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정미진 지음, 구자선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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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타고 먼 길을 이동할 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휴게소의 존재는 참 고맙다. 동물들에게도 휴게소 같은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정미진이 글을 쓰고 구자선이 그림을 그린 동화책 <휴게소>는 동물들을 위한 휴게소가 배경이다. 깊은 숲 속 아담한 통나무집. 그곳이 바로 동물들을 위한 휴게소다. 


휴게소를 지키는 사람은 소년 하나뿐. 소년은 고양이가 올 때나 강아지가 올 때나 햄스터가 올 때나 앵무새가 올 때나 변함없이 여유롭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해준다. 근데 어째 동물들이 휴게소를 찾아와 하는 이야기들이 죄다 반려인들에 대한 불평이나 험담이다. "그깟 참치 캔 하나 딸랑 던져 주고 낄낄대는 꼴이라니." "지들끼리만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놀러 가고 허구한 날 나는 집구석에 박혀 있고"... 그래그래 너희들한테도 그만한 불만은 있겠지. 


동물들이 얼추 모이자 소년은 동물들을 전부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소년과 동물들은 함께 새하얀 눈길을 저벅저벅 걸어간다. 장면이 바뀌고 울상이 된 소녀가 나온다. 비어 있는 상자와 먹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그릇. 집 나간 반려동물을 기다리는 것일까, 반려동물이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일까.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 없이 이 책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리워서.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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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진 지음, 오선혜 사진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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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미진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주인공은 대학의 생명공학부 연구원인 준원. 어릴 때는 과학 영재로 두각을 드러냈지만, 지금은 대학원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을 접고 유학을 준비하던 준원은 출국을 며칠 앞두고 이상한 일을 겪는다. 짐을 정리하다가 남은 김치를 나눠주려고 옆집 할아버지 댁에 들렀는데 집 안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만큼 어지러웠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찾아도 없고, 방 한구석에는 싸늘하게 식은 백골의 사체만이 있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고 겨우 풀려난 준원은 할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다가 수신인 란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택배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 안에는 시디 한 장과 카드 하나가 들어있다. 시디를 재생하자 2년 전에 헤어진 연인 하진의 모습이 나왔다. 놀란 준원은 카드를 다시 보는데, 카드에는 "5억을 들고 오지 않으면 살아서 보기 힘들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대체 카드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2년 전 준원과 하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질문의 끝에 사건의 진실이 있다. 


사건의 진실을 쫓아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이야기와 함께 배치된 감각적인 사진들이 소설의 재미를 배가한다. 숲 속에서 외따로 살고 있는 여자. 그 여자의 모습을 뒤쫓는 남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과거. 파편처럼 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맞춰질 때의 묘미도 괜찮고, 이야기 위를 둥둥 떠도는 사랑과 미련, 회한과 아쉬움 같은 감정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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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 -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는 다섯 배우의 사진집
오선혜 사진, 김예은 외, 정미진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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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는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는 다섯 배우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특이한 것은 배우들이 피사체에 머무르지 않고 배우들이 직접 이미지를 연출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에세이, 그림, 그래픽, 몽타주 등 아트워크 작업에도 참여했다는 것. 김예은, 유이든, 이상희, 안소요, 류선영 배우의 팬이라면, 혹은 팬이 아니어도 최근 한국의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 실린 사진 속 배우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친근하다. 촬영한 장소도 공원이나 길거리, 아파트 복도 옆 계단 같은 친숙한 곳들뿐이고,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도 펑퍼짐한 점퍼나 늘어진 티셔츠, 해진 청바지 등 평소에 나도 즐겨 입는 옷이다. 배우들이라고 하면 나와는 사는 세상도 다르고 평소에 하는 생각도 다를 것만 같은데, 이들이 직접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여성의 이야기, 그보다 더도 덜도 아니다. 책으로 먼저 만났으니 언젠가 스크린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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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반점
정미진 글, 황미옥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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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얼굴에 검은 반점이 나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놀라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겠지만, 제일 먼저 무섭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검은 반점만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정미진이 글을 쓰고 황미옥이 그림을 그린 동화책 <검은 반점>의 주인공 소녀가 딱 그런 상황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얼굴에 검은 반점이 나 있다. 사람들이 내 검은 반점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손으로 가려도 보고 마스크를 써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 반점은 더 짙어지고 커지는 것 같다. 소녀는 자신의 검은 반점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반점을 보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엄마의 등허리에도 나와 똑같이 생긴 검은 반점이 있고, 좋아하게 된 남자아이의 얼굴 위에도 검은 반점이 있다. 검은색만이 아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파란색. 저마다 다른 색상, 다른 모양의 반점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다. 


소녀가 자신의 검은 반점만 의식할 때는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소녀가 다른 사람들의 반점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총천연색으로 바뀐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반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내가 가진 반점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검은 반점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펼치다니. 어제 읽은 <깎은 손톱>에 이어 또 한 번 예상치 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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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e
최은영 그림, 차재혁 글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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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에도 수많은 말과 소리가 내 귀를 스쳐간다. 키보드 소리, 음악 소리, 스마트폰 진동 소리, 카톡 알림 소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등등. 이 소리 저 소리 다 시끄럽고 제발 좀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차재혁이 글을 쓰고 최은영이 그림을 그린 책 <MUTE>는 2016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작품이다. '무언의, 말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에 맞추어 책에는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장은커녕 단어조차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알파벳과 숫자, 자음과 모음뿐.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 말이 넘치고 허무하게 사라지는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지난밤, 식구들은 모두 잠들고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방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평소에는 문장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잠드는 편인데, 문장은커녕 온전하게 읽을 수 있는 단어조차 없는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귀에 들리는 말뿐만 아니라 눈으로 읽는 글자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걸까. 가끔은 이 책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동화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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