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진 구루구루 애장판 1
에토 히로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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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는 그야말로 '전설'처럼 기억되는 만화다. <슬램덩크>, <세일러문> 등 지금도 일본 만화계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가 발했던 존재감이란. 아무리 봐도 용사와 마법 소녀라기보다는, 같은 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같은 '니케'와 '코코리'가 딱히 목적도 없고 의욕도 없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모험을 즐기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바로 그 만화가 올해 7월 애니메이션 <마법진 구루구루>로 리메이크되었고, 그에 맞춰 <마법진 구루구루 애장판> 1권과 2권이 국내에 정식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과 원작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애장판은 번역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단 제목이 다르다. 한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제목은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인데 원작과 애장판의 제목은 <마법진 구루구루>다. 여자 주인공 이름은 '코코리'가 아니라 '쿠쿠리'다. 니케는 '용사'가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난 것이 아니라 '용자'가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 밖에도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읽으면 재밌겠다.





<마법진 구루구루>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데, 니케는 뺀질뺀질 하게 굴고 허풍 떨 때가 가장 니케답고 귀엽다. 용자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니케는 뺀질뺀질한 녀석이었다. 젊은 시절 용자가 되고 싶었던 니케 아버지는 니케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랐고, 그리하여 니케가 딱히 원하지 않는데도 용자가 되기 위한 여행을 보낸다. 아버지가 젊을 때 썼던 낡은 투구를 선물로 주자 이런 게 내 스타일이라며 폼 잡는 니케. 그런 니케를 꼴 뵈기 싫어하며 날려 버리는 니케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





니케가 뺀질뺀질 하지만 귀염성이 있는 딱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라면, 쿠쿠리는 그동안 어떤 사연 때문에 그 나이대로 살 수 없었던, 조금은 불쌍한 여자아이다. 쿠쿠리는 '미구미구족'이 발견해 자기들만이 써온 마술인 '구루구루'를 펼칠 수 있는 미구미구족 최후의 생존자다. 13년 전 미구미구족의 생존자라는 남자가 찾아와 구구루루 교전(敎典)과 쿠쿠리를 노파에게 맡겼고, 노파는 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쿠쿠리를 집 안에 가둬놓고 키웠다. 


노파로서는 쿠쿠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쿠쿠리로서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답답했고, 미구미구족 최후의 생존자로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마법 공부만 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러던 차에 스스로를 용자라고 일컫는 니케가 나타나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하니 반가울 수밖에. 어려서부터 힘든 나날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씩씩한 쿠쿠리가 나는 참 좋다.





<마법진 구루구루> 전체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니케와 쿠쿠리가 모험을 떠나기 직전에 시장에서 모험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대목이다. 생애 처음으로 시장에 가본 쿠쿠리는 예쁜 옷도 사고 싶고 액세서리도 사고 싶다. 하지만 알고 보니 쿠쿠리가 입고 있는 칙칙한 망토가 방어력이 가장 높은 데다가 충동구매를 하면 안 된다고 니케가 말려서 쿠쿠리는 마음을 접는다. 그런데 저 멀리서 달려온 니케가 쿠쿠리에게 뭔가를 건네준다. 그것은 니케가 자신에게 필요한 철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산 꽃장식 머리핀 ^^ 평소에는 뺀질뺀질하고 허세가 가득해도 쿠쿠리 마음은 기가 막히게 아는 니케가 귀엽다 ^^





<마법진 구루구루>의 인기 캐릭터 '북북춤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보니 참 반가웠다. 북북춤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순간 북북춤 할아버지 전용 배경 음악(띠라디라디라 띠라디리라~)이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 건 내 착각일까 ^^ 이제 보니 북북춤 할아버지가 일본 배우 타케나카 나오토를 닮은 듯하다 ^^





<마법진 구루구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깁플도 나온다(깁플 오랜만이야 ㅠㅠ). 난 이렇게 얼굴이 몽실몽실하고 표정이 묘한 캐릭터가 좋다 ^^ 이제 보니 깁플이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어피치를 닮은 듯하다(아니, 어피치가 깁플을 닮았다고 해야 하는지도) ^^





<마법진 구루구루 애장판> 1권에는 초판 한정 부록인 아크릴 스탠드가 포함되어 있다.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를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러 애장판을 소장하게 될 줄이야. 이 스탠드를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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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홍현진.강민수 지음 / 오마이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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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를 위한 마을은 없나요?" 오마이뉴스 기자 홍현진과 뉴스타파 기자 강민수가 공저한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는 1인 가구를 위한 공동체를 찾는 사람에게 권하고픈 마을공동체 안내서다. 


마을공동체라고 해서 반상회나 어머니회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이 책에 소개된 1인 가구 마을 공동체는 주제와 형태가 훨씬 다양하다. 주거비 부담을 덜기 위해 공동주거 플랫폼을 만든 '우리동네사람들',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그리다협동조합', 도시 한복판에서 에코 라이프를 외치는 '이웃랄랄라', 신용 대신 신뢰를 주고받는 청년연대은행 '토닥' 등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이나 기업이 선보이는 서비스 대상에서 소외되기 쉬운 1인 가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공동체가 대부분이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살림이라는 걸 해야 하는데, 1인 가구에는 살림이 생략된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1인 가구라고 하면 집안에 온통 라면과 일회용품이 가득하거나 그게 아니면 정반대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골드미스이거나.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여주는 1인 가구에 대한 양극단의 이미지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1인 가구는 양극단이기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데... (73쪽)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1인 가구 공동체는 청년연대은행 토닥이다. "토닥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단순하다. 만 15~39세, 매달 5000원 이상의 출자금과 10000원 이상의 조합비를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가입 후 바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30만 원을 대출받기 위해서는 '출자 1개월 이상 또는 토닥 씨앗 다섯 톨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토닥 씨앗은 토닥 조합원 교육, 소모임 등의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쌓이는 활동 지수다." (122쪽) 일종의 마이크로 크레디트인데, 같은 아이디어를 대학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에서 시행해봐도 좋을 것 같다. 


도시의 일부를 농지로 전환하는 전환마을 프로젝트도 인상적이었다. 서울 은평의 갈현 텃밭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란은 한 달 벌이가 100만 원가량이지만, 직접 키운 야채를 먹고 술도 담가 먹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셰어 하우스에서 지내서 한 달 지출이 통신요금 등을 합해 50만 원쯤 된다. 1시간 일해서 시급 얼마를 버는 것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게 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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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느낄 때 - 어느 곳에 있어도 편하지 않는 당신을 위한 공간 심리학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정혜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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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쓴 미즈시마 히로코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 정신신경과 교수이자 대인관계요법 전문 클리닉 원장이다. 저자는 책에서 내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다고 여기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한 안식처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이런저런 팁이나 기술보다도 저자 자신이 직접 체득한 경험이다. 저자는 몇 년 전 도치기에서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해 두 번 당선하고 5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처음 입후보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걱정 어린 말을 많이 들었다. 지연도 없는 지역에서 의사 출신이 선거에 나가 당선될 리 없다고들 했다. 당선된 후에도 도치기 사람들로부터 '외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적잖이 받았다. 


저자는 도치기를 '내가 있을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 중요한 활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집마다 방문했다. 국회가 있는 도쿄와 지역구인 도치기를 매일 같이 오갔다. 명절은 반드시 도치기에서 보냈고, 지역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가마를 타기도 하고 떡메 치기를 하기도 했다. 그제야 도치기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의원을 그만두고 나서도 인연이 계속되었다. 


결국 내 자리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내 일처럼 앞장서고 혼신을 다 하면 누가 달려들어도 밀려나지 않는 내 자리가 생긴다. 이 밖에 저자가 미국 AH 센터로 자원봉사를 하러 떠났을 때의 일화나 한방을 공부할 때의 일화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만한 학력과 경력을 지닌 사람도 낯선 곳, 낯선 무리 속에선 소외감을 느끼고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러 사람과 있을 때 종종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덜 초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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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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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일본사를 배운 적이 있었던가. 교과서에 일본사와 중국사가 아주 짧게 실려 있던 건 기억하지만, 한국사를 배울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시험에 나오지 않아서 건너뛰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내가 일본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다. 정치외교학 전공이고 개인적으로도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관련 수업은 죄다 수강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일본사를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 주로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이라서 사실 '공부'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전직 외교관 신상목이 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는 일본사 중에서도 에도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기에 탁월한 교재다. 1996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후 일본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한 저자는 일본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외교부를 퇴직하고 현재 서울에서 '기리야마본진'이라는 우동가게를 경영하면서도 한일 관계 증진에 도움이 될 만한 저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를 일컫는다. 조선으로 따지면 선조 말기부터 고종 초기에 이르는 시기다. 알다시피 이 시기에 조선은 영, 정조 시대의 르네상스를 지속하지 못하고 당쟁과 세도 정치를 일삼다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기 직전의 상황에 치달았다. 반면 일본은 임진왜란 때 납치한 도공과 조선통신사에게 배운 문물, 그밖에 중국과 서양 국가들로부터 흡수한 문화와 문명을 십분 발휘해 근대화의 기반을 닦았다. 


저자는 무려 400여 년 전부터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일본의 저력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저자의 시선은 에도 시대의 정치를 비롯해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망라한다. 여행, 출판, 교육, 언론, 광고, 과학, 지도, 사전, 패션, 도자기 등 테마도 다양하다. 


인상적인 건 에도 시대에 발전한 분야가 지금까지도 일본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출판 강국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매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대학 수준도 뛰어나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요미우리 신문은 에도 시대에도 있었고, 단순하고 간결한 미의식을 중시하는 일본의 패션 문화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조선 후기에 발전한 것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뭘까? 고리타분한 성리학 문화? 남존여비 사상? 착잡할 따름이다. 


엄밀히 말해서 여행과 관광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관광이란 말은 중국 고전인 <역경>에 나오는 '관국지광'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략) 일본의 유학자들은 관국지광, 즉 관광을 '나라의 빛을 살피는 것이 곧 군주의 덕을 가까이 느끼고 찬양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85쪽) 


일본은 에도 시대 중기부터 여행 대중화가 진전되었다. 여행 대중화로 인해 일찍부터 교통망, 숙박시설, 치안, 오락시설 등이 생겨나고 융성했다. 이때의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관광의 속성이 강했다. 유교 사상에서 관광의 '광(光)'은 '빛나는 문물, 전통, 군주의 덕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찬란함과 위대함'을 의미한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광복(光復)'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다. 에도 정부가 장려한 여행은 어디까지나 나라의 위용과 위대함을 확인하고 애국심이 고취되도록 하는 '관광'이었다.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것이 관광의 목적이라니. 이 밖에도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이 여럿 실려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본에 관한 것은 무조건 싫어도, 한 번쯤 읽고 찬찬히 생각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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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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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 책은 많지만 교토 여행 책은 많지 않다. 그나마도 오사카 여행 책에 부록처럼 딸려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교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항상 아쉬웠다. 


임경선 작가가 교토 여행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임경선 작가는 성장기 시절 6년을 요코하마와 오사카, 도쿄에서 보냈다. 일본 여행 경험도 많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고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런 임경선 작가가 교토의 겉모습만 가볍게 훑지 않고 속살까지 파고드는 책을 냈다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느낀 교토의 정서는 자부심이 높되 겸손하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만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기를 거부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깍쟁이로 보이다가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킬 줄 안다. 


저자는 이러한 교토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명소들을 찬찬히 소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등을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시 아유미가 운영하는 '이오 플러스', 화제의 베스트셀러보다는 주인이 엄선한 신간, 절판본, 중고책 등을 주로 파는 동네 서점 '세이코샤', 간판이 없는데도 아는 사람은 다 와서 물건을 사는 200년 전통의 노포 '나이토 상점', 오니기리(삼각김밥) 하나로 승부하는 오니기리 전문점 '아오 오니기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대부분이라 반갑다. 


교토에서 '간단히 오차쓰케라도 먹고 가실래요?'라는 말은 '슬슬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라는 신호다. (중략) 교토 시민들은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식사 대접하는 의무를 상호 간에 면제하는데 이는 교토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내전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전쟁의 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주민들은 철저한 사전 계획으로 식생활을 조율해나갔고, 이 계획이 손님 방문으로 인해 한번 구멍이 나버리면 향후 가족들이 굶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164~5쪽)


교토의 전통과 문화에 관해서도 비교적 깊이 있게 설명한다. 교토 사람들이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오차쓰케라도 먹고 가실래요?'라고 물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내전이 많았던 역사 때문인 줄은 몰랐다. 교토에 유난히 빵집과 카페가 많은 이유도 흥미롭다. 교토에서는 예부터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가내수공업을 하는 집이 대부분이라서 어머니가 여유 있게 아침밥을 차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을 가볍게 오차쓰케로 때우다가, 빵이 보급된 후에는 아침 식사로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먹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교토의 명물인 오반자이 요리는 애초에 교토식 별미가 아니라 아껴 쓰고 남은 식재료를 처리하기 위해 구상해낸 검소하고 하찮은 반찬 요리였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밥과 함께 비벼 먹다가 비빔밥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교토에는 이 밖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교토 말고 다른 도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경선 작가의 일본 여행 에세이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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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17-10-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의 정서가 뭔지 여쭤봐도 됩니까?

키치 2017-10-14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됩니다 ^^ 이 책의 저자는 ˝ 자부심이 높되 겸손하고,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는 양면성˝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제가 직접 교토에서 체험했거나 업무상 만나는 교토 사람들의 분위기나 생활 문화도 그러했습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심도 깊지만 일정 선은 넘지 않는달까요.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 다른 경우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