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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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2008년작 <개밥바라기별>은 출간 전에 네이버에 연재되었고, 연재 종료 후에는 석영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네이버에 연재된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종이책과 이북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즘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던 나는 연재 종료 후 작가 블로그를 통해 읽고 책으로 다시 읽었다. 같은 소설을 차가운 모니터와 따뜻한 종이책이 각각 어떻게 전달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나는 종이책으로 읽는 편이 더 좋았다. 일단 모니터로 읽으나 종이책으로 읽으나 소설의 재미가 더하거나 덜하지는 않았다. 역전된 시간과 복수의 화자라는 설정이 복잡하면서도 독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같았고, 유준, 인호, 미아, 정수, 상진, 영길, 중길, 선이 등 그 때 그 시절 치열하게 살았던 청춘들을 보며 공감하는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다. 허나 줄거리만이 아닌 문장을 읽는 재미는 역시 종이를 손으로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읽을 때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바뀌었지만 그 때 그 시절 청춘들이나 지금의 청춘들이나 왜 이렇게 세상살이가 힘겨운지. 어른들의 말을 듣기엔 젊은 꿈이 너무 크고, 그렇다고 세상을 짊어지기엔 뱃심이 부족한 청춘들의 애환을 작가는 적확하게 그렸다. 그에 반해 102개에 달하는 포스트를 연속으로 읽어내는 동안 어찌나 눈이 아프고 마우스 위에 놓은 손이 저리던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종이책만의 장점.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좋아하는 L선배에게 선물했다. 유난히 청춘을 힘들어하는 그 선배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황석영 작가 블로그에서 보라고 링크 주소를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정이 없는 것 같다. 내 책 선물이 선배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선물한 내 마음은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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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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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여행길, 버스안에서 조용히 이 책을 읽었다. 분주히 지나가는 차들, 재잘재잘 얘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홀로 붕 떠서 책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 역시 미하엘의 사랑과 삶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관통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다.  

 

<더 리더>의 화자는 독일 작가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마치 달콤한 첫 맛 뒤에 씁쓸한 끝 맛을 남기는 커피 같았다. 열다섯살 소년 미하엘의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독일 사회의 아픈 역사와 현재, 그리고 인간이 끌어안고 있는 고민까지 포용한다. 미하엘이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고민과 외로움, 타자로부터의 자발적인 소외가 한나가 남긴 상처와 그 안에 담긴 사랑 때문이었음을 깨닫는 결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이것이 곧 역사가 우리에게 (특히 독일의 역사가 독일의 현실과 미래에 시사하는 바) 지워주는 부담과 교훈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죄인으로서 미하엘을 사랑한 한나와, 죄인인 한나를 사랑한 미하엘처럼, 죄를 지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것과 영원히 결부되어 살아야하는 현실의 관계란 얼마나 어려운 물음인가.

 

책을 읽으면서 2차 대전의 참상으로부터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는 우리의 역사가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답답했다. 비록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입장은 다르지만, 죄를 지은 자와 그로 인한 피해를 입은 자의 관계, 용서를 구하는 것과 용서, 그리고 화해-, 이 모두가 어느 입장에서든 완전한 답을 내리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유와 고민이 없다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역사에 대한 이해와 처벌, 그리고 새로운 관계의 정립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피해자인 우리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가해자인 일본의 적극적인 반성과 보상이 가장 요구되는 부분이다. 학계와 사회 뿐 아니라, 이런 문학 분야에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어떻게 용서받고 극복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독일의 사정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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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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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재밌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별로야." 학교 문학 수업의 과제로 이 책을 읽은 동생은 책의 감상을 묻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 소설이 전쟁이나 운동권의 얘기로 귀결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세상의 온갖 걱정과 시름을 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림, 즉 만화를 그리는 아이이므로, 웃음보다는 한숨과 눈물이 어울리는 우리네 역사가 자신의 감성과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다. 재미있게도 동생과 동년배인 후배도 같은 평을 했다. 단 두 명의 표본을 가지고 일반화를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어쩌면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태어난 나와 이후에 태어난 동생과 후배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광주 민주화운동의 전범인 전두환 치하에서 태어난 나, 그리고 적어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명목이라도 있는 노태우의 시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태생(?)이 다르니 세상을 보는 관점도 일치하지 않으리라. 


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전후반 상관없이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만 봐도 이 책에 대한 내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감상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김연수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언니가 있는가 하면, 민주화 운동이나 남북통일을 빼면 '한국' 문학이 어떤 것을 논할 수 있을까하고 반문하는 후배도 있다. 어린 친구들은 이 책을 386 세대, 혹은 그 후의 세대의 레퍼토리 쯤으로 여기는 걸까. 하지만 소설에 등장한 역사적인 배경과 사건들은 작가 자신의 의식을 형성한 주요 경험들 -작가 자신이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내고 대학생활을 했으므로- 이기 때문에 등장한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의 문제의식과 주장은 지금의 세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오히려 수능과 내신, 스펙 쌓기와 공모전, 토익으로 점철되는 청춘을 보내는 지금의 20대가 더 불쌍하지 않은가. 10년이나 20년 후, 내 또래의 작가들이 수능 회고담이나 공모전 후일담 정도를 소재랍시고 글을 쓸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자기 자신이 되어라." [네가 누구든]에는 일제 시대부터 90년대 초의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던 사람들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러한 연(緣)은 대한민국의 서울은 물론이요 독일의 베를린까지 넘나든다. 인물들은 국가, 체제, 정부, 이데올로기 등 개인의 상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을 탐구하거나 혹은 저항한다. 그런데 갖은 고초와 열병 같은 외로움을 겪은 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새로운 정부나 이데올로기의 승리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저 이 시간, 지구 위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그리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뿐.  우리는 불식중에 국가나 정부, 법, 회사, 조직, 학교 등이 우리 위에 존재하며, 우리를 통제하거나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태생적인 경향이라기 보다는, 교육과 사회화, 매스미디어, 혹은 군대를 통해 그런 생각을 주입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만약 이 나라에 지금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조직과 관여할 일이 있었을까? 21세기 한국이 아니라 화랑들이 말달리는 신라의 어느 벌판 위에 태어났다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찬 서울이 아닌 스위스 산골마을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우리는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을까? 결국 개인과 체제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택한 조직을 위해 '종사'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복종'할 필요는 없는게 아닐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무정부주의자라거나 반체제주의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사는 것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이나 이민, 자퇴나 퇴사 등의 선택을 했겠지...
 
 

책을 읽으면서 종종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렸다. 뫼르소는 보이지 않는 존재 -신이나 국가, 가족이라는 관습 등- 에 매달려 있는 다른 인간들에게 '이방인(the stranger)'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뫼르소에게는 이방인이었고, 그들은 그들 서로에게 결국 이방인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빼면 자기 외의 인간은 모두 '이상한(strange)'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네가 어딨든 어떤 체제에 속해있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이라고 얘기한다.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외로움, 열정과 고통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어떤 사상이나 학문보다도 중요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지극히 '인본적인(humanitarian)'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세대를 거치고 다양한 공간을 누벼 다다른 주제가 결국 '사람'이라니, 허무한가? 뭐 어때! 그것이 인생인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주 어딘가에 너를 이해해 줄 존재가 있다. 결국 사람의 외로움은 국가나 관습, 회사나 조직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어쩐지 내 머릿속에는 인간이라는 '이방인'들이 지구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모여서 통하지 않는 말로 일치되지 않는 경험을 늘어놓으며 껄껄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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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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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 중 처음 접해본 책이다. 수사가 많아서 쉽게 내용에 빠져들지 못하고 몇 차례 시도만 했는데, 막상 초반의 내용이 이해가 되고 나니 술술 읽혔다. 아니, 왜 이리 술술 읽히는 책을 처음엔 쉽게 읽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김훈의 책은 이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후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을 때도 어찌나 책장을 덮기가 아쉽던지... 

김훈은 정말 대단한 작가다. 영문이나 일문의 번역체가 난무하는 글 속에서(심지어는 나의 글도 번역투일 때가 많다. 지긋지긋한 입시교육의 잔재인가...) 꿋꿋이 한글의 매력을 발산하는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정말 그의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이렇게 예쁘고 구성진 우리말도 있구나. 우리말에 더 관심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을 쓰고 살면서 관심을 새롭게 가진다는 말이 좀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책을 읽고 한동안 이순신의 매력에 빠져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과연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지- 관에 적을 둔 사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이순신의 몸가짐, 마음가짐을 닮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고백하고 싶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그의 성품을 닮으려 노력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을 구비해서 늘 가까이 둬야할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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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웨터 -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다리 놓기
재클린 노보그라츠 지음, 김훈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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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웨터] 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재클린 노보그라츠는 스물 다섯의 나이에 월가의 금융 전문가로서의 직함을 버렸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위험하다, 미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의 결정이 참으로 정석적이다. 국제적인 일을 하고 싶다면, 물론 외국어도 중요하지만 법률이나 회계 등 실용적인 기술을 가지는 것이 우선적이다. '국제 구호'라는 이상과 금융 전문가로서의 기술을 적절히 조화시킨 그의 삶은 내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재클린은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은 두 책의 주인공 이름이 모두 재클린이다. '워너비 재키'의 재클린 케네디.) 아프리카 구호 단체에 자원하여 빈민은행 '두테림베레'를 창설했다. 두테림베레는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과 비슷하다. 또한 자활 기업인 '블루 베이커리'를 세워서 르완다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이후 미국에 돌아와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에 르완다 내전이 일어나고,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폐허가 된 르완다를 보며 국제 사회의 빈민 구호를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을 확고히 한 그는 비영리 벤처 캐피탈 기구인 어큐먼펀드를 세웠다.  

 

그는 원조 위주의 국제 구호 활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처럼 빈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남편의 허락 없이는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없었던 여성 사업자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고, 경영 기법과 판매 전략을 가르쳐준다. 또한 사회적 기업에 자본을 지원하는 기구를 세워 기부가와 사업체를 연결하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금융 전문가 답게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국제 구호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고민하는 재클린은 막연한 이상만을 품고 있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블루 스웨터] 는 이러한 그의 눈부시고도 치열한 삶의 행적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어느 정도로 빼곡하냐면, 책에는 그가 만난 사람의 옷차림과 표정, 함께 먹은 음식, 그가 본 건물의 외관과 분위기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어쩌면 이런 책을 쓰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일기 쓰기' 일지도 모른다. 다섯 줄 짜리 내 일기장이 부끄럽다.) 이 책은 양장본도 아니고, 멋진 이미지나 사진도 많지 않다. 컬러 사진도 별로 없다. 하지만 600여 쪽이 되레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치밀한 기록과 알찬 내용이야말로 꾸밈이 없고 내실을 추구하는 그의 성품과 열정을 대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The best head to the best heart. 사람은 가슴만으로 살 수 없고, 머리만으로도 살 수 없다. 사회를 바꾸고 싶고,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고,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성과 감성을 연결시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클린 노보그라츠의 [블루 스웨터] 는 그런 아름다운 삶의 증거와도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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