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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어머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고 하셨다. 어머니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셨고, 그 시대의 대부분의 직장 여성들처럼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고 이십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셨다. 그 후로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최근 친구분들이 하나둘 대학이나 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도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던 며칠 전 수강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살면서 한번도 어떤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야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무엇을 할 엄두를 못 낸 탓도 있지만, 취업도 부모님이 정해준 직장에 다닌 것뿐이고, 운전면허를 딸 때도 남들이 다 하니까 했다고 하셨다. 남이 하라는 것,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다보니 오십년을 넘게 살면서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삶으로부터의 혁명>을 읽으면서, 젊은 시절 어머니가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을 인문학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3포 세대 등 지금의 20대들을 수식하는 말들은 실상 기성세대가 만든 말이고, 기성세대가 만든 현실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고, 비싼 학원비를 내가며 스펙을 쌓고,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든 현실 말고도 '다른 삶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20대 대부분은 다른 삶은 포기하고 오로지 (어른들이 가르쳐준) 한 가지 삶만을 정답으로만 여기고 있다.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인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어쩌면 그런 삶을 사신 분들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셨고, 아버지는 미술이나 문과 계통의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생계가 보장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적성에 안 맞는 공학을 공부하셨다. 남들 하는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늘리다보니 어느덧 오십대. 남들 보기에 부족한 것 없는 삶이지만(넘치는 것도 없다), 어머니는 이제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시고,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쓸쓸해 하신다. 하라는대로, 남들 하는대로 했을 뿐인데 내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삶과 현실을 구분하고, 현실과는 별도로 '자기만의 삶'을 꾸리라고 제안한다. 직업, 성공, 재테크 같은 현실적 성취는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직업이 곧 내 인생이 아니고, 스펙이나 재산이 내 성격과 자질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현실은 현실대로 살되, 자아가 원하는 일을 삶에서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삶과 현실을 동시에 꾸려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책에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브로크백 마운틴>, <비포 선셋>, <인 투 더 와일드> 같은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이 영화들은 저마다 주제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는가'에 대한 주인공의 성찰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런 성찰이 없으면 현실도, 삶도 있을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를 만족시킬 수 없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할 일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남을, 사회를 기준으로 놓고 '가짜 현실',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 과연 이것을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흔한 청춘 자기계발서에 질린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이다. 20대 또는 마음은 20대인 3,40대 모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