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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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이 나라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없었다. 오직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와 지식인들을 위한 정치,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만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오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시끄럽다, 그만하라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함께 울었다. 더 이상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방안으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제시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란 쉽게 말해 '마음을 다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정치'다. 정치적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통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 어렵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을 때, 불합리한 차별이나 편견에 부딪힐 때,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이 드는 것도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연민이나 동정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그 예를 '너무 많이' 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거나 무관심한 이유로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를 든다.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소비주의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고 처리에 드는 세금이나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보험금에 주목한 당시 일부 언론의 행태에 잘 드러난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유가족을 정부에 반항하는 반동분자 취급한 것은 희생양 만들기의 전형적인 예다.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정치 혐오에 빠진다. 인간관계와 시민 공동체는 금세 무너진다. 


자아와 세계의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 앉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57쪽)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결국 화해와 통합이며,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결코 '그들'과 화해하거나 통합할 마음이 없지만, 그들과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통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4주기인 오늘. 어떤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사설을 실었고, 어떤 정당은 추도식에 참석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날은 아직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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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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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글이 오랫동안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쓴 글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히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은 전자가 후자보다 크다는 방증일까.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가 정년 퇴임 전 대학에서 진행한 마지막 강의인 '창조적 글쓰기'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 철학 책은 왜 어려운가 등등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행위다. 주관식 시험을 볼 때 수험자로서는 아무리 답안을 잘 써도 채점자가 읽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 작가가 제 딴에는 아무리 잘 써도 독자가 그 글을 읽고 싶은 마음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살아남는' 글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자기표현,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 또는 사회와 소통하는 방편으로 글을 쓰는 존재여야 한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에 의하면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이다. 독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종이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전자책은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실감하기도 어렵고(종이책은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잡고 있는 책의 부피와 무게가 달라진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그렇다면 전자책 화면에 남은 페이지 수를 표시하는 기능을 추가하면 전자책의 인기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문학에 '외향(外向)'과 '내향(內向)'이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쉽게 말해 시바 료타로는 일본인을 편 드는 글을 쓰는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인을 편들지 않는 글을 쓴다. 시바 료타로는 노몬한 사건에 관한 글을 쓰려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생존 병사를 인터뷰했지만 자국을 욕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집필을 포기했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몬한 사건에 관해 끈기 있게 취재해 <태엽 감는 새>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는 일은 힘들다.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보다 훨씬 강하다. 독자에게도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어느 집이라도 그 집 고유의 냄새가 나지만 그곳에 사는 인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집은 냄새가 안 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자기 집 냄새를 '냄새'라고 느끼지 못하면 자기 집에 대해 '외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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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조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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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쇼와 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으로 불리는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다룬 소설 <죄의 목소리>를 읽었다. 마침 <죄의 목소리>보다 먼저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다룬 소설이 20년 만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서 얼른 구입해 읽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다카무라 가오루의 1997년작 <레이디 조커>다. 


<죄의 목소리>는 사건으로부터 3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레이디 조커>는 종전 직후 한 맥주 회사에서 일어난 노동 쟁의부터 그로부터 40여 년 후 경마장에서 만난 다섯 남자가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쇼와 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이라고 해서 범인이 잡히지 않은 것은 물론 경찰이 범인의 윤곽도 알아차리지 못한 줄 알았는데, <죄의 목소리>와 <레이디 조커>에 나오는 범인 그룹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일치하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두 소설 모두 범인 그룹 내에 현직 경찰과 재일조선인, 금융 지식에 해박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사건 당시 제기되었던 내부자 범행설, 주가조작설, 부락민 관련설 등을 모두 아우르기 위한 것이다. 


<레이디 조커>가 <죄의 목소리>와 다른 점은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피차별 부락민 문제에 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약국 주인 모노이는 자신이 재일조선인 출신인 것은 개의치 않지만, 하나뿐인 손자가 대기업 입사 면접에서 가족 중에 재일조선인이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를 당한 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해 범죄를 계획한다. 범인 그룹의 브레인인 고 가쓰미는 재일조선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2금융권 회사에 입사해 불법적인 일을 하다가 범죄에 가담한다. 


저자는 일본의 어엿한 시민이고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도 내는 재일조선인을, 단지 그들의 선조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본 사회의 문화가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같은 거대한 범죄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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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
케이트 샤츠 지음, 미리엄 클라인 슈탈 그림, 이진규 옮김 / 티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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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나요?" 1985년 미국 뉴욕 한복판에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타난 여성 예술가 집단 '게릴라 걸스'가 남긴 말이다. 당시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겨우 5퍼센트만이 여성 작가의 것이었고, 85퍼센트가 여성의 누드화이거나 여자 조각상이었다. 이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술계 내부의 여성 혐오와 차별을 고발하고 폭로하고 있다. 이들이 30년 넘게 활동했다는 사실보다도, 30년이 지나도 미술계 내부에 '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에는 게릴라 걸스를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의 이야기 40편이 담겨 있다. 사포나 공자보다도 앞선 시대에 작품을 남긴 세계 최초의 작가를 아는가. 기원전 2285년에 태어난 메소포타미아의 왕녀이자 제사장이자 시인이자 교사였던 엔헤두안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의 준코 타베이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 우간다의 카샤 재클린 나바게세라는 언제든 살해당하거나 처벌당할 위협을 느끼면서도 고국에서 LGBT 인권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가 에니악이라는 사실은 유명하지만, 에니악을 작동하고 관리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다. 


이 책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남극대륙까지, 기원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아쉽게도 이 중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책 뒷부분에 미처 다루지 못한 인물로 선덕과 유관순, 나혜석의 이름이 오른 게 전부다. 일본 여성도 있고 중국 여성도 있는데 한국 여성은 왜 없을까.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 이 책에 한국 여성이 나온다면 누가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다(벌써 몇몇 이름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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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졔 2018-04-1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히든피겨스가 생각납니다. 흑인이라 차별받고, 여성이라 곱절로 고통받지만 엄청 멋있게 일하고 인정받거든요. 그나마도 “숨은”영웅이 되고 말지만ㅠ 꼭 읽고싶은 책이에용!

키치 2018-04-16 10:24   좋아요 1 | URL
히든피겨스 넘 멋있죠!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ㅎㅎ 히든피겨스 좋아하신다면 이 책도 엄청 마음에 드실 것 같아요. 강추합니다 :)
 
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 지음 / 동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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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시스 젠더'라는 말을 배웠다. 시스 젠더는 '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sex)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이 말을 배우며 자신이 여성 아니면 남성인 줄 알고 사는 사람과,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을 분리해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체험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신체적 성별에 따른 성별 정체성이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부정되는 세상은 얼마나 부당하고 불평등한지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 교수의 에세이집 <배움에 관하여>는 성 정체성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성 정체성을 비롯해 성별, 피부색, 국적, 장애 등을 이유로 사회로부터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 관한 학문적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된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함을 목도하며 여러 의문을 떠올린다. 여성은 왜 가정이 생기면 남성과 달리 일이나 공부를 포기하길 강요받나. 성소수자는 왜 사회로부터 합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나. 인간은 왜 자신이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장애인에게 편견 어린 시선을 보내나... 


이 책에서 저자는 교수로서 가르치는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학자(學者)로서 학문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우는 자세를 취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모든 생명은 죽는다'는 명제밖에 없다. 기독교 신자들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는 성서에도 잘못된 내용이 많이 있다. 저자는 (기독교 신학자로서는 대담하게도) 성서가 남성 중심적 인간관 및 세계관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며, 성서 곳곳에 여성 혐오 및 여성이 집단 성폭행의 대상으로 주어지는 대목이 나옴을 지적한다. 저자는 성서를 억압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반면 해방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성서에서 억압의 요소를 배제하고 해방의 요소를 살리는 것이 오늘날의 신학자 및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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