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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평점 :
보통 '공부'라고 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나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같은 과목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목의 성적이 좋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회에 나와보니 국어나 수학말고도 공부할 것이 너무나 많다. 컴퓨터도 공부해야 되고, 화장도 공부해야 되고, 세금낼 때 되면 세금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컴퓨터를 참 잘하고, 누구는 화장을 잘하고, 또 누구는 세금도 잘 내고 재테크까지 똑똑하게 잘한다. 그 사람들이 나보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았을까? 소위 말하는 '공부'를 잘했을까? 꼭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보다 컴퓨터 공부, 화장 공부, 재테크 공부를 잘하는 건 확실하다. 학교 공부가 공부의 전부는 아닌 셈이다.
이걸 깨닫고 참 다행이면서도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언어나 외국어, 정치, 경제 같은 분야가 학교 과목과 대학 전공으로 채택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나 화장, 다이어트가 학교 과목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성적 미달로 학교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불행은 내가 그런 것들만 좋아한다는 것이다. 언어나 외국어나, 정치나 경제나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분야인 반면, 쉽게 돈이 되지 않는다. 그야 학교다닐 때는 성적도 잘 받고 공부 잘한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지만, 어른이 되고보니 '공부가 밥 먹여주냐', '돈 안 되는 공부 계속 해서 뭐하냐'는 식의 비꼬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변한 게 없는데, 그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 것뿐인데. 내가 잘못된 것일까?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은 나처럼 공부와 인생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저자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 평생을 바친 '세상에서 공부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다. 이 책에는 그가 생각하는 공부에 필요한 정신과 조건, 방법 등이 알뜰하게 정리되어 있다. 제목만 보고 공부에 대한 관념적인 글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용적인 내용이 많았다. 가령 4장 <공부를 위한 시간>을 보면 낮과 밤 중에 어느 때에 공부를 하면 좋은지, 공부 시간은 어떻게 배분하면 좋은지 등 현대의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내용들이 보인다.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특히 7장 <공부의 실전> 중에 '읽기'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적으로 읽어야지 결코 격정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건강과 현명한 소비 규칙에 따라 그날 먹을거리를 미리 정한 주부가 시장에 갈 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시장에 있을 때 주부의 마음은 저녁에 영화관에 있을 때의 마음과는 다르다. 시장에서 주부는 즐거움과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가정의 살림과 안녕을 생각한다." (p.213) 이 문장을 읽고 죽비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고르듯 책을 찾지는 않았나, 표지과 작가, 줄거리 같은 흥미로운 요소에만 정신이 팔려있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주부가 가정의 살림을 챙기듯, 앞으로는 내 정신에 양분을 공급해줄 만한 책을 골라야겠다.
신학자답게 저자는 수도승처럼 고집스럽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시류에 휩쓸려 공부 역량을 소진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중략) 시류는 당신이 도달하려는 지점까지 당신을 데려다주지 못한다. 다른 이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p.214) 하지만 '공부를 위한 공부', 즉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삶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공부는 삶의 활동이어야 하고, 삶에 이바지하며, 삶으로 충만해야 한다. (중략) 우리가 아는 것은 시작이자 밑그림인 반면, 삶은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p.333) 공부는 삶을 잘 살기 위한 수단인데, 공부 때문에 삶이 고달파진다면 잘못된 것이다. 내 모습이 그렇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데 삶을 허비하는 사람도 많다. 이 책은 공부를 안 하는 사람과 하는 사람 모두에게 따끔한 교훈을 준다. 삶은 끝이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