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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ㅣ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평점 :

작년에 본 드라마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작품은 단연 <고독한 미식가>다.
원작을 먼저 읽고 본 <심야식당> 시리즈는 그저 그랬고,
역시 원작을 먼저 읽고 본 <하나씨의 간단 요리>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으나,
<고독한 미식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좋았다. 원작을 먼저 읽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럴지도...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매력은 한마디로 말해 '쇼와스럽다'는 점.
'쇼와스럽다'는 말은 현재 일본의 연호인 '헤이세이(평성)' 시대 이전의 '쇼와(소화)'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로,
'촌스럽다'는 뜻도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을 지키는 것을 칭찬하는 숨은뜻도 있다.
<고독한 미식가>는 바로 이런 '촌스러움'과 '일본인 특유의 미의식'을 동시에 지닌 드라마다.
물론 음식 드라마인만큼 주인공 이노카시라 고로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가장 압권이지만,
속에서 어떤 감정의 동요가 있든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지 않는 고로의 신사다운 면이라든가,
세련되고 화려한 '맛집'보다는 나름의 독특한 정취를 가진 '멋집'을 찾아내는 초이스.
이런 점들이 예스러우면서도,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을 생각나게 해준다.

알려져 있다시피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구스미 마사유키가 줄거리를 쓰고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그린 만화가 원작이다.
드라마 시즌1,2를 다 보고 적적하던 차에 원작 만화 생각이 나서 그날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시즌2까지 나와서 권수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권짜리 만화였다.
(그것도 추가 에피소드 및 저자 대담이 수록된 증보판인데도 한 권이라니!)
만화를 먼저 본 동생이 '드라마와 만화가 다르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만화보다 드라마를 먼저 본 내 눈에는 드라마와 만화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이 보였다.
일단 잡화를 주로 취급하는 사업가인 주인공 이노카시라 고로가
업무차 들른 곳에서 한 끼를 때우는 이야기라는 기본 포맷이 똑같고,
매회 에피소드보다는 고로가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먹는 장면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도,
돼지고기 볶음, 타코야키, 야키니쿠, 덮밥, 오뎅 등 일본의 서민층이 즐겨 먹는 음식이 주로 나온다는 점도 똑같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드라마는 매회 앞부분의 에피소드가 만화에 비해 길다는 점,
서민 음식 외에도 오키나와 등 지방 요리나 중국, 브라질, 태국 등 다양한 외국요리에 도전하는 점 정도일까?
재미있는 점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연재된 만화 원작과
2010년 이후에 방영된 드라마 시즌1,2 속 풍경이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구체적인 부분을 따지면 달라진 점이 많이 있겠지만,
고로가 주로 애용하는 마을 상점가는 90년대에 비해 쇠락하면 쇠락했지 더 좋아지지 않았고,
아키하바라, 아사쿠사, 시부야, 긴자, 이케부쿠로 등 도쿄의 주요 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한 편이다.
이 만화와 드라마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십 여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만화로, 드라마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일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맛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주 값이 싸고, 특별한 재료나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하는 일본 요리사들의 자세,
그리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의 모습.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고 허기를 채우는 현대인들의 음식문화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음식의 소중함, 음식 문화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경기는 십 여 년째 침체되어 있고, 고령화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발목을 잡고있지만,
언제까지나 일본인들이 간직해주었으면 하는 맛과 멋 - 그것을 보여주는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