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와 오야마 1
아이다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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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때는 절대 안 봤을 것 같은 만화. 다 읽고 보니 이보다 설정과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제목을 찾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ㅎㅎ


대대로 대중연극을 해온 집안의 아들인 키타가와 엔노스케. 가부키의 여성 역을 의미하는 '오야마' 역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서 아직 어린데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공연을 포기하고 집을 나온 엔노스케는 공원에서 혼자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말을 건다. 알고 보니 그 남자, 이타미 코이치는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삶의 의욕을 잃은 카페 마스터였고, 갈 곳이 없는 엔노스케는 카페 일을 거드는 대가로 이타미의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두 남자가 한 집에 살면서 친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BL 요소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완결까지 다 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만화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겪고 있는 엔노스케와 자식을 잃은 홀아비 이타미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유사 가족물인데, (원)가족은 싫고 (새)가족은 원하는, 그러나 결혼은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일본풍을 대표하는 대중연극 배우, 다른 한 사람은 서양 음식을 주로 만드는 카페 마스터로 설정해 일본풍과 서양풍을 대비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에피소드를 나열한 점도 흥미롭다. 엔노스케는 이타미가 만들어주는 빵과 오므라이스를 먹고, 이타미는 엔노스케가 연기하는 대중연극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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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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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아프로 헤어 때문에 이 분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읽어보니 문장이 술술 잘 읽히고 문제 의식과 접근 방법에도 공감이 간다. 저자의 첫 책인 이 책은 1965년생인 저자가 아사히신문이라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오십 살에 퇴사를 감행한 과정을 담고 있다. '퇴사'를 주제로 한 책이지만 퇴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계속 회사에 다닐 예정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퇴사를 결심한 건 마흔 살의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신문 기자로 정신없이 일했던 저자는 선배들이 마흔 살이 될 때마다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르셨네요."라고 가볍게 말했다. 막상 자신이 마흔 살이 되자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 '회사 인간'으로서 일만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 안하고 놀고 먹을 정도로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비혼 비출산으로 의지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와중에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후배에게 업무 명령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보 사건이 두 번이나 일어나며 이 회사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커졌다. 그래서 조금씩 퇴사를 준비했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회사 다니는 게 즐거워져서 퇴사 계획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씀씀이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 근데 이게 의외로 즐거웠다. 저렴한 식재료를 사려고 대형 마트 대신 전통 시장에서 장을 보고, 비싼 여가 생활을 즐기는 대신 집 근처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발적 탈원전을 실천하면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전기 제품을 처분했다. 그랬더니 구입하는 식재료의 양도 줄고, 옷도 줄고, 물건도 줄었다. (자발적 탈원전 생활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른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 자세히 나온다.) 예전엔 돈을 많이 벌어도 쓸 돈이 늘 부족했는데 이제는 돈이 남아돌아 걱정(?)이다.


이 책은 일이나 회사를 부정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일을 좋아한다.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십 년이나 더 다녔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 겪은 어려움(주택 계약, 세금 납부, 실업 급여, 건강검진 등)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일만 하면서 사는 건 너무 아깝다. 회사에만 의존하면 자신의 진짜 능력이나 가치를 알기 어렵다. "매달 월급이 입금되는 데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덧, 저도 모르게, 일단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18쪽) 요즘 내 무기력, 우울의 원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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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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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문보영 시인님도 미니멀리스트구나 싶어 반가워하며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니 초콜릿 포장지나 고무줄이 늘어난 바지처럼 '설레지 않아서'가 아니라 버려야 해서 버린 물건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작심하고 물건을 버린 이야기는 아니고, 시인인 저자가 그날 그날 버린 것들에 대한 단상을 기록한 일상 산문집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쓰다 만 노트나 애착 베개처럼, 더는 필요하지 않지만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나에게도 많이 있다.


근데 이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불안해서 버린다니. 보통은 불안해서 못 버리거나, 없어도 불안하지 않아서 버리지 않나. 불안해서 버리는 마음이란 뭘까. 일단 이 책에 나온 불안해서 버린 사례로는 진척이 없는 새 시집 원고가 있다. 마감 기한 전까지 원고를 다 쓸 자신이 없고, 다 쓴다 해도 그렇게 벼락치기로 쓴 시들을 자랑스럽게 여길 자신이 없다고 판단한 저자는 과감하게 원고를 엎었다. 그랬더니 그 전까지 불안감, 죄책감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해졌다. 세상 천지가 시 쓸 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억지로 다녔던 학원을 끊었던 기억과도 비슷했다. 학원을 끊었더니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늘어나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고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


버렸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도 있다. 어머니의 수술을 앞두고 저자는 가족들과 수술과 여행의 공통점을 나열하며 불안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수술 당일이 되자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고, 이대로 영영 어머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어머니도 금방 저자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저자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의 소변을 컵에 받아 버리는 일에는 익숙해져도, 어머니와의 이별이라는 생각 자체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버려도 남아 있는 마음들을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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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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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웠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선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 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악.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재단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선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이라는 확신은 더더욱 안 든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들이 일관되게 담고 있는 생각과도 비슷하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의 두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왕따 사원과 낙하산 팀장대리로 만나 회사 생활을 하다가 고등학생 시절 경애가 운 좋게 살아남은 화재 사건에서 상수의 친한 친구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전에 발표한 장편소설 <복자에게>에서는 법정에서 욕을 해서 징계성 좌천을 당한 이영초롱이 어릴 때 잠깐 살았던 제주로 돌아가 옛 친구 복자와 재회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영초롱은 자식들을 책임지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부모와 불의의 편을 드는 사법부를 비난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에 자신을 환대해 주었던 친구 복자 앞에선 자신 또한 무정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30대 여성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계약직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 일을 맡는다는 건 영두에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는데, 강화에서 태어나 지금도 강화에서 사는 영두가 중학교 때 잠깐 창경궁이 위치한 종로구 원서동 낙원하숙에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두는 오랫동안 그 시절을 자신의 흑역사로 여기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을 하면서 과거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서는 기억보다 훨씬 정확한 재료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 관련된 인물 또는 장소, 물건 등을 다시 대면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의 기억, 과거의 인물, 과거의 장소와 다시 대면하는 과정에서 영두는 과거의 자신이 자기만의 서사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 시절의 영두는 아직 어렸고, 모르는 게 많았고,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관심과 호의를 무례나 무시로 받아칠 필요는 없었다. 당시 낙원하숙의 주인이었던 문자 할머니는 생판 남인 영두를 친손녀처럼 예뻐해주고 돌봐줬다. 그 때는 그게 별 일 아니라고, 오히려 부담스럽고 굴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문자 할머니의 마음은 지금의 영두가 친구 은혜의 딸 산아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이제 와서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갚을 길이 없는 그 마음에 대해, 영두는 글쓰기로 보답하고자 한다. 예산과 일정 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청경궁 지하 발굴 공사를 강행하는 한편으로, 이제는 빈 집이 된 낙원하숙을 드나들고 그 시절 함께 하숙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모르는 (대온실과 문자 할머니의) 역사의 공백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일제의 잔재인 대온실과 잔류 일본인의 역사는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소설 속에서 영두가 공사를 강행하지 않고 문자 할머니의 과거를 들추지 않도록 말리는 사람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두가 보기에 실체를 바로 보지 않겠다는 건, 바닥이 튼튼한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다. 그 건물은 금방 무너지거나, 무너지지 않아도 불안하다.


무너지지 않아도 불안하다, 라고 쓰면서 나는 어쩐지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떠올랐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친일(또는 반민족 행위자. 둘 다 마음에 드는 단어는 아니지만 대체할 말을 몰라서 그냥 쓴다)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라 꼴이 이렇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건국 초기에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한국 근현대사 시간에 필수적으로 배우는 내용인데, 당시 그 내용을 배울 때는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 이렇게 큰 후폭풍으로 밀어닥칠지 몰랐다. 지금으로서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 있는 친일, 반민족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 더 시급하게 느껴진다. 창경궁 대온실 바닥을 들어내듯.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 봉투를 열어 헤치듯.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 글의 도입부에 쓴 "(각자의 사정이 있으므로)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결론"과 배치된다. 이 사람은 이래서 봐주고, 저 사람은 저래서 봐주고, 그러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된 건지도. 근데 왜 항상 어떤 사람들만 봐주고, 어떤 사람들은 안 봐주는 걸까. 탄핵을 당한 전 대통령이 아직도 관저에 있는 게 말이 되나. 탄핵 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는 게 말이 되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흘러도. 죄만 밉고 사람은 밉지 않다면, 그만한 죄가 아니거나 미움 이상의 사랑을 품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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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머
모래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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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리와 그를 찾는 모험>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모래의 장편소설 <드리머>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철과 여정, 필립, 명우는 스무 살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이들은 여느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은 널널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필립의 옥탑방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거나 술을 마시며 남아 도는 시간을 죽인다. 문제의 여름 날에도 언제나처럼 기철과 여정, 명우가 필립의 집으로 모였다. 남들보다 늦게 도착한 명우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영양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여정과 그런 여정의 헛소리를 별 대꾸도 없이 듣고 있는 기철과 필립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짜증이 난 상태로 부엌으로 간 명우는 술잔을 찾기 위해 싱크대 위 찬장을 열었다가 낡은 수첩 한 권을 발견한다. 부엌 찬장 안에서 수첩을 발견한 것도 예상 외의 일이었지만, 특이한 만듦새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열어본 내지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그림 한 장이 있었다. 그 순간 필립이 다가와 수첩을 채갔고, 명우는 천만 원을 준대도 수첩을 안 판다는 필립의 말을 듣고 더욱 더 호기심을 느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첩을 가지겠다는 명우와 수첩을 내주지 않겠다는 필립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자, 보다 못한 기철이 수첩에 얽힌 비화를 들려준다. "그 수첩, 필립네 할머니 거였대. 가리교라고, 그 중국 사이비 종교 있잖아."...


이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인 네 명의 청춘들이 수첩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이다. 조폭 출신의 아버지를 둔 명우는 친구들 중에 가장 유복하고 좋은 대학에도 다니지만,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이런 게 인생이라면 계속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수첩을 발견한 후로는 공포가 희열이 되고, 불안이 사라지고, 세상의 비밀을 다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급기야 명우는 수첩을 손에 넣기 위해 기철과 여정을 이용하고, 그렇게 수첩과 관련을 맺게 된 네 사람의 남은 인생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다른 하나는 수첩 자체에 얽힌 비밀이다. 소설 속 문제의 종교 '가리교'는 도교 연단술과 불교 밀교 수행, 지역 샤머니즘, 기독교 신앙까지 각종 다양한 종교적 레퍼런스를 섞어서 만든 잡탕 신흥 종교다. 교주인 렁왕웨이는 예지능력과 치유 능력, 텔레파시 등 갖가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면서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신도들을 모았다. 초능력이니 신흥 종교니 하는 걸 누가 믿나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숟가락을 구부린다든가, 꿈으로 태아의 미래를 알 수 있다든가 하는 소리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문제는 초능력이나 신흥 종교 자체라기 보다는 그런 것들에 혹하는 인간들의 심리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혹하는' 심리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보여준다. 자기 삶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인간은 없고, 있다 한들 만족도를 200퍼센트, 300퍼센트로 늘리는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방법을 모르니까 보통은 돈이나 권력을 탐하는데, 돈이나 권력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누가 혹하지 않을까. 작가가 소설에 불교와 힌두 사상의 신비주의를 많이 담았다고 하는데, (나처럼) 잘 몰라도 충분히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오컬트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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