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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부터 들기 쉽다. 그래도 최근에는 당시에 최신 유행을 선도하며 고급 문화를 향유했던 모던걸, 모던보이 등이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다뤄지기도 하고 당시를 배경으로 한 팩션이 유행을 하기도 하며 새롭게 관심을 가져보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지만, 근현대사 하면 여전히 강화도조약에서 국권 침탈,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가슴 아픈 역사가 떠올라 알기를 주저하고,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그런 사람이라도, 이 책 <이토록 아찔한 경성>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뀔 것 같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OBS 특별기획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에 소개된 내용 중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 등 여섯 개의 테마를 담은 책으로, 근대 조선인들에게도 현대인들과 똑같은 욕망과 사생활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시대가 어렵고, 나라 잃은 민중들이라고 해도 먹고, 자고, 노래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 커졌을지 모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광고. 근대 광고는 1876년 개항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광고 품목은 다방, 담배, 음료, 맥주, 이유식 등 다양하다. 인쇄 품질이나 디자인, 폰트도 조악하고, 지금 보기엔 낯설고 유치한 문구도 있지만, 포지셔닝, PPL 등 현대 광고에도 쓰이는 기법이 쓰인 것도 있고, 지금 광고와도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의 광고도 있어서 놀라웠다. 이런 광고들을 보고 있자니 그 때 사람들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품에 호기심을 느끼고, 열광하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김병희 교수는 이 당시 광고에 대해 '남이 이야기한 것들을 보고 모방만 하는, 주체적 욕망이 아니라 모방으로서의 욕망'이라고 표현했는데(p.49) 조선인이 만들고, 조선인이 원하는 물건이 아닌 일본 기업이 파는, 일제에 종속된 2등, 3등 민족으로서 일본인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로 했던 상품이라... 이런 '식민지적 근대성'에서 비롯된 광고들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당시의 광고들을 보니 마냥 재밌고 놀랍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1부 광고 편에 이어지는 2부는 흔히 '트로트'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성인 가요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전까지 농악이나 민요만 불렀던 조선 민중들이 일본의 엔카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엔카가 우리나라의 트로트로 뿌리내리는 과정, 그리고 트로트가 일제강점기에만 해도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걸이 향유하는 고급 문화였던 반면 1960년대 이후에는 성인가요로 분류되며 가요의 주류가 아닌 하위장르의 하나가 되는 과정 등등 평소 잘 몰랐던 내용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3부 사법제도 편을 지나 4부 문화재 편 <지켜낸 문화재, 지키지 못한 문화재>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분인 간송 전형필 선생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대학교 3학년 때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지금 시세로 약 6천억 원)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여 남긴 분이다. 이 분이 안 계셨으면 국보 제 70호 <훈민정음 혜례본>,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해외에 유출했거나 소실했을 것이다.
선생의 거간꾼 중 한 명이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읽는데 안타까움을 넘어 속에서 열이 났다. 거간꾼이 일제 시대의 유명한 친일파 중 한 명인 송병준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 집의 하인이 정선의 화첩을 불쏘시개로 쓰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화첩을 받았고, 거간꾼이 이 사정을 선생에게 말하고 선생이 화첩을 매입하려고 하자 송병준의 자손은 장작 값이나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선의 작품이 한낱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정선의 작품을 알아볼 줄도 모르는 수준 낮은 사람들이 조선을 일제의 손에 넘겼다는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간송 선생은 '이런 귀한 물건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높은 값을 쳐주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만 보아도 선생의 고매한 인격과 나라사랑 정신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근대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근대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빚지지 않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5부와 6부에서 이어지는 미디어와 철도에 관한 내용만 보아도,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자생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일제와 현재 일본의 우파는 지금까지도 일제 침략이 조선 근대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마냥 암울하고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고, 그런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선조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내용이 책보다 먼저 방송을 통해 만들어져 2년간 100회 남짓 방영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경성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오래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준, 아주 고마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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