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생각하라 - 지금 여기, 내용 없는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전공인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고민은

이 학문이 과연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공무원, 외교관, 언론인 등 몇몇 직업을 가지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고,

사회는 정치학 같은 사회과학보다는 경영이나 경제 같은 상경계열을 유시하는 분위기다.

거기에 탈냉전 이전에 쓰인 교과서를 가지고 그 이후를 논하는 학계 현실은 답답함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진정 나를 답답하게 한 건 이런 환경이 아니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학문을 가치있게 활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슬라보예 지젝을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렸다.

21세기 현재 세계에서 가장 hot한 철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슬라보예 지젝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으로는 드물게 학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는

학부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파리 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조합하는 독특한 사유 체계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젝의 유명세는 그 독특한 사유 체계 때문만은 아니다.

사유, 그 이상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먼저 사회 활동에 앞장서는 모습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신간 <멈춰라 생각하라>는 바로 그러한 지젝의 사유체계와 활동상이 여실히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크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 문제와

민족주의를 비롯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갈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지난 해에 있었던 월가점령시위로 극대화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내재된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무한 반복될 것이라고 지젝은 주장한다.

월가점령시위가 끝나고 다시 자본주의 사회로 돌아간 시위대처럼,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어도 체제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그 의문마저 체제 속으로 사라진다.

무작정 정부를, 기득권층을, 사회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멈춰'서 '생각하라'는 지젝의 메시지를 이해할 것 같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갈등으로는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을 비롯한 민족주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젝은 1930년대 히틀러가 일반 독일 국민이 겪는 고통에 대한 설명으로 반유대주의를 제시한 예를 들며(p.76)

민족주의 내지는 인종 갈등, 다문화사회 문제가 '의도된' 또는 '만들어진' 갈등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가 프레이밍한 관점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배척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재앙이 일어나고, 죄없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가.

그 모든 것을 주류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으른 이들의 탓이 아닐까.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체제 그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적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위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행동에 돌입한 가짜 친구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투쟁을 무해한 도덕적 저항으로 만들고 있다. (p.9)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본 영화 <레미제라블>을 떠올렸다.

원작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청년이 시위 중에 정부군의 총을 맞았으나 장발장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난 뒤

장발장의 수양딸 코제트와 결혼하고 귀족의 삶으로 돌아가는 부분에서 나는 안도감이나 행복감보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지킨다는 것은 '울지 못할 비극'이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나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랑을 나누던 연인은 땅으로 돌아갔고, 귀족이라는 명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반면,

총탄 앞에 쓰러졌던 이들의 꿈은 끝내 이루어졌다.

현대인들이 자본주의를 숭배하고, 민주주의를 비웃는 순간마저도

과거에 살았던 수많은 이들이 포기한 남은 삶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멈춰'서 '생각하라'는 말은, 지젝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그들로부터 전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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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우연이라면 얄궂게도,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을 읽은 날 저녁에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을 읽었다.

한국어판 제목이 다섯 글자라는 점 말고도 두 책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 문화에 대한 책이라는 것.

 

다만 롤랑 바르트는 철저히 서구인의 시각에서 일본 문화를 바라본 반면에,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 땅에서 태어나 일본인 부모 밑에서 자란 일본인이면서도,

학창시절을 외국 - 체코 프라하 - 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방인의 시선이 가미된 관점에서 자국의 문화를 관찰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요네하라 마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팬티 인문학>은

그녀의 통통 튀는 호기심과 재기 넘치는 글재주가 유감 없이 발휘된 책이다.

 

그녀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주제는 크게 성(性), 언어, 문화 - 이렇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어느 책을 보나 세 가지 주제에 대한 화제가 등장하지만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책에는 성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야한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속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는 속옷 너머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고, 속옷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기독교계 유치원에 입학한 첫날, 새로 만난 친구들과 맛있는 점심밥보다도

십자가에 못박힌 아저씨(?)의 그곳(!)을 가리고 있는 것의 정체가 궁금했다는 그녀는

사춘기 시절에는 일본 소설과 러시아 소설을 독파하며 성적인 호기심을 해소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사실 그녀의 호기심은 남다르다고 할만한 것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언제부터 속옷을 입었을까,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속옷을 입을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호기심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호기심을 개인적인 경험에 접목시키고 다양한 나라의 문헌을 넘나들며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이 다르다.

 

러시아어를 비롯한 언어구사 능력과 유학 경험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일본의 여성들이

공중목욕탕에서 맨몸을 보이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와이셔츠가 일반적인 셔츠 길이보다 더 길고 맨 밑부분이 트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에트계 학교에서 가정 시간에 팬티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소한 호기심과 개인적인 경험조차도 역사와 문화의 소산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문학적인 열정과 탐구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재와 강연을 통해 그녀의 연구가 발표될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독자들이 전화와 편지 등을 통해 의견을 덧붙인 것을 보며 일본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속옷이라는 - 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영역조차도 집요하게 연구하고 공적인 담론으로 만들어내는 이런 문화.

이런 문화적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요네하라 마리라는, 희대의 글쟁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평생을 속옷 연구에 바치고 싶었다던 그녀, 요네하라 마리.

가끔 그녀가 그리워질 때면

그녀가 세상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서둘러 데려가신 것이라고 애써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의 후속편을 볼 수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닌, 인류의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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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봅니다
김창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KBS 아침마당, EBS 라디오 직장인 성공시대, SBS 백세건강 등에 소통 전문가로 출연했고,

삼성전자, LG, 포스코, GS, 한화 등 200여 곳의 기업과 사법연수원 등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

스타강사 김창옥.

그의 화려한 이력과 열정적인 강연의 이면에는

어둡고 얼룩진 어린시절이 있다.
 

김창옥은 제주도의 어느 가난한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버지는 월급을 도박으로 탕진하기 일쑤였고,

부모님이 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온 식구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해병대에 입대,

힘든 군생활을 마친 후에는 뒤늦게 품은 성악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성악을 배우면서 알게된 건 자신에게는 최고의 성악가가 될 만큼의 재능은 없다는 것.

결국 그는 그 멋진 목소리로 성악가가 아닌 강사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섬 소년이 스타 강사로 변신하기까지의 이야기도 충분히 멋지고 감동적인데,

그의 신간 <나는 당신을 봅니다>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스타강사로서 쉴 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그는 자기 내면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모습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강사라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열등감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학대했고 늘 무뚝뚝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았다.

한동안 어색한 시간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부자의 거리도 차츰 좁혀졌다.

 

이 책에는 그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비롯한 50여 편의 힐링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는 물론, 그가 만난 사람들 모두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속 깊이 묻어놓은 이야기를 물으면 하나같이 과거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고통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남이 뭐라 하지 않는데도 열등감이라든가, 자책감이라는 무기로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계발, 성공 이런 것을 논하기 전에 내 안의 '아이'를 먼저 돌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림 같은 가정을 원하고,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내 안의 '아이'.

하지만 그런 소망, 그런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부모님은 날 다시 사랑해주기 어렵고, 그림 같은 가정, 동화 같은 사랑은 모두 허상이다.

차라리 과거로부터 깨끗이 결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미래가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저자는 어두웠던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람들은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필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 바꿔야 하는 것은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바로 과거에 있다. (p.7)

 

자신에게 얼음 땡을 외쳐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괜찮니?'라고 물어봐주고 '괜찮아'라고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이다. 

자기 안에 공포에 짓눌려 있거나 죄책감에 빠진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이다. (p.19)

 

만약 요즘 자신의 삶이 부정적인 영상과 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죄책감, 열등감, 상처, 불안 등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너무 완벽해지기 위해 힘을 주는 것보다는 가끔이라도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p.142)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비롯한 여러 이웃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성찰해볼 수 있었다.

연말연시, 긍정의 에너지와 치유의 힘을 얻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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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를 읽고 저자인 고미숙 님의 글에 반했다.

저자 님의 명성이야 전부터 익히 들어왔으나 책을 읽어 볼 엄두는 내지 못했는데,

사주명리학에 관심이 있어 어머니와 함께 읽을겸 무심코 산 책이 뜻밖에도 매우 재미있어서

이 분의 책이라면 어떤 내용이든 다 읽어볼만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하여 읽게 된 책이 바로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다.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요, 주식투자, 재테크 같은 돈을 많이 버는 비법에 해박한 분도 아니다.

다만 '돌고 돌아 돈이라는' 돈이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세태에 대한 탄식과,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잃고 있는 요즘 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88만원 세대'의 일원으로서 공감이 되는 내용이 아주 많았다.

한 시간 꼬박 일해야 겨우 천원짜리 몇 장이 쥐어지는 알바생의 생활,

비정규직으로 '정규직만큼' 일해도 '정규직처럼'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도 겪었다.

천원짜리 대용량 과자를 사서 5일 동안 점심을 때운 적도 있다. 

명품백, 외제차는커녕, 교환학생, 어학연수도 사치스런 꿈이다.

 

'연구공간 수유 너머', '감이당' 같은 학문 공동체를 이끌며 젊은이들의 현실을 가까이 접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는

이 시대의 현실이 그 누구의 글보다도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답도 나와 있다. 바로 공부, 그리고 공동체다.

 

현대 사회의 공부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돈이 되지 않는 공부를 해도 돈이 될까? 마법처럼 들리지만 존재한다. 저자가 바로 산 증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고전문학 전공을 해도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교수가 되지 않아도 평론가, 작가로서 충분히 밥벌이를 하고 있다.

아니, 다른 이들처럼 처음부터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학문에 더욱 정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또한 학문 공동체를 만들어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는 저자 자신도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한다.

공동체 식구 대부분이 부자도 아니요,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회인도 아니지만,

누구 하나 돈 때문에 쪼들리지도 않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돈 때문에 가족도, 애인도, 친구도 버리고, 돈이 없으면 사람도 못 만나는 세상에서,

돈 때문에 궁해지지 않고, 돈 없이도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나한테 1만원이 없어도, 기꺼이 천 원씩 나눠줄 친구 열 명이 있으면 궁해지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인간은 그런 친구가 없어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닐까?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나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경제학 입문서보다도 많은 것을 배웠고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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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출간!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3-01-29 16:27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분석해낸 우리 사회의 현상과 욕망!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인문의역학 사회비평 에세이!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다. 몸과 우주,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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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면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도서관에 가서 학습실이 아닌 열람실에 자리를 잡았다.

언어영역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학교 공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일본소설과 사회과학 서적에 몰두했다.

 

그 때 서가를 지나면서 언젠가 한번쯤 읽어봐야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과연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책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였다.

 

방대한 양에 질려,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그 책을,

그로부터 약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읽으면서(이제 겨우 1부를 읽은 것에 불과하지만)

나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르셀 프루스트는 청년 시절 사교계의 향락에 빠져 지내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적인 활동을 모두 접고 집필에 몰두했다.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어서 고생하다가 낸 책이 바로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이 책의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는

(마르셀 본인으로 추정되는) 주인공이 화려한 사교계에서 어른의 삶을 즐기다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마들렌의 맛에 이끌려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시간의 단절 속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길을 찾듯이, 젊었던 어머니의 모습과 가족들, 하인들의 일과, 교회의 모습, 집주변의 정경을 떠올리는 과정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신비로웠다.

 

소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스완 씨와 그의 아내가 되는 오데뜨의 사랑 이야기도 볼 만했다.

타인에 불과했던 여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눈길에 머물고, 마음에 들어오고, 사랑이 되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지를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의 곳곳에는 그 시절에 유행했던 문화와 예술이 반영되어 있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이요, 주인공과 스완이 꿈을 통해 정신적인 각성을 하는 점은 당시 활동했던 프로이트의 영향이 엿보인다.

이름이라든가, 현상과 본질, 언어유희 같은 부분은 롤랑 바르트를 비롯한 후대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1부를 다 읽은 지금, 뒷부분이 궁금한데 민음사 판본은 이제 겨우 여기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서 2부를 만나보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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