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10, 인생이 달라지는 선택의 법칙
수지 웰치 지음, 배유정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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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수지 웰치는 전 GE 회장인 경영학계의 구루 잭 웰치의 부인이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는 수지 웰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연 잭 웰치가 아내로 선택한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을까'하는 궁금증이 더 컸다. 하지만 한장 한장 읽어보니 잭 웰치와 만나 결혼한 것은 수지 웰치라는 인물의 삶에 있어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와 만나기 전에 학생으로서, 직원으로서, 리더로서, 워킹맘으로서의 삶도 참 흥미로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이 책 <10-10-10>은 제목 그대로 '10-10-10'에 관한 책이다. '10-10-10'은 수지 웰치가 워킹맘으로서 힘들고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고안해낸 '결정툴(tool)'이다. '일이냐 가족이냐', '친구냐 사랑이냐' 등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인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각각 최선과 최악의 상황을 '10분 후, 10개월 후, 10년 후'로 상상해보고, 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수지 웰치는 워킹맘으로서의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을 때 이 방법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전파하고,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는 매거진에도 소개하여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10-10-10'이라는 결정툴은 그 자체로 최고의 결정을 내리게 해준다든가, 전에 없던 묘안을 생각하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 마법 지팡이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시간 단위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적어도 다른 대안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고 위안할 수 있게 한 점이 강점이다.  

 

나는 '10-10-10'이라는 방법보다도, 이것을 활용하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슬기롭게 해결한 여성들의 사례가 훨씬 재미있었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워킹맘들에게 적용되는 사례도 많지만, 직장 내의 안 좋은 관행이나 문화를 바꾸고 싶은데 참고 지낼까 말까, 남자친구가 내 베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등등 워킹맘이 아닌 여성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들이 소개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저자 수지 웰치의 사례들. 수지 웰치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한 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역임했다. 그 사이에 첫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네 명의 아이들을 키웠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 시절에 취재차 잭 웰치를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져 재혼했다. 그냥 보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인데, 종군기자를 꿈꿨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 첫 번째 결혼의 실패, 직장에서 겪은 성희롱과 차별, 편집장으로서 느낀 부족함, 잭 웰치와 결혼 당시의 스캔들 등등 그 괜찮아보이는 삶에도 수많은 굴곡과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점이 참 멋있었다.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두 마리, 세 마리... 눈 앞에 있는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한 마리를 제대로 잡으려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포기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잡은 토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10-10-10'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도와주고, 나아가 포기하는 것보다 선택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정툴로서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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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의 기출리뷰
한덕현 지음 / 탑(TOP)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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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기출문제를 단원별로 구성한 점이 좋습니다. 구성, 디자인이 깔끔하고, 관련 문제도 있습니다. 문법, 어휘, 숙어, 실용영어만 들어있고 독해문제는 빠져있는 점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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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정치경제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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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서 하버드 교수나 하버드 출신의 대(大) 학자가 쓴 정통 경제학 서적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자 천진이 하버드에서 석사를 했고, 현재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인물이니 하버드와 인연이 없는 인물은 아니지만, 교수나 학자가 아닌, 순수한 학생의 입장에서 쓴 점은 여느 책과 다르다. 수업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느 교수가 어떤 말을 했는지 등등 학생만이 알 수 있는 시시콜콜한 얘기나 감상까지 적혀 있어서, 마치 선배나 친구의 잘 정리된 '강의 노트'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트 필기 수준의 책은 결코 아니다.) 찾아보니 책의 원제도 '하버드 경제 노트2 (Harvard Economic Note2)'. <하버드 경제학>의 속편이라는 점과 미국 정치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 같은데, 책의 성격이나 내용을 생각하면 '하버드 경제 노트'라는 제목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1장의 '개방경제학'과 3장의 '경제학의 탄생과 변화'는 경제학과의 정규 커리큘럼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일반론이 대부분이라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하버드에서는 교수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점이 좋았다. 특히 하버드 교수들이 아담 스미스 같은 잘 알려진 인물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개방경제학의 원론적인 이슈들을 현실 경제와 어떻게 접목시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교수법이 대부분인 국내 강의실 풍경과 비교되어 부러웠다.

 

 

2장 '의료 체계와 관련한 정치와 경제'는 경제학을 미국 현실 경제 문제와 접목하여 설명한 부분이고, 4장 '문화경제학'과 5장 '미국 사회의 동향'은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새롭게 연구 중인 문화경제학, 그리고 다른 학문과 어떤 식으로 학제간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한 부분이다. 사실 처음에 이 책 제목이 '하버드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서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강의에 대한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4장과 5장을 읽어보니 단순히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법학, 철학, 환경학 등 폭넓은 분야를 다루어서 놀랍고 신선했다. 하버드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고,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서 고루하고 보수적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새로운 연구, 다양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최근의 트렌드인 '융합', '통섭'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5장에서는 반가운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먼저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이 경제학과에서 강연한 내용이 나온다. 경제학 이슈를 철학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샌델 교수 특유의 '소크라테스 식' 질문으로 강의를 했다는 기록이 나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으로서 반갑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또 한국인 최초 하버드 로스쿨 종신교수로 유명한 석지영 교수도 나온다. 샌델 교수의 강연에서 패널 교수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데, 석지영 교수의 저작인 <법의 재발견>을 읽은지 얼마 안 된 참이라서 반가웠다. 석지영 교수도 법과 예술을 접목시킨 새로운 시도로 크게 주목받았다고 하는데, 역시나 이런 '융합', '통섭' 같은 시도를 학계에서 매우 반기는 모양이다. 이외에도 소로스, 듀카키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버드대에 다니면 이런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참 부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이런 내용을 책으로 엮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 그 자체였다. 사실 책 내용은, 말 그대로 '강의 노트'처럼 강의 내용을 기록하고 약간의 감상을 덧붙인 정도에 불과하다. 하버드 대학과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먼저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이 늘어나서 큰 길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가 이런 기록을 남겨 놓으면 사람들이 살을 덧붙이고 고치고 다듬어서 학문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공부해서 미국 명문대 들어갔다'는 식의 책은 많지만, '미국 명문대에서는 이런 공부를 하더라' 하는 식의 책은 몇 권 없다. 그런 기록들이 우리나라 교육과 학계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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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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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요란한 줄 알았다. '간판'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서양의 잘 알려진 고전이나 문학 작품을 대강 골라놓고 '하버드'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끌려고 한,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는 책일 줄 알았다. 게다가 요즘 이런 '책에 대한 책', '책을 위한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책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욱 끌리지 않았다. 고전이면 또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 이 모든 게 착각이었다. 한장 두장 읽다보니 어느덧 저자를 따라 고전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다 읽은지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났는데도 계속 이 책 생각이 나네...

 

 

책은 저자가 외갓집 서재에서 '하버드 클래식'을 발견하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하버드 클래식'은 하버드대의 초기 총장이 대학 교육의 수혜를 받기 힘든 일반 대중들이 적어도 이 책들을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엄선하여 제작한 고전 시리즈로, 방대한 분량 때문에 3m(5m인가?) 전집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하버드 클래식을 구입한 것은 다름아닌 저자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대학은커녕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분이지만 배움에 뜻이 있어 하버드 클래식을 구입했고, 평생에 걸쳐 읽었다. 저자는 이 얘기를 듣고 감명받아 1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오로지 이 책들만 집중적으로 읽어보기로 한다.

 

 

하버드 클래식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클래식'인만큼 여기 포함된 책들 대부분이 잘 알려져있는 책들이다. 가장 유명한 책은 역시 '성경'. 그리스 고전부터 중세 고전, 돈키호테, 셰익스피어, 그리고 17,18세기 사상서까지 시대, 장르도 다양하다. 동양의 고전 '논어'도 포함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 몇 권은 읽어본 책이기도 한데, 저자의 속도를 따라,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반추해보니 색달랐다. 특히 바로 얼마 전에 읽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하버드 인문학 서재>를 먼저 읽고나서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언어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 의미를 따라갈 수 있게 해준 사실들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책이 인생에 대해 가르쳐주듯이 인생도 책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인생을 살아온 시간이야말로 다윈과 키케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길고 장황한 설명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p.100)

 

 

학창시절에 읽은 <돈키호테>도 저자의 설명과 감상을 더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키케로의 말처럼 인생이 책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것인지, 어릴 때는 그저 돈키호테가 이상하고 미친 사람 같았는데, 지금 보니 참 용기 있고 지조가 있는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다시 읽어 볼 엄두는 안 나는군...

 

 

돈키호테의 이 말에는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있는 게 더 낫다네.' 돈키호테는 무지몽매한 세상을 한순간에 간파한다. 그러고 나면 독자에게 이 책의 의미는 달라지고 만다. 마법 투구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데, 대야를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설 2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돈키호테는 편력 기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을 어리석게 만든 책들도 모두 팔아치운다. 이 지점에 이르면 <돈키호테>는 더 이상 풍자와 희극의 세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세계를 인정할 수 없는 자의 비극으로 비칠 수 있다. 상상 속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세상에 살려는 돈키호테의 노력은 코미디가 아니라 용기다. 그런 의미에서 세르반테스의 소설은 일종의 서사시가 된다. (pp.118-9)

 

 

아무래도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보다는 '최신작'인 17, 18세기 사상서에 관한 부분이 이해하기 쉽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를 건너 산업사회로 들어가기 직전, 혹은 초입에, 그 당시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이런 게 참 재미있다. 모든 게 신으로, 종교로 귀결되던 시대로부터 벗어나 이른바 '내면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던 시대. 인간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등등,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물음들이 그 때만 해도 파격적이고, 어쩌면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겠지?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지금 학자들이 안고 있는 물음들도 역사가 고작 2, 300년 밖에 안 된 새로운 질문이다.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인생의 모든 목표를 실현했다고 생각해보자. 기대하던 모든 제도와 견해의 변화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이것이 나(존 스튜어트 밀)에게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겠는가?" 억누를 수 없는 자의식은 분명히 답했다. "그렇지 않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위에 내 인생을 쌓아올렸던 모든 기반이 무너졌다. 내 모든 행복은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속에 있었다. 그 목표가 매력을 잃는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서 어떻게 다시 흥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살아가야 할 목표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p.190)

 

그는 여전히 공리주의적인 선에서 행복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지 않아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접어놓고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목표, 타인의 행복, 인류의 진보, 혹은 예술이나 기타 취미를 도구가 아닌 이상적인 목표로 삼아 마음을 쏟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p.193)

 

 

 

책에 대한 설명 중간중간에 나오는 저자의 기록과 고백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재미 중 하나다. 1년에 걸쳐 하버드 클래식을 읽는 동안, 저자는 도중에 어머니와 다름 없는 애정으로 저자를 보살펴 주었던 미미 이모를 잃기도 하고, 책에만 빠져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며 정신적으로도 많은 번민을 했다. 책 앞부분에도 나오듯이 결국 책을 읽고 배우면서 알게 되는 건 '모른다'는 것뿐이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이고, 인생에 대한 답, 세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한 답은 책 속에 없다. 알수록 모르게 되는 이 모순이 저자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과연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일지' 의심부터 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사랑하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에 읽을 책은 많고, 한 번 읽은 책은 여러번 읽어도 좋고, 그렇게 평생 이 책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무엇을 희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니까.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과, 그 책들에 대한 기록이 사람들의 손을 타고 계속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몇 세기 전, 큰 뜻을 품고 하버드 총장이 만든 하버드 클래식이 어느 여인과 그 여인의 외손자한테까지 전해지고, 그 외손자가 쓴 글이 한국에 있는 여인에게 전해지는 기적. 이건 책이라서 가능한 기적이 아닐까.

 

아, 좋아하는 게 책이라서 참 좋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책에 대해 '깨달았다'는 게 이상해 보일 지도 모른다. ... 대중문화를 잠시 끊고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펼쳐보지도 않을 책을 읽는다는 것과,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정표에 의지하여 여행하며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생 이 책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나는 이 책들의 운명에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pp. 2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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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코마에 두부 - 생뚱맞고 시건방진 차별화 전략
이토 신고 지음, 김치영.김세원 옮김 / 가디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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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으로 만든 음식을 참 좋아한다. 그냥 먹는 콩도 맛있고, 삶아서 먹는 콩도 맛있고, 두부, 두유, 청국장, 콩국수 등등 하나같이 다 맛있다. 그 중에서도 두부는 가장 질리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고, 요리법도 다양해서 즐겨먹는데, 이 두부는 한국 사람도 참 좋아하지만 일본에서도 인기가 엄청나다.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굽거나 으께서 다른 재료와 볶아 먹기도 하고, 색다르게 튀겨 먹거나, 중국식으로 마파두부를 만들어 먹는 것도 대중화 되어있다.

 

이 두부에 일생을 바친 일본인이 있다. 이름은 이토 신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두부 하청업체를 이어받아 고작 '두부 한 모'로 700억 신화를 달성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가 만든 '오토코마에 두부'는 일본 닛케이트렌드지 선정 '일본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될만큼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다름아닌 독특하고 엽기적인 차별화 전략! '오토코마에(男前) 두부'라는 이름만 봐도 이 두부가 얼마나 특이한지 알 수 있다. '오토코마에'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남자다운', '터프한', '강한' 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서민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두부라는 식품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신선함이, 독창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일본 전통 이미지를 살린 패키지도 '디자인 강국' 일본 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요인 중 하나다. 불황 속에서 다른 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가격을 내리며 가격경쟁을 할 때 나홀로 가격을 올리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점도 특이하다. 인터넷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통해 바로바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훈도시 축제' 같은 독특한 이벤트를 열며 대기업의 안일한 홍보방식과 차별화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 '오토코마에 두부'야말로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혼자 'NO'를 외치는, 그런 업체가 아닐런지.

 

이토 신고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 나는 무엇보다 학창시절 열광했던 스타들의 이미지를 잘 기억해서 제품에 적용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가 제품에 차용한 '오토코마에' 이미지는 어린시절부터 그가 동경해온 야자와 에이키치, 우키야 도지로 같은 스타들의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60년대생 남성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들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 자유로운 정신, 반항아 정신 등을 상징한다. 그는 이 스타들한테 열광했던 시기를 잊지 않고 제품에 반영했다. 캐릭터, 디자인뿐만 아니라 업계 포지셔닝까지도 이들의 이미지와 일치했다. 주 소비층인 같은 세대의 소비자들한테 어필한 것은 당연하다.

 

내가 하도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동생까지도 옆에 와서 읽으며 '너무 재밌다'를 연발했다. 신선식품이라서, 일본에서만 이 두부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언젠가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오토코마에 두부', 꼭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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