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나크 사냥>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199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스나크 사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의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의 1876년 작 <스나크 사냥>에서 제목을 따왔다. 스나크(Snark)는 작품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로, 스나크를 잡는 사람은 스나크를 잡는 순간 인간성을 상실하고 괴물이 된다. 


미야베 미유키의 <스나크 사냥>에는 스나크를 방불케 하는 악인 '신스케'가 나온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신스케는 유복한 집안의 딸 '게이코'를 유혹해 경제적, 육체적으로 이용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게이코를 버리고 게이코보다 더 유복한 집안의 딸과 결혼을 약속한다. 신스케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 게이코는 산탄총을 들고 신스케의 결혼식장을 찾아간다. 


게이코가 총을 쏘기 직전 신스케의 여동생이 나타나 게이코를 말리고, 게이코가 준비한 총은 '오리구치'라는 사내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오리구치는 몇 년 전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소년을 찾아가 직접 살해할 계획이다. 다만 오리구치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게이코가 준비한 산탄총은 총구가 막혀 있어서 총을 발사하는 순간 총을 쏜 사람이 죽게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소년을 향해 다가가는 오리구치. 과연 그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사회적 상식이나 도덕에 반하고 혹은 법의 적용을 왜곡해 합법성을 획득하는 이기주의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저자는 공적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적 제재를 가하면 사적 제재를 가한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이 소설에 나온 대로 애인에게 착취당한 후 버림받거나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피했을 때 수긍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게이코가 산탄총으로 자살할 생각을 품지 말고 신스케를 처단하길 바랐다. 진심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화차>, <모방범>, <솔로몬의 위증> 등에 비하면 분량도 많지 않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떨어지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만화로도 출간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2 중국 인문 기행 2
송재소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은 워낙 넓기 때문에 각 지역의 풍광과 문화적 특색이 달라서 '어느 곳에 제일 좋다'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유산만 봤을 때 중국에서 최고로 손꼽힐 만한 지역은 어디일까.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의 저자 송재소에 따르면 중국에서 인문학적 유산이 가장 풍부한 곳은 절강성(저장성)의 소흥(사오싱)과 강소성(장쑤성)의 의흥(이싱)이다. 


이 중에서 저자가 단연 추천하는 곳은 소흥이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 그토록 많은 역사적 유적을 보유한 곳은 아마 유례가 없을 곳이다." 소흥에는 월나라의 도읍지 부산이 있다. 월나라는 중국 춘추시대에 장강 이남에 있었던 두 개의 부족 중 하나로, 월나라의 역사로부터 '와신상담', '오월동주'같은 유명한 고사가 탄생했다. 이 책에는 월나라의 간략한 역사와 와신상담 고사, 월나라와 관련된 소흥의 유적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소흥은 중국 근대문학의 거장 노신(루쉰)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소흥에는 노신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노신 기념관을 비롯해 노신의 탄생지 주가신대문, 노신이 소년 시절에 다닌 서당 삼미서옥 등의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저자는 노선이 중국 문화혁명의 상징이자 위대한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임에도 현재 중국에서 마땅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한다. 혁명의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노신의 대표작 <아Q정전>, 산문시 <연> 등이 교과서에서 삭제되는 등 중국 정부의 '노신 지우기'가 계속되고 있다(상대적으로 '공자의 부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점도 지적한다). 


소흥에는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혁명가 추근,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인 서시,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 중국의 대표적인 명필 왕희지 등과 관련된 유적도 다수 남아 있다. 강소성 의흥에는 석회암 동굴 선권동, 대나무의 바다 죽해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 많아 인문 여행과 함께 자연 여행도 즐길 수 있다. 소흥과 의흥은 인천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항주를 거치면 비교적 쉽게 닿을 수 있다. 애주가이자 다도가인 저자가 여행 중에 부지런히 맛본 소흥의 대표술 황주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얼굴과 이름만 가리면 일본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인지 누가 알겠어요?" 얼마 전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두고 이동진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전쟁터의 요리사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조리병으로 참전한 팀 콜의 병영 생활을 그린 이 소설에는 '일본스러운' 면이 조금도 없다. 


이렇게 독특한 소설을 쓴 작가는 후카미도리 노와키. 1983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났고, 2010년 단편으로 데뷔해 2015년에 발표한 <전쟁터의 요리사들>로 2016년 서점대상 후보, 제154회 나오키상 후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제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쟁터의 요리사들>을 두고 "일본의 젊은 여성이 유럽의 전쟁에 대해 이리도 잘 묘사하다니 작가로서 타고난 것이 아닌가!"라고 극찬했다.


이야기는 미국 루이지애나 출신 팀 콜이 자원입대를 하면서 시작된다. 인생을 사는 낙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고 할 만큼 음식을 좋아하는 팀은 어렸을 때부터 친할머니가 손수 쓴 레시피 공책을 즐겨 봤다. 1942년,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마을마다 지원병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붙었다. 억지로 끌려가느니 스스로 입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팀은 할머니의 레시피 공책 한 권을 부적 대신 챙겨 떠났고, 그렇게 유럽으로 건너갔다.


시간은 흘러 1944년 6월이 되고,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팀은 절친이자 조리병들의 리더인 에드, 트러블 메이커인 디에고, 조리의 달인 라이너스와 함께 병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진다. 병영에서 먹거리를 책임지는 건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재료를 보급하고 관리하고 처리하는 일 모두 이들의 책임이다.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자리다. 이로 인해 팀은 몇 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필요 없어진 낙하산의 행방을 쫓거나, 홀연히 사라진 분말 달걀 600상자를 찾거나, 네덜란드 민가에서 벌어진 괴이한 죽음 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해결하게 된다. 


소설 초반은 팀이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띈다. 그러다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팀이 전쟁의 경과와 함께 어엿한 군인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었던 사람이 삽시간에 차디찬 시체로 발견되고, 살기 위해 군인은 물론 민간인끼리도 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고 살해하는 상황이 잇달면서 팀은 전쟁의 실체를 알게 되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빼앗은 목숨, 구한 목숨, 모욕을 주고 만 목숨. 세고 들자면 끝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어느덧 노인이 된 팀은 전쟁이 끝난 지 몇십 년이 흐르고 냉전 시대마저 끝났는데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슨 패기와 열정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자들은 누구일까.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전쟁 미스터리라는 가벼운 형식으로 시작해 의외로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ipful 트립풀 오키나와 - 중부.북부.남부.나하, Issue No.04 트립풀 Tripful 4
이착희 지음 / 이지앤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서 겨울이 다가오는 게 썩 반갑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피서 아닌 '피한(避寒)'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설 연휴를 이용해 가까운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볼까 싶다. 


오키나와 여행책을 찾다가 여행 욕구는 물론 소장 욕구까지 팍팍 자극하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트렌디한 여행 정보와 감각적인 사진이 결합된 국내 최초의 여행 무크지 'Tripful 트립풀 시리즈' 오키나와 편, <Tripful 트립풀 오키나와>이다. 





'Tripful 트립풀 시리즈'는 낯선 여행지를 새롭게 알아가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행 무크지 시리즈이다. 기존의 여행 가이드북이 무겁고 딱딱하고 천편일률적이라면, 'Tripful 트립풀'은 가볍고 보기 쉽고 다양한 레이아웃으로 구성되어 있어 휴대하기 편하고 보기에 즐겁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라 패션 잡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Tripful 트립풀 오키나와>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키나와의 풍광을 담은 멋진 사진이 가득 담겨 있어 보기에 즐겁다. 각 장마다 트렌디한 정보가 보기 좋게 배열되어 있어 여행 준비는 물론 현지에서 정보를 찾기에도 편하다. 가이드북마다 나오는 명소 위주가 아니라 저자가 발품 팔아 직접 찾아낸 현지 맛집, 알려지지 않은 명소 위주라서 믿음이 간다. 





오키나와는 일본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전체 면적은 제주도보다 조금 크다. 여행할 때는 보통 나하, 중부, 북부, 남부로 크게 나누어 이동하는 편이고, 아열대성 기후로 일 년 내내 온화하다. 한국과 일본은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했으므로 최대 90일까지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상업 목적인 경우는 비자가 필요하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달리 대중교통수단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렌터카나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자가 많다. 이 책에는 오키나와 추천 드라이브 코스는 물론 렌터카 이용법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나처럼 운전면허가 없어서 렌터카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배차 시간이 길고 노선이 복잡한 점은 감안해야 한다. 주말 한정 버스 프리 티켓도 있다. 





오키나와 하면 새파란 바다에서 즐기는 해양 스포츠가 유명하다. 오키나와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 스포츠로는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패러세일링, 바나나 보트 등이 있다. 이 책에는 다이빙 체험하는 방법은 물론 추천 업체와 종목에 따른 해양 스포츠 명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다이빙 자격증 없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해양 스포츠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격증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자격증 없이 할 수 있는 해양 스포츠도 있다니 언젠가 오키나와에 가게 되면 도전해 봐야겠다. 오키나와 자외선은 악명이 높으므로 비키니보다는 래시가드를 지참하고, 선크림과 선글라스, 모자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오키나와 소바'다. 메밀가루로 면을 만드는 일본 본토의 소바와 달리, 오키나와 소바는 100% 밀가루로 만든다. 오키나와 소바 하면 오랜 시간 푹 삶은 족발이 들어간 것만 알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해초를 넣은 소바, 돼지갈비를 넣은 소바, 삼겹살을 넣은 소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 책에는 오키나와 소바를 비롯한 오키나와 향토 음식 외에 오키나와식으로 재탄생한 타코와 타코 라이스,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스테이크 요리, '아구'로 불리는 토종 돼지 요리, 아시아 음식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 소개되어 있다. 지역별로 잘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컬러풀한 사진이 입맛을 돋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오키나와의 카페, 디저트 숍도 소개되어 있다. 오키나와에선 '부쿠부쿠차'가 유명하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생긴 부쿠부쿠차는 예부터 경사가 있을 때 마시던 차다. 전통차, 백미, 현미, 재스민 차로 만들며, 오키나와 전통 과자 친스코 또는 밀전병과 비슷한 포포와 곁들여 먹는다고. 스타벅스, 도토루 같은 커피 체인점 또한 오키나와 내에 다수 입점해 있다(도토루 커피♡). 


오키나와는 기후가 온화한 남쪽 지방의 섬인 만큼 망고를 비롯한 과일이 풍부하다. 망고를 듬뿍 넣은 빙수나 망고를 방금 갈아서 만든 생과일주스 등 여행자의 피로를 씻어줄 만한 디저트 또한 다양하다. 오키나와 하면 미군 부대에서 처음 생겨난 블루씰 아이스크림도 유명하다. 오키나와 친스코 맛도 있다는데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일본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쇼핑 정보도 자세히 나와 있다. 오키나와 쇼핑의 중심지는 오키나와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르게 되는 나하의 대표 명소 '국제거리'이다. 전쟁 후 도시 복구 과정에서 가장 눈부시게 발전했던 이곳은 1.6km밖에 안 되는 좁은 지역이지만, 오키나와 여행자의 쇼핑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쇼핑 스폿이 대거 밀집해 있다. 


오키나와 유일의 백화점인 '류보 백화점'을 비롯해 돈키호테, 스플래시, 우미츄라라, 맥스밸류 마키시점 등 다양한 쇼핑 스폿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으니 여행 전에 미리 체크하고 가면 좋을 듯. 책 뒷부분에는 오키나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오키나와 한정 상품을 비롯해 오키나와 술, 오키나와 특산품 정보 등이 실려 있으니 여기도 참고하시길. 





오키나와는 화려한 휴양지인 모습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류큐 왕국이었다가 일본에 병합된 역사도 그렇지만, 한국인이라면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로 강제 징용되어 비참한 삶을 살다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조상들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에는 오키나와 강제 징용 피해자인 故 강인창 씨를 기리는 '한의 비'를 비롯해 조선인 강제 노역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곳들이 나와 있다. 이곳들은 관광지가 아니므로 절제된 옷차림, 엄숙한 몸가짐으로 찾아가는 매너를 잊지 않는 것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세상의 한구석에 - 상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너의 이름은.>을 꺾고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바로 그 영화! 제41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심사위원 특별상, 2017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경쟁장편 대상,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와 키네마 준보상에서도 각각 우수작품상, 우수음악상,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국내 개봉에 맞춰 코우노 후미요의 원작 만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가 정식 출간되었다.





총 3부로 구성된 만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기발한 구성이 눈길을 사로잡고, 애니메이션보다 반전(反戰)을 향한 작가의 메시지가 더욱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올해 초 일본에 갔을 때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많이 봤는데 드디어 국내에 개봉되는구나. 일본 관객 동원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기에 어떤 작품일까 궁금했는데 만화를 읽어보니 과연 많은 관객이 볼 만한 작품이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대의 히로시마. 주인공 '스즈'는 학교가 파하면 김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돕고, 무서운 오빠와 귀여운 여동생의 손을 잡고 심부름을 다니는 착한 소녀다. 마음씨는 착하지만 약은 구석이 없고 멍하게 있다가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인 스즈의 특기는 그림 그리기. 흰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전쟁 중이라 물자가 부족한 관계로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연필이나 목탄이 넉넉지 않은 게 늘 아쉽다.





그러던 어느 날 스즈에게 선 자리가 들어온다. 부모가 정한 상대라면 무조건 결혼해야 했던 시대. 스즈는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고 결혼할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시집이라도 가서 가난한 살림에 입 하나 덜어주는 게 효도라고 여기고 순순히 선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스즈가 정든 고향인 히로시마를 떠나 낯선 쿠레에서 시부모님, 시댁 식구들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만화의 큰 줄거리다.





스즈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살림과 그림 그리기뿐.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멍하니 있지 말라는 꾸지람도 듣지만, 시댁 식구들은 점점 스즈에게 마음을 열고 스즈 또한 시집살이에 적응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배급받는 물자도 줄고, 암시장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멀쩡하던 집을 비우고 소개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는 등 상황은 점점 나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와 가족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던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좋아진다. 스즈는 양쪽 부모가 두 사람을 중매해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나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둘의 인연을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남편을 믿고 따르지만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던 스즈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남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남편 역시 스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 또한 감동적이다.





원작자 코우노 후미요는 스즈와 같은 히로시마 출신이다. 작가는 이 작품 전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저녁뜸의 거리>, <벚꽃의 나라> 2부작을 그린 적이 있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작가의 외할머니를 모델로 그린 만화로, 외할머니가 실제로 체험했음직한 당시 사정을 치밀하게 조사해 작품에 반영했다.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리가 끊기고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등 당대 여성들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된다. 가난한 집에서 딸이 태어나면 유곽에 팔고, 대를 이을 아들만 거두고 딸은 내쫓는 등의 여성차별도 생생하게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본이 배경인 만화 중에는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비난을 받는 작품이 더러 있다. 이 작품 또한 전쟁 당시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저지른 범죄와 식민지 국가의 훨씬 처참했던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래도 일본인은 모국어를 빼앗기거나,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거나, 강제 징병 또는 징용을 당하거나, 정신대에서 일할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로 일축하는 건 여러모로 아까운 일이다. 어쩌다 보니 전쟁 중인 나라에서 태어난 소녀가 원폭 투하로 가족을 잃고, 순간의 실수로 죄 없는 아이를 죽게 하고, 자신 또한 좋아하는 그림을 평생 그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부상을 입는 장면에선 나 역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피해국 일본'만 부각하지 않고 '가해국 일본'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을 들은 직후 스즈는 쿠레 시내로 뛰쳐나가 거리에 내걸린 태극기를 바라보며 폭력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킨 나라는 폭력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게 이 나라의 '정체'라면 차라리 모르는 채로 죽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 일본인이 듣기에는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는 대사를 읊조린다(과연 일본인에게는 불편했는지 애니메이션에서는 삭제되었다고).





요즘처럼 일본이 우경화되고 평화 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전쟁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이 세상의 한구석에>처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 있고, 원작을 재구성한 영화가 2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애니메이션에는 생략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하니 작품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원작 만화를 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