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과 잿빛의 세계 1
이리에 아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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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과 잿빛의 세계>는 마법사 가족의 일원인 여자아이 란이 지방도시 하이마치(일본어로 '잿빛거리'라는 뜻)로 이사를 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마법 판타지 만화다. 란의 가족은 모두 네 명이며, 가족 모두 마법사다. 엄마는 사악한 세력을 봉인한 문의 파수꾼으로, 임무가 워낙 막중하다 보니 집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못한다. 아빠는 사랑하는 아내가 단신 부임 중인 관계로 본의 아니게 독수공방 신세다. 오빠 진은 터프한 성격에 말수도 적지만 어린 여동생 란을 살뜰히 돌보고 집안 살림도 잘한다. 가족 모두 마법을 쓸 줄 아는 것만 제외하면 사이좋고 화목한 인간 가정의 모습과 썩 다르지 않다.


란은 또래 친구들보다도 한참이나 키가 작아서 땅꼬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사실 란에게는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머리만큼 큰 운동화를 신으면 순식간에 몸이 커져서 매력적인 성인 여성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책임감 강한 오빠 진은 동생 란이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속마음은 아이인 채로 동네를 누비다가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까 봐(또는 큰일이라도 벌일까 봐) 걱정이 되어 운동화가 보이는 족족 숨기기 바쁘다. 말리면 더 하고 싶은 어린애 심보를 간직한 란은 진이 힘들게 숨겨 놓은 운동화를 열심히 찾아서 신고 어른으로 변신해 자기만의 모험을 떠난다. 


1권에서 란은 자신의 마법 능력을 활용해 하늘을 날기도 하고, 고급 맨션의 최상층에 사는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마을 축제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도와주기도 한다. 엄마가 오래 집을 비우고 있는 데다가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외로운 란에게는 즐거운 일탈이지만, 동생이 위험에 처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진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은 성장이다. 


이리에 아키의 작품을 처음 읽는 것이고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도, 설정이 흥미롭고 이야기 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무리 없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시원시원하고 환상적인 그림체도 마음에 든다. 19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있으나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이리에 아키의 다른 작품으로는 <군청학사>, <메아리의 골짜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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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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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책에서 소개되지 않았다면 이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을 듯. 추리소설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인간의 심리 갈등과 가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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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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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에 소개되기 전까지는 이 책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 소개된 이후 판매 순위가 급상승한 걸 보면 나 같은 독자가 많은 듯하다. 


에릭 무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대학 강사인 아내 메러디스, 중학생인 외아들 키이스를 부양하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아버지는 파산하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죽고, 형은 변변치 못하고, 여동생은 병으로 죽었기에 에릭은 지금의 가정을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가정으로 만들고 싶었고 대체로 성공한 듯 보인다. 아들 키이스가 마을에서 실종된 소녀 에이미의 유괴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기 전까지는. 


에이미가 실종되기 전날, 에이미의 부모는 아르바이트로 베이비 시터 일을 하는 키이스에게 에이미를 맡겼다. 에릭은 피곤하다며 먼저 잠든 아내를 대신해 키이스의 귀가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귀가하기는 했지만 전화로 먼저 알렸기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에이미가 실종되고 키이스가 용의자로 지목되자 에릭의 눈에 키이스의 모든 것이 수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키이스의 아버지로서 키이스를 감싸고 변호하지만, 속으로는 키이스의 발언이며 행실이며 모든 것이 미심쩍어 보이는 에릭. 결국 에릭은 자신의 의심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다. 


어린 여자아이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추리 소설, 범죄 소설이지만,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아버지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그린 심리 소설, 가족 소설의 면모 또한 강하다. 만약 내 자식이 범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면 나는 내 자식이 범인이 아니라고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범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면 나의 부모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백 퍼센트 신뢰하며 변호해줄까.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를 건드린,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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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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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읽었을 때만 해도 내가 프레드릭 배크만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베라는 남자>가 재미있는 소설인 건 인정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기에 <오베라는 남자>의 큰 성공 이후 연이어 출간된 후속작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출간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최신작 <베어타운>을 읽고 홀딱 반해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전부 구입해 읽고 있다(그래봤자 국내에 출간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다섯 권에 불과하지만).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프레드릭 배크만이 2014년에 발표한 작품이다(국내에서는 2016년에 출간되었다). 주인공 브릿마리는 '여자 오베'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까다롭기 그지없고 사회성이 부족한 63세 할머니다. 처음엔 시시콜콜 흠잡기 일쑤고 꽉 막힌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브릿마리가 답답했다. 안 그래도 바쁜 직업소개소 직원을 들들 볶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도 꼴보기 싫었다. 


그러나 브릿마리가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고부터는 조금씩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과 부모의 냉대, 좋아했던 남자의 배신, 남편의 외도 등을 잇달아 겪는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우리는 브릿마리가 자기를 먹여 살려줄 남자를 만나길 기도해야 해. 안 그러면 쟤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길바닥에서 살아야 할 거거든.", "내가 죄가 많아서 그런 애를 낳았지." 같은 끔찍한 말을 들으며 자란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꽉 막히고 결벽증적인 성격이 되지 않을까(물론 이게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가 될 순 없지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브릿마리는 직업소개소에서 구해준 일자리를 찾아 '보르그'라는 쇠락 직전의 변두리 마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된다. 가족과 남편, 집과 살림밖에 몰랐던 육십 대 여인이 삶의 나락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라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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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서 두근두근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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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사과일까?>로 제6회 MOE그림책대상 1위, 제61회 산케이아동문화상 미술상 등을 수상한 일본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타케 신스케의 <좁아서 두근두근>이 출간되었다. 좁은 공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좁은 곳 마니아'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애정해 마지않는 좁은 공간들을 소개한다. 좁은 가게, 좁은 옷, 좁은 엘리베이터, 좁은 계단 밑, 좁은 차 안, 좁은 잠자리, 좁은 회전문 등등 너무 좁아서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던 좁은 공간의 매력과 의미를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저자는 매점이나 복권 판매대처럼 작은 가게에 빼곡하게 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주인이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동경하는 마음이 든다고 고백한다. 하루 종일 그런 좁은 곳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아무래도 편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구조 변경'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푹신한 방석과 담요를 의자 위에 깔아두었다든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두었다든가(가게 주인이 손님이 오는지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연예인 사진을 보며 혼자만의 환상을 즐기는 중이라든가 ㅎㅎㅎ). 





저자의 상상은 이런 '망상'으로까지 이어진다. 매점이나 복권 판매대 같은 작은 가게는 사실 1인용 탈출정으로, 지구가 위험해지면 일제히 이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ㅎㅎㅎ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ㅎㅎㅎ 이 밖에도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글과 일러스트가 한가득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김중혁 작가님과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두 분이 협업하면 어떤 '케미'가 터질지 궁금하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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