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저서 <세컨드 핸드 타임>에 이렇게 썼다. "1990년대 우리는 행복했다. 하지만 그때의 순진함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린 그때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공산주의는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후 20년이 흘렸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것은 체호프의 소설 같은 인생, 아무 역사가 없는 인생이었다."
소비에트적 인간,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자처하는 알렉시예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소비에트 지지자였다. 마찬가지로 열성적인 소비에트 지지자인 부모 슬하에서 자란 그는 '옥차브랴타(만7~9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당 교육, 인성 교육 등을 지도하던 단체)' 단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피오네르', '콤소몰' 등을 거치며 차세대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았다. 그랬던 알렉시예비치가 '진실'을 알게 된 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행된 직후다. 개혁이 시작되고 개방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정부의 기록보관소가 열리고 주요 정부 인사들의 말과 글이 공개되었다.
그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소비에트 러시아에 거주하는 1억 명 중 9,000만 명은 데려가야 한다. 나머지 1,000만 명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죽여야 한다.', '사로잡은 부농과 부자들 중 적어도 1,000여 명은 교살해야 한다. ... 주변 수백여 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도록 해야 한다.' 그때 이미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알렉시예비치는 레닌,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으며, 이들의 실체를 모른 채 이들을 흠모하고 숭배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자처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축이 되는 두 청년 안드레이와 피예르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볼콘스키 공작의 맏아들인 안드레이는 잘생긴 외모와 괜찮은 집안 배경을 갖춘 데다가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운 좋은 사내다. 안드레이의 소원은 현재 유럽 전역을 호령하고 있는 나폴레옹처럼 군공을 쌓고 명성을 드높여 '러시아의 나폴레옹'이 되는 것이다. 마침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연합군이 맞붙는 전쟁에 안드레이는 쿠투로프 장관의 부관 자격으로 참전하기로 되어 있어 안드레이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기세 등등하게 나선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안드레이는 큰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프랑스군의 포로로 잡힌다. 포로수용소의 환자 신세로 전락한 안드레이는 그토록 흠모했던 나폴레옹을 실제로 만나고 나폴레옹의 목소리까지 듣지만, 영롱함을 넘어 신성함까지 느껴질 줄 알았던 나폴레옹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이는 나폴레옹이 실제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나폴레옹을 대하는 안드레이의 마음이 진작에 식어버린 탓이다. 얼마 전까지 전쟁을 열망하고 전쟁을 사랑했던 이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가 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 내면이 바뀌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안드레이)는 이 사람이 자기가 동경하던 영웅인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순간은 나폴레옹도 흘러가는 구름이 떠가는 높고 무한한 하늘과 자기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작고 하찮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옆에 누가 서 있건, 자기에게 무어라고 말하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자기 옆에 멈춘 것이 기뻤고,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도움을 주어, 이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져 실로 훌륭하게 생각되는 삶으로 돌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1권, 560쪽)
피예르는 안드레이의 친구이자, 안드레이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전쟁을 열망하는 청년이다. 안나 파블로브나 세레르가 주최한 야회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피예르는 별 볼 일 없는 뜨내기에 불과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요, 변변한 직업조차 없는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피예르가 아버지 베주호프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실이 사교계에 알려지면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피예르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고 줄을 선다. 이 중에 승자는 바실리 공작이다. 바실리 공작의 딸 옐렌을 아내로 맞은 피예르는 이때만 해도 자신의 삶이 완벽하고,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옐렌의 부정이 드러나고 결투 사건을 겪으면서 피예르는 자신의 인생에 큰 회의를 품게 되고 급기야 프리메이슨, 영지 농민 해방 사업 등에 빠진다. 강력한 부성(父性)이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 더 높은 존재, 더 거룩하고 원대한 목적이나 사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쏟는다. 황제가 떠난 모스크바에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던 피예르는 군대에 들어가 전장으로 갈지, 때를 기다릴지를 고민하다 전장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피예르는 전장에서 프랑스 군의 포로로 잡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안드레이가 전쟁에 대한 회의와 영웅에 대한 실망을 느꼈다면, 피예르는 프리메이슨과 자선 활동, 사교 활동과 연애로도 얻지 못했던 평안과 자기 조화를 얻는다. 그리고 그 무엇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했던 이 '호모 두비우스(Homo Dubius)'는 마침내 나타샤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고 안식을 취한다.
예전에 괴로워하며 끊임없이 찾아던 인생의 목적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그(피예르)가 추구했던 인생의 목적은 현재 일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느껴졌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자유에 대한 완전하고 기쁜 의식을 주었고, 이것이 지금 그의 행복이었다. (4권, 320쪽)
<전쟁과 평화>는 나에게 지난한 전쟁의 기록을 담은 전쟁 소설 또는 역사의 한 부분을 문학으로 재구성한 역사 소설이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대사건을 통해 자신들을 둘러싼 '아프락사스'를 깨고 나온 두 청년의 일대기를 그린 성장 소설로 읽힌다.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을 안드레이와 피예르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과 어리숙함을 깨닫고 젊은 날의 번민과 방황을 끝맺으며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간다. 이는 마찬가지로 젊음에 취해 분수를 모르고 자신만만하게 굴다가 이리저리 치이고 깨지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독서와 글쓰기, 명상과 운동에 천착하게 된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죽음보다 크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사건은 없다. 전쟁이 끝나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져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계속되고 인간은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전쟁과 평화>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이 대작의 가치는, 평화를 모르고 전쟁을 추구했던 두 청년이 겪는 고통과 성장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준다는 데 있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