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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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있는 지금도 치열하게 진실을 쫓고 있는 주기자 님을 위해 저는 책을 사서 읽기라도 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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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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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꺼졌다.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내각이 교체됐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을까. 지난 금요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고작'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야1당이다. 행정부 수반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지난 정권의 입김은 여전하다. 대기업과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지난 10년 동인 MB의 비자금을 좇은 기록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일찍이 BBK와 내곡동 사저 특종을 터뜨려 MB에게 두 개의 특검을 '선물한' 바 있다. BBK와 내곡동 사저는 MB가 서울특별시장, 대한민국 대통령을 거치며 '해 드신'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는 MB의 비자금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스위스, 독일, 케이맨제도 등 전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열심히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허탕치고 실패도 했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짐작이 든다. 언제쯤 다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 그건 MB의 양 팔목에 빛나는 은팔찌가 채워지면?


이명박을 쫓는 건 위험한 일이다. 

감옥 문 앞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아주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밟는 순간도 있었다. 죽는 순간은 더 나쁜 일이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선배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돌아가신 선배들도 적지 않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선배들에 비해 훨씬 편하고 좋은 조건에서 싸우고 있지 않은가? 진짜 최악은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악행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6쪽)


저자의 MB 추격기는 시사IN 기사를 비롯해 저자의 이전 책들과 라디오,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번 알려진 바 있다. 이 책 내용 중에도 알려진 것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이 책 내용의 일부가 팟캐스트로 제작되기도 했다. (http://www.podbbang.com/ch/9938?e=22365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첫 번째는 전두환이다. 이 책은 '이명박 추격기'라는 제목이 붙었는데도 상당한 분량이 전두환의 부정부패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한국의 권력자들이 벌인 부정부패가 고질적이고 심각하며, 아직 뿌리뽑지 못한 폐단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인간이, 배드민턴 한 번 치러 갈 때마다 1백 명에서 2백 명의 밥값을 계산한다. 전두환의 사저를 지키는 의경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두환이 조의금으로 1천만 원을 냈다. 자기 밑에서 일한 장관이 죽었을 때는 조의금으로 1억 원을 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돈을 뿌리고 다닐 수 있는 건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 회장이나 CEO로부터 수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를 한 번 만날 때마다 5백억 원이 들었다니, 조의금 1천만 원은 우스운 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두 번째는 당연히 MB다. 전두환은 받아챙긴 돈을 쓰기라도 하지, MB는 쓰지도 않는다. MB가 '살 집만 남긴 채'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청계재단이 2016년 장학 사업에 쓴 돈은 고작 2억 6,680만 원. 가수 이승환이 한 해 기부하는 액수보다 적다. MB가 돈을 '해 드시는' 패턴은 따로 있다. 1단계. 회사를 하나 만들거나 인수한다. 2단계. 회사가 돈벼락을 맞고 그 돈이 돌고 또 돈다. 그러면서 돈이 사라지고 회사가 사라진다. 3단계. 국가기관이나 은행은 그 돈을 찾지 않는다. BBK도, 농협의 캐나다 노스욕 사기 대출 사건도, MB와 관련된 사건은 죄다 그런 식이다.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보거나 심하게는 죽는다(저자에 따르면 503 주변에 의문의 죽음이 많지만 MB 주변도 만만치 않다고).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조세회피처로 나간 돈이 190조인데 그중 홍콩을 제외하고는 케이맨이 제일 많다. (중략) 역외투자의 거점이라고 하는데 왜 돈이 꼭 케이맨에 들러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교민은 10명도 안 될 텐데... 교민이 있기는 할까? 2007년부터 한국과 케이맨의 직접교역액은 급상승한다. 매년 2배 이상 성장. 이명박 재임기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석연치 않다. (242쪽)


MB 비자금 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BBK도 그렇고, 내곡동 사저 문제도 그렇고, 금융 문제, 부동산 문제라서 그런지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그에 비하면 50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막장 드라마 같아서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물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영화로 보면 쉬우려나(주진우 기자의 이명박 추격기는 <저수지>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어 오는 9월 상영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취재원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권력자와 가깝고 권력자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죄다 입 닫고 조용히 살기를 바라는 줄 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 중에도 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부디 주진우 기자가 취재하는 영역에 관해 뭐라도 알고 있는 분들은 제보해주시길. 권력과 가깝지 않은 저는 책이라도 사서 읽고 몇 권 더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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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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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쉰을 잘 모른다. 루쉰의 책 중에 읽어본 건 <아Q정전>이 유일한데, 그나마도 중고등학교 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루쉰, 길 없는 대지>를 읽게 된 건, 저자 중 한 사람인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아Q정전>이라는 괴작을 쓴 작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일까. 반쯤 의심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니 과연 루쉰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일단 그 시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이동거리가 상당하다. 루쉰은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서 태어나 난징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02년에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와 센다이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후에는 중국의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책은 고미숙을 비롯해 공부공동체의 학인(學人)으로 인연을 맺은 여섯 명의 필자가 루쉰이 직접 살았던 장소들을 방문해 각 시기별 루쉰의 삶과 사상의 흔적을 좇은 일종의 기행문의 형식을 띈다. 루쉰이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은 덕분이다. 


일본 유학은 루쉰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도착한 루쉰은 변발부터 잘랐는데, 구한말 조선인들이 단발령에 반발한 것처럼 당시 중국인들도 변발을 자르는 것을 거부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루쉰이 변발을 자르자 중국인 유학생 사회 안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루쉰은 변발이 만주족의 풍속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중국 문화의 하나로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느냐며 중국인의 이중성에 치를 떨었다. 


루쉰의 수난은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현재 도호쿠 의과 대학)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루쉰은 이 학교에서 후지노 곤쿠로라는 평생의 은사를 만났다. 후지노는 중국인 유학생인 루쉰이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루쉰의 노트를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틀린 문법을 바로잡아주곤 했다. 그러자 일본 학생들은 '후지노 선생이 루쉰에게 미리 시험문제를 찍어주었다'라는 루머를 퍼뜨렸고, 루쉰은 '1등도 아니고 고작 68등인 나를 시기하느냐'며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일본에는 중국인 유학생뿐 아니라 조선인 유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어떤 핍박을 당했을까. 루쉰보다 더한 일을 겪지 않았을까. 


문예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문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루쉰은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단,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쓰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이 쓰는 글을 믿지 않는다. 루쉰의 글이 한없이 단순명쾌한 듯하면서도 버거운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자기부정과 자기환멸. 그러나 니체 말대로, 대체 자기를 환멸해 본 적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225~6쪽)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한 루쉰은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외국 도서를 번역하면서 생계를 잇다가,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쉰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활동이 아니라 '문예 혁명'이었다. 루쉰에게 글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둡고 막막한 현실 때문에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루쉰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치기 위한 글쓰기, 이른바 계몽적 글쓰기는 지양했다. 이것이 루쉰이 대단한 작가로 손꼽히는 점이다. 


루쉰은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고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을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았다. 루쉰은 자기 자신의 우매한 생각이나 언행의 불일치, 과거의 습속을 생각 없이 따라 하거나 게으르게 사는 태도 등을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글쓰기를 즐겨 했다. 그래서 루쉰의 글은 무섭다. 잽을 날리는 데 남을 때리지 않고 자기 얼굴을 때리니 무서울 수밖에. 그러나 전통이든 습속이든 사회이든 문명이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든 간에, 뭐든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야 다시 만들 수 있고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루쉰은 과연 대단한 작가다. 


문명은 부유함도 대중정치도 아니다. 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다. 사람이 서는 것[立人], 그것이야말로 문명이고 혁명이다! (231쪽) 


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사람이 서는 것[立人]"이라는 문장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혁명을 통해 기득권층이 독차지하고 있는 부와 권력이 원래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대중에게 분배되면 좋겠지만, 혁명의 과실(果實)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확립하고, 같은 뜻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연대를 통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스스로 만드는 것. 그것이 혁명의 진정한 목표이고 성과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혁명은 권력투쟁에 그쳤다. 부디 2016년 촛불 혁명의 결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적폐 세력의 일부인 판검사들, 소신 없이 산 공무원들, 억압받은 언론인들 모두 돈(특히 삼성)과 권력에 기대지 말고 자기 두 발로 섰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나는 판검사도 공무원도 언론인도 아니고 기댈 돈도 권력도 없지만 아무튼...).


사람이 사람을 먹는 기괴한 이야기나 쓸 줄 아는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대단한 글을 많이 남겼을 줄이야. 루쉰의 저작이라고는 <아Q정전>밖에 읽어보지 못한 까닭에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 루쉰의 저작을 많이 만나봐야겠다. 고미숙의 말대로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고 알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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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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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하면 요즘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목요일 코너지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게는 팟캐스트 '책으로 트다'의 진행자 김진애의 기억이 더 강렬하다. '책으로 트다'는 격주로 출연하는 게스트의 면면이 대단했다. 유시민, 강신주, 김탁환, 표창원, 서천석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게스트로 나와서는 온갖 책 이야기를 했다. 그걸 또 다 받아치는 김진애의 내공이란! 어떤 분야든, 어떤 책 이야기가 나오든 막힘없이 받아치는 김진애의 모습을 보면서 대체 책을 얼마나 많이, 깊이 읽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진애가 독서에 관한 책을 쓴다면 반드시 읽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왔다. 김진애의 독서 내공을 담은 책이. 제목은 <여자의 독서>. 이 책은 저자 김진애가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유난히 자신을 흔들고 매혹시킨 여성 작가들의 책만을 엄선해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물론 여성 작가의 책만을 가려 읽지는 않는다. 남성 작가의 책을 멀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성으로 살면서 여성의 현실과 이상, 여성의 심리와 행동, 여성의 상처와 고통을 다룬 책을 찾다 보니 자연히 여성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고, 여성 작가의 책 속에서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상처를 치유하고, 여성 작가의 작업을 보며 자신도 그러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사춘기 시절에 내가 직면했던 자존감의 구체적 이슈는 '여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내가 바라볼 실제 여자'가 없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위인들의 이야기와 역사 속의 인물들이나 정숙한 여인형이나 대의를 위해 산화한 순국열사형 인물들에게 생생하게 공감하기란 참 어렵지 않은가? (35쪽) 


저자는 어려서부터 책을 즐겨 읽는 책벌레였다. 1남 6녀 딸부잣집의 둘째 딸. 맨 위 오빠는 아들이라서, 바로 위 언니는 예뻐서 어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니 자신은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 똑똑함을 뽐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더 넓은 인생의 문을 열어줄 줄이야. 저자는 어려서 순전히 호기심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삼국지>, <논어>를 열독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학문의 기초를 다졌고, 대학 시절에는 박경리의 <토지>, 미국 유학 시절에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으며 건축과 정치라는 일생의 화두를 얻었다. 


박경리와의 만남은 '일대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특별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박경리가 남성 작가인 줄 알았다. 당시만 해도 작가의 사진이 책에 담기지 않았고, 박경리라는 이름은 저자가 느끼기에 남자 같았다. 우연히 박경리가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저자는 드디어 '처음으로 흔쾌히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는 여성 인물'을 만났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박경리의 작품 속에서 여성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전율했다. '여성이라면 어떤 소재, 어떤 주제, 어떤 문체일 것이라는 편견'으로부터도 벗어났다. 박경리의 작품 중에서도 <토지>는 저자로 하여금 우리 땅과 전통 건축의 의미에 눈을 뜨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자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금기들이 많지만 그중 딱 두 가지만 이야기한다면, '정치와 섹스'를 들 수 있다.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모르는 척, 없는 척, 수줍은 척' 하라는 것이다. (중략) (여자들은) 정치에 대해 모르는 척하고 관심 없기를 요구받다 보니 '권력 게임의 역학'에 대해 무지하게 키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생기면 '올바름이 무엇이냐?'에 대한 의식이 커지며 훨씬 더 치열하게 정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52~3쪽) 


이 책은 여성 작가의 책을 엄선해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매개로 다양한 화제를 제시한다. 여성의 멘토, 여성의 성장, 여성의 정치와 섹스, 여성의 연대, 여성 인간의 확장, 센 언니의 탄생, 여자를 지키는 수호신, 여성성과 남성성 등. 이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 중 하나가 정치와 섹스에 관한 대목이다. 저자가 보기에 정치와 섹스는 서로 맞물려 있는 이슈다. 정치의 조건에 따라 섹스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매우 달라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정치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우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남성은 정치와 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열려 있기를 강요받는다. 반대로 여성은 정치적, 성적으로 열위에 있다 보니 정치와 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열려 있으면 외려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정숙하게 행동할 것을 강요받으며 자란 저자는 성을 책으로만 배우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야 성에 대해 자유로워졌다. 두 번째 임신 때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에서 만든 <우리 몸, 우리 자신>이라는 책을 읽은 것이다. 이 책에는 남녀의 성징, 월경, 성호르몬, 섹스와 관계, 피임, 임신 등은 물론 성 지향성과 젠더, 성적 감수성과 관계 감수성, 성폭력과 성 학대 등 한국에서는 아직 인식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한다. 배우 줄리앤 무어가 '여성의 건강을 위한 최고의 책'이라고 예찬했다는데 대체 어떤 책일까.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는데 가격이 상당하다. 과연 사서 읽을 수 있을는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8495)


이 책에는 <자기만의 방>, <정희진처럼 읽기> 같은 페미니스트 필독서는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신화와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같은 고전 명작 소설, <나를 찾아줘>, <7년의 밤> 같은 현대 대중 소설, <침묵의 봄>, <희망의 밥상> 같은 논픽션 명작이 다채롭게 실려 있다. 오리아나 팔라치의 <한 남자>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읽어보고 싶은데 책이 오래전에 나왔거나 나왔어도 절판된 듯해 아쉽다. 페미니즘 붐을 타고 다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은 여성 작가의 책이 발굴되고 더 많은 여성 독자의 독서 체험담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나라면 어떤 여성 작가를 소개할까. 김진애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황정은, 정이현, 정혜윤, 이다혜 등등...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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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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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는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 여섯 편을 엮은 작품집이다. 이른바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게 이 책이 처음이다. 수상작이 황정은의 소설이라기에 읽었는데, 황정은의 작품만으로 만족하기에는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이 워낙 좋고,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역시 황정은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좋다(황정은 작가님 사랑합니다♡). 


수상작 <웃는 남자>는 황정은의 전작 <디디의 우산>(『파씨의 입문』)과 <웃는 남자>(『아무도 아닌』)의 후속작이다. 주인공 d는 동거하던 연인 dd를 사고로 잃은 후 양천구 목2동의 반지하 방에서 폐인처럼 지낸다. d에게 간간이 먹을 것을 주던 집주인 할머니마저 요양병원에 들어가자 d는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세운상가에서 하루 열 시간씩 택배 기사로 일한다. 또 다른 주인공 여소녀는 40년이 넘도록 세운 상가에서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고 있는 60대 중반의 남자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세운상가에서 일을 했던 그는 산업화, 정보화를 거쳐 공동화(空洞化), 소멸화되는 그곳의 마지막 목격자다. 


단편이라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산업화,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이웅평 귀순 사건, 세월호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이슈를 꼼꼼하게 언급한다. d의 집주인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가 폭격을 당해 무너질 때 업고 있던 갓난아기를 잃었다. d는 1983년 북한의 공군이었던 이웅평 대위가 러시아제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을 때 개펄에서 조개를 캐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여소녀는 세운상가가 처음 문 열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와 육영수, 어린 박지만이 찾아와 상가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세운상가는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택배기사 몇 명뿐인 창고 지대로 전락했다. 북한의 공군은 목숨 걸고 찾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약속한 풍요로운 미래는 고시촌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청춘들이 헬조선을 뇌까리고 탈한국을 꿈꾸는 세상으로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한강철교 폭격을 묵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은 2014년 4월 16일 진도 인근 해상에서 구조 요청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하고 침몰해 295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와 오버랩된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와 함께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는 김숨의 <이혼>,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의 <여름방학>,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 편혜영의 <개의 밤> 등이 있다. 후보작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의 <여름방학>,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이다. 세 작품 모두 평범한 소시민의 평범하지 않은 어떤 날들을 꼼꼼하게 묘사한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중에선 특히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가 좋았다. 주인공 이기호(작가와 이름이 같다)는 쓰라는 소설은 쓰지 않고 중고나라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책이, 그것도 저자 사인본이 4천 원이라는 헐값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이기호는 판매자에게 직거래를 요청하고, 판매자를 만나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간다. 이 모든 과정이 한 편의 코미디 영화처럼 우스운데, 마지막 반전을 알고 나면 마음이 싸하다. 이래서 그동안 사람들이 이기호, 이기호 했나 보다. 이기호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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