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노트 패드 1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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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몸과 인격이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뀐다면.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처럼 몸과 인격이 바뀐 상대가 도쿄에 사는 미소년 또는 포니테일이 깜찍한 미소녀일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여고생이 중년 남성의 몸과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신작 <화이트 노트 패드>는 바로 그런 경우를 그린다. 17세 여고생 오다마키 하나는 별다른 취미도 없고 학교에선 항상 조용히 지내는 평범한 소녀다. 항상 등을 구부린 채 걷고 체격에 비해 목소리가 낮아서 평범하다기보다는 음산한 느낌을 풍긴다. 친한 친구는 단 한 명. 축구부 후지모토를 남몰래 좋아하지만 직접 고백할 용기는 없다.





'17세의 가을, 나는 느닷없이 빼앗겼다.' 


어느 날 하나는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17세 여고생의 몸이 아니라 중년 남성의 몸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왜 몸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고, 원래 누구의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몸의 원래 주인은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중년 남성. 하나는 기억상실증 환자 아닌 기억상실증 환자로서 지옥 같은 1년을 보낸다.





한편, 38세 자동차 정비공 키네 쇼고는 경제적으로는 빈곤층에 속하지만 독신이라서 별문제는 없다. 등산을 좋아하지만 2년 정도 산에 가지 못했고,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고백은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고는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중년 남성의 몸이 아닌 17세 여고생의 몸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몸이 17세 여고생의 몸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쇼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 하나... '최강'!!!





늙고 지쳐 병들어갈 일만 남았다고 믿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열일곱 살 여자아이의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할 터. 나아가 쇼고는 외모를 갈고닦아 17세 여고생 오다마키 하나의 몸으로 패션 잡지의 인기 독자 모델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어느 날 하나와 쇼고는 하나가 일하는 잡지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상대가 자신의 원래 몸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반응은 엇갈린다. 하나가 된 쇼고는 하나의 젊음을 빼앗아 전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짜릿해하는 반면, 쇼고가 된 하나는 쇼고가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던 - 하지만 자신은 가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 미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어째서 당신이 더 잘 살고 있는 거야."





하나는 쇼고가 자신의 몸으로 인기 독자 모델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낀다. 내가 저렇게 예뻤다니. 나 같은 여자애도 마음만 먹으면 인기 독자 모델이 될 수 있었다니. 내가 나를 몰라서, 내가 나일 때 누리지 못하고 놓쳐버린 기회를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쇼고는 쇼고대로 하나가 자기 대신 가난한 자동차 정비공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환희를 느끼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좋아했던 여인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고 좋아하는 차 이야기도 마음껏 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되길 꿈꾸지만, 막상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힘들고 충분치 않다는 것일까. 이야기 전개가 워낙 흥미진진해 결말까지 쭉 봐야겠다(야마시타 토모코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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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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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대신 써드립니다'. 실제로 이런 직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의 세계에선 엄연히 존재하고 적지 않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문구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대로 편지를 대필해온 츠바키 문구점의 새로운 주인 '아메미야 하토코', 일명 '포포'의 직업이 바로 대필이다. 


포포는 어려서부터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로부터 대필가가 되기 위한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어릴 때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뛰어노는 동안 자기만 글씨 연습을 하는 게 억울하기만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할머니에게 말이 좋아 대필이지 사기라고 대들기도 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츠바키 문구점의 새 주인이 된 지금은 과거의 일이 부끄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밀려드는 의뢰를 해결하느라 바쁘고,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배우지 못한 게 한스럽다. 


그렇다고 포포의 실력이 형편없는 건 결코 아니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일단 음료 한 잔을 대접한 후 의뢰인의 사연을 천천히 듣는다. 사연을 다 들으면 몇 시간 또는 며칠의 말미를 얻은 다음, 편지에 적을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바로 떠오르는 법은 결코 없기에 요리를 하거나 외출을 하거나 이웃과 수다를 떨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 그러다 보면 예술가에게 '창작의 신'이 내려오듯 포포에게도 '대필의 신' 같은 게 내려와 편지에 적을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편지에 적을 말이 떠오르면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을 사람, 사연과 편지 내용에 어울리는 편지지와 필기구, 우표 등을 차례로 고른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보낼 편지에는 정성스레 말린 압화를 이용해 편지지를 만들고, 절연하고 싶은 지인에게 보낼 편지에는 사랑과 증오가 섞인 복잡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이용해 글씨를 쓴다. 포포가 쓴 편지의 원본이 책에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재미는 이것만이 아니다. 만화 <슬램덩크>,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무대이기도 한 가마쿠라가 배경이다 보니 가마쿠라의 유명 관광지와 음식점, 볼거리와 즐길 거리에 관한 이야기가 쉬지 않고 나온다. 번역가 권남희는 이 책을 번역하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마쿠라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다(번역가 권남희의 가마쿠라 여행기가 이 책 마지막에 역자 후기로 실려 있다. 이 글도 매우 재미있다!). 이 책은 2017 일본 서점 대상 4위에 올랐는데 나로서는 1위 <천둥과 벌꿀>보다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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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2017-11-18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기억을 위해 펜을 고르고, 편지지를 고른다. 책을 읽으면 그리하게 된다.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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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책으로 사람이 구원받는 이야기. 책덕후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사랑할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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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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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쪽의 항만 도시 하이애니스에서 페리를 타야 갈 수 있는 앨리스 섬. 그곳에 있는 서점이라고는 '아일랜드 서점' 단 한 곳뿐이다. 아일랜드 서점 주인 A. J. 피크리, 일명 에이제이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혼자서 서점을 꾸린다.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주민과 휴가철 관광객 대상 장사라서 매출이 신통치 않은데 에이제이의 성격과 책 취향이 워낙 괴팍해 서점은 항상 폐점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제이는 여느 때처럼 술독에 빠져 문단속 하는 것도 잊고 잠이 들고, 잠에서 깨자마자 귀중품 하나를 도난당한 것을 알게 된다. 도난 신고를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이번엔 못보던 꾸러미 하나가 서점에 있다. 꾸러미 안에 있는 것은 무려 갓난 아기! 경찰과 사회복지사, 주변 사람들은 에이제이 혼자서 아기를 키울 순 없다고 말리지만, 에이제이는 아기 엄마가 꾸러미 안에 남긴 쪽지("저는 아이가 책에 둘러싸여, 그런 것들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기를 바랍니다.")와 자기만 보면 방긋방긋 웃는 아기를 저버릴 수 없어 직접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아이가 책에 둘러싸여, 그런 것들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기를' 바란 아기 엄마의 소원은 정확히 이루어진다. 아기 마야가 서점에 오고 에이제이의 딸이 된 후로 에이제이는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성격도 훨씬 온순해지고 책 취향도 다양해진다.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거들떠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논픽션, 에세이, 자기계발서도 서점에 들여놓고, 틈틈이 마야를 돌봐주는 이웃 경찰이 좋아하는 장르 소설이나 마야 친구 엄마들이 북클럽에서 읽을 만한 대중 소설, 동화책에도 눈길을 준다. 물론 마야도 아빠 곁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에이제이가 오랫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사랑도 찾아온다. 상대는 에이제이만큼 책을 좋아하는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 에이제이는 세상을 떠난 아내만큼 자신과 책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믿었기에, 어밀리아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뭐냐고 물으면 <회계원리 제2권>이라고 답하는 남자들만 만났기에 내심 연애와 결혼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책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어찌나 로맨틱한지. 여기에 약간의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까지 가미되어 있어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을 떼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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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도대체 지음 / 예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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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으며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 마스다 미리를 연상케 하는(또는 뛰어넘는) 한국 작가가 여러 명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저자 '도대체'다. 인터넷에 무심코 올린 만화 <행복한 고구마>가 누적 조회 수 500만을 돌파하며 이름을 알린 도대체의 첫 그림 에세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마스다 미리의 일상 만화에 재미 한 스푼과 찌질함 반 스푼을 더한 듯한 맛이 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좋아하지만 재미가 약하다, 찌질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내 입맛엔 딱이다.





이 책은 책상 앞에 앉아서 각 잡고 읽기보다 소파에 기대거나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읽기를 추천한다. 나는 택배 상자를 받고 포장을 뜯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읽고 침대에 누워서 한 번 더 읽었다. 한 번 읽었을 때나 한 번 더 읽었을 때나 웃음이 계속 터져서 혼났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사실 이미 다 했지만 상사가 눈치챌까 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나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떡볶이랑 순대 먹자는 말에 눈을 번쩍 뜨는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나 같은지(인생 뭐 있어? 먹으려고 사는 거지~) ㅋㅋ





'오늘은 정말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결심했다가도 갑자기 느껴지는 치통에 '치과 견적 먼저 받아보고 결정할까' 고민하는 것도(그놈의 월급과 4대 보험이 뭔지), 작은 모깃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듣고 자다가도 눈뜨는 능력을 가진 주제에 정작 모기 잡는 능력은 없어서 밤새 모기와 '혈투'를 벌이는 것도 딱 내 이야기다(이제는 무시하고 이불 덮고 잡니다만). 내가 겪을 때는 답답하고 억울했던 일도 만화로 보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실시간 다큐멘터리'인 삶이 남의 눈에는 흐뭇한 '명랑만화'처럼 보이겠지. 그렇다면 어깨에 힘 좀 덜 넣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실패와 절망의 연속이지만 약간의 성공과 희망을 더하면 살아볼 만하다는 메시지도 마음에 남는다. '하나, 퇴사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면 회사로 택배를 주문하세요. 둘, 슬픈 생각이 들 땐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바르고 나왔는지 떠올리세요. 셋, 살이 자꾸 찐다면 살면서 뭔가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세요. 넷, 인생이 온통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일단 맛있는 것을 먹읍시다.' 


이 중에 마음에 드는 팁은 단연 네 번째다. 인생이 꼬였을 때는 비빔국수를 먹으라. 그러면 인생이 꼬인 사람에서 인생이 꼬였지만 비빔국수를 먹는 사람으로 변신할지니(천잰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메뉴는 비빔국수로 정했다(오늘 난 인생이 꼬였지만 비빔국수를 먹는 사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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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11-1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리뷰를 올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ㅎㅎ

키치 2017-11-17 20:11   좋아요 1 | URL
서평 쓰며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불금이잖아요 ㅎㅎ 즐거운 불금&주말 보내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