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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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년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계에 위치한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벌어진 내전에 휘말려 사상 초유의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수도원의 정원을 관리하는 캐드펠 수사는 평소와 다름 없이 텃밭을 일구고 약초를 기르며 조용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수사가 나타나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을 맡기고 떠난다. 고드릭이라고 이름을 밝힌 소년은 최근에 부모를 모두 잃었으며 수사가 될 생각은 없고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만 머무를 예정이라고 한다. 전쟁 중에 갑자기 나타난 소년의 정체를 수상쩍게 여기던 캐드펠은 오래지 않아 소년의 사연을 알게 된다.


얼마 후 스티븐 왕 파가 슈루즈베리 성을 차지하고, 성에 남아 있던 모드 황후 파 사람들은 전원 처형 당한다. 참수된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하는 임무를 맡은 캐드펠은 시신의 숫자를 세다가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티븐 왕 파 사람의 말에 따르면 처형 당한 사람의 숫자는 아흔넷인데, 시신의 숫자는 아무리 다시 세어보아도 아흔다섯이다. 처형으로 인해 다수의 시체가 발생한 틈을 타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있다고 생각한 캐드펠은 스티븐 왕 파 사람들과 수도원 사람들의 의심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과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의 대표작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제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개인적으로 제1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도 재미있었지만 중세 영국의 지명과 인명 등이 익숙지 않고 소설의 삼 분의 일 지점에 이르러 사건이 등장하는 탓에 초반에 몰입하기가 다소 힘들었는데,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지명과 인명 등이 익숙해졌기도 하고, 내전에 휘말린 수도원과 수수께끼 같은 소년의 등장, 무엇보다 스티븐 왕이 내전을 일으켜 모드 황후의 왕위를 찬탈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점 등이 흥미를 자극했다.


추가로 발견된 시체의 정체를 조사하던 캐드펠은 그가 스티븐 왕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다 현재는 도주 중인 전 행정 장관 윌리엄 피챌런의 향사이며, 그와 함께 성으로 잠입한 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동행도 죽었을까, 아니면 그가 바로 이 사건의 범인일까. 한편 일찍이 스티븐 왕 편에 선 메이즈버리의 젊은 영주 휴 베링어는 내전 중에 사라진 자신의 약혼녀를 찾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 온다. 캐드펠은 뛰어난 추리력과 엄청난 야심을 지닌 이 남자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간파하고 철저히 경계한다. 캐드펠과 휴 베링어 사이의 대결과 우정은 3권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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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 스티커 -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9
황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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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은서는 어느 날 같은 반 남학생 강민구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요즘 들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전부 자신이 가진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은서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반신반의 하면서 민구의 집까지 따라간 은서는 민구가 말하는 능력이 조그만 네임 스티커에 원하는 이름을 적고 화분에 붙인 다음 소원을 빌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된다. 른 사람이라면 허풍 좀 그만 치라고 했겠지만, 민구의 진지한 표정과 민구와 함께 사는 가족들의 반응을 보면 허풍은 아닌 것 같은데...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황보나 작가의 소설 <네임 스티커>는 평범한 중학생 은서가 비범한 능력을 지닌 민구와 친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민구의 능력을 알게 된 은서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사용해 보기로 하고 네임 스티커에 적을 이름들을 떠올린다. 아빠와 이혼하고 은서의 곁을 떠나간 엄마,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뭔가 어색한 루비 엄마, 남몰래 좋아하고 있는 친구 혜주, 혜주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은 친구들... 고민 끝에 은서는 이 중에 두 명의 이름을 적어서 건네고, 그 날 이후 은서는 자신의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질까 봐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한편 은서는 네임 스티커를 계기로 민구네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민구네 집 식구들과 친해진다. 은서네 집은 아빠와 (루비) 엄마, 은서, 동생 루비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루비) 엄마는 은서의 친엄마가 아니고 루비는 은서의 친동생이 아니다. 이러한 가족 구성에 내심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은서는 부모님과 같이 안 살고 할머니, 명두 삼촌(혹은 이모)과 함께 사는 민구를 보면서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친구라는 명목으로 나를 이용하고 휘두르는 친구보다는 진정으로 나를 위해주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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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자서전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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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엘라는 어머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엘라의 어머니는 수엘라를 낳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수엘라는 어릴 때 유모인 유니스 폴의 손에 컸지만, 유모를 어머니 대신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대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엘라가 사는 곳에는 아들만 교육시키고 딸은 교육시키지 않는 부모가 많았지만, 수엘라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인 수엘라 역시 남자애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수엘라는 학교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새로운 아내가 생기고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태어나면서 수엘라의 처지가 급격히 나빠진다. 새 어머니의 차별과 배다른 동생들의 냉대를 견디다 못한 수엘라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다른 지역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버지의 친구 무슈 라버트는 돈만 좋아했고, 그의 아내 마담 라버트는 마치 친엄마처럼 수엘라를 돌봐주고 아껴준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수엘라는 그들의 집을 떠나게 되고, 스스로 벌어 먹고 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남자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을 택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 <내 어머니의 자서전>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제목은 '내 어머니'의 자서전이지만, 읽어보면 주인공 수엘라 클로데트 리처드슨의 자서전에 가깝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수엘라의 어머니는 수엘라 자신도 본 적이 없고,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진 것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제목이 '내 어머니'의 자서전인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에 수엘라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기가 자기를 키웠으므로, 수엘라는 수엘라 자신인 동시에 수엘라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제목의 의미는 엄마 없는 소녀가 스스로를 키운 이야기, 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이 소설은 수엘라라는 소녀의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제국주의 시대의 피식민지 국가가 겪는 문제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와 아프리카 혈통을 물려받은 수엘라의 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백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내세워 백인들의 앞잡이로 일하며 원주민들을 수탈하고 유린한다. 원주민인 카리브계인 어머니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이유로 평생 고생하다 일찍 삶을 마감했다. 그들의 딸인 수엘라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느 인종, 어느 민족, 어느 계급으로 구분하는 데 연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수엘라의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수엘라는 여성인 자신의 몸을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도구 또는 재생산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까딱 잘못하면 자기 몸의 주인이 수엘라 자신이 아니라 그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큰 희생을 치르고 배운다. 이후 수엘라는 자신의 몸에서 여성성을 지우고 살아 보기도 하고, 여성성을 이용해 여러 남자를 농락하며 살아 보기도 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다른 소설 <애니 존>, <루시>와 연결된 이야기로도 보이지만, <애니 존>, <루시>에 비해 완성도가 훨씬 높고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도 있다. <애니 존>, <루시>를 먼저 읽고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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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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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편집 기사로 일하는 정연은 얼마 전 엄마를 잃었다. 정연의 엄마는 남편 없이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며 정연과 미연 자매를 키웠다. 장녀이고 비혼인 정연은 결혼 후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는 미연의 몫까지 열심히 엄마를 간병했다. 그래서일까. 정연은 엄마가 죽고 장례까지 다 치른 후에도 좀처럼 엄마를 보내지 못한다. 엄마가 혼자 살았던 집에 머무르면서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신발을 신고 엄마의 화장품을 바른다. 엄마가 해놓고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먹고, 엄마가 미리 만들어둔 육수로 칼국수도 끓인다. 정연은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긴 겨울을 보낸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는 엄마와 사별한 주인공 정연이 엄마의 죽음을 겪는 과정을 동지, 대한, 우수로 나누어 보여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의 장(章)에서 정연은 이제 막 엄마를 떠나 보낸 상태다. 정연은 엄마가 평생 일만 하느라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본 것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런 엄마가 마지막까지 가장 걱정한 대상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자신이었다는 것도 죄스럽다. 슬픔과 분노, 허무와 우울이 범람하는 이 시기를 정연은 기나긴 잠과 최소한의 음식 그리고 술로 보낸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을 보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한의 장(章)에서 정연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마지막 우수의 장(章)에서는 엄마의 삶을 반추하며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을 돌아보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종교도 없고 다음 생에 대한 믿음도 없어 보였던 정연은 목공소 주인인 영준의 과거 이야기를 들은 후 영준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죽은 소녀와 엄마가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승에서 만나 사랑했지만 먼저 저승으로 가버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죽음과 공존하는 삶을 산다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는 무겁고 어두운데, 소설의 분위기나 메시지는 조해진 작가가 그동안 발표한 작품 중에서 가장 밝고 희망적이라고 느꼈다. 특히 제목만 보면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조해진 작가가 2015년에 발표한 소설 <여름을 지나가다>와는 제목만 비슷할 뿐,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인생의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야기이고, 자신의 공간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점은 같지만, <여름을 지나가다>의 주인공이 몰래 드나들던 가구점에서 쫓겨나면서 절망적인 기분으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면, <겨울을 지나가다>의 정연은 스스로 엄마 집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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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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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톈홍은 음력 7월 15일 '중원절'을 맞아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인 타이완 중부의 외딴 시골 마을 용징에 돌아온다. 지금은 쇠락해 별 볼 일 없는 동네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이 지역에 개발 붐이 불어서 이주해 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톈홍의 아버지 천톈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딸 다섯 아들 둘을 둔 그는 평생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을 건사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타운하우스가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원혼이 떠도는 숲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인 탓인지, 톈홍의 형제 자매들은 단 한 사람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첫째 딸 수메이는 돈만 생기면 노름이나 사업으로 날리는 남편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둘째 딸 수리는 타이베이 시 공무원인데 매일 같이 진상 민원인들에게 시달린다. 셋째 딸 수칭은 타이완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이지만 유명 뉴스 앵커인 남편에게 학대를 당한다. 넷째 딸 쑤제는 여동생을 밀어내고 마을 최고 부자인 왕씨 집안 큰아들과 결혼했지만 거대한 저택의 작고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지낸다.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다섯째 딸 만메이와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무한한 애정과 지원을 받은 첫째 아들 텐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타이완 작가 천쓰홍의 장편 소설 <귀신들의 땅>은 천씨 집안 사람들의 일대기를 통해 타이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가족들이 원래 살던 구식 가옥을 떠나 최신식 타운하우스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족들은 새로 지은 건물인 데다가 모든 것이 현대식인 타운하우스로 이사 와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점차 이상한 소문들이 그들의 귀에 들어온다. 타운하우스 근처에 있는 대나무 숲에는 일본군에게 강간 당해 죽은 여자 귀신이 있다든가, 개천에는 짐승의 시체가 썩어서 내려 온다든가... 불안한 예감은 이들의 삶을 잠식한다. 어릴 때는 다들 예쁘고 잘났던 형제 자매들이 하나 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거나 제 명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이것들이 과연 귀신의 탓일까. 마을을 떠도는 귀신 이야기 대부분이 억울하게 죽은 여자들의 사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귀신이나 저주,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것들은 대체로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주의 사상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 위협과 폭력에 기인한다. 여성만도 아니다. 아들이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아들 취급을 못 받고 집에서 쫓겨난 톈홍처럼, 살아 있는 인간이지만 귀신처럼 숨어 있기를 강요 받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행복한 인간들의 세상이야말로 무시무시한 귀신들의 땅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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