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여름에는 코끼리 (외전 포함) (총23화/완결)
모 / 투비닷(TOBE.dot)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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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는 줄 알았는데 몰랐던 것, 모르는 줄도 몰랐던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깨우쳐 가는 과정이 성장이고 인생인 것 같다. <여름에는 코끼리>의 주인공 희정의 상황이 그렇다. 어릴 때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단둘이 사는 중학생 희정은 만사가 재미없고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학교 생활에 큰 문제 없고 같이 노는 친구들도 있지만, 희정이 엄마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아는 친구는 자신을 동정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고, 모르는 친구는 인생의 쓴맛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아서 한심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동물원으로 소풍을 간 희정은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알고보니 그 동물원은 십 년 전 희정이 코끼리를 보러 왔던 곳으로, 그날 희정에게는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친구 민수의 생일 케이크 위에 놓인 장식물을 잘못 먹고 탈이 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정의 엄마와 관련이 있다. 동물원에서 희정은 트라우마로 인해 봉인해 두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을 두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마침내 애도할 수 있게 되고,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비로소 느낀다.


이 만화를 보니 얼마 전에 다시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라일리는 부모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고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와도 헤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여름에는 코끼리>의 주인공 희정 또한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크나큰 슬픔을 적절한 방식으로 수용하지 못해서 그동안 긴 우울의 시간을 보낸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슬픔을 제대로 수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와 <여름에는 코끼리>의 희정 모두 트라우마를 남긴 과거의 사건을 회피할 때는 우울, 분노 등의 감정에 시달리다가, 사건을 직시하고 전후 관계를 자세히 알고 난 후에는 정확히 애도할 수 있게 되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삶을 무겁게 만드는 고통이라는 짐을 덜어내는 데에는 앎만한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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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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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렇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를 보내면 이와 같은 문제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지도 알고 싶어진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를 읽을 때가 그랬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읽은 책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자전적인 소설 <고양이 눈>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한 1940년대 중반. 여덟 살 소녀 일레인은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 전체가 캐나다 북쪽의 황무지를 떠돌아 다니며 살아온 통에 또래 여자 아이들과 어울린 경험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직장이 토론토로 정해지면서 마침내 정착하는 삶을 살게 된 일레인은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여자애들(코딜리어, 캐럴, 그레이스)과 어울려 다니지만 그들의 문화나 관습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무리에서 겉도는 일레인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견디다 못한 일레인은 그들과 다른 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들에게서 벗어난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도 좀처럼 동성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2004년에 공개된 헐리웃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연상케 한다. 이 영화에서 동물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성장한 주인공 케이디(린제이 로한 분)는 미국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또래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데 하필이면 그 여자애들이 학교 퀸카인 레지나(레이첼 맥아담스 분)의 무리다. 비슷한 나이대의 동성 친구를 사귀어본 적 없는 케이디는 레지나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레지나의 진의를 뒤늦게 깨닫고 레지나와 반목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여적여' 서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는 건, 어른이 된 일레인의 회고와 통찰 때문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화가가 된 일레인은 자신의 과거를 끝없이 반추한다. 그 아이들이 자신을 괴롭힌 건 분명 나쁜 일이고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아이들이 처해 있던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는 요즘의 부모들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며 속물적이었다.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타인에게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폭력에 더 많이, 더 자주 노출되는 여성들이 동성인 여성을 증오하게 되면서 차선책으로서 남성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일레인은 동성보다 이성을 대하는 게 훨씬 더 편하다고 느끼는데, 정서적 친밀감을 요구하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자신에게 육체적 관계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치 않은 임신과 결혼을 경험하며 일레인은 남성들이 내세우는 단순하고 간편한 관계의 다른 이름이 이기심과 착취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울러 기혼 유자녀 여성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남성 예술가로 사는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어렵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처절하게 예술을 하고 있는지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은 결국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여성들뿐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 일레인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어릴 때는 코딜리어가 가해자이고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세월이 흘러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코딜리어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거절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가해자이고 코딜리어가 피해자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때는 코딜리어를 나를 괴롭힌 가해자, 나와 상관없는 타인으로 여기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했지만, 만약 자신이 코딜리어와 무관한 제 3자였다 해도 그런 거절을 정당화 할 수 있었을지 자문하며 자책한다.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 일레인은 해냈지만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이다. 어쩌면 일레인이 코딜리어 이후에 더 나쁜 사람들(남자들)을 많이 만나서 코딜리어의 죄가 상대적으로 더 작게 보였던 건 아닐까. 코딜리어가 잘 살기는커녕 일레인보다 훨씬 안 좋은 삶을 살아서 측은지심을 느낀 건 아닐까. 코딜리어를 만나지 않았다면 일레인의 삶은 어땠을까. 트라우마 없이 순탄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비슷한 여자애들을 만나서 비슷하게 힘든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일레인이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게 코딜리어만의 잘못일까.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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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좋은느낌이면 좋겠어 - 삶은 수많은 좋은느낌들로 매일 조금씩 더 견고해진다
김민철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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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팬으로서 신간알리미 신청을 해놓고 알림이 뜨자마자 구입한 책이다. 앤솔로지인 걸 알고 라인업을 확인한 후에 나도 모르게 '오 마이 갓'을 속으로 외쳤는데, 그도 그럴 게 김민철, 하미나, 홍인혜 작가도 참여했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 ㅎㅎ 읽어보니 '좋은 느낌'을 주제로 각자가 살면서 좋은 느낌을 느낀 순간에 대해 썼다. 주제가 동일하고 작가들의 이력이 비슷한데도 각자가 좋은 느낌을 느낀 순간이나 대상이 다 달라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역시 다들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최근에 언제 좋다고 느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지난주 토요일에 혼자서 동네 산책을 했을 때. 원래 산책할 때 걷는 길 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해서 걸었는데 평소와 다른 풍경을 봐서 신선하기도 하고 운동량이 늘어서 땀도 많이 났다. 그동안 매일 산책을 하는 습관을 들여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걸어도 몸에 무리가 안 가서 체력이 많이 늘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날씨가 좋아지면 가까운 산에 오르거나 서울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좋다고 느낀 순간에 대해 말한다는 건,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모토인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와도 통한다. 김민철 작가의 글에 나오는 문장처럼 살다 보면 "개가 짖기도 하고, 벌이 쏘기도" 하는 "슬픈 날"이 오기 마련이다. 홍인혜 작가처럼 전세 사기라는 큰 시련을 겪을 수도 있고, 황선우 작가처럼 노화로 인해 서글퍼지는 순간을 맞기도 한다. 김하나, 하미나 작가처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선입견이나 편견, 대상화라는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다.


전세 사기나 성폭력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좋다고 느낀 순간을 말하는 것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고 이런 경우에는 법적,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는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더욱 더 적극적으로 좋은 순간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예방하는 차원에서 좋은 순간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평소에 꾸준히 좋은 책을 읽는다든지, 일상에 안정과 활력을 주는 (<여둘톡> 같은) 팟캐스트를 듣는다든지좋다고 느낀 순간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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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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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출신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 셸터>는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한 남성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을 위해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을 제공하는 클리닉을 고안하면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2020년대에 80대인 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 자신이 아직 청년이었던 1940년대의 기억만을 가지게 된다면, 그에게 낯선 2020년대에 살게 하는 대신 그에게 친숙한 1940년대를 재현한 공간에 살게 해 여생을 보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클리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일반인들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과거에 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고, 급기야 전 세계적으로 나라 전체가 돌아가고 싶은 시대를 국민투표로 정해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 책에는 작가가 살고 있는 유럽에 한정해 각 나라의 국민들이 어느 시대를 가장 좋다고 생각할지 가정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만약 아시아에서 같은 주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일본은 경제 성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일 것 같고, 한국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 아니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전후가 아닐까.


이 소설은 사람들이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과거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 전제하는데 원래 이렇게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걸 추구하는 생각 자체가 보수주의의 근간이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미래에 있다)고 생각하고 변화에 포용적인데, 이 소설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상황을 가정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유럽이라는 지역 자체가 현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새로운 흐름이 출현할 가능성이 적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사회의 보수화, 우경화 경향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어디 유럽만의 문제일까.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부르지 않나,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하지 않나)을 보면 우리가 이미 경험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대신 예측 가능하고 애써 변화할 필요 없는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계엄령에 찬성하는 사람, 이승만, 박정희 시대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타임 셸터가 생기면 어떨까(이미 어떤 지역들에 끼리끼리 모여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걸로 누가 소설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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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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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쓰게 될 것>을 읽다가 앞으로는 스마트폰 들여다 보는 시간을 줄이고 소설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SNS 앱을 지웠다. 이렇게 좋은 소설이 있는데 나는 왜 별로 좋지도 않고 도움도 안 되는 SNS 상의 글을 읽으며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까.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르고, 읽고 나면 괜히 기분만 상하는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날려 보내지 말고, 이제부터는 작가가 한 줄 한 줄 집중해서 정성을 다해 쓴 글만 읽어야지. 그래야 나도 내 글을 읽은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끼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쓰게 될 것>은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은 똑같이 전쟁을 겪었지만 삶에 대해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모녀 삼 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쟁을 한 번 겪은 '나'는 전쟁을 두 번 겪은 어머니가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전쟁을 세 번 겪은 할머니가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고 그러므로 인류에게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고, 대부분은 예고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걸 알면서도 (언젠가 죽을) 타인을 사랑하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은 뭘까.


<유진>은 삼십 대 여성 유진이 이십 대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동명이인 유진 언니의 부고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가난하고 외로운 대학생 시절을 보낸 유진은 남들과 달리 자신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관심사나 장래 희망을 알아봐 준 유진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유진처럼 나도 어릴 때는 주변 어른들이나 손윗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줄 몰랐다가 그 분들 나이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고마움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 더 늦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유진은 유진 언니를 보면서 "어른스럽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에 근거해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을 분류하면 크게 어른스러운 어른과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으로 나눌 수 있다. <유진>의 유진 언니나 <ㅊㅅㄹ>의 서진이 아이 입장을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면, <인간의 쓸모>에서 자식의 동의 없이 자식의 동영상을 촬영해 돈을 버는 부모나 <썸머의 마술과학>에서 거액의 빚을 지고도 가족 앞에서 뻔뻔하게 행동하는 아버지, <차고 뜨거운>에서 딸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어머니 등은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에 속한다. 

 

<디너코스>의 아버지 오석진은 환갑이 되어서도 철없는 행동을 일삼아 가족들을 걱정시킨다는 점에서는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에 속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설 후반에 이르러 드러나는 그의 본심을 알고 나서는 그가 정말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한 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적은 없고,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가치관이나 취향, 습성 등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또한 미성숙한 게 아닐까. 내가 나영(석진의 큰딸이자 화자)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서 석진이 많이 밉기도 했고 그에게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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