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평점 :
봄이 되면서 춘곤증에 시달리는 학생, 직장인이 많다는 보도를 들었다. 그저 날씨 때문일까? 바깥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봄 기운으로 물이 오르는데, 현실은 교실이나 강의실에서 고개를 숙인채 공부를 하고, 사무실에 쳐박혀 주어지는 업무를 해야하는 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또는 울화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만 해도 그렇다. 그래도 오전에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데, 오후가 되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바깥으로 나가고만 싶다. 그러다보면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고, 피곤함과 지루함,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이거 나만 그런 건가?
인지과학자 박경숙이 쓴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을 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저자 박경숙은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고, 인공지능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대한민국 1호 인지과학 박사다. 그녀는 카이스트, 연세대, 성균관대 등 명문대에서 교수로 지내며 인공지능, 인지과학, 로보틱스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온 인생이건만, 그녀는 그 시절에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고압적인 조직 생활, 피상적인 인간 관계, 바뀌지 않는 현실로 인해 10년이나 시달리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인공지능 로봇보다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가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저자의 체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의 첫번째 장점은 앞서 말한대로 모든 내용이 저자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르의 책은 저자가 연구자나 학자 등 제3자의 입장에서 사례를 분석한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은 무기력, 권태, 피로, 우울증 등 모든 증상을 저자가 직접 체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서라기보다는 수기,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고, 전문적인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본문 사이사이에 삽입된 저자의 예전 일기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제자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몇 군데 있어서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나 장래를 생각하면 겁부터 나고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저자의 편지를 읽고 많은 자극을 받았고 힘이 났다. 나에게는 왜 이런 스승이 없었을까. 이렇게 책으로라도 좋은 글을 접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주제가 시의적절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무기력, 우울증 같은 증상을 비단 저자만 겪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 사업가뿐 아니라 학생, 취업준비생,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 A씨는 졸업을 앞두고 나름대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오전에는 토익 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스터디,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내년에는 꼭 취업하기를 바라며 늘 그 생각뿐이지만 정작 구체적인 진로를 고심하는 일은 미루기만 한다. (중략) 20대 후반 B씨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중략)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 프로그램을 익히며 실력을 쌓고자 하는 생각은 있으나 어쩐지 시간 여유가 생겨도 좀처럼 공부를 할 수 없다. 책을 읽다 보면 잠이 오고, 자신도 모르게 한참 동안 인터넷 쇼핑을 한다. (p.35)" 익숙한 사례가 아닌가? 주변에 둘러보면 말로만 "바쁘다"고 하고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무기력에 대한 단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점을 장점으로 들고 싶다. 무기력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의식적인 무기력'이다. 본인이 무기력한 상태라는 자각이 있는 경우에는 해결책이 있다. "탈진 때문에 무기력을 느낄 때는 심호흡을 통해 신체를 이완하거나 커피 또는 초콜릿을 섭취하고 가벼운 운동,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어준다. (중략) 복잡한 생각이나 잡념 때문에 무기력하다면 노트나 컴퓨터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p.39) 둘째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무기력'이다. 이 경우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책에 제시된 간단한 체크리스트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내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욕이 너무 넘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 제시된 체크리스트를 따라해보면서 적게나마 무기력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게 알고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점검하자. 예방은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필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