 듣고 정치와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 당분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악마 기자 정의 사제>도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김용민 브리핑'의 지난 방송 목록을 보다가 '악마 기자 정의사제 북 콘서트' 편이 있길래 뭘까 하고 들어봤더니 무려 방송인 김제동 씨가 북 콘서트 시작 전 바람잡이로 나오고 나꼼수 멤버 전원이 출연했다. 게스트도 빵빵하지만 북 콘서트의 주인공인 시사IN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의 이야기가 워낙 좋아서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청와대, 검찰, 국정원, 조폭, 삼성 등에 관해 독보적인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악마 기자' 주진우와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투신하여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어온 '정의 사제' 함세웅 신부의 만남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었다.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입니다. (함세웅, 68쪽) 


이 책은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진행한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 강연을 엮은 것이다. 주진우 기자의 활약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여러 번 접한 바 있으나 함세웅 신부의 민주화 운동 이력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함세웅 신부는 1974년 초 지학순 주교 등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창립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나는 무교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어서 종교인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함세웅 신부의 말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이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심지어는 배격한다면 그때부터 그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며, 그 종교인은 참된 종교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권력과 싸우면서 종교계 내부와 외부에서 모진 핍박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온 함세웅 신부 같은 분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요. 2050년에 일기를 쓴다면 "2015년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되는 게 역사예요(청중 환호와 박수). 이런 시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죠. 역사는 항상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뜻밖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함세웅, 151쪽) 


이 책의 바탕이 된 강연의 제목은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는 결코 '속 시원한' 것이 못 된다. 함세웅 신부가 유신 시대부터 몸소 경험하고 주진우 기자가 현재 보도하는 내용만 보아도 즐겁고 행복한 사건보다는 화나고 원통한 것이 더 많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시민들에게 함세웅 신부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지금 당장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2050년쯤 되는 미래에는 사건의 결과만이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후대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함세웅 신부는 (강연을 한) 2015년의 역사가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쯤으로 요약될 것이라고 했지만, 2016년인 지금 우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어떤 국면을 맞이했고 역사 교과서를 바꾸려고 한 권력이 어떤 처지에 몰려 있는지 알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이 훗날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한 줄로 기록될까. 다가오는 2017년에는 어떤 역사가 새로 쓰일까. 악마 기자와 정의 사제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p.7) 


저자 김민섭은 2015년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냈다. 지방대 시간강사, 이른바 '지방시'의 처우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밝힌 죄(?)로 그는 그 해 12월 대학에서 나와야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직업이 '대리기사'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대리기사로 일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대학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더욱 가치 있었다." 라고 회고한다. 대학은 이제 성역(聖域)이 아니다. 대학 또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며 그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대리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대리사회>는 그가 1년 동안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수집하고 기록하고 분석한 '거리의 언어'를 엮은 책이다. 자동차라는 타인의 공간에서 그는 김민섭이라는 인격이 아니라 대리기사라는 역할로서 존재했다. 그가 태운 손님들은 그의 직업이 대리기사이고 그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이유로 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대학 안에서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그는 거리에서 '아저씨'로 불렸다. 손님의 콜을 받는 순간부터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를 보다가도 뛰어나가야 했다. 손님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땀이 나게 달려야 했다. 운전석에 앉으면 그때부터 그의 입은 손님이 뭐라고 말하든 "네, 맞습니다" 하고 영혼 없이 답하고, 그의 귀는 손님이 하는 말과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고정되어야 했다. 


'진상 손님'을 만나도 항의할 길이 없었다. 밤늦게 콜을 받고 갔는데 알고 보니 여러 명의 기사를 한꺼번에 부른 것이어서 허탕을 친 적도 있고, 처음에 약속한 금액과 다른 금액을 제시하며 흥정을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지도대로 운전했는데도 일부러 돌아갔다며 시비를 걸고, 심지어는 지갑을 훔쳤다고 의심했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훌쩍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손님은 갑, 대리기사는 을이므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p.35) 


대리기사 일은 고되지만 대학교수가 되길 꿈꾸며 불합리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일하면서 4대 보험 혜택은커녕 합당한 보수도 받지 못 했다. 자연히 부모와 아내 등 가족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언젠가 교수가 되고 정규직이 되면 그의 부모는 '교수 부모', 그의 아내는 '교수 아내'가 되겠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희생이 보상받으리라고 합리화할 수 없었다. 


몇 년을 기다려야 교수가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대학이라는 괴물의 욕망'에 포로가 된 자신 때문에 자신의 부모와 아내, 자녀들까지 고통을 겪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서 타인의 욕망을 위해 '유령의 시간', '대리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사랑하는 가족까지 유령이 되고 대리 인생을 살길 강요할 순 없었다. 1년 3개월 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한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것처럼, 대리기사로 일하는 경험 역시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진상 손님'이 있었다면 '좋은 손님'도 있었다. 집에 가서 아내, 아이와 나눠 먹으라며 빵을 한 아름 안겨주었던 손님도 있었고, "여기 높으니 버스 타고 가요" 하고 차비 2천 원을 덤으로 건네주었던 손님도 있었다. 비록 '대리 사회'에서 살지언정 주체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그는 만났다.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달았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저자의 아내는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리운전을 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체력도 보전하고 평소보다 많은 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어린 아들을 늦은 밤 집에 혼자 두고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가정용 CCTV를 켜놓는 것으로 해결했다. 비록 대리일지라도 주체로서 결정하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니 훨씬 나았다. 


대리 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p.252)) 


사회가 개인을 주체가 아닌 대리인으로 대우하고 개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면, 개인은 좌절감을 느끼고 끝내 분노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분노가, 분노를 야기한 사회 구조나 조직이 아니라 분노와 무관한 약하고 힘없는 개인 또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주체임을 부정당하고 경계에서 밀려나고 난 뒤에야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자각한다. 그전까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하고 조롱했던 존재가 되고 나서야, 자기를 대체할 새로운 대리인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한다. 


이미 보편화된 대리사회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연대하여 행동하는 경험을 자주 해봐야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거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타인을 위해 길을 양보하고 문을 잡아주는 것도 좋고, 버스 기사든 식당 종업원이든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을 위해 따뜻한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좋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6-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리운저 이야기에 찡해 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