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실례
양다솔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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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 즐겨 듣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모토이기도 한 문구다. 요즘 읽고 있는 로런 그로프의 소설 <운명과 분노>에도 비슷한 의미를 담은 문장이 나온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없다. 그건 관점의 문제지." (47쪽)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겪는 일들을 희극적으로 더 많이 해석하는 사람 또는 비극적으로 더 많이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양다솔 작가는 전자다. 양다솔 작가는 소위 말하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정규 교육을 받는 대신 대안학교에 다녔고, 십 대 시절의 2년을 절에서 보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열두 살 때 이후로 계속 노동하며 살았고, 아버지는 쉰 즈음 스님이 되겠다며 출가했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 대학을 졸업해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으로 살아보기도 했지만, 어딜 가나 특이한 애,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았다. 결국 퇴사하고 글쓰기 소상공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양다솔 작가가 2024년에 발표한 산문집 <적당한 실례>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이 슬픔 또는 분노를 통과해 웃음과 통찰로 승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책이다. 대표적인 예가 노상방뇨에 관한 에피소드다. 어느 날 길을 걷던 저자에게 한 여자아이가 다가와 노상방뇨를 하는 아저씨가 있다고 알려줬다. 놀란 저자는 아이를 달래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화가 난 저자는 이 사건을 농담으로 승화할 방법을 궁리한다. 노상방뇨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신고했는데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노상방뇨를 해도 된다 → 여자들아, 노상방뇨를 하자! (안 됩니다 ㅎㅎ)


강남 8학군에 속하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한 에피소드도 좋았다. 강연의 주제는 '글쓰기와 독서의 중요성'이었는데, 강연의 청중인 이과 계열 남학생 400명은 입시나 게임에나 관심 있지 글쓰기나 독서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이력을 들려준 후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살면서 한 걸음도 삐끗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텐데 나는 살면서 매번 삐끗했다. 남들 보기에 이상하거나 튀면 안 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을 텐데 나는 어딜 가나 이상하다, 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 너의 '이상함'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정상만을 좋게 보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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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의 시간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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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전에도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팬데믹 이후 외식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팬데믹이 잠잠해진 요즘은 높아진 물가 때문에 전보다 더 외식을 안 한다. 그런 나에게 외식 욕구를 높여준 책. 마스다 미리의 <런치의 시간>이다. 이 책은 팬데믹 기간 동안 저자가 먹은 런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만 생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저자 또한 외식 대신 집밥을 주로 먹었다. 그렇다고 늘 먹는 음식만 먹기는 싫고, 다른 나라의 요리가 그립기도 해서 어느 날엔 스웨덴 요리를 만들고 어느 날엔 필리핀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왜 이 생각 못했지...?


시간이 흘러 외출이 가능해진 후에는 예전처럼 열심히 런치를 먹으러 다녔다. 메뉴는 한국에도 유명한 체인점 음식부터 원화로 몇십 만원에 달하는 비싼 음식까지 다양하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답게 내용도 작화도 심플하지만 음식에 대한 소개와 음식으로부터 펼쳐지는 저자의 이야기 보따리는 결코 허술하거나 가볍지 않다. "늘어나는 과거와 줄어들어 갈 미래. 골인 지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데도 내일도 모레도 무조건 먹을 수 있다고 믿는 런치." "먹고 싶은 것을 먹는 행복은 자그마한 행복 같지만 아주아주 자그마한 것은 아니고 아니, 오히려 아주아주 큰 행복이지 않을까." 이런 문장을 읽고 눈물이 나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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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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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서는 어느 날 아버지의 부음을 듣는다. 아버지라고 해도 여섯 살 때 헤어졌기 때문에 민서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다. 어머니가 떠난 후 아버지와 단둘이 컨테이너에서 지냈고, 그 때 무척 외롭고 배고팠던 기억 정도다. 얼마 후 민서는 그룹홈에서 함께 지냈던 해서 언니의 연락을 받는다. 그룹홈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로부터 적절한 케어를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함께 사는 시설이다. 민서는 아버지가 친권을 포기한 후 그룹홈에서 지내다 열여덟 살 때 자립 지원금 오백만 원을 들고 혼자서 세상에 나왔다.


민서에게 해서는 복잡한 존재다. 그룹홈 시절 민서와 해서는 친자매처럼 지냈지만 두 사람이 실제 자매인 건 아니다. 게다가 해서는 그룹홈에서 지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그룹홈을 떠난 후 좀처럼 민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해서가 오랜만에 민서에게 연락해서는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민서는 해서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불안감을 느낀다. 동생인 민서가 보기에도 너무 어리고 엄마가 되기에는 철도 없어 보이는 해서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아니 그 전에 무사히 출산이나 할 수 있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지애의 소설 <완벽이 온다>는 제2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이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그룹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룹홈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본 고아원이나 보육원 생활에 대한 묘사에 비하면, 이 소설에 나오는 그룹홈 생활에 대한 묘사는 상대적으로 안락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도 실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거리감과 그룹홈을 떠나면 무조건 혼자서 자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을 느꼈던 민서는 해서 언니 그리고 솔 언니와도 연락이 되면서 가족처럼 지냈지만 진짜 가족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 언니들이야말로 자신에게 남은 가족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해서에게 부족한 부분을 솔이나 민서가 채우고, 솔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서와 민서가 도와주는 식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다 보면 각자가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드는 '정상 가족', '완벽한 가족'도 괜찮다는 걸 알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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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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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 공방을 운영하는 수제 구두 장인이다. 구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못이나 접착제까지 기성품을 안 쓰고 손수 제작하기 때문에 품질은 뛰어나지만 이윤은 거의 안 남는다. 주문 받은 구두를 만들거나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온 학생들을 가르치며 근근이 살아가는 안의 공방에 어느 날 한 손님이 찾아온다. 결혼할 남자가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미아는 사실 안의 오랜 형제다. 안과 미아는 원래 정령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몸이라는 게 생겼고 그 후로 이름과 모습과 거처를 바꾸며 죽지 않고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을 살아왔다. 


안은 영원히 사는 자신이 언젠가 죽을 인간과 인연을 맺는 일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여기고 그동안 아무와도 깊은 인연을 맺지 않고 지냈다. 반대로 미아는 어차피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운명이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보는 게 낫다고 여기고 다양한 일을 해보았고 유진이라는 애인도 만났다. 안은 유일하게 남은 형제인 미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유진이 신을 구두를 열심히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아와 유진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는다. 끝이 뻔히 보이는 사랑을 하는 미아와 그런 미아의 정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알쏭달쏭한 유진을 이해하기 어렵다. 


구병모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는 한 편의 동화 같으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영원히 사는 안은 현재의 기쁨보다 무한대로 펼쳐진 미래에 느낄 슬픔의 총합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최대한의 기쁨을 추구하기 보다는 슬픔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미아는 안과 같은 영생의 몸을 가졌지만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안은 그런 미아를 보면서 처음엔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영원히 사는 미아가 언젠가 죽을 유진을 사랑하는 것과 영원히 사는 자신이 결국 낡고 망가질 구두를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구두만이 아니다. 유진이 추는 춤도 사라지고, 음악도 사라진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아도, 잠깐일 뿐이라도, 누군가의 미소, 누군가의 평화를 만드는 일은 소중하고 경건하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수시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모두 사라지겠지만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지에 대해 이 소설보다 더 아름답게 말하는 소설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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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10 - 완결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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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에 걸쳐 만화 <정년이> 총 10권을 완독했다. 드라마 방영 이전에 4권까지 읽었고 드라마 방영 이후 10권까지 전부 구입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원작 만화와 드라마의 내용이 약간 다른 걸 알고 있었고, 각색된 부분에 대해 서운해 하는 원작 팬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는데, 나는 원작 만화는 원작 만화대로 좋고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좋은 것 같다. 원작 만화를 보고 나서 드라마를 본다면 여성 국극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드라마를 보고 나서 원작 만화를 본다면 여성이 예술을 한다는 것,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러니 부디 둘 다 보기를 권한다(제발!!!).


<정년이> 10권은 9권에 이어 부용의 서사가 진행된다. 부용은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가 지배하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가 정한 약혼자인 민형과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불량배들을 만났는데 그때 구해준 사람이 정년이다. 사실 부용이 정년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인상은 '흙감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계집'이 남자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용은 묘한 통쾌함을 느꼈고 그 기분은 곧 동경과 애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저 정년의 팬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용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없었다. 


한편 매란 국극단은 정년이 구해온 극본을 가지고 재기를 위한 합동 공연인 <쌍탑전설>을 준비한다. <쌍탑전설>의 왕자는 아사달인데, 이 아사달 역을 두고 정년과 영서가 공개 오디션을 치르게 된다. 오디션 당일. 새로운 왕자의 탄생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매란 국극단 마당에 모인다. 얄궂게도 이 날은 부용과 민형의 결혼식 날. 오디션 소식을 전해 들은 부용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같은 시각 국극단 마당에서 오디션을 치르는 정년과 영서는 같은 장면을 전혀 다른 해석으로 연기해 관중들은 물론 국극단 사람들까지 매료시킨다. 드라마와 달리 희망적인 엔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년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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