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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ㅣ 응답하라
박이정 지음, 이우정 극본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이유로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를 권장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남학생이라면 스포츠, 게임 등등이 있을 것이고(그 외의 방법들이 생각나지만 더 자세히 쓰지 않겠음), 여학생이라면 적어도 70퍼센트 이상이 연예인, 소위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 같다. (확실한 데이터는 없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여고, 여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팬질을 하는 사람으로서 장담함!)
여자 아이들한테 아이돌은 정말 특별한 존재다. 아버지나 오빠, 남동생, 선생님 또는 동화나 만화 속의 '왕자님'만 알던 여자 아이들이 처음으로 몇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 현실의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 여자아이한테는 처음으로 이상형, 남성관, 연애관, 결혼관이 생기고, 쉬는 시간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가고 싶은 대학, 직업까지도 결정된다.
현 2,30대 여성들의 첫사랑, 아니 '첫 아이돌'은 대부분 H.O.T와 젝스키스, 신화, g.o.d 같은 그룹들일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의 그룹이 해체를 했고, TV에서 볼 수 없는 멤버들도 많지만, 지금도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귀가 쫑긋 세워지고 가슴이 설레는 여성들, 많을 줄로 안다. 마치 첫사랑의 이름을 몇 년 후 문득 들었을 때처럼.
<응답하라 1997>이 좋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사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응구칠>이 '케이블 TV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 등등의 기록을 세우며 화제 속에 방영될 때에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이 드라마 내용이 90년대 팬덤 문화, 그것도 H.O.T에 관한 것이라는 걸 알고부터는 나도 모르게 방송 일정을 챙기고 있었다. H.O.T팬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을 살았고, 친구들 대부분이 H.O.T의 팬이었던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들 것 같다는 확신 섞인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 시. 나. 일단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부터는 멈출 수가 없었다. 첫방에 재방에 재재방, 재재재방까지 챙겨봤을 정도(요즘도 재방송을 하더군요). '성시원이가' 야자를 빼먹고 공방을 뛰고, 새 앨범이 나오면 발매일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고, 친구들끼리 최신호 아이돌 잡지를 분철하며 나눠가지는 장면... 그건 다 나의 이야기이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저 90년대 여자 아이들의 팬덤 문화에 대한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가깝고도 먼 존재인 아이돌 스타에 대한 짝사랑이 언제인가부터 바로 옆에 있는 가까운 남자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왔을 때, 그 때 여자 아이가 느끼는 혼란과 갈등, 어색함, 신비로움, 기쁨 같은 감정들이 이 드라마에는 너무나도 잘 그려져 있다. 어느덧 팬심보다는 현실의 사랑이 더 익숙해진 사람으로서, 드라마를 볼 때는 윤제의 감정에 더 이입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그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윤제보다도 토니 오빠가, 그 다음엔 태웅 오빠가 보였던 시원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얼마 전 <응답하라 1997>를 소설로 다시 읽었다. 신기하게도 내 눈은 글자를 보고 있는데 드라마 화면이 저절로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리고, OST가 깔렸다.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이 소설을 펼쳐보면 되겠구나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소설이 되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면 부족한 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라는데, <응답하라 1997>은 드라마도, 소설도 다 좋았다. 물론 일반 소설과 달리 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를 연상하게 된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곱씹어볼 수 있었고, 활자를 통해 내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지금으로부터 십 오륙년 전, H.O.T와 젝스키스, 신화, g.o.d 같은 그룹들의 이름을 외치고 풍선을 흔들었던 소녀들은 이제 한 남자의 여인 또는 아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안승부인' 성시원이 '윤제부인'('윤윤부인'이라고 해야 하나?)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우리 세대에게 있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다. 다른 소설과 드라마가 남들의 이야기라면, <응답하라 1997>은 나의 이야기이고 내 친구의 이야기인 셈. 그래서 지난 여름 많은 2030여성들이 응구칠에 열광했던 것은 아닐까?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빠' 아닌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 때. 처음으로 현실의 사랑을 가르쳐주었던 '그놈'과, 아직 여자가 아닌 여자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질 때마다 <응답하라 1997>이 새록새록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