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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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를 보기 위해 마블 시리즈를 섭렵할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 시리즈에 이토록 빠질 줄 몰랐다. 재미없으면 언제라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언 맨>부터 하나씩 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열여덟 편의 마블 시리즈 영화를 섭렵한 후에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를 보기 위해 며칠이 멀다 하고 영화관을 드나들었다(영화를 안 보는 시간에는 유튜브 영상 보고, 트위터 인스타 텀블러 픽시브 보고 ㅋㅋㅋ). 


<북유럽 신화>도 읽었다. 마블 시리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토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로키이므로 <토르> 시리즈의 원작이자 로키의 원형을 알 수 있는 <북유럽 신화>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한 대로 이 책에는 <토르>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인 토르, 로키, 오딘 등의 이야기가 넘칠 만큼 나온다. 놀랍게도 북유럽 신화에서 로키는 오딘의 아들이 아니라 의형제이며, 로키와 토르는 친구 사이다. 아스가르드의 여전사 시프는 토르의 친구가 아니라 아내이며, 로키 역시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다.





<프레이야의 이상한 결혼식>은 토르-로키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어느 날 토르의 망치 묠니르가 사라지고, 토르는 로키를 의심한다(답정로키 ㅋㅋㅋ). 로키는 오해를 풀기 위해 범인을 찾다가 오거들의 왕 스림이 묠니르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묠니르를 돌려받는 대신 프레이야를 신부로 보내기로 한다. 프레이야는 이를 거절하고, 로키는 프레이야 대신 토르를 신부처럼 분장시켜서 거인에게 보낸다는 아이디어를 낸다(왜 굳이 토르를 ㅋㅋㅋ). 





울면서 신부 분장을 한 토르. 하지만 누가 봐도 곱디고운 여신이라기에는 체격이 우람한 데다가, 결혼식 중인 신부답지 않게 먹성이 좋아서 황소 한 마리에 연어 통구이 일곱 마리, 케이크, 패스트리까지 다 먹어 치운다. 토르가 그릇을 비울 때마다(ANOTHER!!!) 진짜 프레이야가 맞냐며 의심하는 스림에게 로키가 둘러대는 말이 또 재미있다. 이 이야기를 실제 배우들의 연기로 보고 싶은데 영화화되는 일은 결코 없겠지? (제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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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LL 시리즈
다카도노 마도카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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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16년에 개봉한 <고스트 버스터즈>를 뒤늦게 봤다. 흥행 성적도 좋지 않고 악평도 적지 않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일단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좋고, 내 친구 같고 언니 같은 여성들이 다 같이 총 들고 씩씩하게 거리로 나가서 유령을 퇴치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보기 좋았다. 남자만 잔뜩 나오는 (알탕) 영화에 고명처럼 등장하는 멍청한 미녀 역할을 크리스 헴스워스가 맡은 것도 탁월했다. 이런 즐거움을 여태껏 남자들만 누려왔다니!! (이번 주에 <오션스 8> 꼭 봐야지 ㅎㅎㅎ)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꾼 것만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가 <고스트 버스터즈>라면, 소설은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이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콤비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꾼 이 소설. 전체적인 내용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세부 설정 - 인물의 옷차림이라든가 취미라든가 - 도 함께 바뀌어 신선한 재미가 더해졌다. 원작이 묵직한 분위기의 정통 추리 소설이라면,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은 가벼운 분위기의 라이트 노벨(을 연상케 하는 소설?)인 점도 다르다. 


추리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탐정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 대목인데, 이 단서가 남성인 셜록은 알아채기 힘든, 여성인 셜리만이 알 수 있는 단서라는 점이 좋았다. 여성 탐정, 여성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작가만의 새로운 여성 탐정 캐릭터를 창조할 수도 있는데, 남녀 불문하고 최고의 탐정 캐릭터로 손꼽히는 셜록 홈즈의 성별을 굳이 바꾸다니. 이 당돌함이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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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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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건드리는, 짧지만 강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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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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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조건만 보면 루시 바턴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뉴욕에서 괜찮은 집 한 칸을 마련했고, 작가로서 괜찮은 출발을 했으며,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두 딸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하지만 맹장수술을 받고 병간호하러 온 어머니를 본 순간, 루시의 단단했던 마음은 한꺼번에 무너져내리고 만다. 그리고 밀려든 과거의 기억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이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병간호를 받으면서 겪는 심경의 변화를 그린다.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출신인 루시 바턴은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부부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다. 루시의 부모는 변변한 집 한 채는커녕 고정 수입이 나오는 직업도 가지지 못했다. 그로 인해 루시는 어린 시절 내내 배를 곯기 일쑤였고, 잠도 남의 집 헛간이나 트럭에서 잤다. 


그런 루시에게 유일한 낙이자 삶의 희망은 책 읽기였다. 가난하고 행색이 별로인 자신과 놀려고 하는 친구가 없어서, 집에 가봤자 장난감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어서, 루시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학교 성적이 좋았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루시의 어머니는 루시의 성공을 대견하게 여기지 않는다. 루시가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 가족을 버리고 부모를 배신한 거리고 루시를 비난한다. 루시가 작가로 데뷔해 좋은 반응을 얻어도 관심조차 없다. 루시가 하는 말은 잘난 척으로만 듣는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루시 바턴의 경우처럼 부모가 자식의 성공을 바라기는커녕 질투하고, 자식은 그런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 병간호를 하러 와서까지 루시를 바로 보려 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이었다."라고 담담히 토로하는 루시가 어찌나 가엾던지.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건드리는, 짧지만 강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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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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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전쟁에 참가한 여성들의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면, <세컨드핸드 타임>은 전쟁이 끝나고 이어진 냉전 이후 공산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확산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철저한 '호모 소비에티쿠스'였다. 호모 소비에티쿠스란 소비에트 시대의 발상, 사고방식, 행동 등이 뿌리 깊이 체화된 소비에트 시대의 인간을 일컫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다시피 했고, 저자는 어릴 때부터 '옥차브랴타(만7~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당 교육, 인성 교육 등을 지도하던 단체)' 단원으로 활동했다. 


차세대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가던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직후다. 기록보관소가 개방되고, '소비에트 러시아에 거주하는 1억 명 중 9,000만 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 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 ... 주변 수백여 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해야 한다.' 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레닌, 트로츠키 등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저자는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로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이후 저자처럼 소비에트 체제의 진실을 깨닫고 실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자와 달리 소비에트 체제를 여전히 지지하며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삶을 추구한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진 이후 급물살을 타고 들어온 자본주의에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자유를 주었지만, 주어진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책을 읽고 연극을 보고 인생을 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돈 버는 법, 돈 모으는 법, 돈 쓰는 법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선 줄곧 모욕을 당해왔던 '속물근성'이 환영받고 장려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포이자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그 헝겊 조각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며 저를 설득시키려고 해요. 사람은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요. 삶은 돈과 어음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일 뿐이고, 자유가 곧 돈이고 돈이 곧 자유라는 말들을 하지요. ... 아무튼 전 제 어린 손주들이 불쌍해요. 가여워요.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매일매일 세뇌당하고 있으니까요. 전 이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공산주의자였고 앞으로도 공산주의자로 남을 겁니다. (69쪽) 


비슷한 일이 지구상에 남은 사실상 유일한 공산국가인 북한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공산주의 이외의 사회 체제를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북한 사람들이, 갑자기 자본주의가 유입되고 거대 자본의 횡포를 맞닥뜨렸을 때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소련이란 나라는 여성용 부츠와 휴지가 부족해서, 오렌지가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지만, 소련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러시아는 베르사체와 알마니가 만들어낸 헝겊 조각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생각을 퍼뜨린다고, 이런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던 유리예브나의 말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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