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스토리콜렉터 11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북로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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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한 날이었다.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가지도 못하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수험자들 사이에서 시험을 보고... 어른이 되는 기준이 취업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면 난 아직도 애. 나이만 먹은, 몸만 큰 애 같은 기분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그 책이 바로 이 책 <반짝반짝 전당포>였다.

 

<반짝반짝 전당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부모님의 간섭이 귀찮고, 친구 때문에 고민하고, 애정 문제에는 한없이 서툰, 아주 보통의 아이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소녀가 리카다. 신문부원이자 우등생인 리카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이고 어른들에게는 싹싹하고 착한 여학생이다. 리카가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바로 '추억전당포'. 이 곳의 마녀에게 추억을 맡기면 그만큼 돈을 주는, 말 그대로 추억을 받는 전당포인 셈이다. 이 곳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무살이 되면 이 곳에 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이 곳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식으로 이 곳은 아이들 사이에만 공유되는 비밀로 남을 수 있었다.

 

마을 아이들 모두가 이 곳의 존재를 알고 있고 게임기나 간식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면 추억을 팔고 돈을 받으며 이 곳을 이용했지만, 리카만은 이 곳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돌하게도 학교 신문부의 이름으로 마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캐물었다. 그런 리카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믿고 싶지 않았던 '추억전당포'의 단골 손님이 되고, 여전히 추억은 팔지 않지만 마녀와의 우정을 쌓으면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아이들이 추억을 팔아 돈을 버는 모습은, 어른들이 돈을 버느라 아이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잊어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추억전당포를 드나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날 만큼 불쾌한데도, 현실의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주는 면죄부일까, 어른이 만드는 변명일까.

 

그에 반해 리카가 '추억전당포'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과정은, 무리해서 어른이 되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아이로서의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어른이 되겠다는 자각을 해나가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성적이 비슷하고 성격도 얼추 맞는 - 소위 비슷한 그룹의 친구 대신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이 잘 통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친구 메이를 사귀게 되는 과정과 남자친구 유키나리와의 비틀린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리카가 전에 비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리카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 거짓된 관계를 이어나가고 무리해서 어른이 되려고 애썼다면 그토록 소중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설픈 아이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이였을 때 어른인 척 하느리 좀 더 느긋하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나는 리카가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신문부라는 것도 그렇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을 신경 쓰며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이 모두 믿는 '추억전당포'의 존재를 본인만은 믿지 않고 오히려 의심하고 추궁하는 당돌한 성격도 그렇다. 메이 같은 친구를 동경한 점, 게다가 자기와 다른 성격의, 냉정하지만 솔직한 소년 유키나리에게 끌린 점까지도 똑같다. 그리고 나에게도 '추억전당포' 처럼 눈을 돌리면 언제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가 있다. 그래서 리카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로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듯이, 어쩌면 나에게도 지금의 이 늦되고 오랜 성장통이 헛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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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의 아이들 - 재난이 휩쓸고 갈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모리 겐 지음, 이선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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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일본에서 흔히 있는, 진도 1,2 정도의 약한 지진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과 일본 방송, 그리고 인터넷과 SNS 서비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연달아 접하면서 엄청난 재해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력 부족으로 인한 정전과 피재지 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접하면서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닌데도 안타깝고 슬펐다. 얼마 후 일본 사회는 복구 작업을 개시했고, 시민들은 피재지에 지원 물자를 보내고 솔선하여 절전 운동을 하면서 국난 극복을 위해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잘 마무리 되고 있다고, 국내에는 거기까지만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고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꾸준히 일본 사회를 관찰하고 있는 내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달랐다. 1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 사회가 그 때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무서운 재앙 앞에서 일본 사회는 감정을 절제하고 변화나 새로운 시도를 삼가는 풍조가 더욱 만연해졌다. 안 그래도 경기 침체와 고령화 등으로 침체되어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번 쓰나미가 일본 사회의 고삐를 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쓰나미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 책 <쓰나미의 아이들>의 저자 모리 켄은 일본을 대표하는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쓰나미 이후 피재지의 아이들로부터 작문을 받아 아이들의 눈에 이번 재난이 어떻게 비쳐졌는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의 시도는 일본 사회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피재지 밖의 일본인들에게는 감동과 경각심을, 그리고 피재지 주민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일반인보다도 훨씬 글을 잘 쓰는 저널리스트가 굳이 어린이들에게 글을 쓰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널리스트라면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아이들이 쓴 글보다도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보니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1933년 요시무라 아키라가 쓴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이라는 책 한 권이다. 이 책에서 故 요시무라는 1933년 3월에 일어난 소화 대지진해일 때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의 글을 모아 소개했다. 그 때의 해일은 이번 쓰나미의 20세기판, 소화(쇼와)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았다. 3월에 일어났다는 점을 비롯해 발생 지역도 겹친다. 저자는 이번 쓰나미가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니고 불과 몇 십년 전에 일어났던 재난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때의 재난을 극복하고 다시 사람들이 마을을 부흥시켰다는 점에 두 번 놀랐다. 그 중심에는 앞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이 있다는 것, 거기에 저자는 주목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훨씬 민감하고 섬세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글은 전문 기자나 작가가 쓴 세련되고 정제된 글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훨씬 안타깝고 애잔하게 다가왔다. 하루 사이에 부모를 잃고, 형제와 친구들을 잃고, 집과 학교가 부서지고, 아끼는 물건들이 망가지고... 성인인 나도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것들이 없어지고 부서진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두렵고 무서운데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는 그 때의 기억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여린 아이들이 어른들보다도 훨씬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일어섰다는 점이다. 먼저 아이들의 글을 받은 저자는 추후 취재를 통해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쓴 이야기를 보완했다. 그 때 저자가 만난 어른들 중에는 갑작스럽게 닥친 삶의 고비 앞에 넋을 잃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위기 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인 어른들도 있었다. 자기 형편도 어려우면서 피재지를 수습하고 임시 거처를 통솔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부모에 조부모까지 잃고 고아가 된 조카들을 돌보는 고모, 크게 놀랐을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을 구해 읽을 정도로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어머니 등...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일본 사회가 큰 재난 앞에서도 의연하고 겸허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글인 마키노 아이의 <쓰나미>는 이 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마키노 아이는 1933년 산리쿠해안 대지진해일 당시 생존하고 이번 쓰나미에도 해를 입지 않은, 그러니까 두 번이나 쓰나미를 겪고도 살아 남은 아흔 살 가까운 할머니다. 나는 차마 쓰나미를 두 번이나 겪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글 처음에 나오는 할머니 사진을 보고 잘못 실린 것이거나 다른 사연이 있는 줄만 알았다. 할머니는 1933년 쓰나미 때 가족 모두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큰 고통과 시련을 준 고향에서 가족을 꾸리고 살고 계신다. 어떤 시련이 와도 고향과 가족에 대한 마음은 파도가 휩쓸 수 없고, 살겠다는 의지는 재난이 꺾지 못한다는 것을 이 분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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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공 TOEIC Speaking - 모의고사 5회분 포함 시나공 TOEIC 시리즈
James Song 지음 / 길벗이지톡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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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공 토익 Speaking>은 토익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있어 '기본서', '정석'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익 스피킹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시험 안내부터 준비 방법, 요령, 그리고 실전에 가까운 모의고사까지...! 토익 스피킹은 사실 시험 시간만 보면 고작 6분 15초밖에 안 되는 가벼운(?) 시험이다. 하지만 이 6분 15초의 벽을 뚫지 못하고 좌절하고,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실제 시험에 가장 가까운 원고를 바탕으로 총 6개 파트를 정복하기 위한 팁, 이른바 <시나공법>25개를 담아 수험자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점이 돋보인다.
 
토익 스피킹 시험을 효율적으로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험의 형식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학습량이 부족한 수험자라도, 일단 시험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알면 절반은 알고들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 <시나공 토익 Speaking>은 먼저 각 파트의 문제 유형과 그에 맞는 대답 형식(패턴)을 꼼꼼하게 설명해 놓았다. 가령 사진이 제시되는 part2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 어떤 주제에 관해 의견을 말해야 하는 part6에 대비하는 방법 등을 보면 초심자라도 어떤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고, 어떤 방식으로 대답을 구성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 정말 급한 수험자라면 이런 패턴만 익혀서 가도 시험에서 어느 정도 선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시나공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가면 금상첨화다. 시나공법은 토익 스피킹 시험에 대비하는 요령, 전략, 답변 틀 등 시나공이 제시하는 만점 비법을 일컫는 말로, 이 책에는 무려 25가지의 시나공법이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을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답변을 구성해야 하는지 아리송했는데, 시나공법을 따라 답변을 작성하고 입으로 말해보는 연습을 해보니 큰 도움이 되었다. 토익 스피킹 시험이 회화 시험이다보니 발음이나 억양, 강세 등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텐데(바로 나!), 그러한 팁은 '고득점 노하우'라는 제목으로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다. 

 

당장 토익 스피킹 시험을 볼 계획이 없어도 회화 공부를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영어를 오래 공부하면서, 영어라는 것이 내가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많이 써먹어 본 적이 없어서, 말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공부해보면서 하루에 몇 장이라도 진도를 나가고, 입으로 소리내는 연습을 해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내가 듣기에 좀 더 나아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또한 이 책에는 영어로 말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발음이나 억양 같은 부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영어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작문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밖에도 실제 시험 환경을 그대로 복원한 모의고사 5회분 실전 CD가 제공되고 대본 및 해설집도 제공된다.  '해설'집 답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학원이나 강사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하는 수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길벗 이지톡 교재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맞춤형 학습 스케줄까지~ 이 책 한 권이면 정말 토익 스피킹 준비하는 데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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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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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와 인문학을 접목하는 것이 요즘 출판계의 트렌드인가 보다. 얼마 전에 읽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는 인문학에서 경제학의 원리를 찾았고, <공병호의 고전 강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기계발의 교훈을 찾았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 이런 식으로라도 인문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길 일이 아닌가 싶다. 아니, 원래 인문학은 텍스트, 그 외의 학문은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학자, 작가들의 연구 방법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번에 읽은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도 이러한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는 책이다. 변화경영사상가로서 활발한 저술 및 코칭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 구본형은 이번 책에서 서구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기계발의 비법을 찾았다.

 

수많은 텍스트 중에 저자는 왜 신화를 선택했을까? 알다시피 신화에는 변신,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물, 심지어는 빗물로 변신을 하기도 했고, 그 전까지는 평범했던 인물이 어떤 사건을 통해 영웅으로, 왕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변화경영' 사상가인 저자의 마음을 울렸고, 신화 속 이야기를 변화경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훌륭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까지 신화를 그저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저자를 보니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면 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의 변용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앞으로의 숙제다.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제우스, 비너스, 시시포스, 이카루스, 피그말리온 등 잘 알려진 (그러나 여간해서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을) 신화 속 명 장면이 등장하고 저자의 해석과 견해가 더해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신화 이야기야 원체 재미가 있지만, 저자의 글이 하도 좋아서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한 이야기마다 뒤따르는 저자의 설명이 탁월하고, 조셉 캠벨, 칼 융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이나 어록이 인용되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나는 '피그말리온' 챕터에 나오는 루 살로메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까지 여러 책에서 단편적으로 읽다가 이번에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녀의 삶을 피그말리온 이야기와 연결한 점이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희대의 인물들의 가슴에 사랑의 씨앗을 뿌린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어느 남성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그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한 여인, 루 살로메. '염원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깎아, 단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 (p.109) 그녀의 삶이 참 멋지게 느껴졌고, 닮을 수만 있다면 닮고 싶다. 

 

이 책 자체도 배울 거리가 매우 많지만, 나는 저자의 삶의 행보 자체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초여름에 저자의 <깊은 인생>을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저자가 역사학도에서 직장인, 그 후엔 변화경영 전문가이자 사상가, 작가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특히 조셉 캠벨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 년이 조금 넘은 지금 그의 신간을 보니 여전히, 그리고 끊임 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고, 살아보고자 하는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계신 것 같아서 독자로서 뿌듯하고 또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글이 마음에 와닿고, 변화하는 삶을 살고 싶으면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저자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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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 네트워크 세대는 어떻게 21세기 정치의 킹메이커가 되는가?
한종우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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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선거운동 하면 후보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여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지하철이나 길거리, 시장 등에서 유권자들을 한명 한명 만나며 유세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선거운동의 특성상 후보자들이 만나는 유권자들도 학교나 직장에 있는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선거운동 풍경은 조금 다르다. 과거의 모습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선거운동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더니, 얼마 전부터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를 통한 선거운동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매체들은 후보자 개인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쌍방향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그동안 주요 유권자층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던 젊은층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유권자인 청소년층도 인터넷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정치현상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 한종우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시러큐스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취득하고 맥스웰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사이버 세대의 정치현상에 관해 활발한 연구,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학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정보 기술을 활용하여 한국의 정치문화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분석 자료와 함께 보여주었다. 정치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등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주제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어서 어떤 책일지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먼저 저자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변화 현상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디서 이 현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과거 알렉산더 토크빌이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에서 발견한 '타운 미팅'을 이 현상의 기원으로 제시했다. 토크빌은 권력 상층부의 주도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 문제를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타운 미팅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정치 문제를 논의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현상은 현대판 타운 미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이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도 아니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정치 신인이나 다름 없던 오바마가 노장 맥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에는 디지털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젊은 세대들의 공이 컸다. 또한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도 트위터,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있는 'R세대'에도 주목했다. R세대는 다른 말로 '2030세대'로도 불리는데,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의 폭발적 보급과 동원력을 바탕으로 정치 무관심층에서 참여적 유권자로 극적으로 변모한 점이 특징이다. (p.124) 흔히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적인 속성이 강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이 있는데, R세대는 다르다. 부모 세대인 386세대에 비하면 이념적인 성향도 낮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부여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R세대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왔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에 친숙하고,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크다.

 

특히 저자는 '생활정치'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R세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생활정치란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평등이나 해방과 같은 이슈들과는 관련이 적고, 급속한 탈전통화 추세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p.169) R세대는 정치 외에도 경제, 환경, 문화, 복지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이는 바로 생활정치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R세대는 당장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 내가 관심 있는 환경 문제에 찬성하는 후보자가 있으면 바로 열성적인 유권자층으로 돌변할 수 있다. R세대의 이러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후보자가 정치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

 

이 밖에도 책 후반부에 일본 정치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대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거나, 왜 일본은 이러한 변화에서 뒤처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이 차후 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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