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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평점 :

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1946년 영국 런던. 소설가인 모리스 벤드릭스는 밤 늦은 시각 술집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옛 친구 헨리 마일스와 재회한다. 사실 모리스는 헨리를 대하는 것이 불편한데, 그럴 만한 것이 모리스가 전쟁 중에 헨리의 아내 세라와 외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헨리는 모리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의 아내가 요즘 누구를 몰래 만나는 것 같은데 고위 공무원인 자신의 체면상 직접 알아보기가 힘드니 모리스가 대신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모리스는 헨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실은 모리스도 세라의 근황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모리스와 세라는 헨리 몰래 불타는 연애를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세라가 이별을 고한 이후로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모리스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세라의 뒤를 캐고, 이 과정에서 세라의 일기장을 건네 받으면서 세라가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1951년에 발표한 소설 <사랑의 종말>은 2015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뽑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그레이엄 그린의 또 다른 대표작인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 등과 함께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나 역시 종교 소설이라는 문구에 혹해 읽게 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로맨스, 그것도 불륜에 관한 소설이라서 의아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은 세라의 일기 내용을 알게 되면서 풀렸다. 세라와 모리스는 헨리의 눈을 피해 불 같은 사랑을 하던 시절에 집 안에서 사랑을 나누다 폭격을 맞은 적이 있다. 폭격 당시 금방 정신을 차린 세라와 달리 모리스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모리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세라는 "이 남자를 살려주기만 하면 뭐든 하겠다. 이 남자와의 사랑도 포기하겠다."라는 내용의 기도를 했다. 그 후 (세라에게는) 기적처럼 모리스가 깨어났고, 세라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리스와의 사랑을 포기했다. 사연을 알게 된 모리스는 세라의 곁으로 달려간다.
즉, 세라가 자신의 사랑을 걸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모리스를 살렸기 때문에 이 소설이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는 것인데, 기도의 진짜 목적은 신에게 부탁을 하거나 신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이 무엇이든 그것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세라의 기도나 그 이후의 행동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그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뽑히고 기독교 서적으로서도 인정 받는 걸 보면 내가 가진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얕은 것을 수도 있고... 몇 번 더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