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를 마치고 : 타누마 아사 단편집
타누마 아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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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를 마치고>는 <어허, 아타미 군>의 작가 타누마 아사의 단편집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어허, 아타미 군>와 마찬가지로 슴슴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매력이 있다. 맨처음에 실린 단편 <바다는 가지 않아>는 평범한 사무직원 타카모리 씨와 근처에서 일하는 소우다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초 직장의 몇 안 되는 여직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은 휴식 시간에 잠깐 만나서 간식을 먹으며 짧게 수다를 떠는 친구 비슷한 사이로 발전한다. GL 같아 보이지만 GL은 아니고, 일하는 여자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가 생각나기도 했다.


표제작 <사십구재를 마치고>는 이십대 후반의 직장인 이시카와 츠카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만난 큰아버지는 '너도 이제 곧 삼십 대인데 슬슬 결혼해야지' 같은 말을 하고, 혼자 남은 엄마는 사실 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츠카사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일한 친구인 아키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츠카사의 곁을 지킨다. 서로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어허, 아타미 군>의 뒤뜰 친구 아타미 군과 아다치 군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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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아타미 군 2
타누마 아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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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최고의 미인인 아타미 군은 매일같이 여학생들의 고백을 받지만 그의 관심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향한다. 아타미 군은 물건을 사러 들어간 가게 점원에게도 사랑에 빠질 만큼 '금사빠'이지만, 그렇다고 남자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남미새'는 아니다. 특히 아타미 군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멋대로 들이대는 타입의 남자는 딱 싫어한다. 2권에도 그런 남학생이 나온다. 서점에서 마주친 쿠스모토 군은 아타미 군을 보자마자 '옆 반의 쿠스모토'라며 자기를 소개하고 친한 척을 한다. 그런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 새롭지는 않았지만, 싫은 내색을 해도 계속해서 들이대는 쿠스모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피소드 초반만 해도 아타미 군의 감정에 이입해 나도 쿠스모토 같은 타입은 정말 싫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전개를 보면서 애초에 '쿠스모토 같은 타입'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스모토를 비롯해 사람은 그 사람 안에도 다양한 면이 있고, 타인은 그 사람의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면만을 볼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의 고작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면만 보고 '그 사람은 이렇다', '그 사람 같은 타입은 이렇다'라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얼마나 섣부르고 오만한 행동인지. 나처럼 아타미 군도 각성(!)해서 자신답지 않은 시도를 해보는데, 그 결과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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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아타미 군 1
타누마 아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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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인 아타미 군은 학교 최고의 미인으로 매일같이 여학생들의 고백을 받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고백을 받아준 적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남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다. 문제는 그 남들이 전부 '남(男)'들이라는 것이다. 1권에서 아타미 군은 자신에게 주목하는 다른 학생들을 피해 학교 뒤뜰에 있다가 한 학년 선배인 아다치 군을 만난다.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아다치 군에게 호감을 느낀 아타미 군은 대뜸 밥 먹으러 집으로 오라는 아다치 군의 말에 선뜻 그러겠다고 답한다.


아다치 군의 집으로 놀러간 아타미 군은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사뭇 놀란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아타미 군의 집에선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누는 일이 별로 없다. 반면 엄마와 누나가 있는 아다치 군의 집에선 다같이 밥 먹고 게임하는 게 일상이고 시시콜콜한 일도 서로 공유한다. 아타미 군은 아다치 군이 이런 훈훈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서 훈훈한 성격이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한다. 과연 아다치 군의 반응은...? 작화도 내용도 슴슴한데 개인적으로 취향에 잘 맞아서 너무 좋았고, BL인 듯 아닌 듯한 분위기가 묘한 설렘을 주었다. 2권도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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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노트 - 딸 하나 인생의 보물 1호가 된, 엄마의 5년 육아일기
이옥선.김하나 지음 / 콜라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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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작가님의 팬이라서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두었던 책인데 오랫동안 손이 안 가서 안 읽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일기'에 꽂혀서 일기와 관련된 책들을 읽던 중에 이 책이 육아'일기'라는 것이 생각나서 읽게 되었다. 읽어보니 이 책의 훌륭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왜 이제야 읽었나 싶었다.


일단 이 책은 김하나 작가님의 어머니인 이옥선 작가님이 딸의 출생 이후 5년 간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옥선 작가님은 젊은 시절 대학에 다니던 언니의 대학 교지를 즐겨 읽었다. 그때 교지에서 '나의 재산목록 1호는 나의 어머니가 쓰신 육아일기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중에 자신이 출산을 한다면 그 아이의 육아일기를 써주기로 결심했다. 몇 년 후 결혼해 아이 둘을 출산한 이옥선 작가님은 실제로 각각 5년 간 육아일기를 썼다. 그렇게 쓴 육아일기는 오랫동안 비밀로 간직하다가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선물로 줬다.


김하나 작가님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 육아일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 시험에 낙방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에 어머니로부터 이 육아일기를 선물 받고 "갑자기 인생의 제일 첫 5년을 선물받아 그만큼 인생이 늘어난 것 같았다."라고 한다. 이 육아일기는 김하나 작가님이 작가로, 강연자로, 팟캐스트 진행자로 유명해지면서 점점 더 많이 회자되었고, 마침내 <빅토리 노트>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출간되었다. <빅토리 노트>는 노트 표지에 인쇄된 노트 브랜드의 이름인데, 일기의 주인공이 나중에 승승장구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릴 것을 예감한 제목 같아 신비롭다.


이 책은 내용 면에서도 흥미롭고 감동적이지만, 일기 또는 기록의 방법과 효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읽어볼 만하다. 일기의 저자인 이옥선 작가님이 출연한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Ep. 13 김하나가 평생 가장 많이 읽은 책의 저자가 나타났다' 편에 따르면, 이옥선 작가님이 5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기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매일 하나도 빠짐없이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쓸 수 있는 시간에 생각나는 내용만 적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일기 자체가 아니라 일기를 완성해서 아이에게 선물하는 것이므로, 일기 쓰는 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만다꼬!) 편한 대로 쓰자.


빼어난 문장, 완벽한 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하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아이가 오늘 이걸 했다', '이런 말을 했다' 같은 객관적인 사실 정보 위주인데, 이렇게 쓰니 기록하는 사람도 편하고 읽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다. 기록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건이나 일화가 지금 보니 엄청난 정치적 격변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장면들도 흥미로웠다. 형식은 다르지만 한 사람의 일생이 사회 또는 역사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니 에르노의 <세월>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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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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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세기 경. 이집트의 왕 쿠푸가 새로운 파라오로 등극한다. 등극하자마자 그는 신하들에게 "어쩌면 자신은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흘린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그들에게 피라미드 건설은 여러모로 유리한, 아니 꼭 필요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갖은 수를 사용해 쿠푸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 마침내 새로운 피라미드 건설에 착공한다. 공사 시작에 앞서 이들은 대량의 채찍부터 만든다. 백성들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거대한 돌과 무자비한 채찍질임을 알면서도 채석장으로 향한다. 명령에 따라도 죽고 따르지 않아도 죽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지만, 저자의 조국 알바니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다. 알바니아는 1941년부터 1985년까지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독재자로 불리는 엔베르 호자가 통치했다. 호자는 냉전 시대에 핵전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전국에 70만 개가 넘는 벙커를 설치했고, 그의 사후 딸과 사위가 그의 기념관을 지었는데 그 기념관이 바로 피라미드 형태다. 작가는 자국에서 실제로 자행된 독재와 억압, 착취와 폭력의 역사를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피라미드 이야기에 빗대어 전달한 것이다.


알바니아와 마찬가지로 오랜 독재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참 많았다. 특히 정부가 대규모 토목 및 건축 공사에 국민들을 동원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주체인 독재자를 칭송하는 대목에서 엄청난 기시감을 느꼈다. 착취에 가까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 때가 좋았다'라고 회상하는 사람들, "불안한 감정만 사라진다면 나머지는 뭐든 견딜 만하다"라며 권위에 '감사'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트라우마야 말로 독재의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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