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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 니체 카잔차키스 서머싯 모옴 쿤데라의 삶의 성찰들
이현우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8월
평점 :

정식으로 문학을 배운 적도 없고 오랫동안 문학을 탐독하지도 않은 나로서는 문학에 대해 알려주고 좋은 문학 작품을 소개해줄 길잡이가 항상 절실하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나에겐 아직 낯설기만 한 프리드리히 니체, 니코스 카잔차키스, 서머셋 모옴, 밀란 쿤데라 읽는 법을 알려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과 세계 문학,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평가 이현우. 저자 이름만으로도 읽어볼 마음이 들고 책의 내용에 믿음이 간다.
이 책은 니체와 니체에게 영향받은 작가 3인의 작품 세계를 넓게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 모옴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 <면도날>, 쿤데라의 <정체성>,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이다. 참고로 이 책의 제목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니체의 경구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를 비튼 것이다.
니체 사상의 핵심은 '초인과 영원회귀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모순과 극복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초인의 짝 개념은 영어 라스트 맨(last man)으로 번역되는 '말인'이며, 말인으로 번역한 사람의 중국 작가 루쉰이다. 루쉰이 생각한 말인은 곧 '사악하지 못한 인간'이다. 우매하면서도 선량한 인간, 선량하지만 사유는 못 하는 인간, 인생 목표가 행복인 인간, 그 이상의 가치는 모르는 인간이 즉 말인이다. 니체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초인 되기는 어렵지만 말인은 되지 말자'이다.
니체가 예찬한 초인의 삶의 핵심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주체성'이다. 초인은 주어진 규범을 그대로 따라서 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삶을 창조한다. 신이 없다고 하면 '그럼 이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라고 탄식하지 않고 이제부터 내 멋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만세를 부른다.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우면 집을 재배치하고 난장판을 만들며 노는 아이들. 이들이 바로 니체가 권하는 능동적 허무주의, 주인이 되는 삶, 초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생전에 니체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도 못했고 철학자로 인정받지도 못했지만 사후에는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가장 유명한 세 작가가 카잔차키스, 모옴, 쿤데라이다. 니체 사상의 핵심을 유념하여 카잔차키스, 모옴, 쿤데라의 작품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 생기고, 선택을 한 다음에는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선 주인공 '나'가 책벌레의 삶을 버리고 자유인 조르바의 삶을 따르는 선택을 하고, 모옴의 <달과 6펜스>에선 성공한 증권 중개업자 '찰스 스트릭랜드'가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예술에 투신하는 선택을 한다.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주인공 '토마시'가 진실한 사랑이 주는 권태감과 가벼운 사랑이 주는 허무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이다. 이들 작품은 일견 한쪽 삶을 예찬하고 한쪽 삶을 비하하는 듯 보이지만, 작품의 요점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 그 자체, 즉 주어진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 그 자체다.
이 책에 나온 작품 대부분을 읽었지만 니체와 관련이 있는 줄 모르고 읽었기에 저자의 해석이 놀라웠다. 모옴의 <인생의 베일>은 영락없이 불륜을 그린 통속 소설인 줄로만 알았기에, 주인공 '키티'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마침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끌어안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는 해석이 새로웠다(그것도 모르고 나는 모옴이 왜 이런 막장 소설을 썼나 했다;;). 문학으로 니체를 배우고 니체로 문학을 읽으니 문학과 니체 모두 전보다 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