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인 김규림 작가님이 2017년에 독립출판의 형식으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뉴욕규림일기>, <연변규림일기> 등 '규림일기' 시리즈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먼저 읽은 <뉴욕규림일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저자의 실제 손글씨와 그림을 그대로 인쇄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뉴욕규림일기>가 미국 문구의 상징 '컴포지션노트'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라면, <도쿄규림일기>는 일본 문구의 상징 '무인양품'의 문고본 노트를 연상시키는 생김새이다. 참고로 최근에 출간된 <연변규림일기>는 중국을 상징하는 노트가 아닌 다른 종이묶음(?)에서 영감을 얻은 표지인데 매번 아이디어가 무척 좋다.


이 책은 저자가 2017년 가을 15일간 도쿄에서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뉴욕규림일기>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유명한 관광지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장소에 다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도쿄 여행에서도 저자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날 그날 발길 닿는 대로 가보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데, 그 모습이 참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문구와 예술을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도 그리 멀지 않아서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기도 했다. 


무계획 여행이지만 마냥 놀고 먹는 게 아니라 도쿄 아트 북페어를 관람하기도 하고, 안도 다다오 전시를 보기도 하고, 숙박이 가능한 서점인 북 앤 베드 이케부쿠로에 묵기도 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취향을 개발하는 모습들도 인상적이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행이지만, 여행 속에서도 자신의 일 또는 업에 영감을 줄 만한 것들을 부지런히 찾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일놀놀일>의 저자답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본 여행이라면 나도 많이 다녀 봤는데 이런 기록물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고, 다시 일본에 간다면(아니 어느 나라라도) 저자처럼 부지런히 기록해서 뭐라도 남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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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규림일기
김규림 지음 / 비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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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문구인 김규림 작가님을 알게 되면서 구입한 책이다. 김규림 작가님의 '규림일기' 시리즈는 2024년 12월 현재까지 총 세 권 출간되었는데, 첫 번째 책 <도쿄규림일기>와 세 번째 책 <연변규림일기>는 독립출판 형식으로 출간되어 스토리지북앤필름 네이버 스토어에서 구입했고, 두 번째 책 <뉴욕규림일기>는 출판사 비컷을 통해 출간되어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뉴욕규림일기>부터 구입해서 읽었는데 기대한 대로 훌륭하다. 미국 문구의 상징 '컴포지션 노트'를 차용한 표지, 작가님의 손글씨, 손그림이 그대로 인쇄된 본문은 발상 자체도 기발하고 신선하지만 여행의 설렘과 흥분을 실감 나게 전달하고 문구인이자 기록인인 저자의 캐릭터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 삼중의 효과를 낸다.


이 책은 내용도 재미있다. 2018년 저자는 회사 동료이자 친구인 숭(김승희 작가님)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2주 간 여행을 떠났다. 문구인을 자처할 정도로 문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저자는 이 여행에서 문구 구입에 할당한 예산만 100만 원이었을 정도로 문구 쇼핑에 대한 생각이 컸다. 과연 저자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컴포지션 노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구를 구입하는데, 각각의 문구에 관한 소개와 각각에 얽힌 에피소드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어떤 숙소에 묵고, 무엇을 먹고 마셨으며, 어떻게 이동하고 놀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물론 담겨 있어서 뉴욕 여행 에세이, 여행 가이드북으로서도 읽어보고 참고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그림과 글씨체가 너무나도 취향 저격이라서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힐링이 된다. 작가님의 그림과 글씨체는 각잡고 공들인 느낌이라기 보다는 미술의 크로키처럼 빠르게 슥슥 그리고 쓴 느낌에 가까운데, 그 무심하면서도 경쾌한 태도가 오히려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표정이나 정신 놓고 자는 얼굴 등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상황을 묘사한 그림들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볼수록 공감과 감탄을 자아낸다. 책 마지막에 실린 여행지와 실제 여행 노트 사진도 아주 좋다. 나도 그림을 그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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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필법 교양 100그램 3
유시민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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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는 끝이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여 활용하는 것 자체가 능력이 되고 자산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시 공부, 취업 공부, 자격증 공부만을 공부로 여기고 그 이상의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유시민의 <공감필법>은 입시 공부, 취업 공부, 자격증 공부 이외의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서가 공부로 이어지고 공부가 글쓰기로 연결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공부의 원점은 독서다. 공부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만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있어 아직까지 책만한 수단은 없다. 독서를 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읽지 말고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텍스트에 담긴 그대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다. 내용의 오류를 찾거나 글쓴이의 견해에 반박하는 것은 일단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적어도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에 최대한 이입해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어야 비평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자기 자신도 독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을 쓸 수 있다.


독서를 통해 공부를 했다면 그다음에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공부한 내용을 글로 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문자 텍스트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이 담긴 책을 여러 번 정독하고, 귀찮아도 스마트폰 대신 수첩에 메모하며, 그렇게 쓴 메모를 열심히 모아서 컴퓨터에 정리하고 글로 완성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 책에는 다독가로도 유명한 저자가 읽기를 권하는 책들도 다수 소개 및 인용되어 있다. 올겨울 한 권씩 찾아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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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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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 중에서도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을 좋아한다. 범죄 소설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준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비롯해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시기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소설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최근에야 완독한 스웨덴 작가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의 범죄 소설 중에도 경찰이 주인공인 소설이 많은데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애정을 가진 작품은 아직 못 만났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범죄 소설 <가연물>의 주인공 경찰 가쓰라는 어떨까. 가쓰라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가연물>의 후속편이 나오면 읽어볼 것이다.


<가연물>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일본 군마 현경 본부 형사부 수사1과의 가쓰라 경부는 현내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을 수사하느라 사계절 내내 바쁘다. 봄에는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어난 인질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쁘고(진짜인가), 여름에는 유명 산책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의 주인을 찾느라 바쁘고, 가을에는 주택가에서 일어난 강도치상 사건의 범인을 찾느라 바쁘고(<졸음>),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일어난 조난 사고를 처리하거나(<낭떠러지 밑>) 쓰레기 수거장 연쇄 화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느라 바쁘다(<가연물>).


가쓰라가 바쁜 건 그를 기다리는 사건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몸과 머리를 다 써서 일하는 경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쓰라는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유족과 용의자는 물론이고 목격자와 주변인들도 샅샅이 찾아내 직접 만나 본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상을 믿지 않지만 사람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요한 증거를 최대한 확보한 다음에는 혼자서 오로지 두뇌만으로 모든 가설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진다. 가능한 모든 명제들을 나열한 다음 하나씩 진위를 확인하며 정답을 가려내는 과정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가쓰라는 해리 홀레나 마르틴 베크 같은 안티 히어로적인 경찰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상부에서 탐탁지 않은 지시가 내려와도 군말 없이 순응하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카페 오레와 달콤한 빵으로 당 충전을 하면서 회복한다는 점에서 히어로보다는 소시민에 가까운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사건을 대하는 이성과 어떤 압박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근성, 결국에는 진범을 찾아내는 유능함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대표작 <빙과>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후속편이 나온다면 잊지 않고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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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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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소리네 담임 선생님은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되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하는 게임을 시켰다. 채운이 전학 온 날에도 담임 선생님은 어김 없이 그 게임을 시켰다. 나는 외동이다, 나는 작년에 다리를 다쳐 축구를 관뒀다, 나는 돼지갈비를 싫어한다... 무심히 채운의 말을 듣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채운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못을 밟아 발을 다친 적이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가끔 아침에 눈뜨는 게 두렵다... 그리고 ...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


김애란 작가의 신작 장편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인 지우, 소리, 채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지우는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엄마의 애인이었던 선호 아저씨와 함께 살다 가출했다.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생겨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채운은 일 년 전에 벌어진 어떤 사건 이후로 감옥에 수감된 어머니와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혼자서 돌보고 있다. 세 사람은 같은 반이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소리가 지우의 도마뱀 용식을 돌보고 채운의 강아지 뭉치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서로 연결된다.


지우, 소리, 채운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가족이나 친구가 없거나, 있어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우는 즐겨 찾는 인터넷 카페에 웹툰을 연재하고, 채운은 영어학습 앱을 열어 자신의 감정을 적는다. 두 매체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점이다. 웹툰(만화)은 허구를 가정하기 때문에 실제의 사건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는 거짓인 척할 수 있다. 영어학습 앱은 문법만 정확하다면 어떤 내용이든 영작할 수 있다. 지우와 채운은 그렇게 거짓말이라는 형태로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각자를 짓누르는 진실의 무게를 견디고 거짓된 현실을 감당한다.


소리에게는 죽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자체가 남들에게 숨기고 있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소리는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림을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남과 접촉해 그의 미래를 알게 되면 침묵을 택하거나 거짓을 알리는 식으로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무당이나 영매처럼 초현실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판타지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청소년 성장 소설의 형태를 빌려 진실만으로 또는 거짓만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이야기 또는 창작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주는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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