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 - 예민한 나에게 필요한 반경 5m의 행복
나오냥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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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나오냥의 책이다. 나는 이 작가를 X(구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푸근한 인상의 토끼 캐릭터가 너무나도 내 취향이라서 눈길이 갔는데 만화 내용도 공감이 가서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팔로우했던 당시만 해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기 전이었는데 얼마 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어 매우 반가웠다. 이 책 외에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빠른 시일 내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면 좋겠다.


이 책은 심리적으로 외부 자극에 취약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한 저자는 직장 생활이 맞지 않아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했다. 직장이 문제인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로부터 HSP(Highly Sensitive Person, 무척 민감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HSP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척 민감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소개하는 만화를 그려서 X(구 트위터)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화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여러 권의 책도 내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든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이든,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다.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민감해서 쉽게 지치거나 상처 받는 성격이라면, 지치거나 상처 받을 일을 피하거나 덜하는 건 어떨까. 대인 관계가 힘들다면 사람 좀 덜 만나면 되고 아예 안 만나도 된다.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면 업무 시간을 줄이거나 그만둬도 된다. 관계도 일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좋아하는 동물을 키우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는 건 어떨까.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까지 나를 힘들게 하면 누구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시간은 물리적이고 객관적이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설령 삶의 낙이 '잠'이라 해도 오늘도 마음껏 자서 행복하다고, 온종일 뒹굴뒹굴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느꼈다면 알찬 하루였던 거다. 그렇다면 누가 뭐라 하든 오늘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128쪽)


이 책에는 저자가 X(구 트위터)에 연재하는 만화가 다수 실려 있지만, 만화에는 담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자세히 나온다. 팬데믹 시기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우울증을 진단 받은 아버지와 어머니 간의 갈등,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에게 느낀 복잡한 감정 등 진솔한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평생 간직할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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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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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출판사 창비와 함께 만든 <호시탐탐>은 이번 탄핵 촉구 집회 같은 책이다. 노동, 성소수자, 지역, 여성, 환경, 이주민, 교육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주제 아래 한 데 모인 점, 각자의 입장을 여러 톤과 방식으로 다채롭고 유쾌하게 풀어낸 점 때문에 그렇게 느꼈다. 


김보통의 <최후의 보호막>은 던전이라는 광산에서 일하는 마법사 광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문제들을 풍자한다. 서이레, 요니요니의 <청첩장 도둑>은 이혼한 여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힘들게 산 엄마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딸의 이야기를 통해 정상 가족 신화의 폐해를 보여준다. 김금숙의 <섬>은 서울의 비싼 월세를 감당 못하고 지방의 섬으로 이주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심각한 부동산 문제와 그로 인해 서민들이 겪는 고충을 묘사한다.


김정연의 <수수께끼>는 사람이 태어나 죽기 직전까지 필요로 하는 그것, 즉 돌봄의 문제를 각기 다른 세 인물의 입장을 통해 보여준다. 구희의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기후 위기가 가까운 미래에 청소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한다. 정영롱의 <끄나빠>는 양친 또는 부모 중 한쪽이 외국인인 청소년들이 외적, 내적으로 겪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보여준다. 최경민의 <참교육>은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가 사적제재를 원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교육 현장의 사례로 풀어낸다.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김금숙의 <섬>이다. 처음에는 도시에 살면서 몸도 마음도 지친 주인공이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시골에 갔다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 많은 이웃들과 생활하며 점점 기력을 회복해 서울로 돌아오는, 비유하자면 <리틀 포레스트> 풍의 내용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반전을 보고 등골이 서늘함을 넘어 오싹했다. 경제 문제로 생각하기 쉬운 부동산 문제를 인권 문제로 풀어낸 점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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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 2
신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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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에서 일하는 아카기 쿄코는 단골손님인 미도리를 남몰래 짝사랑 해왔다. 그러다 미도리가 바람둥이인 전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게 도와준 걸 계기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가게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미도리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친구로서 계속 만나고 쿄코와 만나는 자리에도 데리고 나온다. 쿄코는 처음에 뭐 이런 남녀 관계가 다 있는지 황당해 했지만, 정말로 두 사람이 더는 서로에게 미련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한편 미도리는 그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가게 점원이자 새로 사귄 친구 정도로만 여겼던 쿄코에게 점점 다른 감정이 생기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데...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 2권은 점점 달라지는 네 사람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가장 반가운 변화를 보이는 인물은 미도리이다. 이른바 뼈헤녀인 미도리는 그동안 쿄코의 호감을 알아채지 못하고 점원 이상 친구 미만 정도로 대하다가 조금씩 자기 안에서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는 것을 자각한다. 마찬가지로 뼈헤남인 바바는 미야코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인드가 좁았다는 걸 깨닫는다. 근데 그렇게 상대의 감정을 배려한다는 사람이 왜 미도리의 감정은 배려 안했던 건지...? (미야코, 저런 남자한테 마음도 몸도 주지 마...) 그냥 얼른 남자들 치우고 쿄코-미도리 이야기나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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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 1
신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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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에서 일하는 아카기 쿄코는 단골 손님인 미도리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중이다. 체구는 작지만 술을 엄청 잘 마시는 미도리는 자주 혼자서 가게에 와서는 엄청난 양의 술과 안주를 해치우며 바람둥이 남자친구 욕을 잔뜩 하고 간다. 그 때마다 쿄코는 그 남자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웃는 얼굴로 미도리를 위로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도리의 남자친구가 미도리가 아닌 다른 여자를 데리고 쿄코가 일하는 술집에 나타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도리와 쿄코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긴다. 


신쿤의 만화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푸른>은 남자 비중이 꽤 큰 백합물이다. 일단 메인 커플은 쿄코-미도리인데, 이들 외에 미도리의 (현->전) 남자친구인 바바와 쿄코의 남동생 미야코의 비중이 꽤 크다. 그렇지만 바바와 미야코가 쿄코와 미도리 사이를 방해하는 그런 전형적인 전개는 아니다. 미도리와 바바는 오랫동안 사귀면서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유대감은 가족이나 친구보다 끈끈하지만 성적인 끌림은 더 이상 없는 (오래된 부부 같은) 관계다. 그런 두 사람이 쿄코-미야코 남매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관계를 돌아보고, 이성애자 정체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원래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이라는 제목의 동인지로 나온 것을 추가, 수정해서 나온 작품으로, 원작인 동인지에는 1화부터 3화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이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이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가장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건 미야코 아닌가 싶고, 앞으로 이 캐릭터를 주목해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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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마이 미 마인 1
유우키 하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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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친구가 많지 않았던 이즈키 아키라는 고등학교 때에는 반드시 친구를 많이 사귀겠다고 결심한 상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내에서 소문난 양아치인 아마미야와 아는 사이가 되고, 아마미야와 친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아키라의 곁에 다가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아마미야 외에 다른 친구들도 사귀고 싶은 아키라는 아마미야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선언하지만, 두 사람이 엮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그때마다 아마미야의 여러 얼굴을 보게 되면서 아키라는 점점 더 아마미야를 좋아하게 된다. 


유우키 하루의 만화 <아이 마이 미 마인>은 평범한 고교 생활을 동경하는 성실한 성격의 여성 주인공이 평범이나 성실 같은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양아치 남학생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러브 코미디이다. 아마미야의 캐릭터가 재미있는데, 양아치 같아 보여서 경계하면 벌레 한 마리 못 잡고 쩔쩔매는 모습으로 경계심을 허물고, 그렇게 경계심을 허물고 있으면 무서운 사람들을 혼자 힘으로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서 경계를 높이게 만든다. 결국 아키라가 아마미야의 진심을 알아보고 그의 다양한 면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2권도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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