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네코무라 씨 아홉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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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 요리코의 만화 <오늘의 네코무라 씨> 9권이 출간되었다. 인간처럼 말도 할 수 있고 살림도 잘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네코'는 어려서부터 돌봐주던 도련님과 헤어진 이후 무라타 가정부에 소속되어 가정부로 일하며 도련님과 다시 만날 그날만을 꿈꾸고 있다. 

네코무라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집은 대학교수 이누가미 킨노스케의 저택. 이누가미 킨노스케는 겉보기엔 능력 있고 젠틀한 중년 남성이지만 실은 아내 몰래 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이누가미 교수의 아내 사에코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네코무라에게 푸는데, 정작 네코무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가 뭘 잘못해서 사모님이 언짢아하시나 좌불안석이다.






이번 9권에서는 사모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급기야 네코무라는 콧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해고당할 위기에 몰린다. 이 무슨 삼류 막장 드라마 같은 줄거리인가 싶지마는 계속 보다 보면 은근 흥미진진하다.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사모님은 대놓고 밉상인데 네코무라가 자기도 모르게 사모님 속을 긁는 모습도 재미있다(개인적으로 이누가미 집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누가미 교수의 딸 오니코인데, 오니코가 요즘 많이 안 나와서 아쉽다). 


무엇보다 이번 9권에서는 네코무라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도련님이 아주 잠깐이지만 나온다.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네코무라 씨가 가정부 일도 잘 해내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도련님을 금방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9권이 되도록 정식으로 상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니(ㅠㅠ). 이야기 전개에 도통 진전이 없어서 답답하지만 아마도 나는 10권도 보고 11권도 보게 될 듯(대체 몇 권까지 나올까?). 작가가 하도 애간장을 태워서 결말을 못 보면 무척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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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 때면 가족 모두 건강하고 삼시 세 끼 먹을 수 있으니 감사히 여기자고 생각한다. 사는 게 괴로울 때면 이제껏 살면서 큰 사고나 자연재해 한 번 겪은 적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는 게 비참하고 끔찍하게 느껴질 때면 적어도 지금이 전쟁 중이거나 당장 목숨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고 마음을 다잡는다. 


코노 후미요 원작,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주인공 '스즈'도 매번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히로시마의 어촌에서 태어난 스즈는 부모님이 하는 김 양식을 거드느라 손이 마를 새가 없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 보니 연필심이 늘 빨리 닳는다. 그래서 연필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면 오빠에게 머리를 쥐어 박히기 일쑤다. 


열여덟 살이 된 스즈는 이웃 마을 쿠레에 사는 호조 슌사쿠와 혼인을 치른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스즈는 이튿날부터 다리가 불편한 시어머니를 대신해 시댁 살림을 도맡게 된다. 새벽부터 동네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오고 식구들의 밥을 지어야 하는 생활. 시누이와 그 딸까지 집에 들어오면서 스즈의 부담은 커지지만 그래도 스즈는 불평하지 않고 사람 좋게 웃으며 넘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은 점점 심화되고, 해군 기지가 위치한 쿠레에도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스즈의 생활도 전쟁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안 그래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데 배급받는 식재료의 양은 갈수록 줄어들고, 암시장 물가는 천정부지로 높아져 설탕 같은 필수 조미료를 구하려면 온 식구의 생활비를 전부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이 된다.


평소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뿐인데 헌병한테 간첩으로 몰려서 곤욕을 치르고, 해군이 되어 돌아온 첫사랑이 사지로 끌려가고, 걸핏하면 머리를 쥐어박아서 무서워만 했던 오빠가 유골이 되어 돌아와도 스즈는 참는다. 그래도 아직은 가족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고, 이따금 끼니를 거르기는 해도 먹을 게 전혀 없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전세가 점점 일본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고 연합군의 공격이 스즈가 살고 있는 쿠레에 집중되면서 스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여겼던 죽음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것을 느낀다. 머리 위로 폭탄을 실은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마을이 하룻밤 사이에 불바다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스즈는 점점 불안해진다. 


급기야 스즈의 가까운 식구가 스즈의 곁에서 목숨을 잃고 스즈 또한 예전처럼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치면서 스즈는 버틸 힘을 잃는다. 친정이 있는 히로시마 상공 위로 생전 처음 보는 희고 큰 구름이 떠오르자 스즈는 그저 큰 소나기가 내릴 징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조만간 친정 식구들의 목숨을 앗아갈 원자폭탄인지도 모르고.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자 사람들은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스즈는 억울하다. 화가 치민다. 집 밖으로 뛰쳐나간 스즈는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고 생각한다. "나는 바다 건너 넘어온 쌀과 콩으로 이루어졌지. 폭력으로 복종시켜서 결국 폭력에 굴복하는거구나. 이게 이 나라의 정체인가. 이걸 모른 채 죽었으면 좋았을걸." 


스즈는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대체 이제껏 무엇을 위해 참고 견뎌야 했느냐고 울부짖는다. 이 장면이 원작 만화에만 있고 영화에는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직접 영화를 보니 스즈의 대사도 태극기도 분명히 나온다(한국에서만일지도).


이 영화를 가리켜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스즈 개인의 삶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연민을 느낄 것이다. 영화는 전쟁으로 인해 서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며, 원자 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사람의 뼈가 녹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이 돈다는 이야기도 한다. 폭력을 휘두른 일본이 폭력 앞에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대사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일본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나아진 의식을 보인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 원작 만화에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강조하고 싶은 점이 보다 분명하게 나온다. 만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는 히로시마 출신인 작가가 쿠레로 시집 간 외할머니를 모델로 그린 작품으로, 외할머니가 실제로 체험했음직한 당시 사정을 치밀하게 조사해 작품에 반영했다. 전쟁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고증이 영화보다 자세하게 나온다. 


영화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에서 길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유곽에 들어간 스즈가 린이라는 아가씨를 만나는데, 만화에는 스즈와 린의 관계, 스즈의 남편과 린의 관계도 자세히 나온다. 전쟁 당시 여성들이 겪은 고통과 전쟁의 풍파 속에서도 식지 않은 여성들 간의 연대와 우정도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스즈 넨도로이드가 있을 줄이야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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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다 보니 영화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주로 보는 편이다. 11월 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마찬가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워낙 좋아해 리메이크 영화와 드라마라면 죄다 찾아본 만큼 이번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수능 시험일이었던 지난 목요일, 개봉되기 전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먼저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시사회가 아니라 GV 시사회,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님이 게스트로 참석해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일단 영화 이야기부터.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 '에르큘 포아로(케네스 브래너)'는 예루살렘에서 사건 하나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사건을 의뢰받아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런던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포아로가 타게 된 열차는 겨울인데도 만원인 데다가 포아로와 같은 객차에 탄 승객 13명의 면면 또한 화려하다.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아로는 옆 객실에 탄 미국인 사업가 라쳇(조니 뎁)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모처럼 푹 쉴 생각이었던 포아로는 라쳇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는데, 이튿날 라쳇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포아로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게 된다.


폭설 때문에 멈춰버린 열차 안에서 포아로는 승객 13명을 한 사람씩 탐문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 날 한 시 같은 열차에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승객 13명은 나이도 국적도 계급도 직업도 저마다 다르다. 13명 모두 범인이 아님을 증명할 만한 알리바이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포아로는 13명 모두 용의자 선상에서 배제하기엔 석연찮은 이유 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포아로는 이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추려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탐정 포아로는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려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할까.





유명한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해 각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작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획기적인 방식으로 각색하는 것이다. 전자인 경우, (원작을 안다면) 줄거리를 즐기거나 결말을 기대하는 재미는 덜한 반면, 영화의 연출이나 미술, 의상, 배우들의 연기에 훨씬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전자이며,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 영화를 볼 때 흔히 그러듯이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거나 트릭을 찾아내거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반전을 기대하는 재미는 덜하지만, 원작에선 볼 수 없는 영화 상의 연출이나 미술, 의상,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1930년대 유럽의 건축 양식과 거리 풍경은 물론, 이제는 운행이 중단된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열차 안의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 연이어 등장하는 고급 요리 또한 눈을 즐겁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유럽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 같다. 포아로와 승객 13명의 캐릭터가 원작과 다르게 각색된 점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영화 속 포아로는 원작에는 없는 액션을 펼치고 괴짜 같은 성미를 더욱 자주 내보이는 등 원작보다 다채로운 캐릭터로 승화되었다. 승객 13명도 원작에선 전원 백인인 데 반해 영화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가 추가되는 등 세부적인 변화가 적지 않다.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럼 더포, 주디 덴치 등 세계 정상급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연기 경연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조니 뎁은 분량이 많지 않은 데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케네스 브래너는 이 영화에서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담당했다. 셰익스피어 등 고전을 각색한 작품에 주로 출연해온 배우인 만큼 이 영화 또한 추리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릭에 집중하기보다는 원작을 보다 풍성하게 해석하는 데 주목한다. 이를테면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드라마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사적 제재를 실현하고자 결의한 사람들과 사적 제재의 한계 등.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케네스 브래너가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되 디테일을 풍성하게 덧붙이는 방식으로 리메이크를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후속편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니 이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아로 시리즈를 전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이번 겨울을 아예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함께 20세기 초 미스터리 소설을 독파하는 계절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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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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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허리가 아프고 목도 부어서 몸 상태가 왜 이렇게 안 좋을까 곰곰 생각해 봤더니 운동을 게을리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운동이라고 해봤자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거나 집에서 요가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훌라후프를 돌리는 정도인데, 그조차도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집도 춥다) 안 했더니 금세 몸이 안 좋아진 것 같다(어느덧 나도 몸으로 나이 듦을 느끼는 때가 되었구나ㅠㅠ).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제목만 보면 걷기의 효능을 알려주며 걷기를 예찬하는 책일 것 같지만(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정확히는 걷기를 통해 철학과 문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걷기와 사유,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고찰하고, 나아가 행진, 축제, 혁명 등 걷기의 정치적 의미를 모색하는 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걷기와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걷기와 인문학 모두 출판계에서 흔하다면 흔한 주제가 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은 한참 전인 2000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대부분의 인문학 저자(주로 남성)가 남성의 관점에 치우친 서술을 하는 반면 레베카 솔닛은 -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답게 -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등 다수의 여성을 등장시키고 페미니즘에 관한 장(章)을 따로 두는 등 여성의 관점을 비중 있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자의 보행은 많은 경우 이동이 아니라 공연으로 해석된다. 그런 해석대로라면 여자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걷고,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남자의 경험을 위해서 걷는 셈이다. (375쪽)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표현이 많다. 창녀를 뜻하는 표현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walker),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 도심의 여자(woman on the town), 공공의 여자(public woman) 등이 있다. 이런 표현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공인(public man), 유행에 밝은 사람(man about the town), 건달(man of the streets)이 된다. 성에 관한 관습을 깨뜨린 여자를 묘사하는 방황한다(stroll, roam, wander, stray)는 표현은 여자의 여행에 성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또는 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여자의 섹슈얼리티는 관습을 위반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375쪽)


온갖 충고들이 쏟아졌다. 밤에 밖에 나가지 마라, 헐렁한 옷을 입어라, 모자를 쓰든지 머리를 짧게 잘라라, 남자처럼 하고 다녀라, 비싼 동네로 이사를 가라, 택시를 타라, 자동차를 사라, 혼자 다니지 마라, 에스코트해줄 남자를 구해라. 현대판 그리스 돌벽. 현대판 아시리아 베일. 사회가 나의 자유를 지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행동과 남자들의 행동을 통제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충고들이었다.(386쪽) 


제14장 '도시의 밤거리: 여자들, 성(性), 공공장소'는 이 책에서 다른 장은 안 읽어도 이 장만은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혼자서 길을 걸을 때 여성이 느끼는 공포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최근 동네에서 여학생이 길을 걷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요즘은 더 무섭다. 밤길만 무서운 게 아니다. 벌건 대낮에 노상방뇨하는 남자들은 왜 그리 많은지(며칠 전에도 봤다. 심지어 눈까지 마주쳤다). 골목을 돌 때마다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두렵다. 


저자는 여성의 공간을 집 안으로 한정하고 집 밖으로 나온 여성은 보호받지 않는 존재, 즉 함부로 범해도 되는 존재로 가정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밤늦은 시간에 밖에 있는 여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혼자 다니는 여자는 '강간 당해도 싼 존재'로 치부되고 성폭행을 당해도 귀책사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는 모든 여성에게 검은 히잡을 두르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한탄했던 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하며, 자유롭고 싶어서 남자 옷을 입고 남장을 한 채 파리의 거리로 나선 조르주 상드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이제 저자가 걸어간 길 위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연대할 수 없다던 저자의 가르침이 마음에 남는다. 춥다는 핑계로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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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의 맛 꽈배기 시리즈
최민석 지음 / 북스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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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기운이 안 난다. 퇴근하면 전기장판 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는 게 일상인데, 책도 재미가 없고 만화도 푹 빠질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녁에 <오리엔트 특급열차> GV 시사회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영화 보고 나면 기운이 좀 나려나(나야 할 텐데)... 


기운이 없어서 어려운 책은 못 읽고 쉽고 가벼운 책 위주로 읽고 있다. 요 며칠 동안 읽은 책은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꽈배기의 맛>이다. 최민석 작가가 최근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 두 권을 세트로 출간했는데, 이중 <꽈배기의 맛>은 신간이 아니라 2012년에 발간한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이다.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판한 지 두 달만에 절판이 된 것이 아쉬워 5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고. 


올해 초 최민석 작가의 산문집 <베를린 일기>를 읽고 '한국에 이렇게 웃기는 작가가 있었다니!'라고 생각했는데, <꽈배기의 맛>을 읽으니 최민석 작가가 최근 들어 웃기는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원래 웃기는 작가임을 알겠다. 어째서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은 옆모습으로만 사진을 찍을까 하는 나름 진지한 고찰도, 자신의 시집이 고모 집 냄비받침으로 쓰이는 걸 봤을 때 느낀 참담한 심정도, 작가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든다. 


자신을 고급 제과점 케이크나 마카롱 같은 비싼 과자가 아니라 분식집 한편에서 파는 꽈배기에 빗대는 겸손함도 좋다. 하지만 꽈배기가 만만한 음식이라고 해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위대한 파티셰들이 꽈배기를 튀기진 않는 건, 꽈배기를 튀기는 것도 나름 오랜 연구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뜨거운 기름 앞에서 꽈배기를 튀기는 분식집 아저씨처럼 정성 들여 성실하게 글을 쓰되, 읽는 사람은 별 부담 없이 만만하게 읽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도 인상적이다. 서문에서부터 '나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라고 밝히더니, 출판사나 여느 매체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하고 개인 홈페이지에 매주 한 편씩 이 책에 실린 글을 써서 올렸다는 대목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프로 작가인데도 이른바 '돈 되는 글'에만 매달리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글'에도 정성을 들이다니(그 결과 책을 내기는 했지만).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축 늘어져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이토록 성실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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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2017-11-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최민석 전 사실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저도 살짜기 의욕상실이 올 때 함 찾아봐야겠어요^^

키치 2017-11-25 09:44   좋아요 0 | URL
캔디캔디 님 말씀대로 이기호 작가님과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 덧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