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리가 신세 좀 지겠습니다 1
카이도 치토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최애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어 24시간 붙어 지내며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카이도 치토세의 만화 <우리 반리가 신세 좀 지겠습니다>의 주인공 아카시 나나세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언니의 부탁으로 임시 매니저 일을 맡게 된다. 근데 무려 담당 연예인이 나나세의 최애.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인기 배우 나리타 반리인 것이다.


임시직이기는 하지만 최애의 매니저로 일할 수 있게 되어 흥분한 것도 잠시. 나나세는 곧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고 절망한다. 드라마에서 본 나리타 반리는 얼굴도 스윗, 성격도 스윗, 모든 게 완벽한 이상형 그 자체였지만, 실제로 만난 나리타 반리는 폭군과 다름 없는 성격인 것이다. 나나세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갑질'을 하는 반리에 대한 불만이 커지지만, 언니의 부탁으로 일하게 된 거라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반리의 성격은 몰라도 얼굴은 여전히 스윗하잖아...ㅎㅎ


나나세가 반리의 매니저로 계속 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일에는 진지한 반리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연기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연기자 선후배와 스태프를 열심히 챙기는 반리를 보면서, 나나세는 반리의 얼굴만 좋아하는 팬에서 나리타 반리라는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배우가 성장하는 데 있어 전력으로 서포트하는 매니저가 되고 싶어진다. 과연 나나세는 일과 사랑 모두를 잡을 수 있을까. 내용도 재미있고 작화도 예뻐서 완결까지 쭉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즐겨 찾는 가게나 식당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가게나 식당이 없지만, 한두 곳 정도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 가도 늘 그 분위기인 가게. 어쩌다 들러도 한결 같은 맛을 보장하는 식당. 그런 가게나 식당이 있다면, 이 '차가운 XXX들의 도시'가 조금은 따뜻하고 좀 더 살아볼 만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하라다 히카의 소설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의 무대인 정식집 자츠가 딱 이런 식당이기 때문이다. 언제 가도 늘 그 분위기인, 어쩌다 들러도 한결 같은 맛을 보장하는 식당 말이다.


소설은 남편에게 갑자기 이혼하자는 말을 들은 30대 여성 사야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사야카는 남편이 요근래 즐겨 찾는 듯했던 정식집 자츠에 가본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를 남편이 마음에 둘 리는 없고, 식당 손님 중에 남편이 마음에 둔 여자가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한 사야카는 자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편이 마음에 둔 여자를 찾기로 한다. 그렇게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사야카의 인생도 바꾸고 주인 아주머니인 조우 씨의 인생도 바꾸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길.


혼자서 식당을 경영하는 나이 든 여자와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연을 맺게 된 젊은 여자의 이야기인 점에서 무레 요코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음식을 곁들인 잔잔한 일상 힐링물처럼 읽히지만, 의지할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여성이 나이듦이라는 점점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면서 어떻게 돈 벌고 먹고 살지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히라다 히카의 전작들과 이어져 있다. 팬데믹 전후 자영업자, 특히 식당 종사자 분들이 겪은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고충에 대해 묘사한 부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들섹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9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주나 MBTI 등이 오랫동안 유행하는 걸 보면,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걸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을까. 코끼리의 코만 들여다 봐서는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면 평소에 있던 자리에서 몇 발짝 더 떨어진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나를 낳거나 길러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거나,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 알아 본다거나.


미국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대표작이자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미들섹스>는 바로 이런 식의 구성을 따른다. 소설은 미국 국무부 직원인 40대 '남성' 칼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칼은 안정된 직업과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여태 결혼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연애 관계를 유지한 사람도 없다. 베를린에서 만난 여자와 잘 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칼은 그 여자가 자신에게 결혼을 원할까 봐 불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칼은 사실 열네 살 때까지 자신을 여성으로 알고 살았고, '유전에 의한 간성'이라는 의사의 판결을 받은 이후에야 남성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유전에 의한 간성'이라고 축약 되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칼의 조부모로부터 부모를 거쳐 칼에게 내려온 기나긴 역사가 있다. 그리스인 남매인 레프티와 데스데모나는 1922년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에 일어난 분쟁 중 하나인 스미르나 대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선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남매는 자신들을 부부로 위장했고, 미국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자신들이 사실 친남매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이들의 아들인 밀턴은 부모의 사촌인 수멜리아의 딸 테시와 결혼해 (후에 칼이 되는) 칼리오페를 낳았다. 이런 식으로 거듭된 근친혼이 간성을 낳은 것처럼 소설에는 그려져 있지만, 내 생각에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간성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간성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기대와 다르게 간성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 이민 1세대인 칼의 조부모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자리를 잡았는지, 이민 2세대인 칼의 부모가 어떤 식으로 미국 사회의 중산층 진입에 성공했는지, 이민 3세대인 칼이 조부모, 부모로 물려 받은 경제적, 문화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지를 '간성'이라는 드물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무시되고 있는 육체로서 표현한 것이 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간성인 인간의 3대에 이르는 가족사를 통해 20세기 미국 이민자 가정의 문제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다섯 자매의 자살을 통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병폐를 드러낸 작가의 전작 <버진 수어사이드>의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 


두 소설의 배경이 모두 미국 디트로이트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실제로 디트로이트 출신인데, 디트로이트는 미국 미시간 주 최대 도시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가 모두 이곳에 있어서 20세기 중반까지 엄청난 발전을 누렸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점점 쇠퇴해 인구도 크게 줄고 반대로 범죄, 폭동은 크게 늘었는데, 이 모든 내용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현대 미국의 역사, 그중에서도 디트로이트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진 수어사이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였을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기대가 무너진 때가. 내일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오늘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때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때가. 그런데도 여전히 살고 싶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고, 죽은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왜일까. 이렇게 음울한 생각을 하게 된 건, 미국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1993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버진 수어사이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는 리즈번 가(家)의 아름다운 다섯 자매가 살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매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바라보듯 경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다섯 자매의 막내 서실리아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 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실리아는 목숨을 건졌지만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야 한다. 다른 자매들은 부모로부터 전보다 더 심한 통제를 당한다. 이웃들은 그들 가족의 머리 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대한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소설이 리즈번 가의 이웃에 살면서 자매들을 관찰하는 또래 소년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관음적(변태적?)인 설정 때문에 내용에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독자들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설정이 똑같이 어려도 남성에게는 상대방을 능동적으로 볼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 반면, 여성에게는 수동적으로 보여지는 위치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그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느꼈다. 소년들은 자신들이 자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누구보다 그들의 일상에 대해 잘 안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이 자매들의 진정한 이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식의 오해 내지는 착각도 남성 권력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그래서 결국 자매들이 왜 죽었는지에 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로 우울증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 작가가 우울증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우울증을 야기하는 사회적 요인(가족, 친구, 연애, 이웃,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등)을 조금씩 언급하면서, 이러한 요인들이 그 사회 내부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에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자살임을 보여주려고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자매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가정은 불화하고 이웃들은 무관심하며 사회는 경직되고 경제는 무너지고 정치는 혼란스럽다. 이런 모든 요인들을 고려해 봤을 때 더 이상 살아 봤자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겠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살이 그저 개인의 선택일까,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호러,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책은 이 책이다. 이 책은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패배한 사건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르포 형식으로 보여준다. 솔직히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패배한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고, 최근 들어 AI,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고 위기감을 넘어 공포, 절망감, 무기력감을 느꼈다. 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이 책에 따르면 알파고 이후 바둑계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둑인들은 프로기사가 아닌 인공지능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기사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권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문하로 들어가 하루 종일 기보를 외우고 다른 문하생들과 대국을 치르며 프로기사로 성장하는 식의 '성공 코스'도 불필요해졌다. 바둑은 이제 예술이 아니라 누가 빨리 점수를 많이 내서 승리를 거두는 지를 겨루는 스포츠가 되었다. 바둑기사 개인의 스타일이나 철학은 중요하지 않고, AI의 수를 최대한 많이 암기하는 것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울거나 웃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바둑계의 변화를 통해 다른 분야 및 전체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소설을 사람처럼 잘 쓰는 인공지능, 혹은 사람보다 더 잘 쓰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문학계는 어떻게 될까.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일부가 AI를 활용해 집필된 걸로 밝혀진 것처럼, 실제로 작가들이 AI를 활용해 집필하는지 또는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AI 활용 여부를 독자가 판별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과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앞으로도 계속 유의미한 행위일 수 있을까. 


AI,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아마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보편화될 텐데, 이것이 인간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알파고 이후 바둑 기사들은 인간 스승의 기보 대신 AI의 기보를 암기하느라 전보다 더 바쁘다. 출판계의 경우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입사한 직원들이 출판사 유튜브, 출판사 SNS를 운영, 관리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AI가 도입되면 출판사의 업무도 달라지거나 더 늘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변화 혹은 발전일까.


저자가 최근 힘을 쏟고 있는 STS(Science Technology Society) SF 집필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내용이 현실화 되지 않은 것은 조지 오웰의 예측이 틀려서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도록 후대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저자는 예언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예방으로서의 문학을 지향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직접 창안한 장르인 STS SF를 집필하고 있다고. 저자의 STS SF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저자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아내분 꼭 쾌차하시길 빕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