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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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중요성을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1986년생인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독재 정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한국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고 내가 유치원생일 때 한국의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영화 <서울의 봄>에 나왔듯이 이들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정치인들로, 만약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실패하고 1993년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 척결로 군사 정권 종식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도 군사 독재가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안 했을 일이지만, 2024년 12월 3일 계엄 사태 이후로 상상보다 더한 일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역사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요즘 들어 많은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역사 스토리텔러 썬킴의 신작 <그날의 세계사>이다. 이 책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일 년 동안 해당 날짜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령 내 생일인 12월 6일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펼치면 '1877년 12월 6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사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가 창간됐다.'라고 나온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역사에 큰일을 하나 한 신문사로, 바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언론사이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주연의 <더 포스트>이다. 좋아하는 영화인데 내 생일과 관계가 있다니 기쁘다.


이 책의 제목은 <그날의 '세계사'>이지만 한국사 내용도 나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6일의 다음날인 1월 7일은 1895년 고종이 종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홍범 14조를 발표한 날이다. '근대적 헌법'이라고 하면 좋게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 조정을 친일파로 채우고 조선을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을 추진했다. 그 중 하나인 홍범 14조의 제1조는 '청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국을 만들자'인데, 이 문장은 언뜻 들으면 조선에 이익이 되는 내용 같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와 손절하고 일본의 속국이 되라는 내용이다. 이때 득세한 친일파들이 대대손손 이어져 지금도 나라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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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 셜록 홈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추리소설의 정수를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6
무경 외 지음 / 센시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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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취미로 만드는 데 있어 추리소설만큼 좋은 시작점은 없다. 이건 일반론이 아니라 내 경험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지만 학교 생활과 입시 준비 때문에 책에서 멀어진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서 다시 독서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는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 때마침 학교 도서관 인기 대출 도서 목록이 눈에 들어와서 그 책들부터 섭렵하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시절 베스트셀러가 댄 브라운의 <장미의 이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추리소설이었다. 그 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유명한 추리소설을 섭렵했고, 그렇게 몸에 밴 독서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는 책을 한 달에 10~20권씩 읽고 있다.


과거의 나처럼 추리소설 읽기를 시작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은 무경, 박상민, 박소해, 이지유, 조동신 등 한국의 추리소설 작가 5인이 직접 선정한 동서고금의 추리소설 걸작 50편을 소개하는 책이다. 작품 선정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첫째는 세월에 흘러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인지, 둘째는 추리소설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인지, 셋째는 현재 우리나라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인지를 보았다. 책 앞쪽에 추리소설 계보도 서양 편과 동양 편이 실려 있어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의 출간 순서와 작품 간의 관계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점도 인상적이다. 책마다 같이 볼만한 작품을 참고도서 형태로 덧붙여 독서의 확장을 안내하는 점도 유익하다. 


이 책에 따르면 추리소설의 시초라고 일컬어지는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이다. 1841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탐정이 주인공이 되어 미스터리를 해결한다'는 추리소설의 기본 틀을 처음 제시했다. 1892년에 출간된 <셜록홈즈의 모험>은 명탐정의 모델을 확립하고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을 구축했다. '세계 3대 탐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까지는 쉽게 떠올리지만 남은 한 사람의 이름은 잘 떠올리지 못한다. 바로 그 주인공인 브라운 신부는 1911년에 발표된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소설 <브라운 신부의 순진>의 주인공이다. 탐정이나 형사가 아닌 가톨릭 신부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놀라운 반전 때문에 지금도 추리소설, 특히 단편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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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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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인 미란은 매일같이 고객에게 불평과 항의를 듣는다. 그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사람인 이상 마음이 다치는 건 당연하다. 그런 미란에게 어느 날 영은이 나타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 낭독 봉사를 하는 미란은 복지관에서 만난 영은과 연인이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쭉 혼자였던 미란은 영은과 함께 하는 매일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무엇보다 모두가 대체 가능한 사람, 무시하고 상처 줘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미란을 세상에 유일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겨주는 영은이 고맙다.


<모린>은 <남겨진 이름들>을 쓴 안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좋다. 표제작 <모린> 다음에 실린 단편 <핀홀>도 좋다.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는 보라는 동거 중인 애인 승원이 사실은 외동이 아니라 죽은 형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게다가 그 형은 중증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다 최근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보라는 승원에게 그런 형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런 사실을 쉬쉬하며 숨겨온 승원과 승원의 가족에게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어지는 단편 <담담>은 11년 간의 연애를 끝낸 바이섹슈얼 여성 혜재와 사별한 이성애자 남성 은석의 연애를 그린다. 혜재는 바이섹슈얼이라는 사실만 털어놓아도 외면했던 다른 남자들과 달리 담담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 주는 은석에게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은석과 결혼할 경우 임신, 출산, 육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자신이 원한 바이섹슈얼 여성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이성애자 여성은 당연하고 레즈비언 여성에 비해서도 훨씬 적은 바이섹슈얼 여성의 서사라서 새롭고 흥미로웠다.


단편 <작은 눈덩이 하나>는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한 의선이 하우스메이트였던 대학생 친구 세진의 영화 동아리 선배 준수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되지 못한 준수와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되지 못한 의선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유의미한 무엇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존재하는 한 몇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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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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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집을 나와 백화점 남성 의류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여자 나이가 이십 대 중반만 되어도 '올드미스' 소리를 들었던 (야만적인) 시대. '나' 역시 대학을 졸업했으니 어서 시집을 가라는 가족들의 성화를 견디다 가출을 택했다. 그러나 '나'의 친구들이나 사촌 여자 형제들이 하나둘 결혼을 택하고, '나'가 만나는 남자들도 '나'에게 결혼을 바라거나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나'를 떠난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는 배수아 작가가 등단 2년 만인 1995년에 발표한 첫 소설집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에 발표된 소설들이라서 그런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졌지만, 문제 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꼈다. 이제는 여자 나이가 이십 대 중반만 되어도 결혼 압박이 들어오는 시대는 아니지만, 남성보다 여성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결혼(+임신, 출산, 육아 등)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고, '여성=언젠가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룰 존재'로 보아서 취업, 승진 등의 기회를 더 적게 주는 것도 사실이다.


표제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의 화자인 '나'는 언젠가 자신이 일하는 백화점으로 주방용 가위를 사러 왔던 친구가 결혼 후 바로 그 가위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순간 '나'는 오래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국도를 드라이브하다 허름한 행색의 여인으로부터 푸른 사과를 사먹었던 일을 떠올린다. 남자친구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맛없다 했지만, '나'는 맛없는 사과라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여인의 용기가, 당당함이 멋지고 자유롭게 보였다. 그러니 잊으면 그만인 사소한 사건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걸 테고.


90년대에 출간된 이십대 중반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양귀자의 <모순>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고학력 중산층 계급 출신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권태와 연애의 한계라는 주제는 에쿠니 가오리와 프랑수아즈 사강을 떠올리게 한다. 일상에 환상이 틈입하는 구성이나 푸른 사과, 늑대처럼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샤넬, 야마하, 고디바, 행켈 등 외국 브랜드명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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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 지음, 박세형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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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에드워드 리빙스턴 씨는 영국 런던의 템플 지구에서 수십 년째 '달빛서점'이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리빙스턴 씨는 스크루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성미가 괴팍하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하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여덟 살 소년 올리버, 서점 한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 청년 등이 책 한 권 사지 않고도 항상 이 서점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다.


한편 고고학자인 아그네스 마르티는 고향인 바르셀로나에서 취업하는 데 실패하고 런던으로 오지만 여기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고향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던 아그네스는 친구 재스민의 조언으로 템플지구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달빛서점을 방문하게 된다. 리빙스턴 씨는 그가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데다가 고고학 전공자이면서 고전 문학에 대한 지식도 적지 않은 아그네스를 달빛서점의 새로운 직원으로 채용한다.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의 소설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은 영화로 치면 <러브 액츄얼리> 같은 작품이다. 런던의 여러 명소들을 무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와 로맨스를 펼치는 점이 그렇다. 셰익스피어부터 찰스 디킨스, <해리포터>까지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언급, 인용되어 있는 점도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직업과 개인적 행복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에드워드-시오반 커플과 그렇지 못한 아그네스-존 커플의 대비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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