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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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잡문'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저자는 '잡문'이라고 썼지만 저자의 글을 흠모하는 독자로서는 어느 글 하나 '잡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멀게는 이십 대 시절부터 가깝게는 최근까지, 대학 전공 시험에 제출한 시험지,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한 글, 타계한 지인을 추모하며 쓴 글 등 각기 다른 시점에 다른 목적으로 쓴 글을 모았을 뿐인데 저자 자신의 삶이 보이고 그 삶이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여겨질 만큼 치열해, 글 쓰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많지만 저자에게 영향을 준 스승, 선배, 친구, 후배들의 이야기도 많이 있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1980년대 후반생이기는 해도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할 정도로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생 때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도 읽고 신영복, 홍세화 같은 분들의 책도 열심히 읽었지만,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이분들의 존함조차 들어볼 기회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이분들의 업적이나 저술 활동 등이 어떤 식으로 전해질지(전해질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 (저자의 결혼식 주례를 선 리영희 선생님이 혼인서약문의 "나라에 공헌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문장을 "사회에 공헌할 것을 맹세합니다"로 수정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0년 뒤 지정될 국보, 보물이 있는가'라는 글도 인상적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유물, 유적은 100년 이상의 수령이 필요조건이다. 문제는 회화 분야에서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건축 분야에서는 그런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건축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한국의 건축이 예술품으로서 보다는 주택, 부동산으로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으로서 실용성이 있으면서, 부동산으로서 소유자에게 손해가 되지 않으면서, 문화재로서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그런 건축물이 한국에 과연 존재할까(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인데 앞으로 건축물을 볼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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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공죄 5
히라이 오하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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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2 세계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화제가 된 아야세가와 지로. 아야세가와를 스카우트하려는 감독들이 밤비즈로 찾아오지만, 아야세가와는 밤비즈를 이미 떠났고 다음 행보를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일단은 야구와 잠시 멀어져서 평범한 학생으로 생활하면서 대회를 치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려고 하는데, 밤비즈의 팀메이트였던 이가(이가라시 하루유키)가 뜻밖의 소식을 전하면서 아야세가와의 마음에 혼란이 생긴다.


오하시 히라이의 만화 <다이아몬드의 공죄>는 타고난 체격과 운동 감각을 지녔지만 자신 때문에 남들이 괴로워지는 건 싫은 천재 초등학생 야구 선수 아야세가와 지로의 이야기를 그린다. U12 세계 대회 우승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아야세가와의 진로를 걱정하지만, 정작 아야세가와 자신은 동네 소년 야구단 밤비즈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야구를 했던 시절이 가장 좋았고 그립다. 그러나 아야세가와의 재능과 가능성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띈 이상 그를 내버려둘 리 없고, 아야세가와 자신도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버린 듯하다.


5권에서 아야세가와는 마침내 밤비즈 탈퇴 이후의 진로를 정한다. 일단은 이가와 함께 아다치 피닉스에서 야구를 계속하기로 하는데, 이로 인해 기존 아다치 피닉스 소속 선수들 사이에 (아직은)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아야세가와를 경계하지만, 아야세가와 본인은 성장통 때문에 남몰래 끙끙 앓고 있다. 언제쯤 아야세가와가 다시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을까. 경쟁과 즐거움은 공존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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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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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이 읽은 책인데 너무 좋았다. 평범한 글쓰기 책일 줄 알았는데 예시로 등장하는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흥미롭고 감동적이라서 한 번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참고로 이 책은 356쪽이다.) 이 책은 가이드북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단 한 번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와 그 때부터 목차에 따라 글쓰기를 해볼 것을 권한다. 아마도 그 때는 저자와 책에 대한 인상이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저자 낸시 슬로님 애러니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교사로 일하다가 조엘 애러니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자의 삶은 괜찮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아직은 견딜 만한 시련이었다. 저자의 인생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건 둘째 아들 댄이 생후 9개월 만에 당뇨병 진단을 받고 스물두 살 때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머니인 저자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책이나 치료법을 아는 의사를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돈과 시간도 많이 쓰고 가세도 점점 기울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왜 하필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고 싶어도 물어볼 대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괴로워하던 저자는 방법을 찾고 또 찾다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책이 없으면 직접 쓰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간병 초기에 저자는 모든 일이 그저 싫고 힘들고, 매 순간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면서 저자는 아무리 싫고 힘든 일이라도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언젠가는 이 시간도 그리운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같은 원리로 저자는 자신의 인생도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또는 사별, 실직, 우울, 불안 등 불행한 일로만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에도 좋은 순간이 있었고 배운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부서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정신과 의사도, 처방약도,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심지어 내 남편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자도 아닌 자전적 에세이 쓰기였다. (11쪽) 


자기 서사,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의 원인을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정신적으로 불안과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병을 낫게 하거나 예방하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실제로 저자는 컬럼비아대학교 의학대학원의 내러티브 의학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자기 삶을 서사화하는 경험이 그 자체로 문제 해결과 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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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박솔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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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사람으로서 격하게 공감하는(요즘은 이런 말 안 쓰나?) 제목이다. 좋은 일은 뭐... 무사히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지(불면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에게는 이만한 기쁨이 없다). 제목만큼 내용도 좋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지만 서평집보다는 독서 에세이에 가깝다. 일단 저자의 일상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저자에게는 일상이 곧 독서이고, 독서가 곧 일상이다. 소설가이니까 일로서 책을 많이 읽기도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 예를 들면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도 책 생각을 하고, 산책을 하는 시간에도 책 생각을 한다. 심지어 여행을 할 때에도 책에서 본 장소들을 보러 다닌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상황들, 장면들이라 반갑다.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저자의 태도가 너무나 '진심'인 점도 좋다. 특히 로베르토 볼라뇨,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 료 등 작가가 각별히 애정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책에 관해 쓸 때 그렇다. 사실 나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책은 한두 권밖에 안 읽었고, 로베르토 볼라뇨와 하라 료의 책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 책에서 저자가 이들에 대해 칭송하는 글을 읽어도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정도로 깊이 좋아하는 작가라면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아닌가?). 대체 어떤 점이 저자를 이토록 매혹시켰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로베르토 볼라뇨,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 료의 책을 구해 읽어봐야겠다.


소설 읽기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점도 좋다. 예를 들면 어떤 소설에는 인물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 수시로 나오는가 하면(예: 이주란), 어떤 소설에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거의 안 나온다. 소설에 식사 장면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는 일은 먹는 일이요 먹는 일은 곧 사는 일임을 감안할 때, 인물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반드시 배치하고 꼼꼼하게 묘사한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소설가로서 독서를 창작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대목도 있다. 저자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좋아하는 책 몇 권을 여러 번 읽는 편을 선호한다. 여러 번 읽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가 점점 더 명확하게 보인다고.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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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장면
고수리 외 지음 / 유유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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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서 여행 갈 만한 곳을 알아보는 중이다. 문제는 지금 여기서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에 무엇을 보거나 하려고 떠나야겠다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서 좀처럼 일정을 픽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처럼 항공권이 저렴하니까, 숙소가 예쁘니까,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으니까 등등의 가벼운 이유로 여행을 떠나면 좋으련만, 나는 왜 자꾸 여행의 이유나 목표 같은 걸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냥 떠나고 싶으니까, 떠날 수 있으니까 떠나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만난 책이 출판사 유유히에서 만든 <여행의 장면>이다. 고수리, 김신지, 봉현, 서한나, 서해인, 수신지, 오하나, 이다혜, 이연, 임진아 등 열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책에는 각기 색다른 '여행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내가 떠난 여행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여행을 떠나는 친구를 배웅한 이야기, 여행을 떠난 가족 대신 집을 지키는 이야기도 있다. 일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난 여행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떠난 여행 이야기도 있다. 혼자라서 좋았던 여행, 함께라서 좋았던 여행, 인터넷 덕분에 편하게 한 여행, 인터넷이 안 되는(!) 덕분에 편하게 한 여행 등 실로 다양한 '여행의 장면'들이 실려 있다.


모든 글이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임진아 작가와 오하나 시인의 글이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의 여성 문인의 흔적을 찾아 일본을 여행한 이야기를 실었다. 임진아 작가는 하야시 후미코를, 오하나 시인은 가네코 미스즈를 좋아한다고. 나도 이들처럼 좋아하는 예술가, 연예인의 흔적을 찾아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늘 여행지가 일본으로 정해진다. 하야시 후미코를 좋아하는 한국인 독자를 일본에서 만나고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임진아 작가님의 여행기도 흥미롭고, 가네코 미스즈의 고향에서 감동적인 만남을 가진 오하나 시인님의 여행기도 뭉클했다. 덕분에 나도 이 장소들을 여행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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