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저의 심리학 - 모두가 다 루저야, 미래를 향해 달려!
신승철 지음 / 삼인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과거 심리학이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가정폭력이나 학원폭력,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같은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하여 분석하는 학문이었다면, 최근에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범위를 넓혀 분석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가령 정혜신 정신과 박사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집단 심리치료한 사례를 들 수 있는데, 노동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가 개인에게 가하는 정신적인 악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사회 구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일방적이라고 보았단 반면, 최근에는 개인의 병든 심리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싸이코패스)
'루저(loser)' 문제도 개인의 심리라는 측면과 사회 구조의 병폐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루저'는 몇 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모 여대생이 특정 신장에 미달하는 남성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여 화제가 된 말인데, 최근에는 신장뿐 아니라 학벌, 외모, 직업, 재산 등 여러 측면으로 보아 미달하고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학벌이든 외모든 뭐라도 하나 빠지는 사람이 루저라면, 이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는, 소위 '스펙'을 전부 갖춘 '엄친아', '엄친딸'은 우리 사회에 0.001%도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의 99.99%가 루저인 사회, 이런 사회를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루저의 심리학>의 저자 신승철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루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 뒤 임상 실험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꾸는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루저라는 주제 자체는 처음 보는 것이 아니지만 사회적인 이슈로 볼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의 심리 차원에서 접근한 점이 신기했고, 막연한 서술이 아니라 저자가 피험자들과 직접 일대일로 만나 임상 실험을 하는 과정이 담겼다는 점이 신선했다.
이 책에 나오는 루저는 꿈루저, 외모루저, 돈루저, 실업루저, 빚루저, 학벌루저, 주택루저, 직장루저 등이다. 용어 자체는 낯설지만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일상에서 한두번쯤은 만나봤을 인물군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꿈루저' 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꿈루저는 말 그대로 꿈이 없는 사람인데, 자신의 꿈을 찾고 몰두하는 대신 연예인, 드라마 이야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상만 해도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연예인의 가십과 드라마 줄거리에 인생을 맡기는 사람들. 'TV가 대신 꿈을 꿔 줘요'라는 피험자의 말은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현재의 사회는 거대 구조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기계 부품들의 연결 방식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사회이며, 그렇기 때문에 <u>작은 기계 부품이 색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회임을 알 수 있다. ... 색다른 꿈에 따라 전체의 방향성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언제든지 가능하며, 이 꿈의 행로에 따라 특이한 삶을 사는 것도 언제든 가능하다.</u> ...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틀 안에서 똑같이 움직여야 할 로봇과 같은 운명에 놓인 것이 아니라 자신마다 특이한 삶의 방식과 특이한 꿈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자신만의 아주 특별한 꿈꾸기'의 순간이자 꿈루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색다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pp.53-4)
저자는 책에 나온 실험을 통해 '루저' 문제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 탓만 하지 말고 일단 나부터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을' 루저'라고 규정짓는 것은 남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만약 나인 경우에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가령 '꿈루저'라면 꿈이라는 것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것, 손쉬운 것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주택루저'라면 TV에 나오는 멋진 집, 이웃이나 친척이 산 집을 탐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집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가 꿈꾸는 집을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
'Why be a runner when you can own the race?''라는 말을 좋아한다. 남의 경기에서 뛰다가 패자가 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네 스스로 경기를 만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을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루저가 될 것을 걱정하기 전에, 루저라고 자기 자신을 탓하기 전에 내가 바라는 승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내가 두려워하는 루저의 모습이 무엇인지부터 아는 게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